2배로 사는 인생
일흔 중반 나이에 들어서니 착잡하기도 하고 묘한 생각이 자꾸만 든다.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90세가 되면 100명중 95명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그리고 5%안에 내가 끼일지도 의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제부터라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아껴서 20년을 살수 있다면 방법을 조금만 달리하면 40년을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1시 어김없이 침대에 벌렁 누워 잠을 청한다.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이다. 오늘도 예외없이 잠을 잤다. 아〜 참 잤다. 일어나 보니 1시 30분이다. 한 여름 날씨처럼 무더운 날이다. 점심식사를 **노인복지회관에서 하고 집에 와서 간단히 씻고 과일과 물을 마신 후 오전에 쌓였을 지도 모를 피로를 풀었다. 하나님은 낮과 밤을 창조하셨지만 사람에게도 재창조의 재량권을 주셨다. 그래서 나름대로 또 하나의 밤을 창조하여 보내기로 한 것이다. 현직에 있을 때는 낮에 잠을 자 본 적이 없다. 낮에 일하고 밤에 자는 것에 익숙해서 낮에 자려고 해도 잠이 도무지 오지 않았다. 은퇴한지 10여년이 되었는데도 습관적으로 굳어버린 생활패턴은 좀처럼 고쳐지지 않았다.
새 결심을 하고 부터는 새벽 4시에 일어난다. 의지가 약해서 일어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서 핸드폰에 알람을 맞춰 놓았다. 일어나면 위를 세척하기 위해 온수를 마신다. 온수에 혈압을 조절해 준다는 양파즙, 몸도 마음도 따뜻하게 해 준다는 향긋하고 진한 쌍화탕, 몸을 따뜻하게 한다는 달콤하고 알싸한 생강차를 번갈아 타 마신다. 세수를 하고 몸단장을 한 후 4시 40분에 새벽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교회에 간다. 15분쯤 걸리는 **교회에 가서 20분 남짓 예배에 참석하고 5시 40분쯤 집에 온다. 서둘러 아침식사를 하고 노인일자리에 출근한다. 노인들이 할 일이 없으면 나태해지기 쉽고 게으름을 피우기 안성맞춤이기에 노인들을 억지라도 밖으로 나오게 해서 운동할 수 있게 일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나도 그 대열에 끼었다. 집에서 20분 거리에 **국민체육센터가 있기 때문에 도보를 택해서 간다. 8시부터 그곳에서 3시간동안 방문객 안내도 하고 상담도 해 준다. 그리고 할 일을 스스로 찾아 열심히 일하면서 간간이 음악도 듣고 나름대로 몸 풀기 운동도 한다. 도보로 왕복 출퇴근을 하고 직장 내에서 3시간 동안 열심히 일하다보면 만보를 훌쩍 넘긴다. 힘든 일을 하지 않았는데도 점심식사를 하고 집에 오면 12시 30분이다. 몸이 지치고 피곤하다. 피로를 푸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잠이 아닌가? 그래서 오수(午睡)를 하기로 했다. 피로가 쌓이면 병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오수를 즐기고 나면 몸이 거뜬하다. 또 하루가 시작되는 셈이다. 새로운 기분과 활기 찬 마음으로 책상 앞에 앉아 독서도 하고 글도 쓴다. 인터넷 서핑도 하고 음악도 듣는다. 오후 4시 시원한 시간대를 택하여 배낭을 메고 산책에 나선다. 건지산에 올라 맨발걷기도 하고 편백나무 숲속에서 머무르면서 삼림욕도 즐긴다. 숲속에서 걷고 뛰면 기분이 상쾌하다. 그래서 또 만보를 채운다. 그래야 저녁에 잠을 푹 잘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분이 많다. 몸이 너무 편해서 오는 문화병이다. 몸을 많이 움직이고 운동을 하면 불면증은 올 수 없다. 몸이 지치고 피곤하면 생리현상으로 잠이 올수 밖에 없다. 나이 들어서 불면증을 모르고 산다는 것은 축복 중에 축복이다.
주말에는 시간이 더 여유롭다. 일자리근무시간이 없기에 아침 7시 40분쯤 애마를 끌고 전주천변으로 나가 라이딩을 한다. 바람을 가르며 씽씽 달리다 보면 기분이 하늘을 날을 것 같다. 길섶에 노랗게 피어있는 예쁜 기생초들이 자전거 길을 따라 도열하여 반갑게 환영한다. 꽃말을 알아보니 다정다감한 그대의 마음, 간절한 기쁨, 추억이라고 한다. 우산살처럼 갈라진 꽃대에서 피어난 자귀나무 꽃도 발견했다. 자귀나무 잎은 낮에는 펼쳐져 있다가 밤에는 오그라들면서 접혀 있는 모습에서 부부금실을 상징하는 합한 수 또는 합혼 수로 불리어진다고 한다. 활짝 피어있는 자귀나무 꽃이 어찌 아름답던지 자전거를 세워놓고 넋을 잃은 채 한참을 쳐다보기도 했다. 라인딩을 하고 나서는 9시 20분 맨발걷기를 위해 건지산 능선으로 올라간다. 능선을 넘으면 가정집처럼 편안한 **식당이 있다. 그곳에서 새싹비빔밥을 먹는다. 식당 담벼락에 양반집 마당에만 심었다고 해서 양반꽃으로 불리는 능소화(凌霄花)가 활짝 피었다. 온갖 봄꽃이 다 지고 세상이 초록색으로 물들어 있을 때 장마와 태풍과 같은 궂은 날씨를 퍼붓는 하늘을 업신여기듯이 피어난다는 능소화는 어려움을 잘 극복하는 상징의 꽃이기도 하다. 나이 탓인지 꽃들을 보면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든다. 그뿐만 아니다. 새들의 노래소리도 들으면 즐겁고 졸졸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도 영혼을 맑게 해 주는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특권까지 누리고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식당 화장실 문에 붙어 있는 소야 신**의 〈똥 항아리〉라는 해학적인 시가 눈에 들어온다. “좌변기에 앉아 똥을 누면 마치 요술마술을 보는 것 같습니다. 단추 하나를 누르면 순식간에 모든 게 감쪽같이 사라져 버립니다. 엄마 뱃속에 웅크리고 있는 아기처럼 내 뱃속에 들어 있던 똥 꼭 필요한 곳에 가서 잘 지내고 있는지 다시 만날 수 없는 내 똥이 늘 궁금합니다.” 돌아오는 길도 맨발걷기를 하다가 편백나무 숲속 평상에서 오수를 즐긴다. 노숙자 아닌 노숙자처럼 생활하니 마음이 편안하고 자유롭다. 인생을 두 배로 사는 즐거움을 만끽한다(2024. 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