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처럼 햇빛이 쨍쨍 내리쬐지도 않고 비가 내리지도 않는 우중충한 날이면 다리가 더 욱신욱신 쑤시고 많이 아프다. 이런 날엔 목욕탕에 가서 뜨끈뜨끈한 물에 들어가 찜질이라도 하면 좀 낫다. 그런 심산으로 목욕탕엘 갔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평일인데도 사람이 꽤 많아서 나름대로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동질감을 느낀다.
‘이벤트 탕’과 ‘온돌방’이 한 공간에 나란히 있다. 아주머니 한 분이 온돌방에 누워서 쉬고 있다. 나는 미처 못 보고, 탕에서 나와 바가지에 물을 퍼 마구 내 몸에 부으며 씻는다. 내가 생각 없이 부은 물이 아줌마 얼굴에 튀었는가 보다. 아주머니가,
“어이, 학생! 여게 물이 다 튀거든. 여게 사람이 누워 있을 때는 거기서 그래 물 떠가 퍼부으면 안 되겠제?”
이 말을 듣는 순간, 조금 불쾌하기는 하다. 그러나 남을 생각하지 못하고 생각 없이 한 부주의한 내 행동을 반성한다.
조금 있다가 나도 온돌방에 누워 스트레칭이라도 할 요량으로 아주머니 옆에 누웠다. 이럴 때는 ‘뻔뻔함’도 살아가는데 나름대로 적당하다면 필요하구나 싶다. 잠시 후에 나의 ‘적당한 뻔뻔함’은 극에 달하고야 만다.
“아줌마! 물 튀긴 것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 ……. 사랑합니데잉.”
바로 대답이 들려온다.
“하이고, 학생이 더 고맙다 아이가! 용기 내어 처음 본 무뚝뚝한 아줌마한 테 ‘사랑합니다’라고 진심으로 말해 주니 내가 많이 놀랬제. ‘사랑한다’는 이런 말은 평생 내 살미 처음 들어봤다 아이가. 학생 만난 나는 오늘 대박 이다 아이가!”
아무 것도 아닌 ‘사랑합니다’라는 한 마디의 말이 이렇게 서로를 부드럽게 만들고 기분까지 유쾌하게 만들었다. 그야말로 ‘살맛나게’.
말 때문에 아줌마와 나처럼 서로를 좋은 관계로 이끈 부부가 있어 얘기해 보고자 한다.
육십이 넘은 노부부가 성격 차이를 이유로 이혼을 했다. 성격 차이로 이혼한 그 노부부가 이혼한 그 날, 이혼 처리를 부탁한 변호사와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주문한 음식은 통닭이었다. 주문한 통닭이 도착하자, 남편 할아버지는 마지막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날개 부위를 잘랐다. 그러니 아내 할머니는
“내가 어떤 부위를 좋아하는지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어. 당신은 자기 중 심적이고 이기적 인간!”
아내 할머니의 그런 반응을 보며 남편 할아버지가 말했다.
“날개 부위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위야. 나는 내가 먹고 싶은 부위를 삼 십 년 동안 꾹 참고 항상 당신에게 먼저 건네준 건데.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가 있어. 이혼하는 날까지…….”
화가 난 노부부는 서로 씩씩대며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각자의 집으로 가버렸다. 집에 도착한 남편 할아버지는 자꾸 아내 할머니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정말 나는 한 번도 아내에게 무슨 부위가 먹고 싶은가 물어본 적이 없었 구나. 그저 내가 좋아하는 부위만 떼어내서 주어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아내에게 섭섭한 마음만 들고. 돌아보니 내가 잘못한 일이었던 것 같아. 나 는 여전히 아내를 사랑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사과라도 해서 아내 마음을 풀어주어야겠다.”
이렇게 생각한 남편 할아버지는 아내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휴대폰에 찍힌 번호를 보고 남편 할아버지가 건 전화임을 안 아내 할머니는 아직 화가 덜 풀려 그 전화를 받고 싶지가 않았다. 전화를 끊어버렸는데 또다시 전화가 걸려오자 이번에는 배터리를 빼 버렸다.
다음날 아침, 일찍 잠이 깬 아내 할머니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지난 삼십 년 동안 남편이 날개 부위를 좋아하는 줄 몰 랐네. 자기가 좋아하는 부위를 나한테 먼저 떼어내 건넨 건데 그 마음은 모 르고 나는 뾰로통한 얼굴만 보여주었으니 얼마나 섭섭했을까? 나에게 그렇 게 마음을 써주는 줄은 몰랐구나. 아직 사랑하는 마음은 그대로인데. 헤어 지긴 했지만 늦기 전에 사과라도 해서 섭섭했던 마음이나 풀어주어야겠다.”
아내 할머니가 남편 할아버지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남편 할아버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내가 전화를 안 받아서 화가 났는가?’
하며 생각하고 있는데,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전 남편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남편 할아버지 집으로 달려간 아내 할머니는 휴대폰을 꼭 잡고 죽어있는 남편을 보았다. 그 휴대폰에는 남편이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보내려고 찍어둔 문자 메시지가 있었다.
“미안해, 사랑해, 그리고 용서해”
우리는 평생을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말들을 쏟아내며 살아가게 된다. 사랑이 담긴 따뜻한 말 한 마디는 커다란 자긍심과 용기를 심어주기도 하지만 무심코 던진 날카로운 말 한 마디는 오래도록 날개를 달고 다니면서 누군가에게 평생 씻을 수 없을 만큼 깊은 상처와 한으로 남겨질 수도 있다. 사람들은 수없이 많은 말을 하고 살지만 오래지 않아 자신이 언제 무슨 말을 했는지 말을 한 사람은 금방 잊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그 말로 인해 용기를 얻어 세계적인 지도자로 우뚝 서게 된 가난했던 어느 소년의 이야기를 문득 떠올리게 된다.
부부라는 인연의 끈으로 매여 30년을 해로하면서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마음을 다 알 거라 믿으며 정작 꼭 해줘야 할 말을 해주지 않은 탓에 행복하고 아름답게 보낼 수 있었던 사연의 주인공들인 노부부의 사랑도 끝내 가슴 아프게 비극적으로 마지막 삶을 마칠 수밖에 없었다.
남자와 여자는 사랑하는 방법이 서로 다르다고 한다.
남자는 사랑하는 마음만 가슴에 담고 있으면 그만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여자는 한사코 그 가슴 속에 담아둔 사랑을 꺼내서 보여주기를 원한다.
그러나 남자들도 가끔 아주 가끔……. 여자들처럼 속 깊은 사랑을 확인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첫댓글 마음아픈 사랑 얘기네요..
잘 읽었습니다^^
행복한 저녁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