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상아탑의 낭만이라면 봄, 가을 대학축제라고 할 것이다.
서둘러 사회생활을 하다가 대학을 들어 간 내게는 별 흥미 거리가 안 되었다. 대학 4년 내내 몇 명의 친구들과 축제가 시작되면 4, 5시간 배를 타고 덕적도 서포리의 텅빈 해수욕장으로 달려 갔다.
텅빈 해수욕장에다 수 십 미터 긴 그물을 빌려, 지역방위병 몇 명도 끼워 가슴깊이 까지 들어 가 그물을 펴고 네명씩 양쪽에서 쌍끌이를 하는 그물질을 했다.
그렇게 안주거리를 마련하고, 산너머 십리길에 동동주를 받아다 역사 종교....인생을 논하며 밤을 새우며 축제 기간을 보냈다.
해질 무렵부터 10시까지 운영되는 동네 발전소 형님들이 낮 동안 고장수리를 해주러 갈때 도와드렸다. 자격증과 경험이 있는 학생들이라고 고맙다며 큼지막한 생선이나 건어포들을 주어 안주보다 매점의 술이 떨어질까 걱정일 정도였다.
그래도 모자라면 배를 빌려 근처 돌섬들로 바다 낚시를 나갔다. 그때 큰 어른의 지도를 받았다.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륙 작전때 군함들이 암초나 모래톱에 걸리지 않고 진격할 수있게 파일로트 역할을 하신 분이었다.
충청도에서 까지 원정을 오는 여러 통통배 선장 님들 중에서 한 분을 추천해 주셨다. 가능하면 서둘러 일순위로 찾아 가 그 분 배를 빌려 타라고 하셨다. 배가 크거나 좋아서가 아니라 선장의 경력과 노하우, 지혜가 순위의 결정적인 이유였다.
다행이 그 선장을 모시고 나가게 되어도 몇 시경에는 어느 어느 돌섬에 때맞춰 가라며 선장을 코치하셨다. 물 때를 알고 고기가 몰려 올 시간에 맞춰 낚시 드리울 장소까지 데려다 주는 선장님 헛 수고하지 않게 잘 잡으라고 하셨다.
그넓은 바다에서 수 십미터 물 속에 무슨 고기들이 그 시간에 온다는 것을 어찌 아시는지 ? 뻥이다 싶어도 선장님들이 모두 받들어 모시니 믿고 따랐야 했다.
낚시대 대신 검지 손가락 끝으로, 30미터 이상 깊은 물속에서 올라오는 낚시줄의 떨림 속에서 물고기, 파도, 수초, 흙, 모래, 바위를 구분해 내는 연습을 부단히 하라고 알려 주셨다.
열심히 노력해서 선장님이 직업 바꾸자고 할 무렵 대학원에 갔다. 대학커플로 소문난 동기 녀석이 대학 방송반장인 4학년 여학생과 사귀라고 했다.
인사만 시키고는 축제의 꽃이라는 학교방송 피날레 사회를 보기로 한 그 여학생에게 꽃다발을 선사하며 공개 연애를 하도록 친구가 플랜을 짜 놓았다며 섬으로 달아 날 수 없게 막았다.
그런데 임직원 총 30여명으로 전국 독점하던 알토란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특수 화학 회사
의 촉탁 주임으로 월급을 받으며, 필요시에만 출근해 일을 해주던 회사에서 호출명령이 떨어졌다.
일이 없어도 매달 말 전직원 회식때면 이런 저런 핑게를 만들어 호출을 해서 또 그런줄 알고 안 가려 했었다.
그런데 기술을 이전해 준 일본기업의 80대 회장까지 오셔서 남이섬에서 전 직원이 모여 창립기념을 겸한 야유회를 하니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고...
일본 회장님과 공동으로 VIP 상까지 푸짐하게 받고 밤늦게 돌아 왔다. 그 여학생은 이런 기괴한 선배의 환경을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자기가 싫어, 다니지도 않는 회사 핑게로 축제를 망치게 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행사 스케쥴에 맞춰 꽃다발은 서포리로 함께 가던 친구가 대신 단상에 올라 가 전달했지만...
결국 집까지 찾아 갔어도 못 만나고, 두 달 뒤 특별한 임무를 받고 학교를 떠나 연이어 면제받았던 군대까지 다녀오는 바람에 영영 엇갈리고 말았다.
30 미터도 더 깊은 바다 밑 바닥의 광어는 선장보다 잘 낚아 올린다고 했어도, 운명인지 공들이지 않은 인생의 낚시(?), 낭만의 기회는 끝이 되고 말았다.
또 같은 상황에 처해도 낚시를 드리워 놓고라도, 급한 장작하러 산으로 달려 갈 성격이니, 팔자에 연애같은 인연이나 낭만은 없지 싶다.
어느 덧 바다가 보고 싶어도, 바닷 가에서 5만리나 떨어진 타국의 산골에 앉은 백발의 할배가 되었다. 운하를 넘어 가는 외항선 뱃고동 소릴 들으며 때없이 청승맞게 먼 먼날을 회상이나 하는......
첫댓글 - 무언가 특별한 재주가 있는데 운이 안 따라주네요.
- 옛날 고스톱 칠 때 자주 쓰던 말 " 운칠기삼 "
- 나이 먹어 보니 우리 인생도 " 운칠기삼 " 이라?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알 수 없는 힘같은 느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