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인트 빌, 알라 뷰 >
북한산 우이령 둘레길 성대 신방 산악회 1월 정기 산행 모임은 약간은 추위가 엄습하는, 진눈깨비 팔랑팔랑 댈 것 같은 그런 날에 벌어졌다.
이렇게 만나고 웃고 즐거워하다 헤어지고 그러길 20년 가까이 거듭해 왔기에 뭐 특별할 것도 없는 날이지만, 이제는 마냥 무한정의 시간이 우리에게 머물 것 같지 않기에 만남 자체가 너무 소중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그곳이 어디든, 험하든 평이하든 그런 것은 아무 문제 되지 않았다. 다들 한번쯤은 다녔고, '아'하면 '어'하는 그런 곳일지라도, 그래서 반복 학습의 공간일지라도 우리의 우정과 사랑과 무한 신뢰는 새롭게 피어나는 꽃처럼 늘 두근두근 콩당콩당 다가오고 있었다.
북한산우이역 2번 출구에서 9시 40분에 상쾌한 출발의 종을 울렸다. 2명이 함께 하지 못한 11명이 세상 편한 발걸음을 옮긴다. 중간중간 길얼음이 훼방을 해대지만 짝꿍 지어 소군거림은 끝이 없었다. 아이젠은 역시 구세주였다.
드디어 10시 13분 우이령탐방지원센터에서 예약자 확인과 회장님의 오늘의 산행 개요 브리핑을 시작으로 정산의 서막이 타올랐다.
9시 3분 송추 방향에서 출발한 종원이 형을 10시 20분 북한산 대기측정소에서 감격적으로 상봉하여 완전체 11명의 대오를 이루고서 나긋나긋 사뿐사뿐 걸음을 옮긴다.
곳곳에 눈이 쌓여 있고 길은 얼음으로 미끄러웠다. 아이젠을 집에 두고 와 자책하는 종원이 형, 아이젠을 챙기지 못했지만 얼음길 전혀 걱정 없는 만석이 형을 제외하곤 대부분 큰 어려움 없이 사브작 사브작 소귀고개를 넘고 있었다.
옛적 백성들 통행의 길이요, 전쟁 시 피난길이요, 분단에는 금단의 길이 되어 우리에게서 멀어졌던 그 길이 눈 속에서도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었다. 우이령길,
10시 44분에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구축하였다는 대전차방어물을 통과하니 오봉을 한눈에 바라보는 전망대가 바로 곁이다. 태양광스마트벤치가 눈길을 끄는 가운데 셀카봉 단체사진 찍기 대회가 신나게 펼쳐진다. 종원이 형이 봉을 제공하고 병선이 형이 선수로 나서 각고의 노력 끝에 하나를 건진다.
다시 길을 나선다. 내려가는 길 어디서든 오봉의 가호아래 놓여 있었다. 우이령길은 오봉의 얘기를 벗어날 수 없다. 다섯 총각이 원님의 따님과 결혼하기 위해 바위를 던져 올려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아무도 결혼하지 못했다고 한다. 나라면 종원이 형과 사연 있는 4봉의 총각을 사위로 맞이했으리라.
석굴암 삼거리에서 막간 파티를 하려 했으나 개활지라서 조금 더 이동하여 11시 36분 드디어 막걸리 파티가 벌어졌다. 뜬총무님의 막걸리 셋, 새우깡, 오징어, 그리고 종원이 형의 보드카+레몬주, 용진이 형의 커피, 호랭이의 인디언 감자와 떡이 어우러져 한낮의 미식회가 열렸다. 쌀쌀한 날씨의 보드카는 정말 예술 그 이상이었다.
미끄러운 길을 가는데 젊은 부부인지 연인인지 꼴라당 넘어지는 사태 앞에 더 조심 조심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12시 09분 교현탐방센터를 무사히 통과하였고 드디어 12시 20분에 우이령 입구에 다다랐다.
일정대로 간다면 1시간의 걸음이면 점심장소에 도착할 수 있다. 은경공과 종원이 형은 걸음아 나 살려라 하면서 버스로 이동하고 나머지 아홉은 다시 구파발-의정부 대로의 한 켠에서 고귀한 걸음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대로의 곳곳에 조경수 단지들이 늘어져 있고 장렬공이 한때 열심히 다녔다는 했다는 노고산 예비군 훈련장과 이곳이 신의 영역임을 나타내는 국사당을 비롯한 여러 굿당들이 혼재하고 있기도 하였다.
대로의 인도를 벗어나 다시 산길로 접어든다. 현재 시각 12시 36분 충의길이다. 들머리에서 단체 사진을 찍어두고서 부지런히 낙엽 가득 떨어진 안온한 길 위에서 말수를 줄이며 건강한 호흡을 이어간다.
오후 1시를 넘어서면서 이유 모를 혼돈이 일어난다. 남 회장님 회장님 용진이 형 진영이 형 본진은 계속 둘레길로 행차를 하고, 병선이 형 환이형은 식당에 빠른 합류를 위해 대로로 걷고, 뜬총무와 호랭이는 병선이 형과 환이 형을 뒤쫓는다. 장렬공은 뜬총무와 호랭이를 쫒다 잠시 볼일 보는 틈에 이들을 놓치고서 본진 대열에 합류한다. 그리하여 호랭이는 뒤따르는 장렬공 보이지 않아 실종신고를 하기도 했다.
드디어 점심 식사장소에 도착하니 안선배님 은경공 종원이 형 기다리고 있고, 본대는 아직 도착하지 않고 있다. 앞서 도착한 7명이 한 팀으로 오랜 기다림 끝에 13시 50분, 드디어 식사를 시작하는데 본대가 도착한다. 남 회장님과 7명이 두 테이블로 식사를 하고, 회장님 만석이 형 용진이 형 진영이 형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천하진미 식사에 들어간다. 오늘의 완전체는 12명이다.
이 식당에선 코다리보다 가오리가 조금 나은 것 같다는 촌평이지만 아직도 사람들 웨이팅 중이라 마냥 여유를 부리면서 식사할 수 없어 14시 30분을 넘기면서 일어선다. 장렬공이 계산을 했다. 장렬공은 집안일로 먼저 일어선다.
나머지 일행은 포인트 빌의 엄청난 커피 맛과 북한산의 장관을 보기 위해 포인트 빌로 이동한다. 남 회장님은 와중에 급한 일로 일어서는데 종원이 형이 카카오 택시를 부르고 계산한다.
굳이 이곳까지 커피 먹으러 와야 되는지 몇몇은 투덜 되는데 와보니 잘 왔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뷰 최상맛집이다. 대로에선 보이지도 않는데 북한산의 장엄함을 빠짐없이 볼 수 있는 그런 곳이다. 정말 윈더풀이다. 장소 선택자 병선이 형은 신이다. 계산은 진영이 형이 했다.
오후 세시 도착하여 네시까지 커피의 대향연을 펼치고서 아쉬움의 작별을 하는데, 커피집 포인트 빌 아래 분양하는 집이 있다. 공기 좋고 전망 좋고 집도 좋다. 관심 있으면 응모해 보시라,
이제 1월 정산도 마지막으로 달려 나가고 있다. 안선배님의 추천작 연신내 시장 오징어구이 맛집에 이르는데 만석이 형 용진이 형 뜬총무 등 이 시대의 진정한 주당들이 이유도 없이 도망을 가고 만다.
회심의 2차는 회장님 안선배님 진영이 형 환이 형 호랭이 다섯이서 안선배님의 고귀하고 하나도 버릴 것 없는 말씀을 귀담아듣는다. 오후 네시 반이다.
소주 네 병을 비우고, 3 판서는 1 정승에 못 미치고, 3 정승은 1 대제학에 못 미치고, 3 대제학은 1 구라에 못 미친다는 구라의 정의에서 시골사람들 서울 상경기까지 눈물 없으면 도저히 들을 수 없는 감동 서스펜스를 연출하고서 6시 조금 못 미쳐 자리서 일어난다. 계산은 환이형이 한다.
안선배님 먼저 보내드리고 넷은 지하철로 이동하여 공덕 대회전을 기도하였으나 다들 회피하는 관계로 다음으로 그 대전투를 기약한다. 환이형은 3호선으로 장지로, 회장님은 6호선으로 공덕으로, 진영이 형은 3호선으로 종삼에서 오호선으로, 호랭이는 3호선으로 종삼에서 대방으로 각각 그 아침의 보금자리로 달려들 갔다.
새해, 신년 첫 산행은 아기자기, 나긋나긋, 방실방실 그렇게 시작하여 그렇게 끝이 났다. 엄청난 그 코다리 맛집에서 좌석 분리로 신년의 단체 건배는 못했지만, 메인 주당들이 빠져 2차의 빈틈이 보였지만, 매 순간 좋은 사람들이 뿜어내는 감동과 환희의 메시지는 올 한해의 탄탄대로를 비춰주고 있었다. 회장님은 벌써 이월의 시산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위가 좋지 않아 술 한 잔 하지 못하는 병선이 형, 술을 끊어야 되겠다고 다짐하는 종원이 형, 아, 애잔함이 한꺼번에 밀려든다. 환이 형 형수님이 아프시다. 모쪼록 완쾌되시어 두 분 백년해로하시길 기원합니다. 우리 산악회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고생하신 분 회장님 알대장님 뜬총무님
#계산하신 분 장렬공 진영이 형 환이형
첫댓글 뭘 잘못 만져 이전 내용을 다 날려 먹고 기억을 되살려 새로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