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탐험사 100장면 34 - 세계가 놀라다 대서양을 단번에 건넌 존 올콕과 아서 브라운(19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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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4.03.18. 19:00조회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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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탐험사 100장면
세계가 놀라다
대서양을 단번에 건넌 존 올콕과 아서 브라운(1919년)
요약 1919년 6월 14일, 아서 브라운과 존 올콕은 대서양 무착륙 비행에 처음으로 성공한다. 비행기는 대서양 횡단용으로, 시속 140km로 3,800km를 날게 설계된 비커스 비미 복엽기였다. 대서양을 16시간 12분 만에 건너는데 성공한 올콕과 브라운은 영국 왕 조지 5세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
하늘의 영웅
1919년 6월 14일 처음으로 대서양을 무착륙 비행한 올콕(왼쪽)과 브라운은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 브라운은 상금으로 결혼하여 예순두 살까지 살았으나, 올콕은 여섯 달 뒤에 비행기 사고로 죽었다.
블레리오가 영국 해협을 건넌 뒤로 모든 비행사들의 다음 목표는 대서양을 건너는 것이 되었다. 영국 신문 〈로드 노스클리프〉와 〈데일리 메일〉이 여기에 만 파운드를 상금으로 내걸었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이 일은 잊혔는데, 전쟁이 끝나자 1919년 〈데일리 메일〉은 자기네가 내건 상금이 아직 유효하다고 세상에 알렸다. 단, 72시간 안에 건너야 한다는 조건을 덧붙였다.
1919년 5월 중순, 유럽과 직선으로 가장 가까운 캐나다 뉴펀들랜드 섬에 영국 조종사 세 팀이 찾아왔다. 해리 호커와 케네스 매켄지-그라이브, 프레드 레이넘 대위와 C.W.F. 모건, 해군 중장 마크 커가 이끄는 팀들은 각각 바닷가에 자리를 잡고 기체를 조립하거나 비행 연습을 시작했다.
상금과는 상관이 없었지만 미국 해군도 '최초'영예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경쟁에 뛰어들었다. 5월 16일 뉴펀들랜드의 트레퍼시 해안을 이륙한 커티스 비행정 3대 가운데 NC 1은 대서양에 추락했고 NC 3은 안개 속에서 52시간이나 헤매다가 아조레스 군도에 착륙했다.
NC 4는 아조레스 군도와 포르투갈을 거쳐 두 주일 만인 5월 31일 영국에 도착했다. 기장인 앨버트 리드, 조종사 월터 힌턴과 E.F. 스톤은 최초로 대서양을 건넜다는 명예를 얻었지만 '무착륙 · 72시간 이내'는 아니었다.
영국인들도 뉴펀들랜드를 떠났다. 그런데 레이넘과 모건은 서두른 나머지 옆바람을 받으며 이륙을 강행하다가 추락했고, 호커와 매켄지-그라이브는 항로를 잃고 헤매다 구조되었다. 커는 신중하게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 무렵 또 한 팀이 뉴펀들랜드에 왔다. 영국 해군항공대 대위 출신 존 올콕과 중위 출신 아서 브라운이었다.
스코틀랜드계 미국인인 브라운은 영국에서 학교를 나와 항공대 장교로 참전해 두 번 격추당했는데, 두 번째는 포로수용소에서 지내다 송환되었다. 전쟁이 끝나자 그는 일자리를 구하러 비커 항공기 회사를 찾아갔다.
"대서양을 단번에 건널 수 있겠소?"
감독관이 물었다.
"예."
"그렇다면 당신은 일자리를 얻은 셈이요. 우리는 우리 회사 비행기가 최초로 대서양을 횡단하게 하고 싶소. 신문사가 내건 상금은 조종사 몫이요. 함께 탈 사람을 소개하겠소."
몇 분 후 브라운은 존 올콕과 악수했다. 1892년 영국에서 태어난 올콕은 스무 살에 비행사 자격을 딴 뒤 영국 해군항공대 소속으로 참전하여 독일기를 7대를 격추하고 명예훈장을 받았다. 1917년 대공포에 격추되어 포로 생활을 하다 송환되어 제대한 그는 비커 항공사의 시험 비행사로 일하고 있었다.
올콕과 브라운이 탈 비행기는 비커사가 대서양 횡단용으로 특별히 제작한 '비커스 비미' 복엽기였다. 350마력짜리 롤스로이스 엔진 2개를 달고 시속 140km로 3,800km를 날게끔 설계되었다.
1919년 6월 14일, 두 사람은 뉴펀들랜드 세인트존스 레스터스 비행장에서 비행기에 올랐다.
"아일랜드로 곧장 날아갈 겁니다."
항법사 브라운이 배웅하는 사람들에게 인사하자, 조종사 올콕이 유쾌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클리프든 무선전신소에 모자를 걸지요."
4시 10분에 이륙한 올콕은 시그널 힐1)을 넘어 대서양 상공에 이르자 1,000m까지 고도를 높였다. 이륙할 때 애를 먹였던 서풍은 어느덧 비커스-비미를 시속 160km로 밀어주는 친구가 되었다. 몇 시간이 단조롭게 지나갔다. 엔진은 계속 똑같은 소리를 내며 졸음을 재촉했다. 두 사람은 샌드위치를 먹고 브랜디를 몇 모금 마신 뒤 졸음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6월 15일 아침이 밝았다. 막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자 안개가 그들을 둘러쌌다. 잠깐 사이에 그들은 방향 감각을 잃었다. 고도계 바늘이 600m에서 300m, 150m로 빠르게 떨어졌다. 최악의 사태에 대비해 두 사람은 안전 벨트를 느슨하게 했다.
비행기가 30m까지 떨어졌을 때 갑자기 햇빛이 비치면서 비행기는 안개로부터 벗어났다. 그 순간 올콕의 눈에 수평선이 수직으로 보였으나 그는 노련하게 기체를 바로잡았다. 기체가 수평을 되찾았을 때 그들은 수면 위 15m를 날고 있었다.
그뒤로 3시간은 구름과의 싸움이었다. 구름 사이를 들락날락하는 사이에 구름은 진눈깨비로 변했다. 비구름 위로 2,800m까지 올라가자 계기판에 이상 신호가 나타났다. 카뷰레터에 덮인 눈과 얼음을 치워야 했다. 브라운은 날개의 버팀목을 고정하는 철사에 몸을 붙잡아매고 날개 위로 기어 올라갔다. 그러는 동안 올콕은 비행기가 브라운의 무게 때문에 기울지 않도록 안간힘을 썼다.
올콕이 구름 사이로 비치는 한 줄기 햇빛을 발견한 때는 아침 6시였다. 다시 2시간쯤 지나자 멀리 어렴풋이 물체 2개가 보였다. 작은 섬이었다. 8시 15분이 되자 드디어 아일랜드 해안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 사람은 그곳이 어디인지를 몰라 철로를 찾으려고 해안을 살피며 날았다. 문득 클리프든 무선전신소의 안테나가 보였다. 그들은 정확히 날아온 것이다. 브라운이 물었다.
"런던으로 갈까, 여기서 내릴까?"
"여기서!"
올콕의 대답은 단호했다.
"영국 땅에 들어섰는데 커가 쫓아오라고 런던까지 갈 필요는 없지."
다음날 아침 〈뉴욕 타임스〉는 머리 기사 헤드라인을 이렇게 뽑았다.
'올콕과 브라운 대서양을 건너다. 3,042.8km를 16시간 12분에.
짙고 얼음 같은 안개 속에서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그 날 이 소식은 들을 오빌 라이트는 자기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요? 16시간밖에 안 걸렸다고요? 그게 정말입니까?"
겨우 36m를 날았던 최초의 조인(鳥人)이 놀란 것은 당연했다.
올콕과 브라운은 영국왕 조지 5세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고 하늘의 영웅이 되었다. 브라운은 상금으로 약혼녀와 결혼했다.
▼ 그 전 기록은 * 1919년 / 5월 27일 앨버트 리드 팀이 최초로 대서양 횡단 비행(중간에 아조레스 군도 기착) [네이버 지식백과] 세계가 놀라다 - 대서양을 단번에 건넌 존 올콕과 아서 브라운(1919년) (세계 탐험사 100장면, 2002.7.18., 이병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