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피리연가 ♤*
처음에 글을 쓸 때만 해도
자신 있게 시작 했었다.
그러나 글을 쓰면서
소설에 관심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글들을 유심히 보는 버릇이 생겼다.
부끄러웠다.
나는 내 소설 어디에도
글쟁이들이 쓰는 수려한 문체가 한군데도 없었다.
이야기는
몽유도원도가 일본에 있음을
안타까워하는 내개인적인 생각을
그려 보려고 했지만 ...
안평대군의 송설체,
그 안평체가 대한민국의 국서체가 되었다고
못 박기는 다소 무리가 없는 건 아니다.
다만 소설의 중심이 그러 하듯
몽유도원도에 그의 서체가 있고,
그리고 그의 글자체가 훈민정음을 만드는데
일조 하게 되었음을 부각 시켰을 뿐 이다.
"가난한 내 친구는
자신의 딸이 피아노에 재능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단칸방에 피아노를 들여 놓으면
네 식구가 잘 공간이 없어지기 때문에
딸애의 피아노 재능을 죽였다고 한다.
논리의 비약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책 자체도 내기 힘든 가난함에서 나오는
치졸한 초보 작가의 경험을
그렇게 표현 해 보고 싶을 뿐이다.
비록 졸작을 쓴 초보의 변(辨)이긴 하지만.
어쨌든 나는 글을 완성했다.
그리고 내가 좋아 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 책에 등장했던 실명을
거론 했던 사람들에게 보내주는 일만 남았다."
보해 유희민님 말씀중에서....
아름다운 인생....글쓴이: 보해.(유 희민)
1. 사무실 직원 이야기.
몇 일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아침에 출근해서 직원들과 간단한 미팅을 가졌는데 한 아가씨가 표정이 많이 어두웠습니다.
왜 그러느냐고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녀의 대답이 재미있었습니다.
우연히 점(占)집에 갔었답니다. 그녀는 그런 곳이 처음 이였던지 좀 긴장이 되었다고 했었습니다.
내심 결혼 할 때도 되었고 친구들과 호기심에 갔었는데....
점집에 들어가면 통상적으로 물어보는 생년월일 따위를 말하기도 전에 점쟁이가 호통을 치더랍니다.
“이년아 니는 일곱 귀신이 따라 다녀!”
그 말을 듣고 어찌나 불쾌 했던지 그 뒤에 점쟁이가 하는 말은 하나도 들리지 않더랍니다.
부적을 써야 한다는 말도 했고 이것저것 해결책도 말해 주었답니다.
그러나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 나와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출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가 물었습니다.
“귀신이 있다고 믿어?”
그랬더니 자기는 잘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내가 또 물어 봤습니다.
“너 귀신 씨나락 까먹는단 소리 들어 봤어?”
그랬더니 듣긴 들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옛날에는 가난해서 배를 곪고 살 때도 다음해에 뿌려할 종자, 그 씨나락을 삶아 먹지는 않았답니다.
가을에 수확을 해도 맨 먼저 다음해에 파종할 가장 좋은 알곡으로 먼저 씨나락을 남겨 두고
나머지를 양식으로 썼고 그리고 겨울이 지나면 그 씨나락을 못자리판에 뿌려서 발아를 시키는데
그렇게 해도 새눈을 틔우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것을 본 할아버지들은
‘귀신이 씨나락을 다 까먹었기 때문이다’ 라고 하고 어떤 때는 밖에서 무슨 소리가 나기만 해도
귀신이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고 큰소리로 고함을 질러 쫓아냈다고 합니다.
우리 어르신들은 이렇듯 자연현상의 일 부 조차도 자신들의 힘에 부칠 때는
귀신이나 영적인 세계에 의존해서 그 이유를 찾았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해 주고 나서 내가 우리 직원에게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귀신은 있을거다. 아마 우리가 모르는 영적인 세계는 분명 있을 건데,
중요한 것은 절대 죽은 귀신이 산 사람을 어떻게 하지는 못한다.
조상을 모신다고 제사를 지내는걸 보면 웃어른들은 분명 귀신이 있다고 믿기 때문인데,
그런걸 인정 한다면 영적인 세상은 분명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런 죽은 귀신들이 절대 산 사람을 어떻게 하지는 못한다.
설령 점쟁이가 귀신 따위의 영들과 함께 하는지는 모르지만
그런 죽은 귀신 따위가 산사람의 행동을 제약 한다거나 무슨 전설의 고향처럼
흉측하게 나타나서 이것저것 요구 하지는 않는다. 라고 차분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지고 있던 십자가 모양의 장식용 핸드폰 고리를 하나 주었습니다.
핸드폰 고리는 그냥 장식품일 뿐입니다.
그게 염주든 십자가든 그 물건에 어떤 신령이 깃들이 있지는 않습니다.
무슨 부적처럼 그게 귀신을 물리치거나 가지고 있는 사람을 보호 해 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아가씨는 마치 큰 힘을 얻은 것처럼, 정말 부적이라도 얻은 것처럼 자기 핸드폰에
그걸 걸어 두었습니다.
그녀는 예쁜 장식물을 받은 게 아니라 귀신도 별거 아니라는 믿음을 배웠고
그 상징물로 십자가 핸드폰 고리를 부적처럼 자기 핸드폰에 걸었던 겁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어두운 밤길 걷는 게 무섭거나 혼자 있을 때 불안해 하신적은 없었나요?
저도 사실 무서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절대 죽은 귀신이 살아 있는 사람을 어떻게 하지는 못한다. 라는 것입니다.
이글을 읽으신 분....... 뒤를 한번 돌아보실래요?
귀신이 쓴 웃음을 짓고 같이 책을 보고 있네요. 한번 뒤 돌아 보세요.
보해.
2. 귀신 이야기 하나 더.
이왕에 귀신이야기를 했으니까 하나 더 해드리겠습니다.
“사람>귀신” 이라는 등식을 믿고 살면 시원찮게 점을 보러 다니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당당해 질수 있습니다.
더러 교회나 성당을 오랫동안 다닌 사람은 자기 자신의 신앙심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분들은 어떻게 자신의 신앙심의 깊이를 테스트 해볼 수 있을까요?
절에 자주 다니면서 공덕을 많이 쌓고 있다고 믿는 불자라도 좋습니다.
교인이든 불자든 과연 자신의 신앙심이 깊어서 자신은 극낙왕생(極樂往生)하고
또는 천국에 간다는걸 어떻게 확신 할 수 있을까요?
그건 너무 쉽고 간단합니다.
어디 용하다는 무속인들 에게 찾아 가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가끔 들어 봤겠지만 유명한 목사들이나 또는 신부님들은 점집에 가면
그 무속인이 금방 알아본다고 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예수쟁이 왔네” 또는 “점쾌가 안나오네” 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물론 어중이떠중이 무속인 같으면 그도 저도 없이 손금을 보려고 손을 드밀라고 하고
생년월일 따위를 묻고 하겠지만 정말 용하다는 무속인은 금방 알아냅니다.
왜냐 하면 그들은 귀신과 상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양에도 영매(靈媒)라고 해서 귀신들과 현실 세계를 연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데미 무어 주연의 ‘사랑과 영혼’ 이라는 유명한 영화에서 우피 골드버그가 그런 사람에 속하고
그런 사람을 우리는 흔히들 무속인, 또는 용한 점쟁이라고 합니다.
주역(周易)을 연구 하시는 분들, 그러니까 역학(易學)을 공부 하시는 분들과는
조금 차이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분들은 생년월일의 조화와 통계를 근거로 확률을 추정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 볼까요? 기후가 선선한 10월의 차분한 밤에 태어난 아이와
찌는 듯한 더위가 있는 7,8월의 밝은 2시경에 태어난 아이와는 아무래도 태어나는 순간
그 아이의 정서에 좀 차이가 있지 않겠어요?
그 아이들은 또 그 시절의 환경이나 기후에 어떤 영향을 받은 산모의 심리 같은것에
영향을 받지 않았겠냐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역학을 통계적으로 계산 해 내는 학문으로 생각 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더운 여름도 추운 겨울도 무시 되는 환경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이것마저도 많이 흐트러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의 진부한 확률 따위로 사람의 미래를 추정해 내는 건 맞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점을 보러 가시려거든 차라리 월요일 아침에 로또를 구입하는게 일주일 동안이라도
부자가 될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수 있어서 행복 할 겁니다.
다시 귀신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렇다면 과연 귀신은 무엇일까요?
사람이 죽어서 그 혼(魂)이 귀신이 된다면 우리 옆에는 얼마나 많은 귀신이 있겠습니까?
결국 우리가 귀신 이라고 말하는 혼들의 대부분은 천국이나 지옥 같은
그들이 살아야할 세계(靈界)로
들어가지 못하고 떠돌아다닌다고 추정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큰 미련이 있든지 아니면 흔히들 말하는 원한이 있어서 가질 못하는 경우 일겁니다.
그렇다면 또 궁금하지 않나요?
가기 싫다고 가지 않고 영혼이 이 세상에 남아도 된다면 영계에는 질서도 없는 개판일까요?
잘은 모르지만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그들이 인간계에 남아 있는 이유는 있을 겁니다.
어떻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귀신들이 미련을 둘 만큼 좋은 세상이라는 겁니다.
또 잘은 모르겠지만 귀신들도 위, 아래가 있고 계급은 아니지만 어떤 상하관계의 구조는 있을 겁니다.
군대의 왕처럼 상당히 힘이 있는 귀신이나 영이 있고 그렇지 않는 평범한 잡신들도 있을 겁니다.
중요한 것은 꼭 사람이 죽어서 영으로 다시 어떤 세상에 머물게 된다면
그건 인간계는 분명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영들이 살아야 할 세계 그곳에 간다고 보면 맞습니다.
그곳이 천국이든 지옥이든 말입니다.
인간계에 머물러 있는 혼들은 가장 난잡하고 천한 영들 이라고 보면 틀림없습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죽어서 온전한 그들의 세계, 영계(靈界)에 들어가지 못하고
인간계에 머물러 떠돌아다닌다면 그것도 좀 끔찍하지 않나요?
다시 한 번 뒤를 돌아보세요.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귀신이 보일 겁니다.
한번 뒤돌아보세요. 보이세요?
3. 파스칼의 내기(Pascal's Wager).
신이 존재할 확률이 매우 낮다고 생각할 때에도 신의 존재를 믿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는가?
보통 도박사의 논증 이라고도 하고 ‘파스칼의 내기’라고도 하는데,
그 내용은 신이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는 내기에서 분별 있는 도박사라면
신이 존재한다는 쪽에 내기를 건다는 겁니다.
보통은 결단이론(decision theory)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각각의 결과(outcomes)에 따른 효용성(utilities)을 주시하면서
행위자가 행위(actions)선택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기술하는 이론입니다.
내용인즉, 신이 존재한 쪽에 내기를 했을 경우, 신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손해를 덜 본다는 겁니다.
즉 신이 존재한다고 해서, 열심히 기도하고 교회에 나가고,
그리고 착하고 성실하게 인생을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신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즉 천국과 지옥이 존재하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그는 손해를 봅니다.
그 인생동안 그가 참지 않고 뿜어낼 수 있었던 욕망과 만끽할 수 있었던 쾌락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큰 손해는 아니지만 약간의 억울함이 있겠죠.
그런데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 쪽에 내기를 경우,
만약 신이 존재하여 천국과 지옥이 존재한다면 이것은 위의 경우보다 더 심각한 손해를 보게 됩니다.
살아생전에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는 자신이 누릴 수 있는 모든 쾌락과 신이 하지 말라는
모든 행동을 합니다.
결국 그의 죽음 후에 그는 지옥에 떨어지겠죠.
이럴 때는 약간의 손해 정도가 아니라 끝이 없는 무한한 손해가 될 것입니다.
결국 파스칼의 내기는 확률이 아주 적더라도 도박사들이 가장 가능성이 있고,
손해를 적게 보는 것에 내기를 걸어야 한다는 것을 비유해서 신을 믿는 것이 인생을 사는데
가장 이득을 볼 수 있고, 손해를 적게 보는 내기 방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한 포상과 무한 처벌의 극단이 될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어디에 내기를 걸겠습니까? 신이 존재한다 입니까? 아니면 존재하지 않는다 입니까.
파스칼은 프랑스의 유명한 수학자 이며 물리학자입니다.
그는 ‘근대 확률이론’을 창시한 대단한 학자이기도 합니다.
그가 신의 존재 유무와 관계없이 단지 수학적인 확률로 계산 했을 때 손해를 적게 보는 쪽에
무게를 두었다고 단순하게 생각 했을까요?
그가 결과에 따른 효용성만을 주시 하면서 신이 있다는 쪽에 내기를 했을까요?
정신 분석학자인 프로이트는 인간의 역사에서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은
그 믿음을 갖는 사람에게 심리적 이익을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주장 합니다.
만약 당신이 신의 존재를 믿는다면 그 믿음은 당신의 삶을 의미 있게 할 수 있고,
신의 존재를 믿지 않을 경우 당신의 삶은 의기소침해지고 생산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결코 지금 당장 교회에 가거나 또는 사찰에 가서 어떤 행위를 하라는 이야기는 아직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을 때 또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 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냥 포기 하시나요? 어차피 도래할 결과에 대해서 불안한 심정으로 기다리고 있진 않나요?
어떤 어려운 상황에 직면 했을 때 보통은 두 가지 부류로 나눠집니다.
절망의 자포자기에 빠져 버린 경우는 이야기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신이 있다면, 그래서 내가 간절히 원하면 들어 주는 어떤 영적인 존재가 있다면
한번 이야기 해 봐도 되지 않을까요?
그렇다 하더라도 ‘한 번도 찾지 않던 신을 새삼스럽게 부탁 한다고 들어 주시겠어?’ 라고
그것마저 포기 해 버린 적은 없나요?
물론 들어 주고 말고는 신이 알아서 할 일이지만 믿지도 않으면서 부탁 하는
행위가 미안스럽게 생각 된다면 단순하게 ‘역시 신은 있는 게 좋겠구나.’ 라고 생각만 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소원을 말하세요. 들어 주실 겁니다.
어때요? 그럴듯합니까?
이번엔 뒤를 돌아보지 말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 봐 보세요.
당신을 사랑하는 신이 보일지도 모릅니다.
*아무도 모르는 신의 법칙과 예측 가능한 인간의 법칙 *
‘역시 신이 있는 게 좋겠구나.’ 라고 생각 하셨다면 그 신은 도대체 왜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온전히 여러분을 위해 존재 한다고 보면 됩니다.
마치 우리를 낳아준 부모와 같아서 신이 거하는 천국은 우리가 태어난 집과 같은 곳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당연히 집에 돌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죄인들은 어떻게 그곳에 들어가느냐고요?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자식이 죽을죄를 지었다고 집에 못 들어오게 하시겠습니까?
집에 들어오면 한차례 야단은 치겠지만 밥도 차려 주고 잠이 들면 이불을 덮어 주지 않으시나요?
신을 믿지도 않는 갓 태어나 죽은 아이, 이순신 장군, 세종대왕, 그리고 평생 일만 하다 돌아가신
우리의 할머니 그런 분도 천국에 갈수 있냐고요?
또 더욱 비약해서 사람을 여럿 죽인 사형수조차 천국에 들어 갈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 하면 ‘인간의 선과 악의 판단은 온전히 신의 몫일뿐
그 누구도 간섭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신성불가침의 영역일 뿐입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도 하나님의 의지는 헤아리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교황, 어쩌면 요한 바오로 2세를 제외하고는 인류 역사에서 어느 누구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한 그레이엄 목사조차 도덕의식이 투철한 무신론자와 독실한 이슬람 신자,
독실한 유대교인 중 누가 천국에 가게 되나?
이 질문에 그레이엄 목사는 그 결정은 인간이 아니라 신이 내린다고 대답했습니다.
결국 죄를 많이 지은 사형수조차도 그가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에 있어서 평범하게 사는 우리나,
또는 아주 독실한 신자와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바꿔서 이야기 하면 목사나 신부라고 해서 조건 없이 먼저 천국에 이른다고 장담 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선과 악의 판단은 온전히 신의 몫일뿐 그 누구도 간섭 할 수 없는 것’ 이기 때문입니다.
신이 왜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더욱 명쾌하게 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영적 존재인 천사들조차 인간을 부러워한다고 합니다.
천사들에게는 단 한 번의 실수도 징계가 있지만 신이 인간에게는 천사보다 특별히
더 많은 자유와 그리고 더 많은 기회를 주어서 세상에서 누릴 수 있게 하였고
또 어떤 실수를 하더라도 진심으로 회개 하면 모든 걸 용서해 버립니다.
그래서 천사들조차 인간을 부러워한다고 합니다.
신이 말하는 용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용서와 그 차원이 다릅니다.
회개를 하면 신은 그 어떤 사건 자체를 영원히 잊어버리는 용서입니다.
흔히들 ‘용서는 하되 잊지는 않겠다’라고 하는 우리식의 용서가 절대 아닙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모두 천국에 갈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지옥에 간다는 가정 자체를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우리가 모두 천국에 갔을 때 신이 우리에게 어떤 상을 내린다면
그것은 지나온 개개인의 행실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을 것으로 생각 합니다.
이미 천국에 있을 마더 테레사 수녀 같은 분은 아마 그래도 좀 큰상을 받았을 테고
또 사람을 몇 죽인 사형수는 죽기 전에 어떤 깊은 회개를 해서 겨우 턱걸이 식으로 천국에 왔으니까
좀 크지 않은 상을 받지 않겠느냐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살아가는 방식이 대단히 중요 할 수 있습니다.
이상한 어깨띠를 두르고 역 근처에서 천국 가야할 조건을 내걸고 목소리를 높이면
그걸 보고 신이 좋아 하실까요?
불상한 노숙자에게 천 원짜리 지폐에 이상한 문구를 도장 찍어 나누어 주면서
어떤 행위를 강요하면 그 노숙자가 그 지폐에 써진 문구를 보고 천국이 있다고 믿겠습니까?
왜 부모를 욕하듯 멀쩡한 신의 질(質)을 낮추어 버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신은 자신의 자녀들이 천국에 들어옴에 있어 그런 복잡한 절차를 요구 하지 않는데도 말입니다.
내가 만약 신이라면 그런 행동은 애교로 봐 줄 수는 있지만 그렇게 칭찬해 주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일반인이 보기에 광신도 정도로 보일뿐이고 그런 행위는 오히려 신을 욕되게 할 뿐입니다.
어쨌든 살아 있는 동안에 좀 건실하게 살아야 누구든지 들어가는 천국에 갔을 때
좀 더 기분 좋은 상을 받지 않을까요?
이제 귀신을 보기위해 뒤도 돌아 봤고,
고개를 들어 하늘도 한번 쳐다봤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자신을 되돌아보세요.
그곳에 당신의 미래가 보일 겁니다. 자신의 10년 전 모습이 바로 오늘의 모습입니다.
그럼 오늘의 모습은 당신의 10년 후의 모습 일수 있습니다.
지금, 오늘 바로 이 순간 여러분이 더 나은 삶의 질을 위해 노력 한다면
그게 바로 예측 가능한 인간의 법칙입니다.
5. 아름다운 인생
사람이 사는 게 항상 만족스러울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어쩌다 기분 좋은 일 이라도 하나 생기면 그 맛에 지난 힘든 일들을 잊고 살아갑니다.
부자라고 오데 고민이 없겠습니까?
프랑스 대통령 사르코지가 이혼하는걸 보면 권력이나 부러울 것 없이 사는 사람도
인간이면 겪어야 하는 고만고만한 걱정거리는 누구나 다 있는 모양입니다.
오체불만족의 오토다께 히로타다 같은 사람이나 또는 천체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 같은
사람은평생 몸이 뒤틀리고 휠체어 신세를 지고 살지만 나름 행복해 보이기도 합니다.
듣지도 보지도, 그리고 말도 하지 못했던 헬렌 켈러 여사 같은 분은 또 어떻습니까.
그런 분은 사지가 멀쩡한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곤 합니다.
그들이 하나같이 말하는 공통점은 이 세상은 참으로 아름답고 경이롭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름다움의 상징인 꽃이나 새들, 그리고 맑은 하늘에 구름이 가는
그런 정경만이 꼭 아름다운 건 아닙니다.
더러는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나 어머니가 갓난아이에게 모유를 수유하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그런 어떤 눈에 보이는 현상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장애라는 삶을 아름답게 승화 시킨 위인들처럼 세상에는 많은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30년 동안 떡볶이 장사를 해서 벌었던 자신의 전 재산을 불우한 이웃에게 기부한 할머니,
전쟁고아들을 입양해 키워주고 인종을 뛰어 넘어 사랑을 실천한 홀트 여사,
전쟁이나 기아, 질병, 자연재해 등에서 고통 받는 세계 빈국의 지역 주민들을 구호 하는
민간의료구호 단체인 국경없는의사회,
그리고 가깝게는 헌혈증을 수 십장 만들어 구청 같은 곳에 기부하는 행위들이
당장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 보다 훨씬 진보된 아름다움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현상이나 더 아름다운 이런 행위들은
과연 어떤 원인 때문에 일어나는 걸까요?
교육이나 학습에 따른 효과 때문일까요?
아니면 소유욕 같은걸 초월한 성인이기 때문에 그럴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건 우리 인간의 본능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은 태어 날 때부터 마치 연어가 회기본능으로 자기가 처음 출발했던 장소로
돌아가는 것처럼 우리도 천국으로 돌아가려는 본성이 내면에 항상 잠재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천국에 들어가서 마더 테레사 수녀 처럼 좀 괜찮은 상을 받는 행위조차 본능처럼
되어 있어서 이 땅에 살면서 선행을 베푸는걸 자연스럽게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신이 저 먼- 곳, 하늘나라에 있다고 생각 하실지 모르지만
항상 여러분 곁에 있어서 이런 행위를 돕고 계십니다.
역시 이런 선행이나 아름다움도 모두 신의 조화로 봐 주어야 할 겁니다.
못 믿겠다면 당장 주위의 어려운 사람을 위해 봉사 해 보십시오.
이상하게 가슴이 뜨거워지고 그 행위를 남에게 자랑하기 싫고 혼자만 간직하고 싶은
감정이 생길 것입니다.
그럴 때면 그냥 남들에게 자랑 하세요.
신은 불상한 자의 한숨 소리나 눈물방울 까지도 세고 있는 것처럼
여러분의 선행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기록해 두실 겁니다.
그리고 그 신을 만나고 싶거든 가까운 교회로 찾아 가십시오.
그곳에서 여러분을 위해 문을 열어 놓은 신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사람들은 천국에 이르는 길이 좁은 문 이라고 지나치게 강조 하는 깊은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천국문은 넓고 크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신은 여러분을 선택 하고 천국 문을 열어 두었지만
여러분이 만나고 싶은 신을 만나는 장소, 그 교회를 선택 하는 것은 온전히 여러분의 몫입니다.
주위의 좋은 교회를 선택 하시되 십일조나 지나친 헌금을 요구하고,
또 괜한 친절을 베풀면서 귀찮게 하는 교회는 피하시는 게 좋습니다(이단).
목사라고 해서 어떤 서열의 우위에 있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여러분과 똑 같은 믿는 자일 뿐 대단한 신의 종이나 신도들을 이끄는 구도자는 절대 아닙니다.
십일조가 내고 싶거든 그 액수만큼 가난한 자를 위해 사용하십시오.
그러나 꼭 그렇게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병을 치료해 주겠다고 치유의 은사가 있다는 교회도 피하십시오.
몸이 아프거든 병원에 가시고 기도는 스스로 하시면 됩니다.
‘잠자리 채’ 라고 하는 헌금함을 돌리는 교회 보다는 입구 쪽에 헌금함이 있어서
들어 갈 때나 나올 때 자연스럽게 헌금하는 교회는 대부분 괜찮은 교회가 틀림없습니다.
실제로 그런 교회는 의외로 많습니다.
세상에 억만금을 드린다 해도 그런 게 신에게 무슨 소용이 있단 말입니까.
그런 게 옳다면 과연 신의 전지전능 이라는 말은 허울뿐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행위는 마치 중세의 면죄부를 사는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지은 죄 조차도 신과 직접 해결해야할 일이지 어떤 대속물이 해결해 주지는 않습니다.
절에 가도 상관없냐고 물으시는 분이 있습니다.
절에는 여러분을 맞이할 그 어떤 신도 존재 하지 않습니다.
스님들의 행위는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수양하는 행위일 뿐입니다.
흔히 불교는 삼생중생제도불능(三生衆生濟道不能), 사람으로 세 번 태어나도
죄를 다 씻을 수 없는 업보가 인생이라고 말합니다.
처음에 언급했던 것처럼 신은 인간이 끝없이 고생만 하게 만드는 그런 우매한 분이 절대 아닙니다.
불교가 심오한 철학임에는 틀림없으나 구원에 이르러 천국에 가기에는 그 행위의 원천이 다릅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에 묻혀 있는 산사의 절경을 무슨 귀신의 집터처럼 터부시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또한 신이 만들어 낸 아름다운 작품으로 감상 하고, 그곳에서 판매하는 예쁜 기념품 따위를 사서
들고 올수 있는 올바른 신관(神觀)도 필요 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단군상을 때려 부수는 치졸함을 보이는 것은 그렇게 바람직한 모습은 아닙니다.
그리고 불심이 깊은 스님들의 고귀한 가르침도 생활에 많은 이로움을 줄 수 있습니다.
신앙심이 깊은 사람일수록 절에 가는걸 꺼리는데 그건 잘못된 나약한 모습입니다.
그런 곳에서 더욱 아름다움을 즐기고 만끽 하세요.
그래서 세상은 또 아름답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불교든 힌두교든 많은 사람이 함께 선(善)에 이르게 하는 게 궁극적인 신의 뜻이고
인간이 함께 가야할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귀신조차 부러워하고 천사들조차 질투하는 이 아름다운 세상에 여러분이 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세상,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가슴속 뜨거운 기운을 그냥 느끼는 데로,
그리고 보이는 현상만으로도 충분히 천국에 갈수 있습니다.
가까운 교회에 가셔서 당신을 기다리는 여러분의 부모 같은 신을 만나 보세요.
세상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질 겁니다.
아름다운 인생 / 글쓴이/ 유 희 민/ koreachris@hanmail.net
행복한 인생/ 후기
손바닥만한 소책자 이기 때문에 특별히 후기는 없지만
그래도 동문들 올리는 글이기에 몇자 적어 본다.
읽으신 분들은 느꼈겠지만 역이나 터미날 같은데 가면
흔히 나누어 주는 종교단체, 특히 개신교의 홍보 책자라 할수 있는 전단지다.
나도 더러 그런 곳에 가면 한 번씩 받아 보곤 하는데....
받을 때 마다 난 불만이다.
"예수천국 지욱불신" 이라는 어깨띠를 두르고 눈에 보이는
가장 가까운 쓰레기통에 버려질 그런 필요 없는 전단지를
뿌리는 게 난 늘 안타까웠다. 그들의 튀는 행동도 난 싫었지만
전단지의 내용이 난 항상 불상해 보였다.
불상 하다는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좀 성스러워야할
신의 모습이 가장 추하고 천대 받는 느낌이 들어서 이다.
표지부터 십자가 일색이고, 그리고 성경 문구를 도입 하지 않으면
도저히 복음이나 전도 불가능 한 것인지, 너무 식상하고 뻔한 내용들이다.
복음, 천국, 구원,....
그들이 하는 행위도 문제다. 기독교 목사나 신도들은 왜 전혀 남의 의식세계에
들어가서 그들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기들 하고 싶은 말만 하는지
화가 날 지경이었다.
그래서 결심 했다.
내가 직접 전단지를 만들어 보자고.....
내 사비를 들여서.... 일단 2천부를 찍을 계획이다.
난 속으로 생각 했다.
표지는 칼라로 하되 절대 십자가나 신의 모습은 넣지 않겠다.
내용 중 어느 한 구절도 성경 구절을 인용 하지 않겠다.
예수의 예 자도 넣지 않겠다. 그렇게 작심 하고 만든 내용이다.
목사들이 보면 안 좋아 할 내용도 있다.
헌금에 관한 내용이나 또는 단군상 같은 것이 그것이다.
헌금에 대한 나의 생각은 죽는 날 까지 변함이 없겠지만 사실 단군상은
개신교 교리와 많이 어긋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생각 해 보라.
미국 같은 강대국에서도 도저히 어쩔 수 없는 게 그들의 짧은 역사다.
그들은 자기들만의 신화가 그립고 없어서 안타까울 지경이다.
그리고 신화가 있는 나라도 그렇게 많지 않다. 중국도 없다.
기껏 해 봐야 요. 순 시대의 찬란하다는 문자 문화가 고작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그 찬란한 단군 신화가 있어서 우리의 뿌리 깊은 역사의식을 후손에 물려 줄 수 있지 않는가.
종교와 관계없이 정말 기독교가 신의 사관을 가진 자들 이면
그런 정도는 포용하는 관용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 있어서 난 그 맥을 달리 하고 있는 것이다.
난 내 책을 무상으로 뿌리겠지만 아무에게나 막 주지는 않을 생각이다.
읽어 볼만한 사람, 그리고 정말 신이 궁금한 사람들에게 줄 생각이다.
성경적 내용을 쓰지 않겠다고 했던 점에는 불만이 없지만 난 '교회' 라는
단어를 딱 한번만 쓸려고 했는데 몇 번 겹친 것 같다.
그것도 불만이다.
혹시 이글을 처음부터 읽지 않으신 분들은 읽어 주기를 부탁드리고...
여러분의 가슴속에 어떤 느낌이 있기를 소원 합니다.
행복 하세요.
신은 여러분 곁에서 여러분의 한숨 소리와 그리고 슬플 때 눈물방울 조차
다 헤아리고 계시다는걸 잊지 마세요.
보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