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도 너무 다른, 이런 친구 본 적 있나요?
끼룩이는 오늘도 다울이의 등에 올라 앉아 농장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봅니다. 목이 아프도록 까마득하게 올려다보아야 보일까말까 했던 마당 한 쪽 키다리 매화나무 가지마다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꽃도 여기서는 아주 편안하게 잘 보입니다. 그리고 다울이의 등은 높고 따뜻하며 무엇보다도 챔프의 공격을 막아주는 끼룩이의 유일한 피난처입니다.
땅바닥을 종종대며 우르르 몰려다니는 다른 친구들 사이에서 끼룩이는 언제부터인지, 어떤 일을 계기로 그랬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무리 사이에서 ‘왕따’였습니다. 특히 그를 못살게 구박하는 애는 반지르르한 고운 깃털을 가진 ‘챔프’였는데 이름처럼 용감하고 늠름했습니다.
다른 친구들에게 용감하고 늠름하고 멋지다는 평가를 받는 그 녀석은 이상하게도 끼룩이에게만은 천하에 그런 망나니가 없을 정도로 못되게 굴었습니다. 특히 끼룩이가 먹이를 먹기 위해 모이통 가까이 다가서면 쏜살같이 빠르게 달려들어 먹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챔프의 학대가 얼마나 심각했으면 울음소리조차 시원스럽게 내지 못하고 ‘끼룩’거리다가 끼룩이라는 이름을 얻었겠습니까?
배가 몹시 고팠습니다.
주인아저씨는 기다란 모이통에 모이를 잔뜩 담았습니다.
“꼬꼬꼬 꼬꼬댁!”
친구들이 모이통 앞으로 종종종 모였습니다. 다울이의 등에 올라앉아 산처럼 수북하게 쌓여있던 모이가 차츰 줄어드는 것을 내려다보는 끼룩이는 몹시 안타까웠습니다.
‘이러다 오늘도 먹이를 제대로 먹기 힘들겠는 걸? 아이구, 배고파.’
끼룩이는 줄어드는 모이와 배불리 먹은 챔프의 느린 움직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챔프는 끼룩이를 간간히 째려보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 챔프가 물통 옆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 틈을 타서 다울이의 등을 가볍게 콕콕 쪼며 신호를 보냈습니다.
“다울아, 나 좀 내려 줘. 배가 고파 죽겠어.”
“그래. 얼마나 배가 고플까? 이번에는 성공해서 허기를 면했으면 좋겠다. 끼룩이 파이팅!”
모이통 가까운 곳에 몸을 낮추며 응원하는 다울이의 등에서 땅바닥으로 폴짝 뛰어내렸습니다.
끼룩이는 모이통에 코를 박고 막 모이를 쪼아 먹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부리로 두세 번 쪼아 먹었을까요?
바로 그 때였습니다. 물통에 부리를 박고 있던 챔프가 깃털을 휘날리며 바람같이 나타났습니다.
“너는 안 돼. 안 된다구. 네게 줄 모이는 없어!”
“배고파 죽을 지경이야. 조금만 먹자. 제발.”
그러나 챔프는 방방 뛰며 끼룩이를 인정사정없이 밀쳐내고, 날카로운 부리로 목덜미를 쪼고, 날개를 퍼덕이며 때렸습니다. 흙먼지가 눈에 들어가 눈을 뜰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오늘도 여전히 끼룩이는 모이 먹기를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끼룩아, 오늘도 별 수 없구나. 내가 챔프를 혼내줄까?”
끼룩이를 다시 등에 태운 순수는 챔프를 노려보며 말했습니다.
“아니야. 너처럼 덩치가 챔프의 열배도 더 크고, 키도 한참이나 더 큰 친구 가 챔프와 싸우는 건 불공평한 일이야.”
“그렇지만 챔프는 해도 해도 너무하는 거 아니니?”
다울이는 긴 다리로 마당을 어정거리며 등 위에 시무룩하게 앉아서 쉬고 있는 끼룩이를 위로했습니다.
도대체 챔프와 끼룩이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알에서 막 깨어났을 때 끼룩이와 챔프는 다른 병아리들과 마찬가지로 어미닭의 가슴을 파고들며 함께하는 시간들이 많았지요. 스무 마리 남짓한 병아리들이 삐악거리며 농장 뜰과 어미닭 품을 종종 걸음으로 뛰어 다녔습니다.병아리 형제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이 계속되었지요.
40여 일을 모이통과 물그릇에 부리를 대고 쪼아 먹는 일을 반복하는 동안 서로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놀랐습니다. 끼룩이와 챔프는 물론, 다른 친구들까지도 멋진 수탉과 암탉으로 자랐습니다.
드디어 끼룩이도 어미닭이 되고, 처음으로 알을 낳았습니다. 날아갈 듯이 몹시 기뻤고 세상이 달라보였습니다.
그때까지도 챔프는 끼룩이의 곁을 맴돌며 친절했습니다. 먹이통이나 물통 주변에서는 끼룩이가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자리를 양보하고 보살펴 주었습니다.
드디어 끼룩이는 횃대에서 알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횃대는 아주 조용하고 아늑하고 따뜻했습니다.
처음 알을 품을 때 다섯 개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어쩐 일인지 끼룩이도 모르는 사이에 알의 수가 하나 더 늘어났으며 신기하게도 여러 개의 알 중에서 그 알은 다른 것보다 네 배는 더 큰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크면 어떻고, 작으면 어떻겠습니까?
품고 있는 알이 모두 무사히 건강하게 부화하기를 빌고 또 빌면서 횃대에서 긴 시간과의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챔프도 횃대 옆을 묵묵히 지켰습니다. 자리를 뜨지 않는 끼룩이를 이것저것 보살피면서 말입니다. 모이도 날라다 주었고 물도 먹여 주었습니다. 마치 친한 친구처럼.
20여 일 째 날인가요? 품고 있는 알들에게서 심상치 않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작은 움직임들이 연이어 느껴졌습니다.
“삐악삐악.”
“삐악삐악.”
“삐악삐악.”
드디어 병아리들이 알을 깨고 태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한 마리가 꼬물거리며 끼룩이의 깃털을 제치며 기어 나왔습니다.
두 마리, 세 마리, 네 마리…….
하루 이틀 사이에 부화를 끝낸 병아리는 총 다섯 마리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알 중에서 가장 큰 것 하나만 횃대 안에 덩그마니 남아 있는 것입니다.
끼룩이는 커다랗고 단단한 문제의 그 알을 이리저리 살폈습니다.
하얀 색깔에 조금 더 클 뿐으로 다른 알과 비교해 볼 때 별다른 점이 없어 궁금증은 컸지만, 깨볼 수도 없어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이 녀석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몹시 궁금했지만 중간에 포기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 끝까지 기다려봐야지.’
끼룩이는 꼬물거리는 병아리들이 마당에서 챔프의 뒤를 종종종 따라다니며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것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큰 알을 계속 품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처음 알을 품었을 때부터 병아리로 부화할 때까지 꼭 그만큼의 시간이 흘렀나 봅니다.
40일 째 되는 날 아침이었습니다.
끼룩이는 여전히 큰 알 모양으로 남아있는 그 골칫덩이를 이리저리 째려보았습니다.
“얘는 생긴 것도 주책맞게 쓸데없이 큰 주제에 도대체 언제까지 이 모양 그대로일까?”
바로 그 때였습니다.
커다란 알이 조금씩 들썩였습니다. 끼룩이는 잘못 본 게 아닌가 싶어 한참동안 멍텅구리 큰 알을 지켜보았습니다.
멍텅구리 알은 조금씩 몸을 들썩이다 멈추기를 반복했습니다.
“거기 누구니?”
끼룩이는 알 껍질에 바짝 귀를 대고 부리로 노크를 했습니다.
“톡톡.”
“톡톡.”
“정말 그 안에 누가 있는 거야?”
끼룩이는 부리로 알을 쪼았습니다. 알 껍질은 단단했지만, 쉽게 구멍이 뚫릴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알은 몇 번씩 몸통을 이리저리 굴리며 들썩거렸습니다. 끼룩이는 알이 움직임을 멈출 때마다 톡톡 쪼았습니다.
그렇게 알과 끼룩이가 번갈아가며 노력한 끝에 드디어 알에 구멍이 뚫렸습니다. 뚫린 구멍 사이로 무엇인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작은 구멍이 점차 커지더니 드디어 갓 부화했던 병아리보다 조금 더 큰 녀석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야, 이거 참 신기한 일이네. 장난삼아 품게 했는데 이렇게 성공적으로 타 조병아리가 부회되다니…….”
주인아저씨가 몹시 신기한 듯 갓 부화한 타조병아리를 살폈습니다.
어쨌든 끼룩이는 이미 부화했던 병아리들처럼 타조병아리도 정성을 다해 보살펴 주었습니다.
“야, 이거 참 신기하네. 인공부화가 아니라 어미닭이 타조알을 부화하다 니…….”
어느 날, 주인아저씨는 큰 알에서 부화한 범상치 않은 병아리를 보고 놀랐습니다. 끼룩이를 비롯해서 친구들은 그제야 자신들과 다른 그 애가 ‘타조’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네 이름은 다울이다.”
주인아저씨는 타조병아리에게 그 집 외손자 다운이의 ‘다’자를 따서 ‘다울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다울이는 몰라보게 성장이 빨랐습니다. 타조병아리는 “삐악삐악” 울지 않고, “부우부우부우” 소리를 냈습니다.
생김새도 특이했고 울음소리도 달랐기 때문에 병아리들 틈에서 외톨이가 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다울이는 언제나 끼룩이 곁을 떠나지 않고 맴돌았습니다.
“얜 정말 달라. 달라서 다른 병아리들에게 놀림감이 되는 게 불쌍해 죽겠 어.”
끼룩이는 다울이를 보호해주고 먹이도 챙겨 주며 항상 옆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계절이 몇 번씩 바뀌며 해가 지남에 따라 다울이도 많이 자랐습니다. 다리가 끼룩이와 비교도 안될 만큼 길어졌습니다.
몸에 비해 다리가 긴 다울이는 자신보다 휠씬 더 작은 몸집의 닭과 병아리들을 피해 농장 안을 조심스럽게 이리저리 겅중겅중 걸어 다녔습니다. 물론 끼룩이는 다울이의 뒤를 뒤뚱거리며 쫓아다녔습니다.
챔프는 점점 끼룩이로부터 먼발치로 떨어져 나갔고 호시탐탐 다울이 눈을 피해 끼룩이를 응징하기 시작했습니다.
챔프가 왜 끼룩이를 응징하기 시작했는지 이제 그 이유를 알 수 있겠지요?
끼룩이가 괴롭힘을 당할 때마다 다울이는 의리 있게도 긴 다리를 접고 등을 내 주었습니다. 다울이의 등은 끼룩이의 편안하고도 온전한 피난처였던 셈입니다.
(타조의 등에 앉아 있는 어미닭을 상상해 보세요.)
다울이는 끼룩이 외에 어떤 누구도 결코 등에 태우지 않았습니다.
챔프는 도대체 언제까지 끼룩이를 괴롭히며 먹이를 먹지 못하도록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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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2년 청주교대 졸업
* 1985년 교육신보사 (교원학예술상 동화부문 최우수)
* 1986년 샘터사 (엄마가 쓴 동화 단편 입선)
* 1988년 제7회 새벗문학상 동화부문 당선
* 2010년부터 현재까지 서울 중마초등학교 교장
* E-mail : park-977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