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사투리가 쩌렁쩌렁한 시인
- 최일환 시인을 그리워하며
이준섭
남도 사투리가 쩌렁쩌렁한 시인 ! 그리운 최일환 선배님, 쩌렁쩌렁한 만큼 누구에게나 다정스럽고 올바르시던 선배님, 선배님에 대한 이 글을 쓰려니 문득 더욱 보고 싶습니다. 쩌렁쩌렁한 사투리가 듣고 싶습니다.
살아 생전인 1982년도에 해남 산이서초등학교 교정에 선배님의 동시 “ 선생님은 나를” 시비를 만들어 세우는 영광을 누리셨습니다. 날개 같은 그 영광 늘 가슴 속에 담고 다니시며 좋은 동시 쓰기에 노력하셨던 선배님, 어설프고 시가 무엇인지도 제대로 모르는 시인들이 자기 돈 300- 400만원주고 시비를 세워놓고 으스대고 있는 이 시대를 보면 통탄스럽다고 떠들어대실 선배님이 더 확대되어 떠오릅니다. 선배님은 살아생전에 시비가 건립되는 것은 선비로서 바랍직하지 않다고 말씀하시었습니다.
선배님은 ‘ 내 시비는 생각도 못혔는디, 육성회장, 학교장이 주장하고 육성회원들, 동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 세웠당께로. 가난하고 보잘것 없는 선비의 얼굴에 먹칠을 해도 너무들 혀’ 하고 걱정스러움과 자랑스러움을 반씩 섞어 말씀하셨습니다. 선배님은 선비의 도에 어긋난다는 생각 때문에 우리 동심의시 동인들조차 초대하지 않으셨습니다. 선배님의 좋은 동시 “ 선생님은 나를 ” 이 작품을 우리들도 다시 읽어보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나를
최일환
선생님은 나를
예뻐할까 미워할까
선생님댁 심부름은
나만 시키시고
하기 싫은 수학 문제도
나를 시키고
어쩌다 답이 틀리면
좌악 입을 물다가
휙 돌아 싱긋 웃고
선생님은 나를
예뻐할까 미워할까
숙제 않은 날은
나도 함께 벌을 받고.
이 작품은 1963년도 전국에서 동시 창작으로 이름을 날리시던 분들 김종상, 신현득, 엄기원, 김완기, 이상현, 김신철, 문삼석, 이진호, 박종현, 김삼진 등 “은방울” 교단문학회를 조직하시었습니다. 해남에서 어린이들을 이끌고 서울까지 글짓기 대회에 참가하고, 동시를 열심히 투고하시던 그 시절, 문학적 정열이 넘쳐흐르던 그 시절에 창작하신 작품이어서 더욱 좋은 작품이 탄생하였습니다.
이 좋은 작품은 아동문학 6집에 조지훈 시인의 추천을 받으셨습니다. 그 심사평을 잠간 들어 보면, “깔끔하고 재치 있는 작품이다. 선생님이 나를 사랑하는 지 미워하는 지를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는 동심이 잘 나타나 있다, 선생님은 나를 예뻐할까 미워할까를 반복한 점도 좋다.”
최일환선배님은 이렇게 조지훈 시인의 추천으로 아동문단의 길로 들어서셨다고 기회만 있음 자랑하시곤 했습니다.
이렇게 선배님의 좋은 동시 “ 선생님은 나를” 읽어 보니 더욱 보고 싶고 그리워집니다.
1989년도에는 23회 소천아동문학상을 수상하셨습니다. 일상생활을 소재로 어린이 정서를 듬뿍 담아낸 동시 창작 공로를 인정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이후로 더욱 문학 창작의 정열을 꽃피우시며 세종아동문학상, 크리스천문학상, 명지문학상 ,전라남도 문화상 … 등 많은 상을 수상하셨습니다.
1999.11.20.일에는 땅 끝 해남 광장에도 지역 주민들의 존경과 환호성 속에서 시비가 건립되는 영광을 또 안으셨습니다.
남쪽 섬들
최일환
작은 섬들 사이사이로
비단폭 한 자락
휘어진 바다
그 푸른 바다에
옹기종기 정다운
예쁜 섬들
바다는 그 섬들을
잃을까 봐서
가지가지 섬 모양
그대로 담아 놓고
섬들은 그 바다를
잃을까 봐서
한아름 꼭 안고
둥둥 떠서
남쪽 그 바다에만
언제나 작은
남쪽 그 섬들.
남해안의 푸른 비단물결 같은 이 작품을 읽을 때마다 더욱 그리워지는 최일환 선배님, 저만 만나면 멀리서부터 손을 흔들며 ‘이준섭, 이준섭 !’을 연달아 외쳐대시던 선배님, 선배님은 우리 동심의 시(17집1999년도 발간)에도 “남쪽 섬들” 3, 4, 5, 세편의 연작 동시를 발표하셨습니다. 이들 작품들에서도 남쪽 섬들에 대한 남다른사랑을 예술적 경지로 형상화시킨 작품들이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남쪽 바다로 달려가 모래밭에서 뒹굴며 놀게 하고 있습니다.
동시를 창작하는 동시인들이 거의다 그렇지만 선배님은 특히 순수하시고 털털하면서 누구든 다정스럽게 대하곤 했지요. 내 여동생이 목포에서 살고 있기에 가끔 간다고 했을 땐 목포신문 문화면에 특별 원고청탁도 해주셨습니다. 그때 발표했던 졸작 “ 더 이상 내려설 곳 없는 목포여 ” 도 떠오릅니다.
선배님의 또 다른 대표작인 “종남이 아저씨” 는 아주 소박하면서도 꾸밈없이 살아가는 사람, 배우지 못했어도 남들이 하지 않는 힘든 일들을 척척 알아서 잘 하면서도, 인정이 많은 한 사람의 일생을 연작시로 22편이나 창작하셨고, 동시로도 10편이나 창작하셨습니다. 종남이 아저씨는 우리 시대에 시골에서 만날 수 있는 순수와 인정 그 자체의 한 사나이입니다. 가난해서 못 먹고 못 배운 청년이지만 더 영리하고 부지런한, 그래서 지역( 면소재지)의 궂은 일을 앞장서서 다 하는 사람을 놓치지 않고 선배님은 시 작품을 성공적으로 창작하셨습니다. 종남이는 어쩜 최일환 선배님의 자화상이 아니었을까요?
선배님의 자화상 같은 작품 “ 종남이 아저씨” 를 다시 읽어 보며 선배님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볼까 합니다.
종남이 아저씨
최일환
한글도 모르고
구구단도 몰라도
동네 어른 나이는
모두 외우고 있어요.
동네 아이 이름도
모두 알고 있어요
종남이 아저씨
우리 마을 아저씨
집집마다 제삿날
이웃집 잔칫날
써놓지 않아도
척척 알고서
찾아가서 심부름을
온종일 해 준 뒤
종남이 아저씨
우리 마을 아저씨
일에 취해, 흥에 취해
막걸리를 마셔요
남의 일 하고 나야
술맛이 나고
술에 취한 때는 언제나
아이들 이름을 불러대지요
아이들과 놀아야
사는 맛이 난대요
종남이 아저씨
우리 마을 아저씨.
종남이 아저씨처럼 언제나 정이 많고, 아이들을 좋아했으며, 소탈했던 선배님, 하늘 나라에서도 종남이 아저씨와 신나게 놀면서 막걸리도 마시며 좋은 동시 많이 창작하시길 빌고 빌어 봅니다. 언제나 만남을 즐기며 좋아했던 선배님을 그리워하며 선배님의 동시를 읽노라면 쩌렁쩌렁한 남도의 사투리가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멀리서부터 손 흔들기를 좋아했고, 순수하고 소탈했던 선배님이 눈물 나오도록 그리워집니다.
* * 약력 *
1977;월간문학 시조 당선. 1979: 시조문학 추천완료. 1980: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1981: 광주일보 창간기년 현상공모 동시 당선, 한국아동문학상, 전라시조문학상, 한정동아동문학상, 방정환아동문학상,등 수상 1986: 동시집 “대장간 할아버지”외 4권 발간. 1988:시조집“새아침을 위해”외 3권 발간. 수필집“ 국화꽃 궁전” 장편동화집“ 잇꽃으로 핀 삼총사” 전자책시집 “ 장미원에서 ” 발간.
* 서울 구로구 개봉로 16길 18-17(동아연립 G동 101호 )
+ 전화 : 010-8467-9915
첫댓글 최일환 선생님의 제자입니다. 1983년 목포문태중학교 3학년때 제 담임선생님이셨습니다.
그땐 선생님의 버럭하시는 큰 소리에 소심한 저는 급우들한테 망신당하는 것 같아 친구들 앞에서 운적도 있습니다.
오랜 시간이 되어 작년에 해남 방조제에서 선생님의 추모시비를 보고 옛날 아픈 기억들이 모두 씻어내려가고
최 선생님을 그리게 되어 진정한 휴머니즘의 시인이신 선생님의 시집을 쭉 읽어내려간 적도 있습니다.
늦었지만 기독교 신자였던 최일환 선생님의 영생을 기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