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주사 팔상전 [法住寺捌相殿]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창건되어, 조선 인조 4년(1626)에 벽암선사(碧巖禪師)가 재건하였고, 최근(1968)에 완전 해체 복원공사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팔상전은 법주사의 오층목조 탑파건축(塔婆建築)으로, 1984년 4월 30일 쌍봉사의 대웅전으로 쓰이고 있던 삼층목조탑이 화재가 발생하여 없어지게됨으로써, 한국 목조탑(木造塔)의 유일한 실예(實例)가 된 중요한 건축물이다. 1층과 2층은 정면 5칸 측면 5칸, 3·4층은 정면과 측면 3칸, 5층은 정면과 측면 모두 2칸의 정방형으로 되어 있고 지붕은 사모지붕으로 상부에 상륜부(相輪部)가 온전하게 갖추어져 있다. 공포(공包)의 양식(樣式)은 1층부터 4층까지는 기둥 위에만 공포를 짠 주심포식(柱心包式)이나, 5층은 주간(柱間)에도 공포를 짜 올린 다포식(多包式)으로 되어 있음이 주목된다. 내부 중앙에는 찰주(擦柱)의 심초석이 있어 이 위에 심주(心柱)를 세웠고, 이의 네 귀에 우고주(隅高柱)를 세웠다. 1층의 변주(邊柱)와 우고주를 연결한 퇴보 위에는 2층의 변주를 세웠다. 이러한 가구법은 목조탑의 전형이 아닌가 생각된다. 전체 높이는 기단부에서 상륜(相輪)까지 약 24m로서 현존하는 한국의 탑파 중에 제일 높은 것이다.............문화재청 참조 **개요
법주사는 533년에 의신조사(義信祖師)가 창건한 이후 신라 720년(성덕왕 19)과 776년(혜공왕 12), 1006년(고려 목종 9) 당시 중수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여러 왕을 거치며 수차례의 중수와 중창을 거듭하여 현재에 이르렀다. 속리산(俗離山) 자락에 위치한 법주사는 기본적으로는 산지에 위치한 산지가람(山地伽藍)이지만, 속리산 주능선의 동쪽 계곡에 있는 넓은 평지에 조영되었으므로 평지가람(平地伽藍) 형식의 사찰을 구성하였다.
넓은 평지라는 지형적 특성을 이용하여 두 주불전인 대웅보전과 미륵전(彌勒殿, 일명 龍華殿이라고도 지칭하며 고려시대 건립되었으나 조선후기 철거되고 현재는 그 위치에 대형 청동미륵불을 건립.)의 배치 축이 팔상전을 중심으로 서로 직교하는 형식으로 배치되었다. 그러나 미륵전이 사라진 조선후기 이후는 일주문부터 팔상전을 거쳐 대웅보전에 이르는 직선 축을 중심으로 가람을 구성하였으며, 이 직선축 위에 일주문, 천왕문, 팔상전, 극락전(極樂殿, 현재는 없어짐), 대웅보전 등의 건물이 일렬로 배치되며 사찰의 중심공간을 형성하였다. 현재 경내에는 대웅보전, 팔상전, 원통보전, 천왕문, 금강문(金剛門), 일주문(一柱門), 약사전(藥師殿), 삼성각(三聖閣), 명부전(冥府殿), 요사(寮舍) 등의 건물과 쌍사자석등(雙獅子石燈, 국보 제5호), 석련지(石蓮池, 국보제64호), 사천왕석등(四天王石燈, 보물 제15호), 마애여래의상(磨崖如來倚像, 보물 제216호) 등의 많은 문화재가 현존하고 있다. 법주사 팔상전은 임진왜란 이후에 다시 짓고 1968년에 해체 수리한 것이다. 법주사 팔상전은 법주사 경내 가람배치의 중심적 위치에 위치한 오층목조탑(五層木造塔)으로서, 1984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996년 복원된 전남 화순 쌍봉사(雙峰寺)의 삼층목조탑(三層木造塔)과 함께 국내 목조탑의 유일한 실례로서 목조탑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되는 건축물이다. 벽면에 부처의 일생을 8장면으로 구분하여 그린 팔상도(八相圖)가 그려져 있어 팔상전이라 이름 붙였다.
이 건물은 아래층 5칸x5칸 평면 중 중앙 1칸에 찰주가 있어 상륜부까지 연결된다. 고주는 3층으로 연결되고, 2층 바깥기둥은 1층 퇴보 위에 걸린다. 마찬가지로 4층 바깥기둥을 3층 퇴보 위에 세워 체계적인 체감비례를 구성한다. 그러나 전형적 목탑형식에 비해 체감율이 급격하여 탑으로서는 둔중해 보인다. 구조형식은 다포계를 기준으로 하나 각 층마다 그 수법이 달라 여러 시기의 중수 공사 때마다 정확한 고증 없이 손쉬운 방법으로 적당히 구성한 형식이다. 목탑은 석탑과는 달리 비교적 넓은 내부공간을 형성한다는데 장점이 있다. 팔상전 내부에는 사면에 불단을 두어 불상을 안치해 예불건물과 상징적 탑의 이중기능을 갖는다. 화강석의 석축기단 위에 평면은 각층이 모두 정방형 형태로 1층과 2층은 5칸, 3층과 4층은 3칸, 5층은 2칸 규모로 구성되었다. 1층 평면의 경우 한 변이 11.35m이고 목탑의 총 높이는 상륜부(相輪部)를 포함하여 21.6m이다. 가구방식은 중앙의 심초석(心礎石) 위에 상륜부까지 연결되는 심주(心柱)를 세우고 주위에 4개의 원형 기둥으로 간격 2.45m의 사천주(四天柱)를 4층 높이까지 세워 목탑의 구조적 뼈대를 구성하였다. 그리고 그 주위에 12개의 원형 기둥의 내진고주(內陣高柱)를 3층 높이로 세우고 외곽에 20개의 1층 변주(邊柱)를 세웠다. 12개의 내진고주가 3층 변주가 되고 2층 변주는 1층 변주와 내진고주를 연결한 퇴보 위에 세워지고 마찬가지로 4층 변주는 내진고주와 사천주를 연결한 3층 퇴보 위에 세워졌다. 내부에는 사천주 주위의 네 방향에 불단을 조성하고 불상을 안치하였으며, 지붕은 홑처마의 사모지붕 형식으로 상부에 상륜부가 온전하게 갖추어져 있다. 공포양식은 1층은 내외일출목의 주심포식, 2·3·4층은 외이출목의 주심포식, 5층은 외4출목의 다포식인 점이 특이한데, 이는 창건 후 오랜 기간동안 수차례의 중수를 거쳤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현존하는 중국과 일본의 목탑과 쌍봉사 삼층목조탑 등 대부분의 목탑이 각층마다 가구(架構)를 적층시키는 적층식(積層式) 가구법을 사용했지만, 법주사 팔상전은 동양 삼국에서 현존하는 목탑 중 통층식(通層式) 가구법을 사용한 유일한 실례이다. 또한 현재까지 전해오는 우리나라의 탑 중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며, 하나뿐인 목조탑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문화예술종합정보 참조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55호로 지정되었다. 우리나라 유일의 목조 5층탑으로, 높이는 22.7 m이다. 법주사는 553년(신라 진흥왕 14)에 창건되었고, 팔상전은 정유재란 당시 불에 타 없어진 후 선조 38년(1605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인조 4년(1626년)에 완성된 것으로, 1968년의 해체 복원 공사를 거쳐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다. 벽의 사방에 각 면 2개씩 모두 8개의 변상도(變相圖)가 그려져 있어 팔상전이란 이름이 붙었다.
전체적인 형태는 정사각형의 돌로 만든 기단부 위에 목조로 5층 탑신부를 쌓고 가장 위쪽에는 철제로 만든 상륜부를 두고 있다. 기단은 돌로 낮게 2단을 쌓았고, 그 위에 갑석을 얹었으며 4면에는 돌계단이 있다. 탑신은 1층과 2층은 정면과 측면이 각 5칸, 3층과 4층은 정면과 측면이 각 3칸, 5층은 정면과 측면이 각 2칸씩으로 되어 있다. 석탑의 옥개석이라고 할 수 있는 기와 지붕을 씌우고 있는데, 지붕의 처마를 받치고 있는 공포가 다른 목조 건물에 비해 특이하다. 먼저 1층은 기둥 위에만 공포를 얹은 주심포 양식을, 2층에서 4층까지는 공포가 기둥 위에 놓이기는 했지만 다포 양식을 하고 있다. 5층은 기둥 사이에 공포를 놓은 완전한 다포 양식을 하고 있어 층마다 공포 양식이 다르다. 지붕은 4개의 지붕면을 가진 사모지붕이며, 지붕 위쪽으로는 석조 노반과 철제 오륜의 상륜부가 온전하게 남아 있다. 건물 내부는 사리를 모시고 있는 공간, 불상과 팔상도를 모시고 있는 공간, 예배를 위한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부 가운데에 찰주(擦柱)의 심초석(心礎石)이 있어 이 위에 심주(心柱)를 세워 상륜부까지 통하게 하였다. 1층의 변주(邊柱)와 우고주를 연결한 퇴보 위에는 2층의 변주를 세웠는데, 이러한 가구법은 목조탑의 전형으로 생각된다. 1968년 해체 복원할 때 심초석 상면에서 은제 사리호 등의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다. 우리나라의 탑 가운데 가장 높은 건축물일 뿐 아니라 하나뿐인 목조탑이라는 점에서 매우 소중한 문화재이다. |
첫댓글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