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창작을 시작하며
1. 가장 쉽고 좋은 시 쓰기?
중고등 학생 시절 많이도 시를 배우고 익혔다. 시를 쓰기 위한 시 쓰는 법을 배운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올바르게 시 읽는 방법을 배운 것도 아니었다. 돌아보면 학교에서 시를 배운다고 하는 것은 어떤 시에 대하여 평론가들이 이미 정리해놓은 이론들을 그대로 기억하는, 즉 암기하는 작업에 지나지 않았다.
시는 정서를 전하기 위한 것인데, 그것을 해부를 해서 내부구조를 들여다보는 식의 공부를 했다. 팔짝팔짝 뛰는 개구리를 보자는 것인데, 개구리의 속이 궁금하다고 가르고 찢어놓고 어떻다고 하는 식의 공부였다. 성적을 평가하는 시험문제도 바로 그 내부 모양새였다. 그러나 시는 그런 내부 모양새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읽고 난 직후의 느낌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그것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과정이 중요한 것이다. 사람을 보고 놀라 팔짝 뛰는 개구리의 모습을 보자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공부해온 시란 것이 모두 그런 내용이 전부다. 오로지 입시를 위한 시공부였던 것이다.
시중에 나와 있는 시 창작 안내서를 보면 시 쓰기보다는 시에 대한 이론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시 창작에서 이론은 수박껍데기를 핥는 일에 불과하다. 수박 맛은 껍데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있다. 허구한 날 이론을 익히기보다 단 한 번이라도 쓰도록 하는 것이 백번 낫다. 우리나라 학교에서 외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의 공부방식과 별 차이가 없다. 외국어를 말하기보다 문장을 해부하고 주어, 동사, 형용사, 시제가 어떻고 문법을 쫓다가 외국인을 대하면 입이 딱 붙고 만다.
따라서 시 쓰기 공부란 실제로 시를 많이 읽고 직접 써보며 시 쓰는 방법을 이해하고 터득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쉽고 좋은 방법일 수가 있다.
2. 시는 재미난 놀이의 일종?
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를 읽으며 즐거움을 찾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 읽기의 즐거움을 우리네 시인들의 시집에서 찾기 힘들다.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시인들이 다루는 주제가 너무 크다는 것과 무관하지가 않다. 즉, 커다란 주제라는 것이 민족의 장래, 국가의 통일, 이 시대 문명의 폐해나 방향, 자본주의가 인간의 삶에 끼치는 영향, 생명과 환경 등 무거운 것들이다.
대부분의 시인들의 시와 시집에서는 이런 커다란 주제들이 꿈틀거리고 있다. 이런 커다란 주제를 말하면서 익살스럽고 재미있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하자면 못할 것도 없겠지만, 시인들은 너무 진지한 주제를 진지하게 이야기하느라고 시가 원래부터 갖고 있는 놀이와 재미의 속성을 너무나 많이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진지하고 무겁고 부담가는 주제를 다루면서 그런 분위기를 싫어하는 보통의 사람들은 저절로 시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인문학의 위기네, 시의 몰락이네 하면서 독자를 탓할 것도 없는 일이다.
“약 오르면 빨개지는 것은?” “고추.” 옛날에는 이런 수수께끼 놀이를 하며 재미있어 했었다. 이와 똑같은 수수께끼는 아니겠지만, 요즘도 말장난으로 이루어진 수수께끼나 삼행시 짓기를 하면서 연인들끼리 혹은 친구들끼리 재미있게 보내는 것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이런 말장난의 재미는 사람이 살아있는 한 우리의 생활을 재미있게 하고 삶을 풍요롭게 할 것이다.
실생활에서 지나친 말장난은 화를 자초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말장난이 꼭 필요한 분야가 바로 문학이고, 그 중에서도 시라고 할 수 있다. 시를 읽으면서 내용 때문에 감동하기도 하지만, 시에서 말이 만드는 재미를 또한 놓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가 다뤄야 할 주제가 꼭 크고 무거운 것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닐 갓이다.
시는 우리 생활의 느낌을 표현하는 문학의 갈래이다. 거기에는 사회 곳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애환과 고민, 기쁨 같은 것이 있어야 하고, 또 그런 것을 우리 스스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하며, 그런 표현을 받아주고 발표해줄 수 있는 어떠한 기관이나 잡지도 필요하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우리가 고민하는 바를 바로 시로 쓸 수 있고, 그렇게 써놓은 시를 발표할 잡지가 우리 주변에 있던가? 그렇지 않기에 시의 위기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지금의 시는 무언가 큰 착각을 하고 있다. 교과서에서 배운 시도, 서점에서 사서 보는 기성 시인들의 시도 대부분 큰 주제에 집착해서 시가 가진 가볍고 재미있는 부분을 간과하고 있다. 이런 부분을 간과하고 무거운 주제를 다룬 시들만을 좋다고 강요하다보니 그런 것에 별로 관심이 없이 사는 많은 사람들이 시를 싫어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바로 이 지점이다. 시가 너무 무겁고 큰 것만을 다루지 않고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작은 느낌과 감정을 그때그때 표현할 수 있는 그런 것이어야 한다.
기성 시인들이 쓴 시를 읽으며 내가 쓴 시나 또는 쓰고 싶은 내용이 아주 소소한 것에 지나지 않아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 수가 있다. 시인들이 쓴 시는 시란 큰 것을 노래하는 것이라는, 보이지 않는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선 그런 생각부터 벗어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
시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아주 작은 감정들을 노래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생각이 좀 더 깊어지고 시 쓰는 실력이 나아지면 그때 가서 좀 더 큰 주제를 노래해도 된다. 지금은 말장난이라도 좋으니 글을 쓰고 말을 꾸미는 재미에 빠져서 시의 맛을 느끼는 일부터 하자.
시는 놀이의 일종이다. 이것이 시를 즐기면서 평생을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남의 눈치 보지 말고 어릴 적 말을 배우듯이 시를 가볍게 생각하고 매일 부딪치는 감정을 일기 쓰듯 써보는 것이다. 시라는 거 별거 아니다. 엄청난 것은 더더욱 아니다. 맛있는 사탕 같은 것이다. 쓰디쓴 것을 억지로 삼키려고 할 것 없다. 달달한 것부터 빨아 먹으면 된다.
남들은 어디 어디 응모해서 무슨 상을 받았느니 하는 것에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물론 응모라는 것이 관심과 집중력을 갖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겠지만, 시란 것이 생활 속에서 자연히 우러나서 시가 되어야지 어떤 수상을 염두에 두고 거기에 맞게 시를 쓰는 것은, 오래 우려서 국물을 내려하지 않고 조미료를 넣어서 급히 맛을 내려는 것과 같다. 입맛이 확 당길지는 몰라도 멀리 보면 좋을 리가 없다.
중요한 것은 서둘러서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이다. 바쁘더라도 원칙부터 해나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은 세상 살아가는 모든 분야에서 법칙으로 통하는 것이다. 시 창작이라고 해서 그 원칙에서 벗어날 리는 없는 것이다.
3. 시의 원천은 엉뚱함?
예술에서는 엉뚱함이 생명이라는 말이 있다. 엉뚱한 생각을 하는 것이 훌륭한 예술을 성취하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사회는 경제성을 본능에 가깝게 추구하지만 인간의 내면에는 경제성과는 상관없이 놀려고 하는 욕망도 있다. 경제성의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 놀려고 하는 이 욕망을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킨 것이 예술이다. 경제성의 원칙에서 벗어나는 그 엉뚱함을 예술 쪽에서 살리면 성공할 수가 있다. 그러면 시에서는 이 엉뚱함이 어떻게 작용하는 것일까.
봄에 피는 꽃을 보면 당연히 아름답다. 봄에 피는 꽃들의 특징은 잎사귀보다 꽃이 먼저 핀다는 점이다. 잎이 피기도 전에 꽃이 피고, 꽃이 지면서 잎사귀가 난다. 그런데 봄꽃을 보면서 가지 끝에서 밀려나오는 꽃을 나무가 누는 똥이라고 엉뚱한 생각을 하며, 이것을 시로 쓴 사람이 있다.
변비
정진명
뛰어가 앉으면 나오지 않고
몇 방울 힘겹게 떨구고 나와도
뒤끝이 영 개운치 못한
내가 변비 환자라는 사실을 안 것은
요 며칠 전의 일이다.
그러고 보니 창밖의 꽃나무들도
심한 변비를 앓고 있구나.
겨우내 참고 참았던 것을 밀어내느라
목련, 개나리, 진달래, 버들강아지들
바야흐로 봄볕 아래서 끙끙거리고 있다.
힘겹게 밀려나온 꽃이 지자
파릇한 화장지까지 한 장씩 톡톡 밀어낸다.
이 시가 잘 쓴 것인지 못 쓴 것인지는 보는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르겠지만, 시 중에는 이런 시, 이렇게 쓰는 시도 있다는 것이다. 사물을 인식하는 시각의 신선함으로 보면 잘 썼다고 할 것이고, 지금 유행하는 시집들의 무거운 분위기로 보면 시가 무슨 장난이냐고 힐책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재미없는 시는 그 시가 재미없는 것을 떠나서 시를 독자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마침내는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결과에 이르기도 한다. 그렇게 되기보다는 차라리 조금 엉뚱함이 있지만 재미있는 모습으로 독자의 곁에 머무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해보는 것이다.
4. 시인이 되려면?
시를 쓰는 사람은 모두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시를 쓴다고 해서 다 시인이라고 불러주지는 않는다. 우리가 시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시 쓰는 것을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로 여기는 사람들로서, <등단>이라고 하는 일정한 절차를 거쳐서 시인이 된다. 시인으로 등단한다는 말은 시인으로 인정을 받고 시인으로 활동하는 시인들의 무대에 오른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 시인으로서 인정을 받는 <등단>은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문학잡지사를 통해 등단하는 방법이다. 문학잡지는 보통 정기간행물로 내는데, 문학 전반을 다루는 잡지도 있고, 시만을 다루는 시 전문지도 있다. 이런 잡지를 사서 읽는 사람들 가운데 시에 관심을 가지고 시를 쓰는 사람들이 있다. 잡지사에서는 그런 사람들의 작품을 받아서 그 중에서 좋은 작품이 발견되면 그 작품을 잡지에 발표해주는데 이런 것을 추천이라고 한다. 이러한 관문을 통과하여 잡지에 계속 시를 발표하고 그러한 시를 모아서 시집을 내면 그때부터 시인이라는 호칭이 따라붙는 것이다.
둘째는 각 신문사에서 매년 말에 상금을 걸어놓고 작품을 모은다고 광고한 다음에 응모작 중에서 가장 좋은 작품을 뽑아서 이듬해 첫날 신문에 발표하고 수상자를 불러서 상금을 주는 <신춘문예>라는 것이다. 여기에 당선되는 것을 우리나라 문학 지망생들은 가장 영광으로 생각한다.
유럽에서는 우리나라와 같은 추천제도가 없다. 다만 살롱이라든지 아카데미라든지 하는 식의 그들 나름대로의 문단 운영방법이 있다. 하지만 마치 옛날 과거제도처럼 군림하는 우리나라 식의 추천제도는 없다. 그들은 시를 써서 시집을 내면 그것이 시인이 되는 길이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추천제도가 정착한 것은 일본의 제도를 본뜬 것이다. 일본에서는 오래 전부터 그런 제도가 있었고, 일제가 우리나라를 식민통치하면서 그 제도가 그대로 들어와 정착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행을 뒷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따르는 것은 우리나라에 그런 전통이 수백 년 이어져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과거제도를 말하는 것으로, 과거제도는 지방에서 실력이 뛰어난 후보자들을 시험으로 뽑아서 중앙으로 올려 보내고 중앙에서 두 차례에 걸쳐서 시험을 치른 다음에 장원을 내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벼슬길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기도 했다. 따라서 옛날 조선시대에는 공부를 해서 과거를 치른 다음 거기서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는 것만이 선비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무언가 뽑히지 않으면 자격을 주지 않는 어떤 관행이 생긴 것이다. 바로 이런 관행이 잡지사에서 신인을 뽑는 제도로 정착하고, 거기에 신문사까지 가세해서 오늘날의 문단이라는 세력이 형성된 것이다.
물론 근대문학 초기에 신문사에서 문인들의 작품을 신문에 실어준 것은 당시에는 문인들이 작품을 써도 딱히 발표할 지면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미있는 소설을 실어서 신문을 한 장이라도 더 팔아보겠다는 속셈도 깔려 있었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고,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데, 지금도 그렇게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뽑히는 자가 있으면 뽑는 자도 있는 법이다. 신춘문예건 잡지사건 어떤 추천을 통과하면 뽑힌 자와 뽑은 사람의 관계가 저절로 생긴다. 그렇게 되면 뽑는 사람의 시각에 맞는 작품이 뽑힌다는 결론이 나오기 마련이다. 즉 누구의 입맛에 맞는 작품들만 뽑힌다는 얘기다. 사과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사과와 배, 바나나를 주고서 고르라고 하면 당연히 사과를 고를 것이다. 그렇다고 배나 바나나가 잘못 된 것은 아니다. 이처럼 입맛에 맞지 않는 것들은 저절로 묻히게 된다. 묻힌 그것이 별 것이 아닐 수도 있지만, 만약에 별 것도 아닌 게 아니었다면 그것을 어떻게 할까? 신춘문예 심사에서 초심을 맡은 사람이 버린 작품을 본심을 맡은 사람이 주워서 당선시켰다는 얘기가 종종 들려오는 것을 보면 이런 우려는 그냥 우려로 그칠 일이 아니다.
게다가 추천해주는 잡지사가 잡지 경영에 도움을 받기 위해서 어떤 의도를 깔고 추천을 감행한다면, 그건 더욱 큰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그것은 장사꾼들이 하는 흥정과 같다. 자격이 안 되는 사람에게 자격증을 주는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질 수가 있다. 어쩌면 추천제도 하에서는 이런 일이 안 생길 수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추천제라고 하는 것은 옛 과거제도의 잔상이 남아서 전해오는 것이며, 부끄러운 일까지는 아니더라도 크게 자랑스러운 일도 못된다고 할 것이다.
한편, 이러한 관행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또 다른 방법을 찾아 나서는데, 그 방법은 대체로 두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하나는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동인지를 내는 것이다. 즉 스스로 돈을 걷어서 시집을 내는데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참여하여 시집 한 권 안에 여러 사람의 시를 싣는 것이다. 이런 것을 동인 활동이라고 한다. 남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자신들의 세계를 마음껏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좋은 방법이다.
또 한 가지 방법은 스스로 시집을 내는 것이다. 남의 눈치 볼 것 없이 오래도록 시를 쓰다가 50편이 되고 100편이 되면 그것을 시집으로 묶는 것이다. 실제로 시집을 평생에 한 권만 내고도 유명해지는 사람도 있고, 한 권도 내지 못한 채 죽고 나서 나중에 뒷사람들이 시집을 내줘서 유명해진 경우도 많다. 윤동주 같은 분도 생전에는 시집을 한 권도 못 냈는데, 그 뒤 해방 후에 친지들이 그가 남긴 유고를 모아서 낸 시집으로 유명해진 경우이다.
중요한 것은 자기 스스로 시를 쓰는 일이다. 그것을 남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내가 즐거워서 시를 쓰면 지금 당장은 시인이라는 이름을 듣지 못해도 나중에 언젠가는 시인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는 사실이다.
5. 시집 읽기-시의 관행과 전통의 이해?
우리나라에서 추천제도 등을 통해 시인으로서 인정을 받는다고 끝나는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일이 남아 있다. 그것은 시라는 전통과 관습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이다. 시는 이미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옛날부터 써서 그것이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전통의 한 분야로 굳었다. 사회를 구성하는 분야라고 하는 것은 그 분야에 오래도록 종사한 사람이 있었다는 얘기이고, 그러는 과정에서 다른 분야와는 다른 전통과 질서가 형성되었다는 뜻이다.
시만을 놓고 보면 시라는 전통이 섰으면, 시 아닌 것과 시인 것을 구별하는 방법이 확립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시인이 된다는 것은, 문단에서 추천을 해주든 말든, 이미 오랜 세월 동안 이어져온 시의 전통을 이해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이것이 아주 중요한 일이다.
우리 시의 역사는 아주 오래 되었다. 문헌으로 기록된 것을 보더라도 고구려 2대 유리왕이 지은 「꾀꼬리의 노래」라는 것이 있다. 고구려는 기원전에 선 나라이니 벌써 2000년도 넘은 세월이다. 국어시간에 배운 것들만 해도 민요, 향가, 고려가요, 경기체가, 시조, 가사, 한시 같은 것들이 있다. 이와 같은 시의 전통을 이해하는 것이 진정으로 시인이 되는 길이다.
그러면 이러한 시의 전통을 이해하려면 선배 시인들이 써놓은 시를 읽으면 된다. 남의 시를 읽다보면 시라는 것은 이렇게 쓰는 것이구나 하는 판단이 저절로 생겨난다. 그리고 그런 방법을 익혀서 거기에 맞춰 나의 감정을 노래하는 것이다.
시집을 읽고 또 읽는 것은 과연 정말 좋은 시가 되려면 어떤 속성을 갖추어야 하는지 직접 깨닫기 위한 것이다. 이론으로 시를 배우지만 남의 시를 읽으면서 확인을 하고, 그렇게 해서 터득한 원리로 내가 직접 써보는 것이 가장 훌륭한 방법이다.
그런데 그 많은 시집을 다 읽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좋은 시집만을 골라 읽으면 되지 않을까? 문제는 좋은 시집을 골라놓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좋은 시 몇 편을 뽑아서 소개한 책들은 있다. 그런 책을 사서 읽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장래에 시인이 되고자 꿈을 꾸는 사람에게는 만족스럽지 못한 일이다. 시 쓰는 사람이 꼭 읽어볼 만한 시집을 소개하면 대략 아래와 같다.
『진달래꽃』 김소월,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1, 미래사, 1991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윤동주,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33, 미래사, 1991
『님의 침묵』 한용운,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4, 미래사, 1991
『광야』 이육사,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18, 미래사, 1991
『접시꽃 당신』 도종환, 실천문학의 시집 37, 실천문학사, 1986
『농무』 신경림, 창비시선 1, 창작과비평사, 1975
『뿔』 신경림, 창비시선 215, 창작과비평사, 2002
『탄광 마을 아이들』 임길택, 실천문학의 시집 75, 실천문학사, 1990
『나그네』 박목월,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30, 미래사, 1991
『청산우체국 소인이 찍힌 편지』 정유화, 시작시인선 24, 천년의시작, 2003
『땅의 연가』 문병란, 창비시선 26, 창작과비평사, 1981
『지도에 없는 섬 하나를 안다』 임영조, 민음의 시 94, 민음사, 2000
『도화 아래 잠들다』 김선우, 창비시선 229, 창비, 2003
『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법』 복효근, 경계시선 8, 문학과경계사, 2002
『대설주의보』 최승호, 오늘의 시인총서 22, 민음사, 1983
『노동의 새벽』 박노해, 풀빛판화시선 5, 풀빛, 1984
『정선 아리랑』 박세현, 문학과지성시인선 103, 문학과지성사, 1991
『오라, 거짓 사랑아』 문정희, 민음의 시 102, 민음사, 2001
『붉은 편지가 도착했다』 박미라, 현대시시인선 16, 현대시, 2004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문정희, 민음의 시 119, 민음사, 2004
『적멸의 불빛』 오세영, 문학사상 신작시집, 문학사상사, 2001
『너는 꽃이다』 이도윤, 창비시선 113, 창작과비평사, 1993
『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 도종환, 문학동네 시집 2, 문학동네, 1994
『입 속의 검은 잎』 기형도, 문학과지성시인선 80, 문학과지성사, 1989
『만국의 노동자여』 백무산, 청사민중시선 33, 청사, 1988
『난초』 이병기,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8, 미래사, 1991
『세속도시의 즐거움』 최승호, 세계사시인선 4, 세계사, 1990
『머나먼 곳 스와니』 김명인, 문학과지성시인선 71, 문학과지성사, 1988
『우리 이웃 사람들』 홍신선, 문학과지성시인선 39, 문학과지성사, 1984
『산시』 이성선, 시와시학 시인선 4, 시와시학사, 2000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신석정, 창비시선 86, 창작과비평사, 1990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 이면우, 창비시선 211, 창작과비평사, 2001
『제비꽃 여인숙』 이정록, 민음의 시 105, 민음사, 2001
『몸에 피는 꽃』 이재무, 창비시선 144, 창작과비평사, 1996
『이 짧은 시간 동안』 정호승, 창비시선 235, 창비, 2004
『물 건너는 사람』 김명인, 세계사시인선 21, 세계사, 1992
『어딘지 모르는 숲의 기억』 박남수,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29, 미래사, 1991
『별빛 속에서 잠자다』 김진경, 창비시선 143, 창작과비평사, 1996
『향수』 정지용,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9, 미래사, 1991
『슬픔이 기쁨에게』 정호승, 창비시선 19, 창작과비평사, 1979
『백년 자작나무 숲에 살자』 최창균, 창비시선 236, 창비, 2004
『기억들』 송재학, 세계사시인선 107, 세계사, 2001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신용목, 문학과지성시인선 290, 문학과지성사, 2004
『멧새 소리』 백석,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20, 미래사, 1991
『오감도』 이상,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19, 미래사, 1991
『사랑의 기교』 오규원, 오늘의 시인총서 11, 민음사, 1975
『외롭고 높고 쓸쓸한』 안도현, 문학동네시집 1, 문학동네, 1994
『길은 광야의 것이다』 백무산, 창비시선 82, 창작과비평사, 1999
『가난한 사랑노래』 신경림, 실천문학의 시집 50, 실천문학사, 1988
『경주 남산』 정일근, 문학동네, 2004 개정판
『절정의 노래』 이성선, 창비시선 96, 창작과비평사, 1991
『누구도 마침표를 찍지 못한다』 정일근, 시와시학 시인선 15, 시와시학사, 2001
『동두천』 김명인, 문학과지성 시인선 9, 문학과지성사, 1979
『거미』 박성우, 창비시선 219, 창작과비평사, 2002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안도현, 현대문학북스의 시 1, 현대문학북스, 2001
『오래 말하는 사이』 신달자, 민음의 시 122, 민음사, 2004
『버드나무 껍질에 세들고 싶다』 이정록, 문학과지성시인선 221, 문학과지성사, 1999
『나의 사랑은 나비처럼 가벼웠다』 유하, 열림원, 1999
『문자들의 다비식은 따뜻하다』 주용일, 경계시선 20, 문학과경계사, 2003
『천지현황』 김종길,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41, 미래사, 1991
『세상의 밥상에서』 김은자, 세계사시인선 69, 세계사, 1999
『내 혀가 입 속에 갇혀있길 거부한다면』 김선우, 창비시선 194, 창작과비평사, 2000
『붉은 열매를 가진 적이 있다』 이윤학, 문학과지성시인선 159, 문학과지성사, 1995
『조국의 별』 고은, 창비시선 41, 창작과비평사, 1984
『한 잔의 붉은 거울』 김혜순, 문학과지성시인선 288, 문학과지성사, 2004
『장미라는 이름의 돌멩이를 가지고 있다』정영선, 문학동네 시집 42, 문학동네, 2000
『서울의 예수』 정호승, 오늘의 시인총서 21, 민음사, 1982
『무화과는 없다』 김해자, 실천문학의 시집 135, 실천문학사, 2001
『내 안의 열대우림』 정해종, 생각의 시 1, (주)생각의 나무, 2001
『마당으로 출근하는 시인』 정일근, 문학사상사, 2003
『지상의 편지』 조성림, 우리시대의 시인 100인 선집, 문학마을사, 2002
『강릉, 프라하, 함흥』 이홍섭, 문학동네 시집 29, 문학동네, 1998
『당신의 옹이에 옷을 건다김』 수우, 시와시학 시인선 19, 시와시학사, 2002
『우포 늪 왁새』 배한봉, 시와시학 시인선 17, 시와시학사, 2002
『어두워진다는 것』 나희덕, 창비시선 205, 창작과비평사, 2001
『개』 최준, 세계사시인선 14, 세계사, 1991
『청산행』 이기철, 오늘의 시인총서 20, 민음사, 1982
『세상의 모든 저녁』 유하, 민음의 시 56, 민음사, 1993
『사랑의 감옥』 오규원, 문학과지성시인선 102, 문학과지성사, 1991
『자신 없는 것들은 걸려있다』 금기웅, 문학동네 시집 68, 문학동네, 2003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나희덕, 창비시선 125, 창작과비평사, 1994
『집은 아직 따스하다』 이상국, 창비시선 174, 창작과비평사, 1998
『개같은 날들의 기록』 김신용, 세계사시인선 9, 세계사, 1990
『국경의 밤』 김동환,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7, 미래사, 1991
『알 시』 정진규, 세계사시인선 77, 세계사, 1997
『젖은 눈』 장석남, 솔의 시인 11, 솔출판사, 1998
『이용악 시 전집』 윤영천 편, 창작과비평사, 1988
『푸르른 날』 서정주,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23, 미래사, 1991
『무지개가 되기까지는』 박정만, 문학사상한국시선 18, 문학사상사, 1987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 조용미, 문학과지성시인선 283, 문학과지성사, 2004
『악어를 조심하라고?』 황동규, 문학과지성시인선 53, 문학과지성사, 1993
『다보탑을 줍다』 유안진, 창비시선 240, 창비, 2004
『우리 낯선 사람들』 이하석, 세계사시인선 3, 세계사, 1989
『처용 이후』 김춘수, 오늘의 시인총서 19, 민음사, 1982
『비단길』 강연호, 세계사시인선 42, 세계사, 1994
『천년의 바람』 박재삼, 오늘의 시인총서 7, 민음사, 1975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황인숙, 문학과지성시인선 69, 문학과지성사, 1988
『길안에서의 택시 잡기』 장정일, 민음의 시 16, 민음사, 1988
『산정묘지』 조정권, 민음의 시 33, 민음사, 1991
『풀잎』 강은교, 오늘의 시인총서 5, 민음사, 1974
『쓰러진 자의 꿈』 신경림, 창비시선 115, 창작과비평사, 1993
『맨발』 문태준, 창비시선 238, 창비, 2004
『모래인간』 최승호, 세계사시인선 101, 세계사, 2000
『우리들의 양식』 이성부, 오늘의 시인총서 4, 민음사, 1974
『햄버거에 대한 명상』 장정일, 민음의 시 7, 민음사, 1987
『자명한 산책』 황인숙, 문학과지성시인선 281, 문학과지성사, 2003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신경림, 창비시선 172, 창작과비평사, 1998
『붉은 눈, 동백』 송찬호, 문학과지성시인선 239, 문학과지성사, 2000
『추억의 푸른 이끼』 장병천, 현대시 시인선 14, 현대시, 2004
『지상의 그 집』 홍윤숙, 시와시학사, 2004
『나나 이야기』 정한용, 민음의 시 92, 민음사, 1999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황지우, 문학과지성시인선 32, 문학과지성사, 1983
『인간의 시간』 백무산, 창비시선 152, 창작과비평사, 1996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 김남주, 창비시선 128, 창작과비평사, 1995
『누가 두꺼비집을 내려놨나』 장경린, 민음의 시 21, 민음사, 1989
『진흙소를 타고』 최승호, 민음의 시 8, 민음사, 1987
『지상의 인간』 박남철, 문학과지성시인선 36, 문학과지성사, 1984
『나를 위해 울어주는 버드나무』 이윤학, 문학동네 시집 22, 문학동네, 1997
『여우를 살리기 위해』 이학성, 민음의 시 58, 민음사, 1994
『낯선 길에 묻다』 성석제, 민음의 시 39, 민음사, 1991
『처용』김춘수, 오늘의 시인총서 2, 민음사, 1974
『김씨의 옆 얼굴』 이하석, 문학과지성시인선 35, 문학과지성사, 1984
『사랑은 늘 혼자 깨어있게 하고』한승원, 문학과지성시인선 160, 문학과지성사, 1995
『벽을 문으로』임동확, 문학과지성시인선 149, 문학과지성사, 1994
『황금 연못』장옥관, 민음의 시 44, 민음사, 1992
『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오규원, 문학과지성시인선 4, 문학과지성사, 1978
『무인도를 위하여』 신대철, 문학과지성시인선 7, 문학과지성사, 1994
『예레미야의 노래』 박두진, 창비시선 29, 창작과비평사, 1981
『별의 집』 백미혜, 민음의 시 112, 민음사, 2002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 이성복, 문학과지성시인선 13, 문학과지성사, 1980
『지리산의 봄』 고정희, 문학과지성시인선 64, 문학과지성사, 1987
『게 눈 속의 연꽃』 황지우, 문학과지성시인선 97, 문학과지성사, 1990
『자유가 시인더러』 조태일, 창비시선 60, 1994
『겨울날』 김광섭, 창비시선 4, 창작과비평사, 1975
『그대의 하늘길』 양성우, 창비시선 63, 창작과비평사, 1987
『적당히 쓸쓸하게 바람 부는』 심재휘, 제3의 시 10, 문학세계사, 2002
『내 몸이 유적이다』 이순현, 문학동네 시집 62, 문학동네, 2002
『변명은 슬프다』 권경인, 창비시선 181, 창작과비평사, 1998
『사무원』 김기택, 창비시선 185, 창작과비평사, 1999
『유리의 나날』 이기철, 문학과지성 시인선 211, 문학과지성사, 1998
『수런거리는 뒤란』 문태준, 창비시선 196, 창작과비평사, 2000
『이팝나무 길을 걷다』 박정남, 문학세계현대시선집 180, 문학세계사, 2001
『이형기 시 99선』 이형기, 도서출판 선, 2003
『물은 목마름 쪽으로 흐른다』 허만하, 솔, 2002
『두고 온 시』 고은, 창비시선 213, 창작과비평사, 2002
『버려진 사람들』 김신용, 시작시인선 16, 천년의시작, 2003
『바늘구멍 속의 폭풍』 김기택, 문학과지성 시인선 151, 문학과지성사, 1994
『빗자루를 타고 달리는 웃음』 김승희, 민음의 시 99, 민음사, 2000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장석남, 문학과지성사, 1995
『아픈 곳에 자꾸 손이 간다』 이윤학, 문학과지성 시인선 241, 문학과지성사, 2000
『적멸의 즐거움』 김명리, 문학동네 시집 37, 문학동네, 1999
『사물의 운명』 하종오, 문학동네 시집 19, 문학동네, 1997
『뒤란이 시끌시끌해서』 조달곤, 작가정신, 2004
『국토』 조태일, 창비시선 2, 창작과비평사, 1975
『파천무』 송수권, 경계시선 1, 문학과경계사, 2001
『그리움이라는 짐승이 사는 움막』 조정인, 시작시인선 37, 천년의시작, 2004
『염소좌 아래 잠들다』 전명숙, 시작시인선 39, 천년의시작, 2004
『상처가 스민다는 것』 강미정, 시작시인선 15, 천년의시작, 2003
『몽유 속을 걷다』 김신용, 실천문학의 시집 118, 실천문학사, 1998
『열 손가락에 달을 달고』 이준관, 문학과지성시인선 122, 문학과지성사, 1992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 송찬호, 민음의 시 22, 민음사, 1989
『10년 동안의 빈 의자』 송찬호, 문학과지성시인선 148, 문학과지성사, 1994
『혼자 가는 먼 집』 허수경, 문학과지성시인선 118, 문학과지성사, 1992
『고슴도치의 마을』 최승호, 문학과지성시인선 46, 문학과지성사, 1985
『그리운 바다 성산포』 이생진, 동천사, 1987
『이 땅에 씌어지는 서정시』 오규원, 문학과지성시인선 19, 문학과지성사, 1981
『북 치는 앉은뱅이』 양성우, 창비시선 23, 창작과비평사, 1980
『사평역에서』 곽재구, 창비시선 40, 창작과비평사, 1983
『전야』 이성부, 창비시선 30, 창작과비평사, 1981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나』 최승호, 문학 판 시 1, 열림원, 2003
『꽃산 가는 길』 김용택, 창비시선 70, 창작과비평사, 1988
『어여쁜 꽃씨 하나』 서홍관, 창비시선 80, 창작과비평사, 1989
『밤의 공중전화』 채호기, 문학과지성 시인선 201, 문학과지성사, 1997
『대머리와의 사랑』 성미정, 세계사시인선 71, 세계사, 1997
『살아있는 날들의 비망록』 임동확, 민음의 시 31, 민음사, 1990
『풍경 뒤의 풍경』 최하림, 문학과지성 시인선 254, 문학과지성사, 2001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 신현림, 세계사시인선 41, 세계사, 1994
『화개』 김지하, 실천문학의 시집 141, 실천문학사, 2002
『섬진강』 김용택, 창비시선 46, 창작과비평사, 1985
『반시대적 고찰』 박남철, 세계사시인선 89, 세계사, 1999
『푸른 삼각형』 강유정, 청하시선 8, 도서출판 청하, 1983
『국어선생은 달팽이』 함기석, 세계사시인선 86, 세계사, 1998
『1차원 나라』 박순업, 세계사시인선 25, 세계사, 1992
『난간 위의 고양이』 박서원, 세계사시인선 59, 세계사, 1995
『지리산 갈대꽃』 오봉옥, 창비시선 69, 창작과비평사, 1988
『자본주의의 약속』 함민복, 세계사시인선 31, 세계사, 1993
『새로운 오독이 거리를 메웠다』 이수명, 세계사시인선 62, 세계사, 1995
이 중에는 소화하기 힘든 시집들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몇 권 읽어보고 어렵다고 해서 절망할 필요가 없다. 구미에 맞는 것부터 골라 읽으면 된다. 시간이 가면서 시를 보는 안목이 발전하고 정신이 성숙하면 저절로 다 이해가 될 만한 시집들이다. 그리고 여기에 소개된 시집이 전부가 아니다. 얼마든지 좋은 시집이 많이 있을 수 있다. 꾸준히 찾아서 읽고 또 읽어야 할 것이다.
6. 시 쓰기를 위한 생활습관은?
시인은 어느 날 갑자기 태어나지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유명해진 것 같아도 그렇게 되기까지는 엄청난 노력이 숨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시를 쓰기 위해서는 사전에 몇 가지 생활습관을 바꿔야 한다.
시 쓰는 일은 시의 격식과 형식에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맞추는 일이다. 그런 훈련이 되어있을 때 시로 표현할 느낌이 찾아오면 그 순간에 시로 나타나는 것이다. 실로 시를 발상하는 순간은 몇 초에 불과하지만, 몇 초 안 되는 그 짧은 순간에 시를 만들 수 있는 능력과 기술은 그 동안의 꾸준한 노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사람들이 시에 대해 크게 오해하는 것이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시는 천재성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즉, 굳이 시의 형식을 배우지 않아도 천재 시인은 위대한 작품을 쓴다는 것이다. 시의 천재는 어릴 때부터 재주를 드러내서 굳이 시 쓰는 법을 배우지 않아도 어른이 되기 전에 위대한 작품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착각은 없다. 시에는 형식이 있다. 아무리 천재라고 하더라도 그 형식을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고, 그 형식을 배우는 데는 상당한 시일이 걸린다. 물론 그런 형식을 전혀 몰라도 쓸 수 있는 것이 시이기는 하지만, 역사 이래 위대한 작품은 그런 형식에 대한 공부를 하지 않고서 이루어진 작품은 없다.
시인의 천재성이 발휘되는 것은 등산에 비유할 때 9부 능선 언저리쯤이다. 누구나 노력하고 시간을 들이면 8부 능선까지 올라갈 수 있다. 형식을 완전히 배워서 익힌 다음에 그 사람의 감수성이 절묘하게 작용하여 위대한 작품을 쓸 수 있는 것이다. 많은 시인들이 위대한 작품을 남기지 못하고 고만고만한 작품을 쓰고 마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부분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위대한 작품만을 위해서 시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시는 우리 일상생활의 즐거운 도구다. 감상하는 것도 이런 창작의 비밀을 알 때 정말 큰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위대한 작품의 위대성을 알아보는 것 역시 위대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시를 쓰기 위해서 평상시에 길들여야 할 버릇은 무엇일까? 그것은 일기를 쓰는 것이다. 일기를 꾸준히 쓰면서 시의 감성을 닦아야 한다. 감성이라는 것은 느낌이다. 이 감수성은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차 줄어든다. 그냥 두면 20대 후반에 메말라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시인은 감수성으로 사는 자다. 그래서 감수성을 갈고 닦아서 나이가 들어도 세상을 그런 감수성으로 바라볼 줄 아는 그런 자세를 길러야 한다. 그 방법이 일기 쓰기이다.
시인 지망생의 일기는 일반인들이 쓰는 일기와 다르다. 일반인들이 쓰는 일기는 보통 사건을 중심으로 쓰는 식이지만, 시인 지망생의 일기는 일기의 초점을 사건이 아니라 자신의 느낌, 즉 감수성에 맞추어야 한다. 예를 들어 아침에 일어나니 안개가 끼었는데, 그 모습이 어떠했다던가, 그 하얀 안개를 보니 무슨 느낌이 들었다던가 하는 그런 방식이다. 사건을 접하더라도 그 사건의 개요만이 아니라 그 사건을 보는 자신의 느낌을 적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감성과 느낌을 중심으로 일기를 오랜 세월 쓰면 어떤 사물을 보고 어떤 사건을 접하는 순간 말해야 할 느낌을 금방 잡아낼 수 있게 된다. 시는 사건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느낌을 전하는 갈래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쓰는 일기를 ‘감성일기’라고 한다.
시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감성일기를 꼭 써야 한다. 이것은 너무 중요해서 백 번을 강조해도 좋다. 감성일기를 쓰지 않는 사람은 감수성이 메말라서 세상을 봐도 아무런 느낌이 없기 때문에 시를 떠나게 된다.
7. 마음 안에 또 하나의 눈으로 시를 쓴다?
시를 쓴다는 것에 대하여 김형영 시인은 아주 명쾌하게 정리를 한다. 그의 말을 빌리면 다음과 같다.
지식인은 배우면서 사는 것 같고,
지성인은 배운 것을 응용하면서 사는 것 같고,
그러나 예술가는 배운 것을 지우면서 사는 사람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처음 보듯이 놀란 눈으로 보기 위해서는
배운 것을 지우지 않으면 안 된다. 보이는 것들이 하나의 거룩한 생명임을
깨닫는 그런 눈으로 보기 위해서는 당연한 것이다.
마음의 눈으로 새롭게 본 것은 버릴 것이 없다. 마음의 눈의 깊이는
우주의 끝의 깊이와 같아서 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없거나 보이지 않는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을 통해서 없는 것처럼 있는 것을 찾는 일,
존재하지 않으면서 존재하는 것을 찾는 일,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찾듯이
내 마음 안에 또 하나의 눈을 가져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