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에 일어나니 모두 잔다. 어제 늦게 들어온 녀석 두 명이 밤새 여덟 번 토하러 들락거렸다. 수를 셀 지경이었으니 당연히 깊은 잠을 못 잤다. 코고는 애가 없었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아침에 보니 모두들 간단한 차림으로 늦게까지 잔다. 할 일이 없어 계속 누워 책 보다 나갔다. 거실에는 지난 밤 들어 온 한국 애들이 자고 있다. 방이 없었나 보다.
9시에 아침 식사. 빵과 잼, 쵸코 스프레드, 마가린, 차를 먹고픈 대로 먹으면 된다. 빵을 세 쪽이나 먹었지만 우리 팀이 어제 남은 밥을 끓여 먹는 바람에 또 먹었다. 벌써 우리 식량을 먹고 있다. 이렇게 포식하는 이유는 점심을 제대로 먹을 시간이 없다는 정보 때문이다. 필요한 김치, 차, 간식을 더 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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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 20분에 푸르공 러시아 짚을 타고 출발. 침낭이 없는 나에게 주인은 두둑한 겨울용을 주었다. 이 일로 2달러를 받아갔던 서운함이 가셨다. 침낭이 어찌나 따듯하던지 푹 자는 편한 여행이 되었다. 짚 운전사는 반제라흐취 아저씨, 52세(60대로 보임)로 영어는 못한다. 나름대로 차를 잘 꾸며 놓으셨고 무척 깔끔하고 인정 많은 분이다. 이 짚이 생각보다 넓고 편하며 짐도 많이 들어간다. 취사도구, 음식, 물, 배낭, 침낭 등으로 뒤가 그득하다.
남쪽으로 계속 내려간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의 풍경이 아주 조금씩 조금씩 달라진다. 사실 꽃들이 약간 바뀔 뿐 거의 비슷하다. 이렇게 계속 비포장 도로에 바퀴자국만 난 길(넓은 길이란 바퀴자국이 많은 길로 무척 드물다)을 8시간씩 달리다보면 놀이동산의 의자에 앉아 화면만 휙휙 바뀌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약간의 허브 냄새를 풍겨주고 낡은 의자가 좌우, 상하로 흔들리면서 이런 장면을 틀어주면 똑같을 거다. 고비사막 가상 투어가 되겠지. 가끔은 길이 아닌 초원을 달리기도 한다(비상시에).
아아주 멀리까지 보이는 그림 같은 벌판에는 염소, 양들이 지나가고 쌍봉 낙타나 말이 풀을 뜯는다. 낙타의 봉은 건강할 때, 충분히 먹었을 때만 꼿꼿하므로 힘없이 덜렁거리며 자빠져 있는 놈도 있다. 이 녀석은 볼 수록 신기하다. 낙타는 겁이 많은 편이어서 사람이 다가가면 피하지만 소는 사람을 유심히 관찰한다. 특히 개가 재미있는데 아저씨가 길을 물으려고 이따금 나타나는 겔에 들르면 차가 출발할 때 개가 같이 달린다. 거의 모든 개들이 그렇다. 겁도 없이 차 앞으로 팍팍 끼어 들며 달린다. 차를 동물쯤으로 여기는가보다. 아니면 심심하니 그럴 것이다. 사방천지 아무 것도 없다가 가끔 겔이나 사람, 동물을 보면 우리도 무지하게 반갑다.
표지판 하나 없이 펼쳐진 초원을 운전사는 어찌 알고 달리는지. 그리고 분명 여러 번 다니셨을 텐데도 계속 물어보며 가는 것도 신기하다. 겔이나 사람이 나오면 무조건 묻고, 가끔 엉뚱한 방향으로 달렸다가 돌아오기도 한다. 너무 원시적인 것 아닌가? 물이 없어 사람들의 옷은 반지르르 꼬질 꼬질 하지만 표정은 더없이 순박하다. 특히 아이들의 수줍은 모습이 귀엽다. 미아트 몽골 비행기 책자에는 '북쪽 산의 소로 태어나는 것이 고비사막의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보다 낫다'고 했다. 그렇게도 척박한 삶인 것이다.
중간에 오보(성황당 같은 돌무더기)에 내려 사진을 찍었다. 이곳을 지날 때는 사람도 차도 시계방향으로 한바퀴 돈다. 오보에는 목발(나은 사람이 두고감), 말머리(사랑하는 말이 죽었을 때), 술병, 돈 또는 지갑(10, 20원 크면 50원으로 돈 많이 벌게 해달라고.. 요거 다 모으면 쏠쏠하겠지만 푼돈에 벼락맞을 일은 안하지!), 카닥 등이 널려 있다. 페트병이나 이해 안 되는 쓰레기들도 있어서 우리 팀은 쓰레기 더미인줄 알았단다. 다행히 내가 무속에 관한 책을 보고 왔기에 설명을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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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덤불에서 볼일도 보았다. UB에서 투어 다녀온 우리나라 아가씨에게 들었다. 같이 투어했던 미국여자가 처음에는 볼일 볼 때마다 당혹스러워하더니 13일 고비, 훕스굴 투어를 마치고는(13일 짚을 타면 얼마나 힘들까?) '울란바타르 대로에서 일을 보래도 볼 수 있다!'고 했더란다. 이에 비해 한국사람은 처음부터 적응이 빠르다. 약간의 큰 덤불이라면 그 뒤에서, 그것 마저 없으면 남방을 두르고 보고, 또 아예 평지에서는 다 못 오게 하고 차 뒤에서 볼일을 보았다.
다시 출발, 하양 달리다가 한참만에 거대한 바위산을 보고 세워 달라 했다. 이런 곳이 나타나면 다 유명하고 신성한 곳이다. 신비롭고 멋있다. 덤불들이 있어 볼일 보기는 좋지만 송장메뚜기 같은 놈들이 무지 많다. 이걸 한국에서는 먹는다는 시늉을 하면 아저씨는 놀란다(나중에 개, 말을 보고도 먹는다는 시늉을 했더니 마찬가지로 놀라셨다. 우리가 괴물처럼 보일까?). 다시 달린다. 넓기도 하다. 하루 종일 차 4, 5대 정도 볼까? "와! 저기 차다!"하고 소리칠 정도다. 보았던 겔의 수도 꼽을 지경이다. 만나면 반가워 절로 손을 흔들게 된다. 최근 이상기온으로 추웠고 밤마다 비가 와서 물 고인 곳이 많다. 차는 가끔 서서 점검도 하고 때로는 고치기도 한다. 3초 정도면 저절로 시동이 꺼지므로 계속 엑셀을 밟아야 하니 얼마나 힘드실까? 8시간에서 길게는 11시간 운전을 한다. 이 차가 처음 출발 때 기름을 9만원 어치나 넣었다. 586원 정도로 무척 싼대도 그렇게나 많이 들어간다. 단단하고 실용적인 차이다.
오후 6시가 넘어서 신성한 순례지라는 바가 가즈른 출루(19세기에 두 승려가 암각화를 그리고 살았단다) 아래의 호텔에 도착했다. 발전기로 전기도 돌리고 화장실, 세면대도 있는 고급 숙소이다. 식당 겸 바도 있고 이불이며 내부 시설도 고급스럽다. 물티슈로 얼굴이나 닦을 줄 알았는데 다행이다. 가격을 이미 알고 있는데도 아가씨가 1인당 만원을 부르길래 원래 가격 6천원에 흥정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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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빵으로 먹어서 속이 더부룩하고 이상하다. 빨리 밥을 하자고 서둘렀다. 7시에 라면을 넣은 부대찌게 비슷한 김치찌개를 해서 정말 맛있게 먹었다. 소풍 온 것 같다. 식사 후 차를 만들어 놓고 주변 돌산에 올랐다. 예쁜 패랭이며 꽃들이 피어있고 언덕 아래에는 하얀 동물 뼈들도 널려있다. 멀리 서광이 비치며 펼쳐진 흐린 하늘과 구름, 비가 흩뿌리는 돌 언덕들이 신령스럽고 신비로운 장소이다. 꽤 쌀쌀하다. 배가 부르니 몸도 좀 풀려 편한 마음으로 쉰다. 풍경이 고즈넉하고 아름다워 시간을 초월한 원시의 세계, 근원적인 공간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이런 곳에서 명상이나 요가를 하면 훌륭할 텐데 춥고 비가 오므로 포기했다. 내려와서 차도 마시고 밤에는 우리나라 맥주(이곳에서는 카스, 하이트 등이 가장 보편적이고 인기인데 캔 하나에 500원 정도)와 안주를 먹었다.
일행은 조용하고 좋은 사람들이다. 이렇게 한국사람들끼리 가는 것이 참 행운이라고 들었다. 외국인과 가면 김치나 밥도 못 먹고 그들 입맛에 맞는 스파게티를 해먹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만난 외국 애들은 주로 안 해먹고 컵 라면을 먹었다. 하루 이틀이지 그렇게 먹고 어찌 사는지. 우리는 돌아올 때까지 내내 집에서보다도 더 많은 밥과 김치를 먹었다. 세수, 발씻기가 가능해서 다행이다. 김치 물이 배낭에 배어들어 몇 가지를 빨았다.
10시 반이니 자야하는데 별로 피곤하지 않다. 날이 추우니 반제라흐취 아저씨께 들어와 같이 주무시자고 했다. 계속 차를 지켜야 한다는 몸짓을 하며 차에서 주무신다고 한다(이날 이후로는 우리를 대충 파악했으므로 같이 먹고 주무셨다). 내 침낭을 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