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I/이영도
낙수 소리 듣다 미닫이를 열뜨리니
포근히 드는 볕이 후원에 가득하고
제가끔 몸을 차리고 새 움들이 돋는가
아이는 봄 따라 가고 고요가 겨운 뜰에
맺은 매화가지 만져도 보고 싶고
무엔지 설레는 마음 떨고 일어 나선다
<해설> 1954년 [청저집](문예사)에 실린 시이다.
봄 이 오는 소리는 시인에게 반갑기 그지없다. 겨울 동안 움츠린 자연의 활달한 깨어남을 보는 기쁨과 그 기쁨을 시의 언어로 옮기는 자연의 혜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영도의 「봄 Ⅰ」에서 우리는 봄이 오는 기미를 발견하는 시인의 설레이는 기쁨을 접할 수 있다.
봄의 비 소리는 만물의 생장을 촉진하는 생명수와 같다. 그 낙수 소리에 시인은 미닫이를 열어 젖힌다. 미닫이 문은 아마도 겨우내 세찬 바람과 눈을 막기 위해 닫혀 있었을 것이다. 추운 바깥 세상과 단절시켰던 미닫이 문을 여는 것은 봄이 오는 외부의 변화된 공기를 한껏 맞이하기 위해서이다. 포근한 볕이 드는 후원을 바라보는 시선은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바로 세우고 움을 틔우는 나무로 향한다.
아이는 봄의 정취를 따라 나서고 뜰은 비어있다. 어린 싹이 돋아나는 봄은 사계절 중 어린아이와 어울리는 계절이다. 아이의 재잘대는 소리가 사라진 뜰은 조용하지만 시인의 봄을 대하는 심정은 더욱 활달해진다. 매화가지를 만져보려는 마음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감추어진 설레임이 담겨져 있다. 그 설레임이 자리에서 떨치고 일어나 봄의 뜰로 나서게 하는 것이다. 진정한 봄이란 이러한 설레임과 떨치고 일어남에 있지 않을까. (유지현, 현대시 해설)
* 봄 2/이영도
이웃에 봄을 나눈
살구꽃 그늘 아래
도란도란 얘기들은
소꿉질에 잠차졌고
상추씨 찾는 병아리
돌아올 줄 잊었다
<이영도(李永道): 1916 - 1976 >
* 1916년 경상북도 청도에서 출생하였다. 호는 정운(丁芸). 시인 이호우의 여동생이다.
* 1945년 부군과 사별.
* 1945년 경남 통영어중 교사, 1953년 부산 남성여중고 교사, 1955년 마산 성지여고 교사, 1956년 부산여대 강사를 지냈다.
* 1946년 [죽순]지에 <제야(除夜)>를 발표함으로써 시조시인으로 등단.
* 1954년 [청저집(靑苧集)]을 출간.
* 1958년 수필집 [춘근집(春芹集)] 출간.
* 1966년 수필집 [비들기 내리는 뜨락]을 출간, 제8회 늘원문화상 수상,
* 1968년 두 번째 시조집으로 오빠 이호우 시인과 함께 오누이시조집 [비가오고 바람이 붑니다](중앙출판공사 1968) 중 제2시조집을 발간.
* 1975년 한국시조작가협회 부회장 역임, 한국여류문학인회 부회장 역임.
* 1976년 지병으로 사망하였다. 유고집 [언약], 유고수필집 [내 그리움은 오직 푸르고 깊은 것]이 있다.
* 1996년 그가 간지 20년 만에 부산의 금정산공원 입구에 시비를 세웠다. 시비의 전면에는 대표작인 <단란>, <석류>와 <모란>이 새겨져 있다.
<경남 청도군 청도읍 내호리 오누이시비공원 이영도 시비, 시제는 '달무리'>
* 달무리/이영도
우러르면 내 어머님
눈물 고이신 눈매
얼굴을 묻고
아, 우주(宇宙)이던 가슴
그 자락
학(鶴)같이 여시고, 이 밤
너울너울 아지랭이
<부산 금정산 동래금강공원 이영도 시비, 시제는 '단란', '석류', '모란'>
* 이호우 시인과 함께 발간한 오누이시집 [비가오고 바람이 붑니다](중앙출판공사 1968) 중에 이영도 시인의 제2시조집에 <단란>, <석류>와 <모란>이 수록되어있다.
단란
아이는 글을 읽고 나는 수를 놓고
심지 돋우고 이마를 맞대이면 어둠도 고운 애정에 삼가는 듯 둘렸다
석류
다스려도 다스려도 못 여민 가슴속을
알알 익은 고독 기어이 터지는 추정(秋睛)
한자락 가던 구름도 추녀 끝에 머문다
모란
여미어 도사릴수록 그리움은 아득하고
가슴 열면 고여 닿는 겹겹이 먼 하늘
바람은 봄이 겨웁네 옷자락을 흔든다
◈ 신록/이영도
트인 하늘 아래
무성히 젊은 꿈들
휘느린 가지마다
가지마다 숨 가쁘다
오월(五月)은 절로 겨워라
우쭐대는 이 강산(江山)
<해설> 1954년 시집 [청서집]에 수록된 시이다.
하나의 구(句)를 한 행으로 삼은 이른 바 구별 배행 시조이다. 오월의 자연이 주는 싱그러움을 감각적인 표현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이 작품에서 우리는 자연을 하나의 생명체로 대하는 시인의 사고를 엿볼 수 있다. 무성하게 자라는 식물에서 '젊은 꿈'을 발견하는 시적 자아이기에 오월의 신록이 흥에 겨워 절로 우쭐대는 것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의인화된 오월의 모습이 그것을 바라다보는 서정적 자아의 내면을 반영하고 있는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 작품에서 우리는 오월의 신록을 바라보는 흥겨움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현대시 목록, 인터넷)
♣ I was made for dancing/Lief Garret
http://youtu.be/Hihp_Jjdns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