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버스터미널에 하차한다. 오늘도 지난 코스와 같이 거리는 13Km로 짧다. 하늘은 모처럼 트레킹 하는 날에 맑은 날씨를 선사한다. 6월이 되었으니 당연한 듯 보이지만 요즘 워낙 날씨 변수가 많다 보니 안심할 수가 없다. 오늘도 오후 1시경에 소나기 예보가 있기 때문이다. 코스 안내판이 서 있는 서산수협 건물 옆으로 정상에 군부대의 레이다가 있는 산이 스친다. 지난 코스에서 이슬비와 비구름으로 인해 보이지 않았던 망일산(302m)이다. 도비도항에서 대호방조제를 걸으며 한참을 보았던 그 산이다. 이렇게 가까이 보이는 산이 비구름으로 인해 전혀 인기척을 느낄 수 없었으니 자연의 힘은 위대하다.
길은 하천따라 서쪽으로 인도한다. 우측으로 고층의 한성필하우스아파트 단지가 서 있다. 대산교를 건너며 바라보니 천변에 서 있는 크리스마스 트리 모양의 큰 나무들과 어울리며 멋진 모습으로 다가온다. 하천 빈 공간에는 금계국이 아직도 한창이고 길가 안쪽으로 낮은 관목들이 빽빽히 자라고 있어서 하천 길은 걸어다닐 수 있는 정도로만 좁아져 있다. 이런 길이 오히려 다니기에 운치가 더 있지만 보통은 그러지 못하다. 몇 개의 작은 다리를 건너면 우측으로 길고 산뜻한 음식점이 보인다. 소우담 브랜드가 정문에 붙어 있다. 한우 식당으로 생각했으나 일본식수제요리가 전문이다.
그리 크지 않은 읍내는 금방 벗어나고 모내기를 끝낸 농경지가 펼쳐진다. 길은 계속 하천 제방길을 따라 이어간다. 논은 대부분 모내기를 마쳤다. 산에가면 신록이 풋풋하듯이 지평선은 연녹색으로 빛나고 있다. 보기만해도 눈이 산뜻해진다. 이런 맛이 있어야 트레킹하는 기분이 더 살아난다. 논밭 사이로 약간 낮은 언덕에는 영락없이 소나무 몇 그루가 자리잡고 있다. 이렇게 지평선에 약간의 변화가 일어나니 주변 배경이 좀더 부드럽고 아름다워진다. 서쪽으로 송전선로가 논을 가로지르고 있고 그 너머로 바닷물이 살짝 보인다. 다시 바닷가가 가까워진 모양이다. 수초가 제거된 하천이 나온다. 바닥이 아주 시원하게 보이고 아주 적은 하천물이 흐르고 있다. 어느 밭을 보니 묘목보다는 조금 크게 자란 향나무가 넓게 심어져 있다. 토지의 효율성도 올리고 농촌의 이익 증대에도 기여하므로 이런 사업은 권장할 만하다.
하수처리수 재이용 사업을 위한 공사가 한창인 대산공공하수처리시설장 정문을 지나간다. 그동안 하천으로 방류하였던 하수처리수를 정수 처리하여 수질을 향상 시켜 농,공업용수로 재이용하기 위한 사업이다. 가뭄등에 따른 물부족을 대비하고 방류수를 한번 더 처리함으로써 하천의 수질도 개선할 수도 있다. 넓은 농경지에 하수처리시설이 있으니 이곳은 가뭄 걱정이 많이 해소되겠다. 제방길을 만난다. 여기가 담수호인지 바다인지 불명확하다. 그러나 좀 더 더 걸으면서 자연스레 의문점은 해결한다. 서쪽 부분이 서서히 트이면서 바다와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이곳이 바로 가로림만이다. 만이기 때문에 내륙 깊이 들어온 바다라서 호수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다. 서산의 벌말항과 태안의 만대항이 서로 마주보고 있고 항아리같은 모양을 보여준다. 가로림만은 원형을 유지하고 있고 생태계가 잘 보존된 갯벌을 가지고 있다. 예전에 가로림만에서 폭이 가장 좁은 만대항과 벌말항을 연결하여 조력발전소를 추진하였으나 무산된 적이 있다. 아마도 그때 추진되었다면 지금 보고 있는 지형이 변했을지도 모른다.
제방길은 어느 순간 야자매트길로 변한다. 파쇄자갈을 깔고 야자매트를 설치했다. 야자매트는 코코넛 나무껍질의 섬유질로 만드는 천연자재라서 환경친화적이다. 좌측으로는 망일산이 논밭 너머로 계속 보인다.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서해안 지대가 평야라서 잘 보인다. 제방길을 걷다보면 바다를 가로막고 있던 내륙이 더 이상 튀어 나오지 않아서 반대편이 서서히 드러난다. 웅도가 보이고 그 뒤로 육지가 아스라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위치상으로 볼 때는 서산보다는 태안으로 생각된다. 둑방길 빈자리에는 개망초가 흐드러지게 하얀 꽃들을 선보이고 있다. 제방은 야트막한 야산을 만나면서 끝나고 길은 산자락 아래로 이어진다. 일행들이 단체 사진을 찍고 있어서 재빨리 합류한다.
여기가 바다솟대로 알려진 곳이다. 여러개의 솟대는 바다 안쪽으로 세워져 있다. 성판득 선배님과 함께 솟대를 배경으로 인증사진을 남긴다. 솟대는 마을 수호신의 상징으로 마을 입구에 보통 세운다는데 이곳에서는 마을이 보이지않는다. 그렇다면 어떤 의미로 해안가에 세웠을까. 오늘의 만조시간은 9시 8분이고 현재는 10시 10분이다. 아직 바닷물이 충분히 빠져 나가지 않아서 해안 길로 걷는 것은 무리가 있으므로 산길따라 우회길을 이용해야 했으나 길은 그대로 해안따라 걷는다. 물때표는 오늘이 13몰이고 내일이 조금이라고 알려준다. 즉, 바닷물이 조금만 밀려와서 해안길을 열어준 상태라서 지금은 바닷물 걱정없이 해안길을 이어가는 것이다.
산자락따라 돌아간다. 웅도가 좀더 가까이 보인다. 그 뒤로 고파도가 조금 보이는듯 하고 희미하게 끝자리에 들어선 것은 가로림만의 맞은 편에 있는 태안 내륙일 것이다. 몇 차레 서해랑길을 더 걸으면 지나갈 곳이다. 멀지않은 둣한데 그만큼 가로림만은 내륙 깊이 들어와 있고 굴곡이 심한 리아스식 해안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시 제방길을 따른다. 염전 지역이 나온다. 염전저수지 옆을 지날 때 만조시 해안가를 우회하는 길이 나온다. 안내판은 대산터미널에서 2.4Km를 걸어 왔으니 종점까지 10.6Km남았다고 말한다. 시골길을 걷는다. 좌측 야산 산비탈에 태양광 설비가 넓게 설치되어 있다. 야산 산림의 반쪽이 날아갔다. 이런 모습을 보면 어느 것이 자연보호인지 헷갈린다. 태양광이라는 신재생에너지의 필요성은 알겠는데 막상 야산 경사면의 너무들을 베어 버리고 그 자리에 태양광패널을 세워 산림을 훼손시킨 것은 환경보호 측면에서도 합리화되는가 보다. 전망좋은 곳에 나무가 높게 자라서 조망을 가릴지라도 자연보호를 위해 나뭇가지 조차도 잘라내지 못하는 현실은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검은 천으로 둘러친 건물이 나오는데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고 한쪽 벽면에는 국내산 천일염을 생산하는 부성염전의 1호점을 알려주는 간판이 붙어있으나 간판의 색깔은 많이 바래있다. 염전에는 소금수레나 수차 조차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오래전부터 이곳은 천일염을 만들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염전이었던 곳 일부에는 태양광판넬이 빼곡히 설치되어 있다. 지금은 천일염을 생산하는 것 보다는 전기를 판매하는 것이 토지의 효율성이 더 높은가 보다. 완만한 오르막을 오른다. 좌측으로는 논밭과 야산 너머로 망일산이 계속 중심을 잡고 있다. 마을 집들이 듬성 듬성 보이는 길을 따른다. 어느 집앞에 병꽃나무에 꽃이 활짜 피었다. 하얀색도 있고 붉은 색과 분홍색도 있다. 삼색병꽃나무다. 처음에는 하얀색으로 피었다가 분홍색이 되고 마지막엔 붉은 색으로 변한다. 관상용으로 알맞다.
이 지역은 간석지가 발달되어 있지만 간척사업이 추진되지 않아 대규모의 농경지는 보이지 않는다. 전형적인 농촌지역을 보며 걷고 있는 것이다. 성판득 선배님이 앞서 가고 있다. 금방 동행하며 걷는다. 앵두같은 열매가 붙어 있는 나무가 보이는데 성 선배님은 보리수 열매라고 한다. 그러고보니 작게 생긴 붉은 열매 껍질 위에는 아주 작은 하얀 점들이 맺혀있다. 이것이 보리수 열매의 특징이다. 곤포사일리지가 3단으로 쌓여 있는 곳에서 성 선배님과 함께 잠시 숨을 고른다. 6월 초순이다 보니 길가에 있는 텃밭에는 고추와 옥수수도 한창 줄기를 올리고 있다.
마을길은 계속 이어진다. 낮은 야산 사이로 길이 이어지면서 논 보다는 밭이 주로 보인다. 꽤 넓어 보이는 밭에 마늘이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 마늘 잎의 끝이 누렇게 변해 가고 있어서 수확시기가 가까워 졌음을 안다. 언덕배기에 있는 넓은 밭이 하얗게 보인다. 그곳은 양파를 수확하고 있는 중이다. 양파는 줄기가 스스로 쓰러지는 도복을 시작하면서 수확 시기를 알려주니 참으로 고마운 작물이다. 지금은 양파와 마늘의 결실에 기쁨을 누릴 때다. 몇 번의 언덕을 넘으며 마을 길을 계속 가다보면 환성3리마을회관을 만나고 그 앞에 지붕까지 붉은 건물 옆으로 큼직한 소나무 한 그루가 눈길을 끈다. 마을을 굽어보고 있는 모습이 자못 수호신 같다. 마을 이정표에는 노룡곶이라는 글씨가 써 있다. 가로림만 내에서도 이 부근에 바다 쪽으로 돌출되어 뻗어나간 땅이 있는가 보다. 길은 진충사 방향으로 우측으로 꺽어 나간다.
바닷가가 가까이 있는데 해안가를 걷지 않고 마을 길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 제방길이 위험하거나 길이 없어서 우회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어느 송전탑이 보이는 곳에서 길은 좌측으로 살짝 튼다. 그러면서 선두 일행분들이 숲 속에서 간식을 들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조민행 선배님이 붉은 술을 한잔 주신다. 맛이 기막하게 혀 끝을 스친다. 소주를 믹서해서 담은 복분자 술이다. 류경우 선배님이 비법을 담아 특별하게 담은 술이라고 한다. 그래서 한잔을 더 받는다. 날씨가 다소 더운 탓에 휴식 시간이 좀 길어지지만 오늘은 색다른 주제로 진지하다. 해파랑길 추진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흥미진진하기 때문이다.
다시 길을 나선다. 잠시 숲 길을 걷는다. 이런 길만 걷는다면 무한한 행복감이 느껴질 것이다. 어느 주택가 너머로 가로림만이 조금 보인다. 집 앞으로 다가간다. 가로림만은 처음보았던 모습하고는 약간 달라졌다. 웅도는 잘 안보이고 중리포구쪽에 있는 저섬이 가까이 있는 듯 하고 바다 보다는 땅이 훨씬 더 많이 보인다. 마당에 예쁜 분홍꽃들이 군락으로 피어 있다. 낮달맞이꽃이다. 태양을 좋아해서 낮에 꽃이 핀다. 조금전에 길가에서 보았던 노란색의 달맞이꽃은 저녁에 꽃이 핀다. 지금이 개망초꽃과 함께 달맞이꽃의 세상이다. 그러나 그에 질세라 길가에는 아직도 금계국이 바람따라 흔들리며 인사를 하고 있으니 꽃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길가에는 꽃들이 화려하게 피어서 벌나비를 꼬드기고 있지만 꽃 보다는 밤송이같이 생긴 녹색의 작은 묘목이 눈에 띈다. 그래서 작업중인 어르신에게 물어보니 명칭이 생각나지 않지만 빗자루 재료라고 한다. 그게 무엇일까. 나중에 이것저것 찾아보니 어린 댑싸리였다. 작은 길따라 돌아가니 진충사가 3.5Km 남았다는 안내판이 보인다. 다소 커다란 농경지가 나타난다. 트랙터가 다닐 수 있는 정도의 길을 따른다. 얼마전까지 흙색으로 치장했던 들판과 산은 온통 신록으로 변했다. 그걸 바라보는 눈은 호강중이고 마음마저 차분해진다. 금방 폭염으로 힘들겠지만 지금은 마냥 좋을 뿐이다. 어느 산자락에 걸쳐있는 집 앞을 지나는데 마당에 높게 자란 은행나무가 압권이다. 보호수라고 하면 팽나무나 느티나무 같은 것이 자주 보이는 듯 하지만 전국에서 보호수로 지정된 오래된 나무는 은행나무가 가장 많다. 여기의 은행나무도 병들지 않고 태풍에도 꺽이지 않는다면 보호수로 지정될 날도 있을 것이지만 일단 가을에는 노란 단풍이 멋드러질 것으로 생각한다.
논가에 설치된 안내판을 보니 정확히 이번 코스의 중간 지점에 왔다. 시점과 종점이 6.5Km 로서 동일하다. 그리고 이번 코스에는 안내판이 자주 보인다. 지난 코스까지는 어쩌다 보는 정도였는데 이번에는 길이 꺽이는 곳마다 영락없이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무엇이 변한 것일까. 서산시라는 지자체는 동일하니까 면사무소 담당자 차이일까. 아뭏든 안내판 설치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낄수 없다. 시골길은 계속 이어진다. 나무줄기에 오디가 주렁주렁 달렸고 작고 검은 열매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몇개 따서 먹을만도 하지만 시간의 제약이 있어서 그냥 스쳐간다. 논과 산자락 경계 지역에는 하얀 꽃나무들이 길게 이어져 있다. 하얀 딱총나무꽃이 빼곡하다. 그 아래에는 노랗고 하얀 인동꽃이 수줍음을 멋금고 살짝 얼굴을 내미는 모습이 너무 청순하다.
고개를 넘으니 다시 농촌길은 변함이 없다. 이런 시골길을 성판득 선배님과 함께 후미에서 걷는다. 길가 옆으로 노란 작물이 조금 심어져 있다. 선배님은 금새 보리라고 알려준다. 주택가 앞 화단에 핀 분홍색을 보고는 백합이라고도 안내하고 나무가지에 붉은 열매가 듬성 달린 것을 보고는 앵두라고 하고 텃밭에서 보이는 작은 딸기 비슷한 것을 보고는 복분자로 알려준다. 꽃과 열매에 대해 선배님은 백과사전이다. 고개길을 넘어갈 때 길가 옆으로 자라고 있는 작물을 보고는 단번에 돼지감자라고 한다. 모르는 것이 너무 많은 내 탓도 있겠지만 선배님은 시골길 주변에서 모르는 것이 무엇일까. 고개넘어 내려가면 진충사가 기다리고 있다. 일행들은 주차장 한쪽 나무 그늘 아래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 홍살문이 있고 계단을 올라 들어가면 충무공 정충신 장군을 모신 사당이 있다. 세부적인 사항은 지면상 여기서는 제외한다.
길은 계속 농촌길을 따른다. 특별한 것은 없지만 길가에는 다양한 꽃들이 계속 피어나고 있다. 까치수염꽃이 있고 밤나무꽃도 향기를 뿜어내고 그리고 초롱꽃, 접시꽃, 석류꽃, 참싸리꽃 등도 반갑다고 인사한다. 대요리로 들어서면 다시한번 가로림만을 만나는데 바닷가에 암벽이 있는 곳이다. 제방에 서면 갯벌 너머로 하루종일 따라다니는 망일산도 보인다. 갯벌 위가 붉게 타는 것은 염생식물인 칠면초가 광범위하게 자리잡고 있는 흔적으로 보인다. 제방을 지나 도로를 계속 따라가면 78코스 안내판이 서 있는 도성3리마을회관이다. 멀리까지 왔는데 트레킹 거리가 짧은 관계로 귀경 시간상 여유가 있어서 막 팀장은 인근에 있는 안견기념관을 방문한다. ^(^
첫댓글 수고롭게 쓰신 글을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매번 서해랑길을 진행하지만 마무리는 역시 설송님이 잘 해주십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