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IAS of HOMEROS
Ⅰ역병 |아킬레우스의 분노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아카이오이족에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통을 안겨주었으며 숱한 영웅들의 굳센 혼백을 하데스에게 보내고 그들 자신은 개들과 온갖 새들의 먹이가 되게 한 그 잔혹한 분노를! 인간들의 왕인 아트레우스의 아들(아가멤논으로 트로이 전쟁 그리스군 총사령관)과 고귀한 아킬레우스가 처음에 서로 다투고 갈라선 그날부터 이렇듯 제우스의 뜻은 이루어졌도다.
여러 신들 중에 누가 이 두 사람을 서로 싸우고 다투게 했던가? 레토와 제우스의 아들이었다, 그가 왕(아가멤논)에게 노하여 진중에 무서운 역병을 보내니 백성들이 잇달아 쓰러진 것이다. 그 까닭은 아트레우스의 아들이 아폴론(제우스의 아들)의 사제 크뤼세스를 모욕했기 때문이다. 사제는 자기 딸을 구하려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몸값을 가지고, 또 손에는 멀리 쏘는 아폴론의 화환을 감아 맨 황금 홀(笏)을 들고 아카이오이족의 날랜 함선들을 찾아가 모든 아카이오이족 특히 백성들의 통솔자인 아트레우스의 두 아들에게 간청했다.
아트레우스의 아들 아가멤논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사제를 난폭하게 내쫓으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대의 딸은 돌려주지 않겠소. 그러기 전에 그녀는 베틀 앞을 오락가락하고 잠 시중을 들면서 제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아르고스의 내 집에서 노파가 될 것이오.
아폴론이 노인의 기도를 듣고 마음속으로 노하여 활과 양쪽에 뚜껑이 닫힌 화살 통을 어깨에 메고 올림포스의 꼭대기에서 달려 내려갔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성난 어깨 위에서는 화살들이 요란하게 울렸다. 그가 다가가는 모습은 마치 밤이 다가오는 것과도 같았다.
아흐레 동안 진중에 신의 화살들이 날아들었다. 그러나 열흘째 되는 날 아킬레우스가 백성들을 회의장으로 불렀다. 희 팔의 여신 헤라(크로노스의 딸로 제우스의 아내이자 누이)가 그의 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들게 했으니 그녀는 다나오스(그리스인들을 총칭) 백성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그들이 염려스러웠던 것이다.
아킬레우스가 일어나 그들 사이에서 말했다. 아트레우스의 아들이여! 이렇듯 전쟁과 역병이 동시에 아카이오이족을 제압한다면 설혹 죽음은 면하더라도 우리는 재앙에 쫓겨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소이다. 하나 일단 예언자나 사제나 또는 해몽가에게 물어보도록 합시다.
아폴론이 노여워하시는 까닭이 무엇인지, 서약 때문인지 아니면 헤카톰베 때문인지 알려줄 것이오.
신이 노여워하시는 까닭은서약이나 헤커톰베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사제 때문이오. 아가멤논이 그를 모욕하여 그의 딸을 돌려주지 않고 몸값도 받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란 말이오.
눈매 고운 그 소녀를 몸값도 받지 않고 그냥 사랑하는 아버지한테 돌려주고 신성한 헤카톰베를 크뤼세로 가져간다면 그때는 신께서 노여움을 푸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나, 그전에는 다나오스 백성들을 수치스러운 파멸에서 구해주지 않을 것이오.
아가멤논이 마음이 언짢아서 일어섰다. 그의 심장은 노여움으로 가득 차 검게 물들고 그의 두 눈은 번쩍이는 불꽃과도 같았다.
멀리 쏘는 신께서 고통을 내린 까닭은 내가 오히려 크뤼세이스 처녀를 내 집에 붙들어두고 싶어서 그녀의 값진 몸값을 받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이오. 아닌게 아니라 결혼한 아내 클뤼타임네스트라보다 나는 그녀를 더 좋아하오. 그녀는 용모나 몸매가 그리고 재치와 솜씨가 내 아내보다 조금도 못하지 않소.
그를 노려보며 준족 아켈레우스가 말했다. 오오, 그대 파렴치한 자여, 그대 교활한 자여! 이래서야 어찌 아카이오이족 중 어느 누가 그대의 명령에 기꺼운 마음으로 심부름을 가거나 적군과 힘껏 싸울 수 있겠소?
아가멤논이 대답했다. 그대 생각이 정 그렇다면 제발 도 굳이 나를 위하여 여기 머물러 달라 간청하지 않겠소.
펠레우스의 아들(아킬레우스)은 메노이티오스의 아들과 전우들을 데리고 자신의 막사들과 균형 잡힌 함선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한편 아트레우스(아가멤돈의 아버지)의 아들은 날랜 배 한척을 바다 위에 띄우고는 뱃사람 스무 명을 뽑아 신에게 바칠 헤카톰베를 싣고 볼이 예쁜 크리쉐이스도 데려다 태웠다. 지략이 뛰어난 오뒷세우스가 지휘자로 그들과 동행했다.
그러나 아가멤논은 앞서 아킬레우스를 위협한 싸움을 그만두려 하지 않고, 둘 다 자신의 전령이자 날렵한 시종인 탈튀비오스와 에우리바테스에게 말했다. 너희는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막사로 가서 볼이 예쁜 브리세이스의 손을 잡고 이리 끌고 오너라. 만일 그가 내주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내가 몸소 가리라. 그에게는 그것이 더욱 쓰라릴 것이다.
잘 왔네, 전령들이여. 제우스와 인간들의 사자들이여! 가까이 오게나. 내게 잘못을 저지를 것은 그대들이 아니라 브리세이스(브리세우스의 딸)라는 소녀 때문에 그대들을 보낸 아가멤논이지. 자, 제우스의 후손인 파트로클로스여! 소녀를 데리고 나와 이들에게 내 주게나. 그러나 훗날 수치스러운 파멸에서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나를 필요로 할 때 이 두 사람이 축복받은 신들과 필멸의 인간들 앞에서, 그리고 저 무정한 왕 앞에서 내 증인이 되도록 하게나.
오뒷세우스는 신성한 헤카톰베를 싣고 크뤼세에 도착했다. 수심이 매우 깊은 포구에 들어서자, 그들은 돛을 감아 검은 배 안에 넣어두고 부리나케 앞 밧줄을 늦추어 돛대를 받침대 위에 뉘고는 노를 저어 선창으로 나아갔다. 이윽고 선창에 닿자 돌 닻을 여러개 던지고, 고물 밧줄을 뭍에다 맸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파도가 부서지는 바닷가에 내려 멀리 쏘는 아폴론에게 바칠 헤카톰메를 부렸고, 크뤼세이스도 바다를 여행하는 배에서 내렸다. 그러자 지략이 뛰어난 오뒷세우스가 그녀를 제단으로 데려가 사랑하는 아버지의 품에 안겨주며 말했다. 크뤼세우스여! 인간들의 왕 아가멤논이 나를 보내, 그대에게 딸을 데려다주고 포이보스에게 다가오는 백성들의 이름으로 신성한 헤카톰베를 바치게 했소이다. 이는 다 아르고스인들에게 수많은 탄식과 슬픔을 안겨주신 왕(아폴론)의 마음을 달래기 위함이오.
크뤼세스가 두 손을 들고 그들을 위하여 큰 소리로 기도했다. 크뤼세와 신성한 킬라를 지켜주시고 테네도스를 강력히 다스리시는 은궁의 신이시여! 내 기도를 들어주소서. 전에 그대는 내 기도를 들어주시어, 내 명예를 높여주시려고 아카이오이족 백성들을 심히 치셨나이다. 그와 같이 오늘도 내 소원을 이루어주시어 다나오스 백성들을 수치스러운 파멸에서 구해주소서. 이렇게 기도하자 포이보스 아폴론이 그의 기도를 들었다.
그들이 돛대를 세우고 흰 돛을 달아 올리자 돛은 가슴에 바람을 가뜩 안았고, 배가 나아갈 때 용골 주위에서 검푸른 파도가 요란한 소리를 냈다.
그러나 제우스의 후손인 펠레우스의 아들 준족 아킬레우스는 빨리 달리는 함선들 옆에 앉아 여전히 분노하고 있었다.
테티스(아킬레우스의 어머니)도 아들의 부탁을 잊지 않고 바다 물결 속에서 떠올라, 아침 일찍 거대한 하늘과 올림포스로 올라갔다. ~~~크로노스의 아들 제우스 왕에게 간청했다. 아버지 제우스여! 내 일찍이 여러 신들 중에서 말이나 행동으로 그대를 도운 적이 있다면 내 소원을 이루어 주시어 내 아들의 명예를 높여주소서.
구름을 모으는 제우스가 그녀에게 크게 역정을 내며 말했다. 헤라(제우스의 누이이자 아내)가 모욕적인 말로 나를 노엽게 할 때마다 나를 그녀와 다투게 할 생각이라면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오. 그렇잖아도 그녀는 불사신들이 모인 자리에서 늘 나를 비난하고 전투에서 내가 트로이아인들만 편든다고 말하고 있소. 그러니 그대는 헤라가 눈치 채지 않게 어서 떠나시오.
제우스는 자기 궁전으로 돌아갔다. ~~~그는 자신의 옥좌에 앉았다. 그러나 헤라는 바다 노인의 딸 은족의 테티스(아킬레우스의 어머니)가 그와 밀담하는 것을 보아서 알고 있는 터라, 크로노스의 아들 제우스에게 당장 모욕적인 말을 건넸다. 그대, 교활한 이여! 어느 신이 그대와 밀담을 나누었나요? 그대는 무슨 결정을 내릴 때면 언제나 내 곁을 떠나 몰래 생각하기를 좋아했고, 자기 계획을 자진해서 나에게 말해준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Ⅱ 아가멤논의 꿈 | 함선 목록
제우스는 어떻게 하면 아킬레우스의 명예를 높여주고 수많은 아카이오이족을 그들의 함선들 옆에서 도륙할 수 있을지 마음속으로 궁리하느라 단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아트레우스의 아들 아가멤논에게 거짓 꿈을 보내는 것이 역시 상책인 듯했다.
거짓 꿈아! 서둘러 아카이오이족(트로이아 전쟁때 가장 강력했던 그리스의 부족)의 날랜 함선들이 있는 곳으로 가거라.
잠에서 깨어난 아가멤논의 귓전에 아직도 신의 음성이 쟁쟁했다.
친구들이여! 내 말을 들으시오. 신성한 밤에 내가 잠을 자고 있을 때 꿈의 신이 나를 찾아왔소.~~~자고 있군요,
그대를 크게 염려하고 동종하시는 제우스의 사자요. 그분께서 장발의 아카이오이족을 당장 무장시키라는 분부를 내리셨소. 이제야말로 그대가 트로이아(소아시아의 서북지방, 수도는 일리오스)인들의 길 넓은 도시를 빼앗을 때가 되었음이오. 그 까닭은 올림포스의 궁전에 사는 여러 불사신들이 헤라의 간청에 모두 마음을 바꾸어 마침내 의견의 일치를 보았고, 그래서 트로이아인들의 머리 위에 제우스의 뜻에 따라 재앙이 걸려 있기 때문이오.
오뒷세우스가 홀을 잡고 일어섰고..~~~ 고생이 많다 보면 누구나 낙심이 되어 고향에 돌아가고도 싶겠지요. 겨울 폭풍과 거친 파도에 발이 묶인채 아내와 떨어져 노 젓는 자리가 많은 배 안에 한 달 동안만 갇혀 있어도 누구나 안달이 나는 법이지요. 하물며 우리는 아홉 해가 바뀔 동안 여기에 머물렀으니, 아카이오이족이 부리처럼 흰 그들의 함선들 옆에서 안달하는 것도 무리가 이니오. 그러나 이토록 오래 기다리고 빈손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치욕이라 하지 않을 수 없소. 그러니 친구들이여!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렸다가 칼카스의 예언이 진실인지 아닌지 봅시다.
오뒷세우스는 기상이 늠름한 케펠레인 들을 지휘했다. 이들은 이타케와 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네리톤을 차지한 자들이거나, 크로퀼레이아와 울퉁불퉁한 아이길립스에 사는 자들이거나 자퀸토스를 차지한 자들과 사모스 부근에 사는 자들이거나, 본토를 차지한 자들과 섬 건너편 해안에 사는 자들이었다.
다음으로 펠라스기콘 아르고스에 사는 모든 주민들과. 알로스와 알로페와 트라키스에 사는 자들과, 프티아와 미인의 고장 헬라스를 차지한 자들, 이들은 뮈르미도네스족 또는 헬라스인들 또는 아카이오이족이라 불리는데, 이들의 함선 쉰 척은 아킬레우스가 지휘했다. 그러나 이들은 역겨운 소음의 전투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으니. 이들은 전투 대열로 인솔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탓이다. 준족의 고귀한 아킬레우스가 머릿결 고운 소녀 브리세이스 때문에 화가 나서 함선들 사이에 한가로이 누워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악전고투 끝에 이 소녀를 뤼르넷소스에서 약탈해왔는데 이 전투에서 그는 뤼르넷소스와 테베의 성벽을 파괴하고 셀리피오스의 아들인 에우에노스 왕의 창 잘 쓰는 두 아들 뮈네스와 에피스트로포스를 쓰러뜨렸던 것이다. 그는 그녀 때문에 상심하여 누워 있지만 머지않아 다시 일어서야 할 운명이었다.
Ⅲ 맹약 | 성벽 위에서의 관전 | 파리스와 메넬라오스의 결투
그리하여 지휘자들이 저마다 자기 백성들을 정렬했을 때 트로이아인들은 새 떼처럼 소리 지르고 요란하게 나아갔다. 그 광경은 마치 두루미들이 겨울과 큰 비를 피해 소리 지르며 오케아노스의 흐름을 향해 날아가서는 퓌그마이오족에게 살육과 죽음의 운명을 안겨주려고 이른 아침부터 무자비한 싸움을 시작하며 하늘 밑에서 시끄럽게 소리 지를 때와도 같았다.
한편 아카이오이족은 노여움을 몰아쉬며 말없이 나아갔고 마음속으로 서로 돕기를 열망하고 있었다.
만약 알렉산드로(일명 피리스로 피리아모스의 아들)가 메넬라오스를 죽이거든 그가 헬레네와 그녀의 모든 보물을 차지하게 하소서. 우리는 바다를 여행하는 함선들을 타고 떠나겠나이다. 그러나 만약 금발의 메넬라오스가 알렉산드로를 죽이거든 그때는 트로이아인들이 헬레네와 그녀의 모든 보물을 돌려주고 후세에까지 길이 남을 적절한 보상금을 이르고스인들에게 지불하게 하소서. 그러나 알렉산드로가 쓰러졌는데도 프리아모스와 그의 아들들이 보상금 지불을 거절한다면, 나는 죗값을 받아내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해서 싸울 것이며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이곳에 머물겠나이다.
그들 사이에서 다르다노스의 후예인 프리아모스(트로이아인들의 왕)가 이렇게 말했다. 트로이아인들과 훌륭한 정강이받이를 댄 아카이오이족이여! 내 말을 들으시오. 나는 바람 부는 일리오스로 돌아가겠소. 사랑하는 아들이 아레스의 사랑을 받는 메넬라오스와 싸우는 것을 내 눈으로 차마 보고 있을 수 없소.
두 사람이 각자 자기편 무리들이 있는 곳에서 무장한 뒤 무섭게 노려보며 트로이아인들과 아카이오이족의 한가운데로 걸어가니, 말을 길들이는 트로이아인들과 훌륭한 정강받이를 댄 아카이오이족은 그들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Ⅳ 맹약의 위반 | 아가멤논의 열병
일어서라, 말을 길들이는 트로이아인들이여! 싸움에서 아르고스인들에게 물러서지 마라. 그들의 살갗이 돌이나 무쇠로 되어 있어, 얻어맞아도 살을 베는 청동이 도로 튕겨 나온다더냐! 게다가 머릿결 고운 테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는 싸우지도 않고 함선들 사이에서 마음 저미는 분노를 되새기고 있잖은가!
Ⅴ 디오메테스의 무훈
에우아이몬의 아들 에우뤼필로스는 휩세노루(트로이아인)를 죽였다. 휩세노루는 스카만드로스 강의 사제로 임명되어 백성들 사이에서 신처럼 존경받던 용맹무쌍한 돌로피온의 아들인데, 에우아이몬의 빼어난 아들 에우퓔로스가 앞에서 도망치던 그를 뒤쫓아가 그의 어깨를 칼로 내리쳐 그 억센 팔을 잘라버렸다. 그래서 팔은 피투성이가 되어 들판 위에 떨어졌고, 두 눈은 검은 죽음과 강력한 운명이 내리 덮쳤다. 격렬한 전투에서 그들이 분투하는 모습은 이러했다.
Ⅵ 헥토르와 안드로마케의 만남
그리하여 트로이아인들과 아카이오이족의 무시무시한 혼전은 간섭하는 자 없이 진행되었다. 그들이 청동 날이 박힌 창을 서로 겨누는 가운데, 전투는 시모에이스와 크산토스의 흐름 사이에서 들판을 가로질러 때로는 이리로 때로는 저리로 내달았다.
이때 힙폴로코스의 아들 글라우코스와 뒤테우스의 아들이 서로 싸우기를 열망하여 양군의 한가운데로 달려나갔다. 그들이 마주 달려 서로 거리가 가까워지자 목청 좋은 디오메데스가 먼저 말을 걸었다. 가장 뛰어난 자여! 필멸의 인간들 중에 그대는 대체 뉘시오? 남자의 영광을 높여주는 싸움터에서 내 일찍이 그대를 본 적이 없소. 그런데 지금 그림자도 긴 내 창을 기다리는 것을 보니 대담성에서는 그대가 모든 이들을 크게 능가하는 듯하구려. 하지만 내 힘에 맞서는 자식들의 부모는 모두 불행하도다. 만일 그대가 하늘에서 내려온 불사신이라면 나는 하늘의 신들과는 싸우고 싶지 않소. ~~~ 하지만 그대가 대지의 열매를 먹는 인간이라면 가까이 와서 어서 파멸의 올가미 속으로 들어가도록 하시오. 그에게 힙폴로코스의 영광스러운 아들이 대답했다. 튀테우스의 기상이 늠름한 아들이여! 그대는 왜 내 가문을 묻는가? 인간들의 가문이란 나뭇잎과도 같은 것을 잎들도 어떤 것은 바람에 날려 땅 위에 흩어지지만 봄이 와서 숲 속에 새 싹이 돋아나면 또 다른 잎들이 자라나듯, 인간들의 가문도 그와 같아서 어떤 것은 자라나고 어떤 것은 시드는 법이오. 하나 그대가 원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우리 가문을 그대도 잘 알도록 말하겠소. 말을 먹이는 아르고스의 한쪽 구석에 에퓌라라는 도시가 있는데 그곳에 인간들 중에서 가장 꾀 많은 시쉬포스(그리스인들의 시조라는 헬렌의 아들 아이올로스와 에나레테의 아들로, 메로페의 남편이자 글라우코스의 아버지)가 살았소. 아이올로스의 시쉬포스 말이오. ~~~~~힙폴로코스께서는 나를 낳으셨으니, 나는 곧 그분에게서 태어났음을 밝히는 바요. 그리고 그분께서는 나를 트로이아로 보내시며 늘 제일인자가 되고 남보다 뛰어난 인물이 되어 에퓌라와 넓은 뤼키아 땅에서 가장 훌륭한 분들인 선조들의 가문을 욕되게 하지 말라고 신신 당부하셨소. ~~이렇게 말하자 목청 좋은 디오메데스가 기뻐했다.~~그러니 우리는 무리들 사이에서라도 창을 서로 피하기로 합시다.(p195)
그러니 자, 우리 서로 무구들을 바꾸어 우리가 부조 때부터 친구임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음을 저들도 알게 해줍시다! 이렇게 말하고 두 사람은 전차에서 뛰어내려 서로 손을 잡고 우정을 다짐했다. 그런데 이때 크로노스의 아들 제우스가 클라우코스의 분별력을 빼앗아버렸다. 그래서 그는 황소 백 마리 값어치가 있는 자신의 황금 무구들을 황소 아홉 마리 값어치밖에 없는 튀테우스의 아들 디오메데스의 청동 무구들과 맞바꾸고 말았다.(p195) 그들은 모두 통곡하며 두 손을 들어 아테나에게 기도했고, 볼이 예쁜 테아노는 옷을 받아 머릿결 고운 아테나의 무릎 위에 올려놓고 위대한 제우스의 딸에게 기도하고 빌었다. ㅈ노경스러운 아테나여, 도시의 수호자여, 여신들 중에서도 고귀하신 분이여! 제발 디오메데스의 창을 꺽어주시고 그 자신은 스카이아이 문 앞에서 얼굴을 처박고 쓰러지게 해주소서.
제우스여, 그리고 다른 신들이여! 여기 내 아들도 나와 똑같이 트로이아인들 중에서 뛰어나고, 또 나처럼 힘이 세어 일리오스를 강력히 다스리게 해주소서.
Ⅶ 헥토르와 아이아스의 결투 | 시신들의 매장
영광스러운 헥토로가 성문 밖으로 달려 나가자 아우인 알렉산드로도 그를 따랐다.
그대는 전사들의 전쟁을 어떻게 멈출 생각이오? 제우스의 아들 아폴론 왕이 그녀에게 대답했다. 말을 길들이는 헥토르의 강력한 힘을 분기시키도록 합시다. 그러면 그는 다나오스 백성들 가운데 한 사람과 일대일로 사생ㄱ려단의 대결을 하자고 도전할 것이고 그러면 청동 정강이받이를 댄 아카이오이족도 화가 나서 한 사람을 분기시켜 고귀한 헥토르와 일대일로 싸우게 할 것이오. 이렇게 말하자 빛나는 눈의 여신 아테나도 마다하지 않았다.
헥토르가 양편 군대 사이에서 말했다. 트로이아인들과 훌륭한 정강받이를 댄 아카이오족이여! 내 가슴속 마음이 명령하는 바를 말하고자 하니 그대들은 내 말을 들으시오. 높은 자리에 앉아 계시는 크로노스의 아드님께서는 우리의 맹약을 이루어주시지 않았으니, 그분께서는 우리 양군에게 사악한 생각을 품고 그대들의 훌륭한 성탑의 트로이알를 함락하든지 아니면 바다를 여행하는 함선들 옆에서 그대들 자신이 쓰러질 때까지 끝장을 보기로 마음을 정하셨음이 분명하오. 그러나 그대들 속에는 전 아카이오이족 장수들이 모여 있소. 그러니 그중에서 누구든 나와 싸우기를 원하는 자가 있으면 기꺼이 나와 그대들 ㅈ너부를 대표하여 이 고귀한 헥토르와 싸우게 하시오. 그리고 내 한 가지만 말하겠으니, 제우스께서 우리의 증인이 되게 하시오. (p212)
이렇게 말하자 그들은 모두 ㅈ마자코 있었으니, 거절하자니 부끄럽고 받아들이자니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윽고 메넬라오스가 일어나 그들 사이에서 말했다. 그는 그들을 준엄하게 꾸짖었고 마음속으로 크게 개탄했다. 아아, 허풍선이들이여! 그대들은 아카이오이족 계집들이지 아카이오이족 사내들이 아니오. 지금 디나오스 백성들 중에 아무도 헥토르와 맞서지 않는다면 이는 크나큰 치욕이 될 것이오. 그대들은 모두 간담이서늘해져서 아무런 명성도 없이 멍청하게 여기 앉아 있으니, 앉은 그대로 모두 물과 흙이 되어버릴지어다. 그와 맞서기 위해 내가 몸소 무장할 것이오. 승리의 밧줄은 저 위의 불사신들께서 쥐고 계시니까. 그는 이렇게 말하고 아름다운 무구들을 입었다.
그러나 메넬라오스여! 이때 만약 아카이오이족의 왕들이 벌떡 일어나 그대를 제지하지 않았던들, 헥토르의 손에서 그대는 인생의 종말을 맞았으리라. 그가 그대보다 훨씬 강하니까. 그리고 넓은 땅을 다스리는 아트레우스의 아들 아가멤논이 손수 메넬라오스의 오른손을 잡고 큰소리로 말했다. 제우스께서 양욱하신 메넬라오스여! 너는 제정신이 아니구나. 이렇듯 무모한 짓을 해선 안 되지. 괴롭더라도 꾹 참고 너보다 강한 전사와 단순한 경쟁심에서 싸우려 들지 마라.
노인이 꾸짖자 모두 아홉 명이 일어섰다. 맨 먼저 인간들 왕 아가멤논이 일어섰고 다음으로 열화 같은 투지로 무장한 두 아이아스가 일어섰다. 다음으로 이도메네우스와 이도메네우스의 전우로 남자를 죽이는 에뉘알리오스 못지 않은 메리오네스가 일어섰다. ~~~고귀한 오뒷세우스도 일어섰다.(p215)
아버지 제우스여! 아이아스나 튀테우스의 아들이 뽑히게 하소서.
아이아스는 번쩍이는 청동으로 무장했다. 그가 무구들을 모두 몸에 입고 앞으로 달려나가니, 마치 크로노스의 아들이 마음을 점먹는 심한 불홧고에서 서로 싸우도록 부추겨놓은 전사들을 향해 거대한 아레스가 싸움터로 걸어 들어가는 것 같았다.
트로이아인들은 두려워 사지를 부들부들 떨었고 헥토르의 심장도 가슴속에서 뛰기 시작했다.
Ⅷ 전투의 중단
신성한 날이 점점 자라나는 아침나절에는 양군의 날아다니는 무기들이 서로 상대방을 맞혀 백성들이 잇달아 쓰러졌다. 그러나 해가 중천에 이르자 아버지가 황금 저울을 펼쳐들고 그 안에 사람을 길게 뉘는 죽음의 운명 두 개를 올려놓으니, 하나는 말을 길들이는 트로아인들의 것이고 하나는 청동 갑옷을 입은 아카이오이족의 것이었다. 그가 저울대 중간을 잡고 저울질하자, 아카이오이족의 운명의 날이 기울면서 아카이오이족의 죽음의 운명은 풍요한 대지 위로 내려앉고, 트로이아인들의 그것은 넓은 하늘로 올라갔다. 그래서 그가 이테 산에서 크게 천둥 치며 아카이오이족 밗어들 사이에 불타는 섬광을 보내자 그들은 이것을 보고 놀라 모두 두려움에 파랗게 질렸다.
Ⅸ 아킬레우스에게 사절단을 보내다 | 간청
Ⅹ 들론의 정탐
아카이오이족의 다른 장수들은 모두 부드러운 잠에 제압되어 그들의 함선들 옆에서 밤새도록 잠을 잤지만. 오로지 백성들의 목자인 아트레우스의 아들 아가멤논은 단잠을 이룰 수 없었으니 마음속으로 여러 가지 일을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마음에는 전사들 중에서 맨 먼저 넬레우스의 아들 네스트로를 찾아가 전 다나오스 백성들을 재앙에서 구할 나무랄 데 없는 계획을 그와 더불어 강구해보는 것이 그나마 상책인 듯했다. 그래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슴에 윗옷을 두루고 번쩍이는 발밑에 아름다운 샌들을 매어 신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메넬라오스 역시 떨고 있었으니 자기로 인해 광포한 전쟁을 각오하고 습한 바다를 수없이 건너 트로이아에 온 아르고스인들이 무슨 변을 당하지 않을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먼저 얼룩덜룩한 표범가죽으로 넓은 등을 가린 다음 청동 투구를 집어 머리에 쓰고 억센 손에 창을 들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아르고스인들의 강력한 통치자이며 백성들에게 신처럼 존경받고 있는 형을 깨우러 갔다. 그는 배의 고물 옆에서 어깨에 아름다운 무구들을 걸친 형을 발견했고, 형은 그가 찾아온 것이 반가웠다. 목청 좋은 메넬라오스(아가멤논의 아우로 헬레네의 남편)가 먼저 말을 걸었다. 형님! 무슨 일로 무장을 하셨나요? 혹시 전우들 중에 누구를 내보내 트로이아인들을 정탐케 할 작정인가요?
네스트로는 막사와 검은 함선들 옆, 포근한 침상에 누워 있었고, 그의 곁에는 정교하게 만든 그의 무구인 방채와 두 자루의 창과 번쩍이는 투구가 놓여 있었다.(p290)
아킬레우스가 분노를 거두고 마음을 돌리기만 한다면 헥토르는 반드시 더 많은 고통에 시달릴 것이오.
오뒷세우스가 막사에서 나와 그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어찌하여 그대들은 신성한 밤에 함선들을 따라 진영을 거닐고 있소?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겼단 말이오?
참을성 많은 오뒷세우스가 그에게 대답했다. 튀테우스의 아들이여! 나를 과찬하지도 빈나하지도 마시오. 그대가 그런 말을 안 해도 아르고스인들은 잘 알고 있다오.
자, 떠납시다! 밤은 서둘러 지나가고 있고 새벽이 가까워졌소. 별들도 앞으로 나아갔고 밤은 벌써 삼분의 이가 넘게 지나고 삼분의 일만이 남았소.(p297)
그러나 헥토르도 당당한 트로이아인들을 자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트로이아인들의 지휘자들이자 보호자들인 장수들을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불러 모았다.
함선들 가까이 가서 저자들이 전과 다름없이 날랜 함선들을 지키고 있는지, 아니면 우리 손에 제압되어 벌써 저희들끼리 달아날 궁리를 하고 또 심한 피로에 녹초가 되어 밤에 파수보기를 원치 않는지 정탐해오는 것이오.
그가 다가오는 것을 알아차리고 네우스의 후손인 오뒷세우스가 디오메테스에게 말했다. 저것 보시오. 디오메테스! 누가 진영을 나서 이리로 오고 있소. ~~~그를 들판 쪽으로 더 나가게 우선 내버려둡시다! 그런 다음 갑자기 덤벼들어 눈 깜짝할 사이에 그를 사로잡읍시다.
반들반들 깍은 창의 끝이 그의 오른쪽 어깨 위로 날아가 땅에 꽃히자 들론이 혼비백산하여 부들부들 떨며 멈춰 섰다.
Ⅺ 아가멤논의 무훈
아트레우스의 아들은 고함을 지르며 아르고스인들에게 무장하도록 명령했고, 그 자신도 번쩍이는 청동을 입었다.
한편 트로이아인들은 들판의 높은 곳에 모여 위대한 헥토르, 마무랄 데 없는 폴뤼다마스, 트로이아 백성들에게서 신처럼 존경받는 아이네이아스 그리고 안테노르의 세 아들인 폴뤼보스, 고귀한 아케노르, 불사신과도 같은 젊은이 아카마스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헥토르는 ㄷ우근 방패를 들고 선두 대열 사이로 돌아다녔다.
Ⅻ 방벽을 둘러싸고 싸우다
막사에서 메노이티오스의 용감한 아들이 붓아당한 에우뤼퓔로스를 치료하는 동안에도 아르고스인들과 트로이아인들은 어우러져 싸우고 있었다.
헥토로가 아직 살아 있고 아킬레우스가 분노하고 또 프리아모스 왕의 도시가 파괴되지 않은 동안에는 아카이오이족의 큰 방벽도 굳건히 버텼다.
ⅫI 함선들을 둘러싸고 싸우다
제우스는 트로이아인들과 헥토르를 함선들로 인도한 다음 그들이 함선들 옆에서 쉴 새 없이 전역과 노고를 치르도록 내버려두고, 자신은 다시 번쩍이는 두 눈을 돌려 발을 모는 트라케인들과 접전에 능한 뮈시아인들과 말 젖을 먹는 당당한 힙페몰고이족과 인간들 중에서 가장 정직한 아비오이족의 나라들을 두루 내려다보았다.
이제 제우스는 트로이아 쪽으로는 더 이상 번쩍이는 눈을 돌리지 않았으니, 불사신들 중에 누구도 감히 가까이 다가가 트로이아인들이나 다나오스 백성들을 돕지 못하리라 믿은 것이다.
트로이아인들은 떼 지어 불길처럼 또는 태풍처럼 사기충천하여 아우성을 치고 고함을 지르며 프리아모스의 아들 헥토르를 따랐으니, 그들은 아카이오이족 함선들을 빼앗고 그 옆에서 적장들을 모조리 죽일 수 있으리라 믿은 것이다. 그러나 대지를 떠받치고 대지를 흔드는 포세이돈이 깊은 바다에서 나와 아르고스인들을 격려하고 있었으니 그 생김새와 지칠줄 모르는 목소리는 칼카스와 흡사했다.
뱃고물들 옆에서 양군의 근접전이 시작되었다. 마치 길에 먼지가 수북이 쌓인 날 요란한 바람을 타고 돌풍이 몰려와 구름 같은 먼지를 일으킬 때와 같이.
포세읻노은 젯빛 바다에서 몰래 나와 아르고스인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그들을 격려했으니. 그는 그들이 트로이아인들에게 쓰러지는 것이 안타까워 제우스에게 몹시 분개한 것이다. 이 두 신들은 혈통이 같고 부모도 같지만 제우스가 먼저 태어났고 아는 것도 더 많았다. 그래서 포세이돈은 공공연히 돕는 것을 피하고 사람의 모습으로 언제나 은밀히 진중에서 격려했다. 이 두 신들이 이렇듯 심한 불화로 만인에게 공통된 전쟁의 부술 수도 풀 수도 없는 밧줄을 잡고 양군의 머리 위에서 번갈아 끌어 당기니, 이 밧줄이 많은 사람들의 무릎을 풀었다.(P384)
XⅣ 제우스가 속임을 당하다
네스트로(포세이돈과 뒤로의 아들인 넬리우스의 아들)는 술을 마시면서도 이 함성을 놓치지 않고 듣고는 아스클레피오스(그리스의 명의)의 아들에게 물 흐르듯 거침없이 말했다. 생각해보시오, 고귀한 마카온이여! 이 일을 어찌하면 좋소? 건장한 젊은이들의 고함 소리가 함선들 옆에서 점점 커지고 있으니. 자, 그대는 머리를 곱게 땋은 헤카마테가 목욕물을 데워 말라붙은 피딱지를 말끔히 씻어줄 때까지 여기 그대로 앉아 반짝이는 포도주나 마시고 있으시오. 그동안 나는 급히 망대로 나가보겠소.
양군은 서로 죽이며 싸움을 계속했고, 그들이 칼과 창에 ㅉ리릴 때마다 그들의 살갖 위에서는 닳지 않은 청동이 요란하게 울렸다.
오뒷세우스여! 그대의 준엄한 질책이 내 폐부를 찔렀소. 하나 나는 아카이오이족 아들들에게 훌륭한 갑판이 덮인 함선들을 그대의 의사에 반하여 바다에 끌어내리라고 명령하지는 않겠소. 대신 그보다 나은 계략을 말해줄 사람이 있다면 나는 기꺼이 받아들이겠소.
황금 옥좌의 헤라는 올림포스의 꼭대기에서 두 눈으로 내려다보다가 남자의 영광을 높여주는 싸움터를 이리저리 분주하게 돌아다는 자기 친 오라비이자 시아주버님임을 금세 알아보고 마음이 흐믓 했다. 그리고 그녀는 제우스가 샘이 많은 이테 산 상상봉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그를 원망했다. 그래서 황소 눈의 ㅈ녹여스러운 헤라는 어떻게 하면 아이기스를 가진 제우스의 마음을 속일 수 있을까 궁리하기 시작했다. 그녀에게는 역시 자신을 곱게 치장한 다음 이테 산으로 가는 것이 상책인 듯했다. 그렇게 하면 그는 그녀의 몸을 치장하고 동침하기를 원할 것이고, 그러면 그의 눈썹과 영리한 마음에 달콤하고 부드러운 잠을 쏟을 수 있겠지 때문이다.(p411)
XV 아카이오이족이 함선들에서 다시 밀려나다
말뚝과 호를 건너 황급히 달아나던 트로이아이인들은 다나오스 백성들 손에 많은 사람들이 쓰러졌고 나머지는 걸음을 멈추고 전차 옆에 버티고 섰지만 파랗게 겁에 질려 있었다. 마침 이때 제우스가 이데 산 꼭대기 황금 옥좌의 헤라의 품에서 깨어났다.
그가 벌떡 일어나 트로이아인들과 아카이오이족을 내려다보니 트로이아인들은 쫓기고 아르고스인들은 뒤쫓는데 그들 속에는 포세이돈 왕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들판에 누운 헥토르가 보이는데, 그 주위에 전우들이 둘러앉고 근느 숨을 헐떡이며 정신없이 피를 토하고 있었다.
그를 보자 인간들과 신들의 아버지는 측은한 생각이 들어 무섭게 노려보며 헤라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헤라여, 그대 못 말리는 자여! 고귀한 헥토르의 전투를 제지하고 백성들을 패주케 한 것은 그대의 사악한 계교가 틀림없소.
여신 테티스가 내 무릎을 잡으며 도시의 파괴자 아킬레우스의 명예를 높여달라고 간청하던 날, 내가 처음에 약석하고 머리까지 끄덕여 다짐한대로 펠레우스의 아들의 소망을 이루어주기 전에는 말이오.
그는(제우스) 먼저 이리스를 향해 물 흐르듯 거침없이 말했다. 자, 날랜 이리스여! 어서 포세이돈 왕에게 가서 내 말을 한마디도 빠짐없이 전하되 거짓 사자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 그에게 전투와 전쟁에서 이제 그만 손을 떼고 신들의 종족에게로 가든지 신성한 바닷속으로 들어가라고 일러라. 만일 내 말에 복종하지 않고 그가 이를 무시하거든 마음속으로 곰곰이 잘 생각해보라고 일러라.
아아! 그가 강하기로서니 말투가 봅시 거만하구나. 명예에서 동등한 나를 의사에 반해 힘으로 억압하려 들다니! 우리는 레아가 낳아준 크로노스의 아들 삼형제로, 제우스와 나 자신에 이어 셋째가 하계의 백성을 다스리는 하데스요 그래서 모든 것이 삼분 되어 저마다 자기 몫을 차지했소. 우리가 제비를 흔들었을 때 내게는 잿빛 바다가 영원한 처소로 주어졌고, 하데스에게는 침침한 어둠이 주어졌으며, 제우스에게는 맑은 대기와 구름 속의 넓은 하늘이 주어졌소. 그러나 대지와 높은 올림포스는 여전히 우리 모두의 공유물이오. 따라서 나는 결코 제우스의 뜻에 따라 살아가지 않을 것이니, 그는 비록 강력하지만 몫으로 주어진 삼분의 일에 조용히 머물러야 할 것이오.
XVI 파트로클로스의 죽음
파트로클로스(아킬레우스의 죽마고우)는 백성들의 목자인 아킬레우스에게 다가가 눈물을 흘리니, 그 모습은 높은 벼랑 위에서 시커먼 물을 내리쏟는 검은 물의 샘과도 같았다.
튀테우스의 아들 강력한 디오메데스는 화살에 맞았고 이름난 장수 오뒷세우스와 아가멤논은 창에 찔렸으며 에우뤼필로스도 허벅지에 화살을 맞았소.
아이아스는 날아오는 무기에 밀려 더는 버티지 못했다. 제우스의 계략과 그를 향해 던져대는 당당한 트로이아인들이 그를 제압한 것이다. 아킬레우스는 막사들을 돌아다니며 전 뮈르미도네스족을 무구들로 무장하게 했다. 그들은 가슴에 말할 수 없이 투지가 넘처흐르는 날고기를 먹는 이리 떼와도 같이 꼭 그처럼 뮈르미도네스족의 지휘자들과 보호자들은 준족인 아이아코스의 손자의 용맹스러운 시종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용맹스러운 아킬레우스가 그들 가운데 서서 말들과 방패를 든 전사들을 격려했다.
파트로클로스는 트로이아인들에게 악의를 품고 다나오스 백성들을 힘껏 격려하며 추격을 계속했고, 트로이아인들은 뿔뿔이 흩어져 길이란 길은 모두 소음과 패주로 메웠다.
제우스의 지혜는 언제나 인간들의 지혜보다 강력한 법이어서 그는 용감한 자도 달아나게 하여 손쉽게 승리를 빼앗아버리는가 하면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워 싸우게 하거늘 이때도 제우스는 파트로클로스의 가슴에 용기를 불어넣은 것이다! (p489)
마치 동풍과 남풍이 서로 힘을 겨루며 산골짜기에서 울창한 숲을 뒤흔들고, 참나무들과 물푸레나무들과 껍질이 질긴 꽃층층나무들이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긴 가지들을 서로 부딪쳐 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듯, 꼭 그처럼 트로아이인들과 아카이오이족은 서로 덤벼들어 죽였고 어느 편도 파멸을 안겨주는 패주를 생각지 않았다.(p492)
헥토르는 기상이 늠름한 파트로클로스가 날카로운 창에 부상당해 도로 물러가는 것을 보자 대열을 헤치고 그에게 가까이 다가서 창으로 그의 아랫배를 찔러 청동으로 꿰뚫었다.
XVII 메넬라오스의 무훈
XVIII 무구(武具)제작
안틸로코스는 걸음 잰 사자로서 아킬레우스에게 갔다. 안틸로코스가 가서 보니 뿔이 우뚝한 자신의 함선들 앞에서 그는 방금 일어난 일들을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아아, 슬프도다! 어찌하여 또다시 장발의 아카이오이족이 들판을 가로질러 함선들로 허둥지둥 도망쳐오는 것일까?
그가 마음속으로 이런 일들을 곰곰이 생각하고 있을 때 당당한 네스트로의 아들이 그에게 다가가 뜨거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슬픈 소식을 전했다. 아아, 슬프도다! 현명한 펠레우스의 아들이여, 내 그대에게 몹시 슬픈 소식을 가져왔소. 결코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오. 파트로 클로스가 쓰러졌소. 그의 벌거벗은 시신을 둘러싸고 양군이 싸우며 그의 무구들은 투구를 번쩍이는 헥토르가 갖고 있소. 이렇게 말하자 슬픔의 먹구름이 아킬레우스를 덮어버렸다.
그는 두 손으로 검은 먼지를 움켜쥐더니 머리에 뿌려 고운 얼굴을 더렵혔고 검은 재가 그의 향기로운 옷에도 떨어졌다. 그리고 그 자신은 먼지 속에 큰 대자로 드러누워 제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아킬레우스가 무시무시하게 통곡하자 그의 존경스러운 어머니가 바닷속 깊은 곳 그녀의 늙은 아버지 곁에 앉아 있다 듣고 크게 비명을 지르니, 여신들, 즉 바닷속 깊숙한 곳에 있던 네레우스의 딸들이 모두 그녀 주위로 몰려왔다.
아킬레우스가 무서운 전투에서 오랫동안 쉰 뒤 다시 나타나자 모두 공포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XIX 아가멤논과 화해하는 아킬레우스
은족의 여신 테티스가 대답했다. 내 아들아, 그런 것이라면 마음속으로 염려마라! 내 그에게서 싸움터에서 죽은 전사자를 뜯어먹는 잔인한 파리 종족들을 쫓아버리겠다. 한 해가 다 가도록 여기 누워 있어도 그의 살은 언제나 온전할 ㄱ서이며 지금보다 오히려 좋아질 것이다. 그러니 너는 아카이오이족 영웅들을 회의장에 부르고 밳어들의 목자 아가멤논을 향한 네 분노를 거두어라. 그리고 전투를 위해 신ㅅ고히 무장하고 투지를 입도록 하라.
아카이오이족이 모두 모였을 때 준족 아킬레우스가 일어나 그들 사이에서 말했다. 아트레우스의 아들이여! 우리 두 사람은 한 소녀 때문에 마음이 상해 마음을 좀먹는 불화 속에서 원한을 품었지만 그것이 과연 우리 두 사람, 그대와 나를 위해 바람직했을까요?
아무리 괴롭더라도 지난 일은 잊어버리고, 필요에 따라 가슴속 마음을 억제해야 합니다! 이제 나는 분노를 거둘 것이오. 화해하지 않고 언제까지나 화를 낸다는 것은 내게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오.
아가멤논이 그들 가운데로 걸어 나오지 않고 앉은 자리에서 그들을 향해 말했다. ~~~ 아킬레우스에게서 내가 손수 명예의 선물을 빼앗던 그날, 바로 그분들이 회의장에서 내 마음속에 사나운 광기를 보내셨기 때문이오. 신이 모든 일을 이루어놓으셨는데 난들 어쩌겠소? 미망은 제우스의 맏딸로 모든 이의 마음을 눈멀게 하는 잔혹한 여신이오.
XX신들의 전투
펠레우스의 아들이여! 전쟁에 주린 그대를 둘러싸고 아카이오이족이 무장하였도다. 그 맞은편 들판의 언덕 위에는 트로이아인들이 모여 있었다.
번쩍이는 번개의 신이여! 어인 일로 그대는 신들을 회의장으로 불렀나요? 트로이아인들과 아카이오이족에 관하여 어떤 결정을 내리시려는 것인가요?
그대들은 모두 트로이아인들과 아카이오이족을 찾아가 저마다 마음 내키는 대로 어느 한 편을 돕도록 하시오.
전사들의 무리 속으로 올림포스의 신들이 들어가자 백성들을 부추기는 강력한 에리스가 날뛰었고 아테나도 함성을 질렀다.
이렇게 축복받은 신들은 서로 싸우도록 양군을 격려했고, 그러다가 마침내 자기들끼리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위에서는 인간들과 신들의 아버지가 무섭게 천둥을 쳤고, 밑에서는 포세이돈이 끝없이 넓은 대지와 가파른 산꼭대기를 뒤흔들었다.
헥토르는 자신의 친동생인 폴뤼도로스가 내장을 손으로 움켜쥐며 땅에 쓰러지는 것을 보자 두 눈에 안개가 쏟아졌다. 더는 멀찍이 떨어져 보고 있을 수 없는 헥토르는 날카로운 창을 휘두르며 불길처럼 아킬레우스를 향해 달려갔다.
XXI 강변에서의 전투
XXII 헥토르의 죽음
이처럼 두 사람은 울면서 사랑하는 아들에게 간절히 빌었으나 헥토르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었으니 그는 거대한 아킬레우스가 가까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형님! 날랜 아킬레우스가 프리아모스의 도성을 돌며 빠른 걸음으로 형님을 추격하니 얼마나 괴로우십니까. 그러니 자, 우리 버티고 서서 그를 막아냅시다!
아아! 이제야말로 신들께서 나를 죽음으로 부르시는구나.
그는 먼지 속에 쓰러졌고 고귀한 아킬레우스는 환성을 올렸다. 헥토르여! 그대는 파트로클로스의 무구들을 벗겼을 때 무사하리라 믿고, 멀리 떨어져 있는 나는 염두에도 없었겠지.
그에게 투구를 번쩍이는 헥토르가 기진맥진하여 말했다.
XXIII 파트로클로스를 위한 장례 경기
XXIV 몸값을 주고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받다
아킬레우스가 분을 못 이겨 고귀한 헥토르를 욕보이자 축복받은 신들은 헥토르를 불쌍히 여겨 훌륭한 정탐꾼인 아르고스의 살해자에게 그의 시신을 빼내도록 재촉했다.
그리하여 다른 신들은 모두 이에 찬성했지만 헤라와 포세읻노과 빛나는 눈의 처녀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신성한 일리오스와 프리아모스와 그의 백성들이 알렉산드로의 죄 때문에 여전히 처음처럼 미웠으니 그는 이 여신들이 그의 농막을 찾았을 때 이들을 모욕하고 파멸을 초래할 색욕을 그에게 준 여신을 찬양한 것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열두 번째 아침이 다가왔을 때 불사신들 사이에서 포이보스 아폴론이 말했다.
아킬레우스는 동정심도 수치심도 없는 자요. ~~~ 많은 사람이 그보다 소중한 사람을 이를테면 동복형제라든가 또는 아들을 잃었소. 하지만 그들의 눈물과 슬픔에도 한계가 있었소. 운명의 여신들이 인간들에게 참는 마음을 주었기 때문이지요. 한데 이 자는 고귀한 헥토르의 목숨을 빼앗고도 전차 뒤에 그를 매달아 사랑하는 전우의 무덤 주위로 끌고 다녀요.
노인장! 그는 아직 개들이나 새들의 밥이 되지 않고 옂너히 아킬레우스의 함선 옆 막사들 사이에 처음 쓰러진 그대로 누워 있소. 그가 눙누지 벌써 열두 번째 아침이 밝았건만 그의 살은 조금도 썩지 않았으며 전사자들을 파먹는 구더기들도 꾀지 않았소. 신성한 새벽이 다가올 무렵이면 아킬레우스가 사랑하는 전우의 무덤을 그를 끌고 사정없이 돌았지만 그를 손상시키지 못했소.
그들이 함선들을 지키는 탑들과 호에 이르렀을 때 파수병들은 막 저녁식사를 ㅈ누비하는 중이었다.
프리아모스는 마차에서 땅위로 뛰어내려 말들과 노새들을 붙들고 있도록 이다이오스를 뒤에 남겨두고 제우스의 사랑받는 아킬레우스가 늘 앉아 있던 그의 처소로 곧장 걸어갔다.
가까이 다가가 두 손으로 아킬레우스의 무릎을 잡고 자기 아들들을 수없이 죽이는 그 무시무시한 두 손에 입 맞추었다.
신과 같은 아킬레우스여, 그대의 아버지를 생각하시오! 나와 동년배이며 슬픈 노령의 문턱에 접어든 그대 아버지를. 혹시 인근에 사는 주민들이 그분을 괴롭히더라도 그분을 파멸과 재앙에서 구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오. 그래도 그분은 그대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날이면 날마다 사랑하는 아들이 트로이아에서 돌아오는 것을 보게 되기를 고대할 것이오. 하지만 나는 참으로 불행한 사람이오. 드넓은 트로이아에서 나는 가장 훌륭한 아들을 낳았건만 그중 한 명도 남지 않았으니 말이오. 아카이오이족 아들들이 왔을 때 내게는 아들이 쉼 명이나 있었소. 그중 열아홉 명은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났고 나머지는 소실들이 나를 위해 집안에서 낳아주었소. 한데 사나운 아레스가 그들 대부분의 무릎을 풀어버렸소. 그리고 혼자 남아서 도성과 백성들을 지키던 헥토르도 조국을 위해 싸우다 얼마 전 그대 손에 죽었소. 그래서 나는 그 애 때문에, 그대에게서 그애를 돌려받고자 헤아릴 수 없는 몸값을 가지고 지금 아카이오이족 함선들을 찾아온 것이오. 아킬레우스여! 신을 두려워하고 그대 아버지를 생각해 나를 동정 하시오. 나는 그분보다 동정 받아 마땅하오. 나는 세상 어떤 사람도 차마 못할 짓을 하고 있지 않소! 내 자식들을 죽인 사람의 얼굴에 손을 내밀고 있으니 말이오. (p701)
노인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우더니 노인의 흰 머리와 흰 수염을 불쌍히 여겨 그를 향해 이렇게 물 흐르듯 거침없이 말했다. 아아, 불쌍하신 분이여! 그대는 마음속으로 많은 불행을 참았소이다. 감히 그대의 용감한 아들들을 수없이 죽인 사람의 눈앞으로 혼자서 아카이오족 함선들을 찾아오시다니!
노인장! 이제 그대의 아들은 그대의 소원대로 풀려나 침상에 누워 있으니 날이 밝아 그를 데려갈 때 직접 보시게 될 것이오.
노인은 겁이나서 전령을 깨웠다. 그들을 위해 헤르메스가 말들과 노새들에 멍에를 얹고 손수 몰아 날래게 진영을 빠져나가니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렇게 그들은 말을 길들이는 헥토르의 장례를 치렀다.■
[Review]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아카이오이족에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통을 안겨주었으며 숱한 영웅들의 굳센 혼백을 하데스에게 보내고 그들 자신은 개들과 온갖 새들의 먹이가 되게 한 그 잔혹한 분노를! 인간들의 왕인 아트레우스의 아들(아가멤논으로 트로이 전쟁 그리스군 총사령관)과 고귀한 아킬레우스가 처음에 서로 다투고 갈라선 그날부터 이렇듯 제우스의 뜻은 이루어졌도다.”
그리스군의 총사령관인 ‘아가멤논’이 아폴론 신전 사제의 딸을 빼앗은 일로 사제가 찾아와 돌려주기를 간청했지만, 오히려 아가멤논은 노인에게 망신을 주고 돌려보냈다. 이 일은 아폴로 신의 노여움을 일으켰고 그리스군은 곤경에 빠지게 되었다.
이 일로 그리스군의 장군‘아킬레우스’(이 책의 주인공)가 아가멤논 왕을 비난하자 왕은 크게 노하며 아킬레우스를 대적하고, 분이 풀리지 않자 그에게 시비를 걸 목적으로 아킬레우스가 아끼는 아름다운 소녀‘브리세이스’를 빼앗았다. 아킬레우스는 이로 인해 명예를 실추당하여, 왕에게 원한을 품고 전쟁에 나가지 않는다.
전쟁은 그리스군 들에 패배를 안겨주며 곧 끝날 것 같던 싸움은 치열한 공방전으로 바뀌고 양군은 밀고 밀리는 지루한 전쟁은 이어진다. 그 사이에 제우스의 아내인 ‘헤라’와 딸 ‘아테나’는 신의 세계와 현실 세계를 넘나들며 이 싸움을 조정한다.
궁지에 몰린 아가멤논은 ‘오뒷세우스’와 다른 장수를 ‘아킬레우스’게 보내고 전쟁에 참여해준다면 모든 불명예를 회복시키고 많은 보화를 주겠다고 제의했지만, 아킬레우스는 오히려 왕의 못된 행실을 비난하며 거절한다.
전쟁은 트로이군에게 유리하게 기울고 ‘아가멤논’과 ‘오뒷세우스’도 부상을 입고 말았다. 이때 ‘아킬레우스’의 죽마고우인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를 찾아가서 전쟁에 도울 것을 요청하지만, 역시 그는 자신의 명예가 회복되지 않음을 이유로 거절하고 강한 ‘헥토르’(트로이아 진영의 왕)를 대적하지 말라고 충고해준다. 그러나 그의 간청에 못 이겨 대신 자신의 무구를 그에게 내어준다.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걸치고 전장에 나간 ‘파트로클로스’는 용감하게 싸우며 적장들을 물리치며 치열한 접전이 계속되었다.
"마치 동풍과 남풍이 서로 힘을 겨루며 산골짜기에서 울창한 숲을 뒤흔들고, 참나무들과 물푸레나무들과 껍질이 질긴 꽃층층나무들이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긴 가지들을 서로 부딪쳐 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듯, 꼭 그처럼 트로아이인들과 아카이오이족은 서로 덤벼들어 죽였고 어느 편도 파멸을 안겨주는 패주를 생각지 않았다."(p492)
그러나 결국 ‘파트로클로스’ 는‘헥토르’의 창에 찔려 죽음을 맞았고 무구까지 빼앗겼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아킬레우스는 심히 애통하며 울부짖으며 원수를 갚겠다고 선언하고 아가멤논과 화해를 자청한 후에 자신의 무구를 다시 만들어 전쟁에 나간다.
“그는 두 손으로 검은 먼지를 움켜쥐더니 머리에 뿌려 고운 얼굴을 더렵혔고 검은 재가 그의 향기로운 옷에도 떨어졌다. 그리고 그 자신은 먼지 속에 큰 대자로 드러누워 제 손으로 머리를 쥐어 띁었다."(p530)
‘아킬레우스’의 기상에 놀란 ‘헥토르’는 그를 보자 성벽을 돌며 달아나고 ‘아킬레우스’는 그를 좆는다. 왕의 체면이 이쯤 되자 결국 ‘아킬레우스’와 맛 서고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무구를 입은 ‘헥토르’를 죽인다. 그러고도 분함에 못 이겨 그의 시신을 거꾸로 묶어 전차에 메달아 십일 동안 친구의 시신이 있는 장막 주위를 돌며 앙가품 한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는 ‘헥토르’의 아버지가 ‘아킬레우스’를 찾아가서 시신을 돌려받는 눈물겨운 장면이 나온다. 자기 아들을 죽인 원수를 찾아와 무릎을 꿇고 비는 부성에 마음이 움직인 ‘아킬레우스’는 함께 감정의 눈물을 흘리며 시신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하며 날이 밝으면 돌아가라고 말한다. 그러나 노인은 그의 마음이 언제 바뀔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밤중에 몰래 시신을 수레에 싣고 진영을 빠져나간다. 그리고 아킬레우스로부터 약속받은 열흘 동안 그의 장례를 치르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신과 같은 아킬레우스여, 그대의 아버지를 생각하시오! 나와 동년배이며 슬픈 노령의 문턱에 접어든 그대 아버지를. 혹시 인근에 사는 주민들이 그분을 괴롭히더라도 그분을 파멸과 재앙에서 구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오. 그래도 그분은 그대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날이면 날마다 사랑하는 아들이 트로이아에서 돌아오는 것을 보게 되기를 고대할 것이오. 하지만 나는 참으로 불행한 사람이오. 드넓은 트로이아에서 나는 가장 훌륭한 아들을 낳았건만 그중 한 명도 남지 않았으니 말이오. 아카이오이족 아들들이 왔을 때 내게는 아들이 쉰 명이나 있었소. 그중 열아홉 명은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났고 나머지는 소실들이 나를 위해 집안에서 낳아주었소. 한데 사나운 아레스가 그들 대부분의 무릎을 풀어버렸소. 그리고 혼자 남아서 도성과 백성들을 지키던 헥토르도 조국을 위해 싸우다 얼마 전 그대 손에 죽었소. 그래서 나는 그 애 때문에, 그대에게서 그 애를 돌려받고자 헤아릴 수 없는 몸값을 가지고 지금 아카이오이족 함선들을 찾아온 것이오. 아킬레우스여! 신을 두려워하고 그대 아버지를 생각해 나를 동정 하시오. 나는 그분보다 동정 받아 마땅하오. 나는 세상 어떤 사람도 차마 못할 짓을 하고 있지 않소! 내 자식들을 죽인 사람의 얼굴에 손을 내밀고 있으니 말이오.” -헥토르의 아버지가 아킬레우스를 찾아가서 무릎을 꿇고 사정하는 대목-(p701)
그리스 문학의 대표작으로 여겨지는 ‘호메로스’의 두 책 「오뒷세이아」와 「일리아스」는 각각 배경이 다르다. 오뒷세이아는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군사들이 귀향하는 과정에서 오뒷세우스라는 한 인물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일리아스」는 트로이전쟁 십 년 중 마지막 1년의 이야기로 ‘아킬레우스’라는 인물이 주인공이다. 시간적으로는 일리아스가 오뒷세이아를 앞선다.
「오뒷세이아」가 페넬로페 부부간의 사랑 이야기라면 「일리아스」는 친구를 향한 우정에 관한 이야기다. 오뒷세우스가 지혜롭고 이성적인 인간상이라면 아킬레우스는 감정적이고 분노를 표출하는 인간상이다.
트로이 전쟁의 막바지에서 오뒷세우스는 전쟁에서 귀향하는 편에 있었고, 아가멤논은 그곳에 남는 것으로 두 사람은 결별하게 되었다. 두 장수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는 후에 「오뒷세이아」에서 혼백(魂魄)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오뒷세우스가 고향에 도착하기 전에 그들은 먼저 전쟁에서 죽은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오뒷세우스의 긴 기다림은 아내를 향한 사랑의 기다림이라면 아킬레우스의 기다림은 분노로 이루어진 복수의 기다림이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자신들의 기다림에 대한 보상을 복수로 마감한다. 오뒷세우스는 아내를 괴롭힌 구혼자들에게 활을 겨누었고, 아킬레우스는 명예를 실추시킨 아가멤논에게 향한 복수가 친구의 죽음으로 인해 대상이 바뀌고 적장 헥토르를 창으로 찌른다.
호메로스의 이 소설은 실존 인물인지에 대해 논란이 지속되고 그리스신화를 바탕으로 한 문학작품으로 대표적인 점에서 특징적이다. 두 작품 모두 시간상으로 짧은 기간에 아주 긴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독자들은 이해하기가 조금 어렵기도 하다. 특히 일리아스에서는 수많은 장수와 전쟁의 비참한 죽음과 그들의 무장한 무구들의 묘사가 전쟁에 개입하는 신화적 요소들과 얽히고 반복되어 조금은 지루한 느낌도 없지 않다.
책 한 권 읽을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다. 며칠 전 신문 칼럼에서 본 것으로 공감이 가는 말이라 생각되었다. 책은 일상에 쫓기면 읽을 수 없다. 책 읽을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넘쳐 나도 책을 읽을 수 없는 사람도 있다. 여유는 잡다한 생각에 매이지 않는 것이다. 잡다한 자기 생각에 사로잡히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귀에 들리지 않는다. 책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기 때문이다. 책이 마냥 재미있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인내심도 필요하다. 그러나 되도록 집중해서 들으면 재미없는 이야기도 재미있어지기도 한다.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한 「오뒷세이아」와 「일리아스」는 트로이 목마 이야기로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그러나 이 두 책에서 그런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로 오래 전부터 읽어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문학인이 아닌 일반 독자에게는 2천 5백년도 더 지난 허무한 신들의 신화적 이야기가 실감 나게 다가올 리는 없다. 메모를 하며 가능한 정독을 하다 보니 책에 빠지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