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이사야 55:1~7
오늘 본문 말씀은 그 동안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여호와의 종의 노래를 통하여 그리스도가 오셔서 행하실 대속의 은혜의 새 일들을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산고를 겪지 못한 홀로 된 여인처럼 아무런 자녀도 낳지 못하고 남편에게 버림받은 소녀 같은 처량한 신세였던 주의 백성, 구약 교회를 부드럽게 위로해주시고,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주시며, 이제는 지극히 아름다운 새 예루살렘 성의 영광을 회복해주시고 하나님의 아내로서 영광스럽게 해주실 것이라고 약속해주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제 이사야 55장에서는 그 백성들에게 이렇게 기름부은 여호와의 종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 속에서 베푸신 이러한 위로와 소망의 약속에 대하여 그의 백성들 역시 마주하여 응답하라는 초대의 말씀을 베풀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약속의 말씀만으로는 이러한 축복을 그들이 받을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들이 낙심과 불신과 좌절의 마음의 늪에 계속 있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하시는 바 위로와 권면의 말씀에 믿음으로 응답하라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낙심한 그의 백성들에게 어떠한 말씀을 하시면서도 부르시는지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갈급한 심령을 가진 자들을 부르십니다.
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목 마른 자들은 갈망을 가진 모든 인간들을 표현한 말씀입니다. 모든 인간은 갈망을 가진 존재입니다. 지적인 갈망이 있어 더 알고자 하는 마음도 있고, 사람 사이에 교제하며 우정과 사랑을 나누는 교제의 목마름이 있습니다. 자기의 꿈과 계획을 이루고자 하는 성공의 갈망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새로운 일을 하고자 하는 창조의 갈망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들고자 하는 창조의 갈망도 있고, 선한 일들을 이루고자 하는 선의 갈망도 있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부를 갖고 싶어하는 소유의 갈망도 있고 사람들에게 알아주기를 원하는 명예의 갈망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여 다스리고자 하는 지배욕도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인간으로 하여금 끝없이 목마르게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내면의 충만한 이러한 갈망들을 다 얻었다 해도 인간의 갈망이 수그러드는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유명해지고 아무리 많은 재산을 축적하여도 아무리 자기가 원하는 높은 자리에 오르고 자기가 꿈꾸던 성공의 경지를 다 성취를 하고 인간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다 부러워하는 그러한 목적을 다 이루어서 사람들이 다 부뤄워 하는 사람이 되었다 해도 여전히 그 마음에는 채우지 못하는 갈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적인 갈망입니다. 진리에 대한 갈망입니다. 이 갈망은 근원적인 갈망입니다. 돈으로도 채울 수 없고 세상 명예와 사람들의 박수갈챌로도 채울 수 없고 날마다 사람들과 만나 교제하며 깊은 교제를 나눈다 해도 채워지지 않는 내면 깊은 곳의 목마름과 공허감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강물이 바다로 연이어 흘러 들어가고 또 흘러 들어가도 그 바다가 채워지지 않는 것과 같은 깊은 갈망입니다. 그러한 예를 들자면, 주후 4세기 로마 제국의 절정기에, 젊은 시절을 방탕하게 보내며 세상 철학을 탐구하며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살았던 어거스틴이란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친구들 가운데 몇몇이 귀족의 화려하고 안정된 생활을 청산하고 모든 것을 버리고 기독교 공동체인 카타콤, 지하 굴로 들어가거나 수도원으로 들어가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도 마음의 무거운 번뇌를 가지고 친구들과 대화하더나 어찌할까 하면서 괴로워하며 망연자실하여 친구의 집 정원에서 괴로워할 때에 마침 그 친구 집 옆에서 들려오는 어린아이들의 노래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습니다.
“집어 들어 읽으라. 집어들어 읽으라”
그 말을 듣고 일어나 즉시 자기 곁에 높여 있던 사도 바울의 로마서 편지를 펴서 읽었습니다. 마침 펴서 그의 눈에 들어온 구절은 로마서 13:11 이하의 말씀이었습니다. 읽어보니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되었이니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읽는 순간 이 말씀이 바로 자기에게 주시는 하늘의 소리로 들렸습니다. 그래서 그 날 그 정원에서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결정을 합니다. 수많은 젊은 시절의 정신적, 철학적, 육신적인 방황을 내려놓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주 예수를 영접하고 자기 삶을 온전히 맡깁니다. 그는 어머니 모니카의 말을 듣고 교회에 나가 암부로스라는 목회자에게 세례를 받고 고향으로 내려가 거기서 사람들의 추대를 받아 목회자가 되어 철학에 쏟아부었던 그의 정신적 에너지를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가르치는 일에 힘써서 그 당대에 하나님의 교회를 지키는 위대한 신학자와 목자의 사명을 감당하였습니다. 그가 쓴 참회록에 보면 그가 고백하기를
“내 영혼이 하나님을 찾기까지 참된 평안을 얻지 못하였나이다”
라고 고백합니다. 아무리 젊은 여인을 취하고, 아이도 낳아보고, 철학에 깊이 심취하고 마니교라는 깊이 심취하고 철학교사로도 사람들의 존경도 받아보고 술도 마시고 너무 좋은 친구들과 만나 날마다 깊은 우정을 나눈다 해도 자기 마음의 깊은 갈망을 다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모두 목마른 자들입니다. 모두가 내면 깊은 곳에 근본적인 허무감이 숨겨져 있습니다. 근원적인 불안감이 있습니다. 세상 모든 것으로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깊은 마음의 방이 있습니다. 이것을 전도자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으로만 채워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날 때 비로소 이 깊은 허무와 갈망은 다 채워지게 되고 참된 만족과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이 목마름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어디서도 살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나아와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오라고 부릅니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하나님은 목마른 자들에게 필요한 신선한 물을 준비해놓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꼭 포도주, 젖까지도 준비해놓고 있습니다. 물은 생명의 필수적인 존재입니다. 인간이 어느 곳에 정착하려고 하면 무조건 물이 있는가를 먼저 찾습니다. 저 우주 공간에 있는 별들과 행성들을 연구하러 보낼 때에도 생명체의 존재 여부를 탐지하고 영존할 수 있는 조건을 탐색할 때에 그곳에 물이 존재하는가를 찾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물이 없으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또한 포도주는 기쁨을 주는 것입니다. 물이 귀한 팔레스타인에 포도를 숙성시킨 포도주는 물을 대신해주는 음료요 기쁨과 즐거움을 안겨주는 생활 필수품입니다. 또한 젖은 양과 소와 염소에서 나온 우유로서 그 안에는 인간의 생명에 필수적인 온갖 영양소가 다 들어 있습니다. 칼슘, 비타민, 무기질 등이 다 함유되어 있어서 사람이 다른 것을 먹지 않아도 이 우유만 먹어도 얼마든지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완전 식품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물과 포도주와 젖을 여기서 대표로 그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그들은 일종의 비유로서, 물은 사람을 살리는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하며, 포도주는 성령이 주시는 활력과 기쁨을 상징하며, 젖 역시 듣고 먹고 영혼이 거듭나고 하나님 백성으로 자라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물과 포도주와 젖이야말로 모든 인간의 목마름, 인간의 깊은 갈망을 완전히 채워주어 영원한 만족을 얻게 하는 하나님의 존재 자체요 하나님이 베푸시는 바 영적이고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각종 은혜들을 말합니다.
저도 젊은 시절 이런 저런 마음의 갈망으로 방황하였는데, 그러던 중에 하나님을 만나고 성경을 읽고 예배자로 살아가게 되면서 비로소 참된 기쁨을 얻고 심령의 눌림과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기쁨으로 충만하고 만족하여 참된 평안을 얻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목 마른 자가 있습니까?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그가 우리에게 주시고자 예비하신 바 은혜의 물과 기쁨의 포도주와 영양 만점인 젖을 마시면 그것으로 우리의 모든 목마름은 완전하게 해갈될 줄 믿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의 목마름을 해소시킬 수 있기 위하여 주님께 와서 그것을 사야 하는데, 무엇으로 살 수 있습니까? 1절에 보니, 돈 없이 오라고 하였습니다. 값없이 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헛되이 돈을 낭비하며 젊음을 낭비하며 이리 저리 다니면서 그 목마름을 채우려고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는 말씀을 하십니다. 2절 상반절을 읽읍시다.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세상은 우리의 목마름을 채우려고 애쓸 때 그냥 주는 법이 없습니다. 다 비싼 대가를 지불하도록 합니다. 정신 상담을 받으려고 하면 정신과 의사에게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합니다. 사람들과 교제하려면 만나서 시간을 지불하며 돈을 쓰며 술과 취미 생활을 위한 많은 비용을 지불하게 됩니다. 그렇게 많은 것들을 지불하여도 사실 우리 심령의 빈 마음을 채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에게 돈 없이 거저 오라고 말합니다. 아무런 대가 없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공짜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사실 우리가 물을 지금은 사서도 마시지만 날에야 다 지천으로 있는 것이 물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가장 비싸고 귀한 것일수록 하나님은 값없이 무료로 주십니다. 햇볕도 무료로 주시고, 공기 중 산수도 무료로 주시고, 바람도 무료도 주십니다. 저 푸른 바다와 산들과 구름과 노래하는 새와 붉게 하늘을 물들이며 서쪽으로 떨어지는 낙조도 그냥 무료로 우리로 보게 누리게 하십니다. 우리가 병들었다가 다시 시간이 흐르면 서서히 병을 이기는 자연 치유의 은혜도 우리가 많이 누리는데, 그 모든 것이 다 무료입니다. 그래서 정말 비싸고 귀한 것은 지금도 값을 셀 수 없기에 다 무료로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모님의 사랑도 무료로 다 받도록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셨습니다.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도 다 값없이 우리에게 선물로 베풀어 우리가 누리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없이는 우리는 생존 자체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다 하나님께서 무료로 우리에게 공급해주셨으며 앞으로도 그러하실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모든 것을 선물로 값없이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가 깨닫고 그를 늘 찬양합시다.
그러면 이러한 지극히 복된 선물들은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이제 그 남은 자들, 주의 백성들에게 자기에 오라고 초대합니다.
2절 하반절 이하 5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보라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인으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로 삼았나니 보라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네가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로 달려올 것은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음이니라 이는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여기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자기에게 와서 들으라고 초대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의 모든 목마름을 채울 수 있는 기름진 것, 좋은 것은 오직 하나님을 찾아 그에게 나아올 때 얻을 수 있습니다. 그에게 와서 말씀을 귀 기울여 들을 때만 참된 만족과 평안과 행복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 영혼이 사는 복을 누리게 됩니다.
아모스서 5:4 이하에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벧엘로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반드시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비참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불같이 요셉의 집에 임하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으리라”(아모스 5:4~6)
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에 하나님 백성으로 부르심 받았던 이스라엘 족속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 각종 우상들과 잡신들을 섬긴다고 그들의 땅 여러 곳에 우상의 신전들을 세워놓고 더러운 잡귀들을 섬기곤 했습니다. 벧엘도 본래 하나님이 그들의 조상 야곱을 만나주신 곳이며 길갈도 그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입성하여 할례를 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로 작정한 곳이며 브엘세바 역시 과거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그 아들 이삭이 하나님께 은혜를 받고 예배를 드렸던 은혜의 자리 신앙의 자리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시간이 흘러서 그들은 참 신앙을 버리고 잡신과 우상을 섬긴다고 저렇게 열심을 내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크게 분노하시며 그들에게 고통과 저주와 시련을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이렇게 계속하여 우상 숭배와 잡신 숭배를 지속하면 그들을 결국 망하게 되고 비참하게 되고 마침내 그들은 나라가 망하여 사로잡혀 먼 나라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고 말 것이라고 경고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지자 아모스를 보내어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고 호소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찾아 하나님께 나아올 때에 우리는 살게 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물과 포도주와 젖을 값없이 받아 우리의 모든 목마름이 해소되고 참된 만족과 기쁨을 얻게 됩니다. 지금 우리 중에 목마른 자가 있습니까? 오직 하나님께 나아오십시오. 그를 찾아 구하십시오. 그리할 때 하나님은 값없이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어 먹게 하실 것이요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게 하시고 우리 영혼이 생명을 얻고 살게 해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늘 본문 말씀 3절 하반절에서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확실한 은혜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러면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곧 그리스도 안에서 베풀어주시기로 약속하신 새 언약 시대의 은혜입니다. 여기서 ‘다윗’은 여호와의 종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여호와의 종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그리스도 시대에 임할 새 언약 시대의 은혜에 대한 약속은 이미 이사야 9장과 11장에도 말씀하신 바인데, 성령으로 충만하신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자기 백성들을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눕고 송아지아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는 평화의 나라를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온 세상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으로 충만하게 될 시대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런 그리스도의 시대에 사람들은 성령으로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마음으로부터 사랑하고 그의 모든 율법을 기쁨으로 자원하여 지키게 될 것에 대하여 예레미야 31장 33절과 34절에서도 이렇게 예고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에스겔서 36장 25절 이하에도 그리스도 시대의 임할 은혜 시대를 이렇게 미리 예고한 바 있습니다.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에스겔 36:25~27)
이처럼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는 그리스도를 영접한 심령 속에 하나님께 대한 진실한 소속감을 갖게 되어 하나님과 깊은 성민 언약을 체결하여 하나님의 진실한 백성이 되고 그 심령 속에 성령이 내주하시면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다 지켜 행하게 될 것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이 약속의 말씀들은 예수님께서 대속의 죽음을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 승천하신 후에 성령을 교회에 보내주신 후에 교회가 성령 받은 후에 실제로 주의 백성들에게 그대로 이루어졌지 않습니까?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시니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제자 베드로도 사자같이 예수님을 증거하는 믿음의 용사가 되었습니다. 늘 서로 자기가 잘났다고 서열 싸움이나 하던 영적 어린아이들이 이제는 주님을 위하여 기꺼이 순교의 제물이 되기를 위하여 각처로 복음 전하려고 나아가 칼에 죽기도 하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기도 하고 기름 가마에 던져 죽기도 마다 하지 않았으니 이는 그들 심령이 완전히 달라지고 그들 속에 성령이 계시고 그들 속에 있던 돌 같은 마음이 다 깨어지고 새 마음이 들어왔기 때문이요 영원한 천국의 영광이 그들 눈에 환하게 보여졌기 때문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리하여 오늘 본문 말씀 중 4절과 5절에서 이른 것처럼, 여호와를 전혀 알지 못하던 나라들이 주의 백성들에게 달려왔으니 만민에게 복음이 전파되어 인종과 혈통과 방언과 족속들이 여호와의 아름다운 백성으로 돌아와 참된 교회인 새 예루살렘의 백성으로 다 돌아오게 되었으니, 오늘 이 약속의 말씀은 그대로 다 성취된 말씀인 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와 같은 축복이야말로 가장 큰 축복입니다. 마음이 달라지는 은혜, 하나님을 진심으로 자기의 아버지로, 자기의 하나님으로 모시고, 자기를 하나님의 참 백성으로 인정하는 은혜,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힘으로는 절대로 지킬 수 없고 악을 떠날 수 없으나 성령이 우리 심령에 들어와 거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자연스럽게 지켜 행하며 악을 멀리하고 우상 사신 잡신을 떠나고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으며 그의 뜻을 기쁨으로 행하게 되는 은혜보다 완전한 은혜는 없습니다. 이 은혜가 우리 심령 속에서 날마다 더 깊어지고 더 풍성해지고 그리하여 물과 포도주와 젖이 우리의 영혼과 몸과 우리의 생활과 삶 전체에 풍성히 넘쳐 흐르는 은혜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영광스럽게 될 미래를 약속하고 계시니, 이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하겠습니까?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나님은 지금 돌아오라고 호소합니다. 6절로부터 7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여기서 하나님은 그 말씀을 듣는 자들을 향하여 결단하고 행동하기를 촉구합니다. 그 동안까지는 우상을 섬기고 잡신을 섬기며 죄악의 길을 따라 살았습니다. 늘 마음속에 죄악을 품고 죄의 길을 더듬어 찾으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계획에 대하여 전혀 염두에 두지 않거나 일부러 외면한 채 내 뜻과 내 생각과 내 계획대로만 살고자 분주했습니다.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지 않고 자기 삶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라고 철두철미 믿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까이 부르시는 이 기회에 이제 하나님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부르시는 이 절호의 때를 미루지 말고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자기의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을 내려놓고 이제 하나님께 돌아와서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성령님께서 자기 삶을 위하여 계획해놓으시고 베풀어주시고자 하시는 지극히 좋은 것들을 받아누리도록 하나님께 자기 삶의 주도권을 넘겨드리라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습니다. 그 때를 넘겨 버리면 다시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돌아보면 우리의 삶의 여정에도 결정적인 때가 있지 않습니까? 다시 옛날로 시간을 되돌려 놓으면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는 후회스러운 시간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 결정적인 기회를 놓쳤기 때문에 아쉬움이 있고 이제는 우리에게 남은 세월이 그 만큼 소중하고 이 복스러운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한다는 더 깊은 깨달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이 바로 은혜받을 만한 때요 지금이 바로 구원받을 만한 절호의 때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찾으시는 이 부르심에 응답하여 하나님께로 손을 들고 나아가십시오. 불의한 생각, 내 생각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계획하심에 따라 우리 삶을 살아가겠다고 겸손하게 진실하게 구하십시오. 그리할 때에 그가 우리의 지난 삶을 너그럽게 용서해주시겠다고 오늘 본문 말씀에서 약속해주신 대로 지난 날의 허물과 우리의 고집들을 다 사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필요들을 채워주실 것입니다. 모든 내적 갈망을 만족하게 해주실 것이요 참된 평안과 즐거움을 내면에서 샘 솟듯 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사마리아 수가 성 여인이 주님의 초대를 받아들이고 그의 삶이 달라졌듯이, 어거스틴이 그 날 친구의 정원에서 집어들고 읽으라고 부르시고 로마서 13장 말씀대로 “어둠의 일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으라”고 하신 부르심에 응답하였듯이, 수학자 파스칼이 병이 든 중에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서 불신앙의 자리를 벗어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왔듯이, 우리도 하나님의 이 부르심에 응답하는 자가 됩시다. 그리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아주시고 긍휼히 여겨주시고 품어주시고 너그럽게 용서해주시고 축복해주시고 기름진 것으로 채워주시고 귀하게 붙들어 사용해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