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送年) 시모음 3.
안녕 2018 /이원문
보내야 하는 2018
이제 그만 떠나는가
나와 이웃 나라 안 밖
무슨 일이 있었는가
잃었든 얻었든
자리 뜨는 2018
남겼든 지니든
가야 하는 2018
그 1년 이름 짓고
이렇게 가야 하나
나와 이웃 그 1년
누가 잡을 것인가
송년 기도시(6)/성탄절/이해인
조그만 예수 아기가
세상 속으로 들어오는
성탄의 기쁨은 우리의 기쁨
그분의 생일은 우리의 생일입니다
아기의 모습으로
다시 겸손하라고
다시 사랑하라고
천사들이 노래하며
삶의 무게에 지친
우리의 어깨 위에
날개 하나 달아 줍니다
이제는 우리의 이름을
기쁨으로 바꾸라면서
희망으로 바꾸라면서
노엘 노엘 노엘
연종(年終) /박인걸
지난 섣달 그믐밤에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를 들으며
무해(無害)와 무탈(無頉)의 소망을
별 숲으로 쏘아 올렸다.
낮과 밤이 엇갈릴 때마다
희비(喜悲)와 명암(明暗)이 널을 뛰고
안팎의 구구사정(區區私情)은
소용돌이만큼 어지러웠다.
삼백예순다섯 날은
삽시간(霎時間)에 눈앞을 지나
끝자락마저 잡을 수 없는
연혁(沿革)의 언덕을 넘어간다.
한해가 이틀 남은 달력은
초조(俏措)함을 더욱 압박하고
생애(生涯) 남은 시간들이
쥐꼬리만 해 심(甚)히 두렵다.
그래도 여전히 태양(太陽)은 밝고
하늘 또한 무한(無限)히 푸르다.
생명이 호흡(呼吸)하니 고맙고
또 한 해를 예약(豫約) 하여 기쁘다.
잘 거거라 / 이외수
더러는 바람이 불고
더러는 비가 내리고
아픈 이름들
흐린 세속의 어스름 속으로
하나
둘
종적없이 떠나버린 날들이여
땀 흘리면서 살고 싶어서 태어나
피 흘리고 살아가는 세상이여
잘 가거라
배반의 세월이여
썩은 정치여
비굴한 변명이여
빌어먹을
악연들이여
그래 잘 가거라
먹고 사는 일은 누구에게나
캄캄한 절망이더라
그래도 이승에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순간들이여
나는
그 모든 것들의 의미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간직하리니
잘 가거라
잘 가거라
잘 가거라
12월이란 종착역에서 /藝香도지현
기적소리가
공명이 되어 들린다
그미세한파장이
텅빈 역사를 휘청거리게 하는데
역사는 늙었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숨쉴 틈 없이 달려와
지칠대로 지쳐 어깨가 내려앉는다
종착역은 언제나
쓸쓸함이 감돌고
삶의 무게에 눌려
진액을 다 쏟아낸 모습인데
이제 조금 쉬었다
다시 달려갈 채비를 해야지
어디까지 갈진 알지 못하지만
열차의 긴 꼬리에선 연기를 뿜어내겠지
고갯마루에 올라 /鞍山백원기
올해 들어 한 걸음씩 걷다 보니
어느새 십이월 고갯마루에 섰다
지나온 걸음걸음
뜻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내년을 핑계 삼아 위안받던 한해
돌아서 내려다보면
구불구불 기나긴 길
넘어지고 일어나 털면서
달려왔던 가파른 길
완만한 평지처럼 보인다
건너다보이는 저 고개
새해 고갯마루 보인다
한 걸음씩 발짝 떼며
올라야 할 미지의 고개
몸과 마음 추슬러
올라야 할 새해 고개
인내와 용기로 힘차게 오르고
축복의 새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
두 손 모아 하늘을 우러른다
섣달 그믐날 /김남조
새해 와서 앉으라고
의자를 비워주고 떠나는
허리 아픈 섣달 그믐날을
당신이라 부르련다
제야의 고갯마루에서
당신이 가물가물 사라져가는 길
뚫어서 구멍내는 눈짓으로
나는 바라봐야겠어
세상은
새해맞이 흥분으로 출렁이는데
당신은 눈 침침, 귀도 멍멍하니
나와 잘 어울리는
내 사랑 어찌 아니겠는가
마지막이란
심오한 사상이다
누구라도 그의 생의
섣달 그믐날을 향해 달려가거늘
이야말로
평등의 완성이다
조금 남은 시간을
시금처럼 귀하게 나누어주고
여윈 몸 훠이훠이 가고 있는 당신은
가장 정직한 청빈이다
하여 나는
가난한 예배를 바치노라.
송년의 미련 /이원문
12월의 마지막 밤
누가 나의 문을 두드릴까
바람이 불면 창문이라도 흔들릴 것을
그것도 아닌 밤 추억만이 가득하다
이리뒤척 저리뒤척
누구라도 올 것 같은 마음
언제 내가 누구를 기다렸나
기다렸다는 듯 기다림이 들어찬 방
보고 싶은 얼굴이
나의 문을 두드린다
두드려 나가보면 아무도 없고
누워 천정 바라보니 천정에서 어린다
다 잃고 보낸 세월
어리는 그 얼굴 보고 싶어라
처음은 그렇게 잊어도 못 잊는 것인지
보내는 송년의 밤 그날 찾아 돌아간다
송년 기도시(7)/ 친구를 위하여/이해인
올 한해도
친구가 제 곁에 있어
행복했습니다
잘 있지? 별일 없지?
평범하지만 진심 어린
안부를 물어오는 오래된 친구
그의 웃음과 눈물 속에
늘 함께 있음을 고마워합니다
사랑한다 말하지 않아도
사랑보다 깊은 신뢰로
침묵 속에 잘 익어
감칠맛 나는 향기
그의 우정은 기도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음악입니다
친구의 건강을 지켜 주십시오
친구의 가족들을 축복해 주십시오
12월에 새겨 둠 / 이기철
보낸다고 다들 난리다
난 이별하지 않을 것이다
놓는다고 잊혀질 리 없기에...
하루 하루란 책갈피 속에 간직한
그리움의 증표임으로
12월은 잡은 손을 놓을 게 아니라
그간 뜨겁게 안아주지 못한 미안함을
반추해야 한다
매년 12월, 채 마무리 못한 어지러움을
짐짓 무거운 십자가를 내려 놓는다는
자학을 멈추어야 한다
지나온 시간을 멈추려 하지 말고
지나갈 시간에 더 집중할 일이다
송년편지 /윤보영
무심코 뒤돌아 보니
어느새 이곳까지 와있다
내일모래가 새해!
그래도 한 해 동안
웃는 날이 더 많았기에
그런 나에게 감사를 전한다
아쉽지만 내 한 해를
아름다운 시간으로 마무리해서
새해에게 전해 주련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덥다가 시원하고
눈까지 다시 내릴 새로운 한 해!
여건을 내게 맞추려 애쓰지 않고
오히려 환경에 적응해서
내가 주인 된 한 해를 만들어 가야겠다
그러다 무심코 돌아봤을 때
오늘처럼 내 멋진
한 해에게 감사를 전할 수 있게
가슴 가득 웃음꽃 활짝 피워
향기를 나누면서 살아야겠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藝香 도지현
또 한 해를 살아 냈다는 안도감과
떠밀려 여기까지 왔다는 자괴감이
묘한 대비를 이루는 교차로에 섰다
한 발만 내디디면 그대로 떨어져
부지할 수 없는 삶이었지만
바우덕이 외줄 타기 하며 살았지
날마다 전쟁 아닌 전쟁 속에서
치열한 삶을 살았는데 지나온 궤적
돌아보니 무주공산, 아무것도 없다
돌아보는 시선은 외롭고 쓸쓸해
발가벗은 나신으로 선 저 나무와
내줄 것 다 내주고 빈 껍질인 나와
어디 하나 다를 것 없는 동질감
빈한해진 마음, 초려 한 눈빛
그곳에 깃들은 영혼 파리할지라도
모든 이의 가슴에 불씨 하나
따스하게 지폈으면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