丁洪敎, “『少年旗手』를 내면서”, 『소년기수』, 동화출판사, 1947.5. (불수록)
내 어렸을 옛날에 우리의 국기(太極旗)를 본 것이 희미하게 생각키며 오직 왜기(倭旗)가 날리는 고궁(古宮)에서 잔형(殘影)만이 남은 태극기를 볼 때마다 마음만을 움키며 한숨을 지은 지 四十 년 ── 작년 팔월 십오일에 우리의 조선을 한입에 생키고 사 억(四億)이 사는 커다란 중국(中國)이며 기타 모든 나라를 담고 있는 동양(東洋) 전체를 제 손에 쥐고자 하든 딸각바리 왜적(倭賊)이 저도 어찌할 도리가 없이 미, 영, 소, 중(美, 英, 蘇. 中)에게 항복하게 되매 사십 년 동안 왜적에게 가진 학대를 받던 그 속에서 버서나 민주주의(民主主義) 국가로서 조선도 독립ㅎ게 되었다는 것이 전 세계에 전파로써 전하여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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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삼천리 조선 안은 물론 세계에 산재하여 있는 우리 동포가 있는 곳이면 태극기를 날리게 될 때 기쁨에 넘치는 뜨거운 눈물이 땅을 젹시었을 것입니다. 저 역 중국 북평(北平)에서 이날을 마지하던 그 심경 무엇이라 형용하랴 ── 철모를 때 마지한 기미(己未)년 삼일운동(三一運動)의 독립 만세가 조선 방방곡곡에 울리던 그해 보통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는데 왜기를 달지 않고 기렴사진을 찍겠다고들 한 후 지금부터 이십이 년 전 조선 소년운동 제일선(第一線)에 몸을 바쳐 투쟁하는 동안 그간 독사와 같은 왜경(倭警)에게 잡히어 거듭되는 유치쟝(留置場) 생활이며 형무소(刑務所)에 ‘형’을 받을 때 “오냐, 우리에게는 지금에 자라나는 우리의 어린 동무들이 있다. 우리는 우리 어린이에게 창조력(創造力)을 주도록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 이와 같이 웨치며 악전고투 오늘에 태(이상 1쪽)극기를 날리는 조선이라는 집안에서 창조를 할 또 창조성을 발휘할 세기는 닥치어 온 것입니다. 지금까지 사나운 바람을 해치며 앞으로 앞으로 전진하고 있든 우리의 소년 기수(少年旗手)는 더욱더욱 맹진할 소년 기수의 세기는 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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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소설 『소년 기수』는 지금부터 십육 년 전에 『조선일보(朝鮮日報)』 지상에 연작소설(連作小說)로 기재하게 되었던 것인데 집필(執筆)한 선생은 연성흠, 최청곡, 리정호, 정홍교, 방정환(延星欽, 崔靑谷, 李定鎬, 丁洪敎, 方定煥) 다섯 분이었던 바 사 회(四回)째 이 책을 발행하는 저자에게 와서 연재하여 나가든 중 일정 경무국(日政警務局)에서 금지령을 내리어 중단ㅎ게 되어 방 선생은 집필조차 못하였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중단된 것을 이번에 제기 북평서 오월 중순에 귀국하여 그때 그 환경으로 끝을 맺어 놓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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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문을 쓰며 원고지 위에 눈물을 한없이 젹시고 있으니 그것은 제가 조선을 떠나기 전에 조선 소년을 위하여 밤낮으로 분투하시던 방 선생이 이 세상을 떠나신 후 몇 해 후에 리 선생이 또한 별세하시었고 이번 귀국하니 또한 연성흠 선생이 이 세상에 게시지 않는 것입니다. 이 세 분 선생님은 전부가 사십 미만에 한참 일하실 나이에 조선 땅 위에 휘날리는 태극기도 못 보시었으니 애처러운 마음 진졍치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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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들이 조선을 위하여 여러분의 힘을 북돋아 주시던 남기고 가신 굳은 뜻과 지난날을 비롯하여 현재며 앞날에 있어서 새 조선 건설을 위하여 조선의 소년을 힘차게 지도하여 주시는 지도자 여(이상 2쪽)러분의 힘에 어그러지는 바 없이 조선의 어린 동무들은 새 조선의 건국(建國)을 위하여 남에게 의지하는 마음을 없애고 모든 일을 내 힘으로 창조하도록 굳센 조선의 일꾼 조선의 소년 기수가 되어 주시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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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이 책을 세상에 내어놈에 있어서 다망하신 중 만사를 헤아지리 않으시고 삽화를 넣게 해 주신 안석형, 노수현(安夕影, 盧壽鉉) 선생이며 표지를 그려 주신 이상범(李象範) 선생과 『소년 기수』의 집필인의 한 분인 최청곡 선생, 이 책을 발행ㅎ게 하신 손홍명(孫洪明) 선생에게 삼가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檀紀 四二七九年 九月 二十一日 어린이날全國準備委員會 會議室에서
丁 洪 敎 (이상 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