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와 부재 속에서 피어나는 기억의 풍경들
이송희
1. 적막을 두른 고독한 내면을 엿보다
박권숙의 「그리운 간이역」과 이태순의 「경건한 집」은 시조의 전통적인 율격을 따르면서 감정을 다스릴 줄 아는 탄탄한 언어 미학을 구축하고 있다. 이들 시집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배경은 그리운 사람의 부재와 고요가 공존하는 적막하고 고독한 내면이다. 이 적막한 공간에는 인적 드문 낡은 역이 있고 그림자를 벗어두고 하늘로 걸어가신 아버지가 있다. 쓸쓸하지만 따뜻한 기억의 뿌리는 줄기를 타고 하늘로 향한다. 하늘로 향한 그리움의 세목들은 이렇게 지나간 시간을 불러들이고 그 안에 온기를 불어 넣을 시인의 숨결로 인하여 오밀조밀 짜여 지는 것이다.
베르그송(Bergson, Henri-Louis)의 말처럼 기억은 의식이다. 시인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기억은 지금은 여기에 없는 것을 향한 그리움을 동반한 채 다양하게 포개져 정형의 틀 안에 오롯하게 담긴다. 시인의 경험과 감각적 사유들이 그리운 시간들을 불러내는 방식은 감정의 절제와 안정된 구도, 이미지의 세공 속에서 새로운 서정의 활로를 열고 있는 것이다.
2. 그리움에 베어진 가혹한 잔상들
- 박권숙 시집 그리운 간이역 (동학사․2008)
박권숙 시집을 읽다보면 시인의 오랜 경험의 기억에서 싹튼 그리움의 숨결들이 슬프지만 따뜻하게 스며든다. 그녀가 두고 온 기억의 간이역에는 슬픔을 으깨 먹으며 살아 온 시간과 세상을 떠났지만 여전히 시인의 몸 안에 신장 한쪽으로 숨 쉬고 있는 아버지가 있다. 투병 21년과 등단 17년의 시간을 훌쩍 넘긴 그녀의 다섯 번째 시집은 그렇게 ‘한 생애의 삽질로 다 퍼 올리지 못한’(「파토」) 슬픔을 두르고 우리에게 온다. 그녀의 시집에서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눈물’과 ‘울음’의 이미지는 그리움의 서식지를 맴돌며, ‘그리움에 베어진 가혹한 자상’을 남긴다. 시집의 맨 앞에 수록되어 있는 다음 시는 상처의 흔적들을 함축하고 있다.
울주군 서생 바다 아침 간절곶에 가면
해 뜨는 쪽으로만 목이 휘는 원추리꽃
눈물에 깊이 베여진 웃음같이 보였다
간절한 것이 숨긴 칼은 더욱 뜨겁다
그리움에 베여진 가혹한 자상이
내 몸의 어딘가에도 노랗게 피어 있다
- 「숨은 칼」
시인의 내면에 똬리를 튼 그리움의 잎들이 맨 먼저 가 닿는 곳은 을주군 서생바다 간절곶에 핀 원추리꽃이다. 화자의 눈에 포착된 원추리꽃은 해 뜨는 쪽으로만 목이 휘어 있다.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원추리꽃이 이곳에서는 눈물에 깊이 베여진 웃음같이 보이는 것은 해맞이를 기다리는 꽃과 간절한 그리움이 상처가 된 시인의 모습에 겹쳐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눈물’과 ‘웃음’이 사는 원추리꽃의 간절함 속에는 뜨거운 칼이 숨겨져 있다. 저마다 가슴 속에 품고 있는 그리움들은 가혹한 자상으로 시인의 몸 안을 노랗게 물들인다. 시인은 노랗게 핀 원추리꽃을 통해 자신의 몸 안에 아물지 않은 상처를 자각하며 내면을 뜨겁게 달구는 아픈 기억들을 불러내고 있는 것이다.
시인의 내면에 숨겨진 칼은 슬픔을 단단하게 벼릴 줄 안다. 슬픔이 ‘가슴에 눈물이 멍울져 있으시다면/……/인동의 그림자마저 추운 돌이’(「물로 쓴 편지」)되어, ‘적막에 돌덩이 같은 귀를 씻’어 낼 수 있으리라. ‘슬픔을 들켜 버린 노천 주막에 기댄 바다’, 겨울 감포는 생의 절반을 썰물로 내어주고도 ‘바람의 뼈대를 쥐고 울음을 참는 사내’처럼 우직하다. 시인은 기다림이 무엇인지를 행간마다 보여주고 있다. 세상의 울음을 받아내고 하늘의 소리와 빛을 다스린 빈 갯벌로 누울 것을 생각하는 바다. 먼 훗날 일어서기 위하여 먼저 무너질 줄 아는 그런 바다를 시인은 보여주고 있다. 그리움이 낳은 통점을 다스리는 과정은 노랗게 핀 ‘원추리꽃’을 거쳐 겨울 감포의 초췌한 모습으로, 하동 포구 ‘울음 만 평’ 몰고 있는 남도 사설 한 소절로 다가온다.
하지만 ‘불단지 활활 치솟는 그리운 울음’(「진달래 신명」)에 섞이지 않고 붉은 마음 삼키고 선 눈웃음’(「마애불」)을 지을 수 있는 것은 그리움이 상처가 된 것들 속에 단단한 탑이 있기 때문이다. ‘어둠에 홀로 길 내며 뼈가 굵은 울음’(「슬픈 뿌리」)을 품고 단단해졌다는 우금치의 앉은뱅이 돌무덤. 돌무덤에서 시인은 ‘맨손에 가시 돋친 하늘 꽉 말아 쥐고/부르르 주먹을 떠는’ 모습을 연상한다. 오랜 세월 아픔을 삭히는 동안 단단하게 벼려졌을 울음이 ‘꼿꼿이 몸을 일으킨 갑오년 탑’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중심을 휘돌고 간 뜨거운 길의 흔적’(「누구에게나 탑은 있다」)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신열 같은 바람을 온 몸으로 삭혀’내고 층층이 쌓인 돌이 석탑이 되는 풍경은 막막하지만 사랑을 기다리고 버틴 시간 뒤에 오는 것이기에 더욱 단단하다. ‘아프게 빛나는 돌의 깊은 중심’은 목숨을 걸었던 것들의 영혼과 ‘몇 생의 수천 갈래 눈물길’이 열리며 ‘적막이 다른 적막을 일으켜 세우는 힘’(「첫발자국」)으로 단단해진 돌의 상처들이다. 시인은 누구나의 가슴속에는 울음을 벼린 탑 하나가 있음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오랜 시간 다져진 울음이 단단한 돌이 되기까지 그 중심을 파고드는 그리움의 대상은 아버지이다. 그는 ‘여섯 식구 등에 얹고’ 평생을 흘러 다닌 사람이다. ‘길 하나 허물어/햇빛으로 세우던 집’을 다시 허물고 ‘달빛으로 더듬던 길’, 그 길에는 여섯 식구의 생계를 책임지며 자주 이사를 다니던 아버지의 고단한 삶이 묻어나 있다. ‘걸어서/은하 만 년을/가로질러 간 사람’, 아버지에게 ‘나는 아버지 손때 묻은 유품 한 점’(「딸」)으로 남아 있다.
지금은 ‘쟁쟁한 침묵이 되어 산천에 가 누우’신 아버지는 아무리 불러도 말이 없다. 하늘 간이역에는 ‘내파 중환자실 불빛 속을 날아올라’ ‘환히 불 켜진 별에 탑승하’신 아버지의 뒷모습이 보이고, 그 뒤로 ‘고단한 그림자 지고 아버지는 말이 없다.’(「빈손」) 아직도 그리운 역에는 ‘아버지 벗어 놓은 마르지 않는 시간’이 있다.
시인은 ‘마지막 꽃을 놓치고 등걸만 남은 고목나무’에서 ‘목숨의 한 벌뿐인 그림자 벗어 놓고/이승을 등지고 앉은’(「체취 - 다산에 섬이 있다 6」) 아버지의 등을 본다. 풍문이 들락거리던 한 생애의 빈 둥지는 그 화려함을 잃고 까맣게 타 버린 별만 남아 있다. 여섯 식솔을 껴안고 한 생을 희생하다 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바라지문 밖에까지 만조로 출렁’인다. 눈물과 울음이 마르지 않은 간이역에서 시인은 ‘백일 간 해풍에 말린 짜디짠’(「붉은 소금 - 다산에 섬이 있다 9」) 붉은 고독을 맛본다. ‘풍화된 백골로 피운 이 짜디짠 고독’을 음미할 줄 알기에 시인은 ‘잊혀진 지 오래된 사람들을 향하여’ 뜨거운 눈빛을 보내는 것이다. 박권숙 시집에서 우리는 그녀가 깔아 놓은 그리움의 행선지를 따라 ‘저 둥근/비애를 이고’ 걸어가는 우리들의 아버지를 만날 것이다. ‘부엌 응달 바구니/노숙의/양파 한 가족//얇은 껍질 한 겹으로/ 겨울잠 자고 있다//세상엔/껍질이라는/슬픈 아비가 참 많다’(「껍질」)
3. 경건한 집에 든 그리운 세간들
- 이태순 시집 경건한 집 (동학사․2008)
이태순 시집은 ‘오래 걸었던 그 길, 그냥 지나치지’ 않고 시인의 마음에 스친 아름답고 쓸쓸한 경험들로 인하여 보다 섬세하게 마음결을 다듬는 성찰의 시간을 담고 있다. 비어 있음과 고요함, 부재와 침묵의 시․공간적 이미지는 가난과 웃음이 하나였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으로 인하여 애잔한 빛을 발한다. ‘발 디딘 곳, 내 집이다 스스로 되뇌면서’ 살아 왔어도 ‘물속에 비친 제 모습이 서러’(「어둔리 살구나무」)운 것은 ‘둥글게, 모나지 않게 되돌아오는 산 메아리’(「청동 금탁」)같은 그리움이 마음을 파고들기 때문이다. 시인은 하늘에 뜬 기억이 별빛으로, 달빛으로, 때로는 소소한 바람으로 촉촉이 내려앉기를 꿈꾸며 고독한 세간의 목록들을 작성하여 경건한 집 구석에 차곡차곡 쟁여둔다. 시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다음의 시는 시인의 마음의 거처가 오래되고 비어있음을 알리는 아득한 신호를 보낸다.
가는 길 그 여름의 팔월 끝은 더 깊어져
짙게 드리운 그늘, 넓은 이파리 뒷등에는
바람만 들락거리는 얇디얇은 집 한 채
세상 가장 가벼운 집, 푸른 잎에 벗어 두고
나무 둥치 달라붙어 이젠 울지 않는 저 매미
경건한 빈 집 남기고 풍장 홀로 되어가네
- 「경건한 집」
이 시에서 묘사하고 있는 경건한 집은 팔월 끝자락, 이젠 울지 않는 매미의 빈 몸이다. 그것은 바람만 들락거리는 세상 가장 가벼운 집, 얇디얇은 집이다. 가벼운 몸을 푸른 잎에 벗어 두고 자신의 몸을 떠나 바람에 장사를 지내고 날아가는 매미. 여름 한 가운데서 울음으로 자신의 삶을 증명했다면, 이제는 가벼운 집마저 벗어 두고 더 이상 울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죽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시인은 그렇게 빈 몸으로 떠나간 매미의 모습을 ‘경건한 빈 집’으로 노래하고 있다.
시인이 노래하는 이 경건한 집에는 ‘가슴에 빈 집 먼저 든, 늦가을 저 노인들’(「쑥부쟁이」)이 살고, ‘바람 들고/비 젖어도/훅 끼친 아버지 발 냄새’(「봄, 마흔 지나」)가 스치는 ‘회색빛 긴 과수원 앞 덩그렇게 놓인 빈 집’(「고요리 사과나무」)이다. ‘싸리나무 물오리나무, 뒷등이 젖어 있는//그 집은 바람 들어도 나무 냄새가 났’(「적막한 뜰」)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경건한 집은 내가 비워 두고 온, 오래된 집 한 채이면서, ‘누군가 오래 살다 버리고 간 나무집’(「적막한 뜰」)이기도 하다. 적막과 고요가 숨 쉬는 고독을 두른 공간은 시인의 아버지에 대한 그리운 정경이 싹튼 곳이리라.
또한 시인은 가을이 물든 강원도 철원에 있는 도피안사라는 사찰에 들러 어깨 부딪쳐 피멍이 들어 있는 단풍 든 산을 바라본다. 거기에는 ‘이내 걸어가지 못해 손 안 닿은 집’이 있어 ‘나지막이 돌아앉은 마른 풀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렇게 마른 풀 울음소리처럼 삭고 나면 피안에 들 수 있을까. 시인의 물음 속에는 ‘타다 남은 장작 지펴’, ‘빈 들녘’을 환히 밝힐 날들이 자라고 있다. 그렇게 고요를 두른 곳에서, 시인은 불혹의 깊은 강가에 홀로 앉아 오랜 기억 속의 아버지와 살던 또 다른 집 한 채를 떠올린다.
구부린 새우처럼 야윈 등뼈 그 위로
잠시 내려앉았던 엷은 햇살 지나가고
일어설 힘조차 잃은 아버지는 애벌레다
부러진 발가락 사이 툭툭 힘줄 끊기고
마르고 들뜬 껍질 허물로 누워 있다
아버지 발끝에서 나는 갓 깨어난 흰나비
숨 몰아쉬며 몰아쉬며 가야 할 길 생각한다
펴지 못한 날갯죽지 슬프게 파닥이고
내 속엔 꼬물거리는 애벌레가 자란다
- 「애벌레」
‘주홍빛 칠 벗겨진 대문 틈새’(「봄, 마흔지나」)를 보면, 그곳에 아버지는 없고 봄빛만 가득하다. 아버지가 없는, 빈집. 마흔 나이를 다 벗어 둔 시인의 기억 속에 아버지는 ‘일어설 힘조차 잃은’ 한 마리 애벌레이다. 야윈 등뼈 위로 잠시 머물렀던 햇살은 건강하게 웃고 산 짧은 세월의 안타까움을 담고 있다. 부러진 발가락과 끊긴 힘줄과 마르고 들뜬 껍질 허물로 누운 자리, 시인은 그렇게,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아버지의 발끝에서 흰나비로 깨어나 또 다른 생명의 날갯짓을 한다. ‘숨 몰아쉬며 몰아쉬며 가야할 길’ 생각하게 하는 아버지의 슬픈 삶은 미처 펴지 못한 날개로 파닥거리며 화자의 몸속에 한 마리 애벌레로 꼬물거린다.
‘아버지 언제 가져 가셨는지 티눈이 없어졌다’(「티눈」) 늦가을 초성리역에 앉아 ‘기차가 지나’가는 풍경을 보고, ‘대합실 나무의자 위 익숙히 앉은 고요’(「초성리역」)을 쓸어 보는 화자의 젖은 기억 너머로 아버지가 온다. ‘너 먼저, 마시고 다오!’(「가을 손님-꿈」)하며 막걸리 한 사발 내미는 아버지의 따스한 어조가 애잔하게 고인다. 그렇게 시인은 아버지의 숨결을 느끼며, ‘마흔 살/막 돌아설 때’(「고욤꽃」)부터 고욤꽃을 키워왔던 것이다. 이태순 시의 미학은 그녀 안에서 새롭게 움트는 삶과 아름답고 쓸쓸한 모습으로 기억되는 아버지의 세간들을 품고 가야하는 풍경 속에 있는 것이다. 그녀의 시에서 부재는 또 다른 존재를 낳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4. 기억의 문을 나오며
박권숙 시인과 이태순 시인이 보여주는 서정적 풍경의 중심에는 ‘그리움’의 정서가 깃들어 있다. 이들 시집에서는 이미 지워져버린 대상의 고유한 존재감, 말하자면, 경험의 구체성에서 빚어지는 시인의 충만한 감각과 서정적 풍경이 되살아난다. 현재를 떠난 기억의 고유한 풍경들이 시의 언어를 통해 재현되는 것이다. 이러한 고유한 경험의 산물들을 감각적으로 재현하기 위해 시인은 인적이 드문 간이역과 경건한 마음의 집을 드나들며 ‘아버지’의 그림자를 떠올리고 가난하지만 웃음이 많았던 기억을 되새긴다. 아직 나의 것이 되지 못한 아버지가 세운 사랑의 축대는 나의 신장 한 쪽에서 영원히 머물러 있거나 내 안에서 한 마리 애벌레로 꿈틀거린다.
그녀들의 시편은 나와 관계 맺는 다양한 양상의 그리운 시간들을 불러내기 위해 그것을 떠받치고 있는 고즈넉한 유년의 마당과 한적한 내면을 동시에 드러내는 것이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의 예술작품의 근원에 의하면 예술가는 예술작품의 근원이고 예술작품은 예술가의 근원이라고 하였다. 시는 시인의 서정이 상상의 토대 위에서 감각적으로 구성되는 경험의 재현이라고 할 수 있다. 박권숙과 이태순의 시집은 아득한 기억이 겹쳐 다양한 지층을 형성한 가운데서 쓸쓸하지만 따뜻한 그리운 시간들을 떠올리며 그리움의 한 장 한 장을 들춰 보여주고 있다. 이들 시편의 미학은 대상의 부재 속에서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그리움의 내밀한 풍경을 제 속으로 끌어안는 데 있을 것이다.
* 이송희 1976 광주 출생, 2003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전남대 국문과 박사, 우리시․ 21세기 동인, 전남대․조선대 강사
[출처] 고요와 부재 속에서 피어나는 기억의 풍경들|작성자 예쁜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