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해설 삶에서 인식한 갈등의 정화, 그 시적진실 --차경녀 시집 『태양을 끌고 가는 여자』 김 송 배 (시인. 한국문인협회 전 부이사장) 1. 삶과 세월의 동행, 그 행간에서 현대시의 창작 동기나 발상은 삶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우리 인간들이 간직한 오관(五官-眼耳鼻舌身)을 통해 생성하는 현재의 감각이 어쩌면 지금까지 살아온 체험이 재생하여 유사한 상황을 이루었거나 거기에서 회상된 이미지가 바로 시적으로 동기(motif)가 되어 새로운 진실의 세계를 창조하게 된다. 이러한 시적 동기는 소재와 주제 등의 기초적인 것을 포함해서 시창작의 출발점이 되고 여기에 직감적인 시인의 영감이나 지성적인 심리가 발현되어 한 편의 시를 창작하게 되는데 이때 시인은 예리하고 명민(明敏)한 시각으로 사물을 투명하게 관찰하면서 그들이 전해주는 경이로운 메시지를 오감(五感-視聽嗅味觸)이 무언으로 전해준다. 여기 차경녀 시인이 상재하는 시집 『태양을 끌고 가는 여자』에서 포괄적으로 접할 수 있는 부분은 대체로 두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게 되는데 첫 번째로 삶이나 산다는 것, 인생과 세월 등에서 창출한 두려움, 죄송함 그리고 사랑의 언어가 시적으로 형상화하는 부분과 또 하나는 소록도, 석왕사근처, 단양팔경, 송추계곡, 을왕리 등의 어느 지역에 남아있는 체험과 소나기, 어머니, 단풍, 바람, 태양 등등의 현실적인 관념적 소재가 시적으로 화합하는 시법을 간과(看過)할 수 없게 하고 있다. 차경녀 시인은 우선 삶과 인생문제와 세월(시간성)을 동행하면서 그의 시적 감응으로 ‘나’와 화해하는 시법에 시선을 멈추게 하고 있다. 이는 먼저 자아(自我)를 인식하면서 존재의 근원이나 삶의 지향점을 탐색하는 그의 지적인 이미지의 창출에서 명징(明澄)한 인생관을 확인하는 시적 진실을 이해하게 한다. 멈추면 쏟아질 거 같아 무작정 걸었다 처음엔 보도블록 위를 걸었어 나무사이도 걷고 풀숲도 꽃길도 징검다리도 건너고 그러다 이른 곳이 나였어 거기 서 있는 내가 나를 불렀어 나무가 걷고 돌이 걷고 그렇게 세상이 걸어갔어 그 뒤로 내가 걸었지 삶이 죽음을 생각한다 휠체어에 앉은 뒷모습 떨어지는 손 숙여지는 고개 그게 다였어 살아있는 자에게 뒷모습으로 생의 막을 내린다 죽은 자를 부르는 소리 목 터져라 부르는 소리 이제 마지막이리라 눈을 떴어 애달픈 것들을 그저 가슴 저밈으로 그리워한다는 것 생의 끝에서 무엇 하나 소원 아닌 게 없다 하지만하지만 그것은 끝까지 묻어야하는 후회다 피할 수 없을 땐 의지하는 거야 --「산다는 것은 세월을 견디는 거야」 전문 그는 보드블록이나 나무 사이 그리고 풀숲과 꽃길, 징검다리 등을 무작정 걷고 있다. 무엇을 위해서일까. 걷지 않거나 걷다가 멈추면 무엇인가 쏟아질 거 같은 위기의식이 팽배해 있다. 그 무엇이 바로 ‘나였어 거기 서 있는 내가 나를 불렀’기 때문이다. 모든 세상 만물과 ‘나’는 동행하고 있다. 왜 그랬을까. 바로 ‘삶이 죽음을 생각한다’는 어조(語調)의 단정적인 그의 사유(思惟)가 생사의 분기점에서 잠깐 방황하고 있다. 그는 ‘그게 다였어’라고 체념하면서 산다는 것과 살아있는 자에 대한 ‘생의 마지막’을 예감하는 몽상(夢想) 같은 것이 그의 뇌리(腦裏)에서 떠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비로소 늦게나마 ‘눈을 떴어’ 거기에는 애달픔과 그리움이 가슴을 저미고 있었으나 ‘생의 끝’에서 그는 문득 ‘소원’과 ‘후회’라는 심리적인 변한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들을 그는 ‘산다는 것은 세월을 견디는 거야’ 그리고 ‘피할 수 없을 땐 의지하는 거야’라고 긍정의 메시지를 우리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어느 날 삶을 잘라내고픈 것이 어린 시절 짝사랑처럼 묻혔지만 지금에 와서 헛살았다고 기억을 비벼댄들 알고 사나 누구는 삶은 누구에게나 처음이고 매일 낯 설은 것을 이젠 행복을 찾기보다 빈 잔 들고 기다릴 때 누군가 잔을 채우는 그것으로 족하다 --「동창회」 중에서 차경녀 시인은 다시 어느 날 ‘동창회’에 참석했다가 ‘삶을 짤라내고픈’ 서글픈 상념에 잠긴다. 그러나 이것은 ‘세월’과 ‘살아준 것’의 화해에서 그는 고마움을 생각하게 한다. 그는 헛살았다는 기억을 지금에 와서 상기해 보지만 그는 삶의 행로를 누구나 처음 경험하는 시점에서 ‘이젠 행복을 찾기보다 // 빈 잔 들고 기다릴 때 / 누군가 / 잔을 채우는 / 그것으로 족하다’는 결론으로 삶에 대한 기다림의 이미지가 확연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삶의 환경이나 여건에서 ‘오늘도 저리고 아린 발걸음에 / 이 순간 / 살아내야 하는 노동 / 가물은 몸에서 뿜어 나오는 눈물을 / 다시 받아낸다 / 누구도 함께 할 수 없는 / 지금 살아내야 한다(「노동」 중에서)’거나 ‘살고 싶었다 살아내고 싶었다 / 누구의 잘못은 아니지만 / 삶이 통째로 무기징역이다(「소록도」 중에서)’라는 등의 어조로 살아가는 현장을 그의 혜안으로 접맥(接脈)한 이미지들이 삶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2. ‘두려움’과 현실에서의 시적 사회성 차경녀 시인은 이와 같은 삶(혹은 인생)에서 약간 충격적인 실재(實在)의 상황에서 당황하면서도 비평적인 시혼(詩魂)을 발현하고 있다. 가령 작품 「두려움」 전문에서 ‘그림자는 어둠이다 / 아직 개짓는 소리가 들리고 / 설익은 별들이 나뭇가지에 서성인다 /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불 꺼진 인가 몇 채 // 허벅지를 타고 오르는 차가움은 / 앙상한 가지에 새순이 돋는 거겠지 / 손가락조차 보이지 않는 그림자 품에서 / 숨조차 신호 대기 한다’는 시적 정황(情況-situation)은 그가 현실 인식에서 무엇인가 상당한 갈등요소가 내재되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는 이것을 두렵다고 표현하고 있다. 나뭇가지에 결려서 서성이는 별이나 깊은 산 속에서 불이 꺼져있는 인가 몇 채 등이 그의 심저(心底)에는 우리가 갈구(渴求)하는 인생론이나 가치관을 벗어나 비인도적인 행태에서 두려움을 감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빈 화분으로 와야한다 애초에 화분 속엔 씨앗이 없다 욕심껏 뿌린 씨앗으로 꽃을 피웠으니 그 것은 내 것이 아니다 빛을 발하는 꽃 속에 숨어있는 찢겨진 시간을 보라 힘이 있는 자는 죽어야 한다 힘을 가지기위해 가난한 자를 짓밟는 자 힘을 가지고 남을 넘어트리는 자 힘을 뱉어 수많은 사람들을 우롱하는 자 그들의 화분은 독초로 만발해 있다 세상은 온통 힘으로 넘쳐나 여기저기 갑질로 터져 나온다 힘은 나누는 것이다 힘 있는 자가 힘을 숨기고 죽는 순간에 많은 사람들에게 힘이 다시 태어난다 남을 섬김으로, 배려함으로 힘의 부활이 일어난다 --「상투적 언어」 전문 그렇다. 우리들이 보편성을 띤 상투적인 말로 나누는 대화에서 직감적으로 흡인할 수 있는 언어가 ‘힘’이다. 이 힘은 가진 자 또는 있는 자의 횡포가 포괄하는 어떤 무기와 같은 능력을 가지게 되는데 이를 차경녀 시인은 ‘화분의 독초’라고 비유하고 있다. 그래서 ‘가난한 자를 짓밟’거나 ‘남을 넘어트리거나’ 또는 수많은 사람들을 우롱하는 행패를 자행하여 우리 사회를 어지럽히는 현상을 좌시(坐視)하지 못하는 정의감이 이미지로 투영되고 있다. 그가 ‘세상은 온통 힘으로 넘쳐나 / 여기저기 갑질로 터져 나온다’는 현실적인 고뇌가 작품으로 승화할 때 이를 문학의 사회성이라고 한다. 인간들은 어쩔 수 없이 고립된 상태에서 생활할 수 없기 때문에 상호 교류하고 집단으로 사회를 형성하게 되는데 우리 시인들의 작품도 이러한 사회를 떠나지 못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발생하는 다변적인 상황들이 우리들의 진정어린 순수한 생활이 모순되거나 불합리 등에서 갈등과 스트레스가 노출되는 시적 경향을 많이 대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차경녀 시인도 이와 같은 현실을 간과하지 못하고 상투적인 형태에 불과하지만 이를 ‘힘은 나누는 것이다 / 힘 있는 자가 힘을 숨기고 죽는 순간에 / 많은 사람들에게 힘이 다시 태어난다’는 어조로 시의 기능으로서의 교훈적인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우린 때론 가난해야한다 가난한 자가 더 가난해지던지 부자가 가난해지던지 소위 중산층이 가난해지던지 가난은 불편한 것뿐이라고 우아한 말로 위로하는 자는 더 가난해져야 한다 너는 때론 넘어져야 한다 아이가 넘어지는 것보다 자주 넘어져야 한다 절룩거리는 인생보다 더 넘어져야한다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째 일어난다는 고상한 말도 넘어져야 한다 너와 나는 때론 병들어야 한다 병이 나서 병든 자보다 가난해서 병든자보다 넘어져서 병든자보다 더 많이 병들어야한다 --「날고 싶다」 전문 차경녀 시인은 이러한 사회적인 병폐나 불안, 위기감에서 벗어나 올바른 정서와 생할방식으로 인생을 구가(謳歌)해야 할 세상과 인간들이 오로지 자신의 영달과 합리화를 위해서 자행(恣行)하는 과욕(過慾)을 질타하는 시법을 다양하게 응용하고 있다. 그는 부자나 가난한 자 또는 중산층 모두 ‘더 가난해져야 한다’라고 역설적으로 어조를 높인다. ‘절룩거리는 인생보다 넘어져야’하는 무리도 있다. 그래서 그는 결론적으로 ‘너와 나는 때론 병들어야 한다 / 병이 나서 병든 자보다 가난해서 병든자보다 / 넘어져서 병든자보다 더 많이 병들어야한다’라고 우리 모두의 그릇된 사고방식을 채찍질하면서 ‘날고 싶다’는 변혁의 희구(希求)를 갈망하고 있어서 시의 사회성의 실감이 우리들을 공감 영력으로 통쾌하게 끌어들이고 있다. 그는 다시 작품 「장마」 중에서 ‘또 하나의 창문을 닫는다 / 돈 사랑 배신 분노 기쁨 죽음 / 뼈 속까지 물든 우울을 힘껏 밀었다’거나 작품 「나누어살기」 중에서도 ‘제 이름으로 된 통장 하나 없어도 / 찢어진 주머니 사이로 손을 잡고 / 클락션 소리보다 더 큰 웃음으로 / 존재에 대한 풍요로움을 / 우리들의 빈주머니로 / 화끈하게 털어낸다’는 사회적 현실문제에 그의 사유는 머물고 있다. 일찍이 문학비평가 매슈 아널드는 시란 본질적으로 인생 비평이라고 했다. 또한 시는 인간의 가장 완벽한 이야기 속에서 진리를 말할 수 있다라는 말에서 우리는 시와 시사성(時事性)의 상관성을 이해하게 되는데 차경녀 시인은 이러한 시사적인 현실문제에 민감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시에는 이러한 시사성을 저항시 또는 참여시, 민중시 등의 이름으로 한때 성행한 적이 있었는데 일제 침략기에는 애국적인 저항시, 4.19학생혁명 소용돌이에서는 사회 참여적인 시사성으로 발현되고 있으며 그 후 노동시, 청치참여시 민중시 등으로 우리 시단에서 그 경향을 살필 수가 있었다. 이러한 시적 경향은 단순한 사회적인 불만과 불평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런 모순의 갈들을 해소하고 시와 인간과 나아가서는 사회 현실과 화해할 것인가라는 시정신에 그 기저(基底)를 두고 있는 것이다. 3. 시간과 사계(四季)의 자연 섭리의 순응 차경녀 시인은 하루 동안 전개되는 시간성과 일 년 동안 자연 섭리에 따라서 변화하는 계절적인 시간성에 민감한 사유를 투영하여 우리 인간들과 밀접한 이미지들을 창출하고 있어서 주목하게 된다. 옛날 공자의 말씀 중에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있고 일년의 계획은 봄에 있다(一日之計 在於寅 一年之計 在於春)는 말과 같이 하루의 생활은 새벽부터 시작하는 시간관념이 철처하다.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고 있다 Α--------------Ω 막힌 가슴으로 책도 읽는다 사진 속 박혀버린 눈에 붉은 금이 그어지다 머리를 감고 옷을 입었다 떠나기로 했다 정확히 말하면 떠밀려갔다 불빛에 손목 잡힌 어둠과 넓어진 도로를 천천히 달려도 지나간 세월은 반토막이다 길을 잃은 길에서 멈추어버린 가슴 텅 빈 도로에 떨어진 가난한 추억 --「새벽 세시」 전문 그는 ‘새벽 세시’부터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텔레비전을 보다가 책을 읽다가 출근을 하지만(그는 ‘떠나기로 했다 / 정확히 말하면 떠밀려 갔다’고 말한다.) 어둠 속 도로을 달리고 있다. 그러나 거기에 투영되는 것은 ‘지나간 세월은 반토막이다’라는 어조로 새벽의 여운을 토로하고 있다. 그의 ‘새벽 세시’는 그의 상념에서 다시 상기되는 것은 ‘텅 빈 도로에 떨어진 가난한 추억’ 뿐이다. 그의 이 추억에는 ‘길을 잃은 길에서 / 멈추어버린 가슴’의 허전하고 고독한 삶의 흔적을 되뇌이고 있다. 이러하듯이 그의 시간은 일찍이 플라톤의 말처럼 미래 영겁(永劫)의 환영으로 어떤 환영의 메시지가 그의 사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새벽은 남모르게 수줍고 차가운 바다에서 태어난 금은빛 여신이라는 어느 시인의 시와 같이 새벽의 시간성과 시인의 화해가 남다르게 형상화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작품 「하루」 중에서도 ‘집과-직장’, ‘출근-퇴근’, ‘생각-현실’, ‘오만-자학’ 그리고 ‘가면-존중’이라는 현실과 사유의 중간 지점에서 화합하거나 상호 이완(弛緩)하는 갈등의 요소들이 잘 나타나고 있는데 이를 그는 ‘시(詩) / 꽃무늬 블라우스에 몸빼바지 입었네’라고 ‘하루’를 응축시키고 있다. 동서남북 마음껏 흘렀더라 꽃향기 담고 새 발짝 적시며 돌고 돌은 세상 남을 위해 모습도 없이 견뎌온 시간 봄 선물이라도 주듯 보들보들한 싹 내 밀어내고 내리치는 빛을 피해 바삭이는 가을 그대 살갗에 꿈을 묻히고 켜켜이 쌓이는 찬 이슬로 스미네 비바람 홀로 맞으며 이파리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여름 사느냐 죽느냐 두렴움에 떨었더라 꽃등 시리게 조여드는 겨울 아첨꾼 되어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단단히 움켜잡고 다시 졸졸 흐르는 봄을 따라 돌아간다 --「얼음이 되기 전에」 전문 차경녀 시인은 이제 하루에서 벗어나 일년의 이미지를 잔잔한 화폭에 투영하고 있다. 사계의 변화무쌍한 섭리에서 추출하는 이미지는 다채롭다.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과 겨울의 ‘돌고 도는 세상’의 다양한 형상에서 그는 우선 봄을 ‘남을 위해 모습도 없이 / 견뎌온 시간’의 선물로, 여름은 ‘사느냐 죽느냐 두렴움에 떨’면서 ‘이파리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형상으로, 가을은 ‘그대 살갗에 꿈을 묻히고 / 켜켜이 쌓이는 찬 이슬로’ 그리고 겨울은 ‘이 모양 저 모양으로 / 단단히 움켜잡고’ 다시 봄을 기다리는 자연섭리의 순응이 서정적으로 현현되고 있다. 이러한 시간성은 만유(萬有)의 생물들이 ‘얼음이 되기 전에’ 생명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사계절의 순환적인 의미를 통한 인간들의 인내와 생사에 대한 깊은 성찰의 이미지를 투영하고 있어서 이 세상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희비(喜悲)가 거기에서 생성하고 소멸하는 철리(哲理)를 이해하게 한다. 그는 이처럼 시간(혹은 세월)에 대한 현장에서 감응하는 현실적인 상황은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어서 그의 시간성과의 화합은 생활속의 깊은 정감작인 시적 진실로 명징하게 발현되고 있는 이미지와 메시지를 동시에 적시하고 있다. - 서릿발 시린 계절이 수없이 지나가고 / 푸른 솔가지 사이로 더미구름 비늘구름 양떼구름 이 / 은백으로 피어나면 / 흥분한 먹구름이 시샘하여 욱지르다 / 천둥번개로 미물(微物)을 휘두른 후 고요를 찾는다(「불두화」 중에서) - 어제 밤 무슨 일이 있었냐구요 / 지나 온 세월 버거워서 왔냐구요 / 아님 그림움에 끝을 자르기 위해서 / 파도타기를 하는 수백만 마리의 새떼 / 작은 깃털 달고 함께 달려보고 싶 습니다(「꽃지해수욕장」 중에서) - 세상을 빠져나가는 일은 아주 쉽습니다. / 분주했던 힘들었던 속상했던 / 아지랑이처럼 팔 랑거리는 시간들 / 꼬깃꼬깃 속주머니 속에 넣어 둔 천 원짜리처럼 / 잊어버렸습니다(「일 터」 중에서) - 이 맑은 오후 봄날에 / 듣고 싶은 소리를 / 찾아줘!(「소리」 중에서) 4. ‘복사골 어머니’와 모정의 사랑학 차경녀 시인에게서 깊게 천착할 수 있는 시적 제재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의 메시지가 감동적이다. 그는 ‘어느 날엔가 먼 길 다니시던 아버지와 동네 품앗이로 받은 / 어머니의 대가로 붉은 머리올린 기와집 // 뒷마당 물 한바가지 먹어야 나오는 우물펌프는 / 쇳내가 나고 뻑뻑해 어머니는 서울 고모 집만 다녀오시면 / 수돗물은 미끈미끈해서 얼굴도 하얘지고 때도 잘 빠진다고 / 뒤뜰이 고향인 우물은 더 붉게 고개 숙였지(「멀어지는 기억」 중에서)’라는 그의 사유에는 모정(母情)에 대한 사무침이 더욱 짙게 부각(浮刻)되고 있다. 이처럼 그는 사모곡을 되돌리면서 안타까움과 동시에 그리움의 사랑학을 시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데 일찍이 김남조 시인은 ‘어머니! 이렇게 부르면 지체없이 격렬한 전류가 온다. 아픈 전기이다, 아프고 뜨겁고 견딜 수 없는 전기이다’라고 그의 글 「그 먼 길의 달빛」에서 말했듯이 어머니에 대한 사랑의 깊이는 누구도 함부로 측량하기가 어렵다. 몇 가지 안 되는 옷이 삐딱한 장롱 안에 취업대기자로 있다 수년째 노래 교실을 다니시는 팔순의 어머니는 순댓국 네 그릇 값이 아까워 자주 목청을 닫는다 잊혀진 피난둥이 난리에 고국도 아닌 타국에서 태어나 늙어가는 고향을 외줄로 삼고 배가 고파 물로 허기를 채웠다 배불러 죽겠다는 기억상실증의 오늘을 살며 허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 개사한 아이들의 동요는 어머니에겐 극심한 관절통이다 올 추석 명절 장롱을 열어보고는 저 옷들을 입을 일이 없네 명절이 지나면 외출을 해야겠다고 불확실한 생각을 입고 있는 엄마 우리엄마 --「외 출」 전문 그는 현실적으로 당면한 ‘엄마 우리엄마’는 ‘수년째 노래 교실을 다니시는 팔순의 어머니’이며 ‘기억상실증의 오늘을 살며 / 허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 / 개사한 아이들의 동요는 어머니에겐 / 극심한 관절통’의 고초(苦楚)를 겪고 있는 노년의 실상에서 그가 감당하는 영육(靈肉)의 번민은 크게 시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다시 ‘올 추석 명절 장롱을 열어보고는 / 저 옷들을 입을 일이 없네’라는 단념적인 어조에서 그의 모정은 극치에 이른다. 그러나 ‘명절이 지나면 외출을 해야겠다고 / 불확실한 생각’을 어머니의 생각으로 대치하는 ‘외출’의 주제는 그의 시심이 효심(孝心)으로 전환하는 시적 전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는 어머니에게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면서 모정에 대한 사념(思念)의 이미지를 분사(噴射)하고 있다. ‘엄마 인생이 얇은 시멘트 위로 뚫고 나와 / 검붉은 띠를 두른다’거나 ‘찬바람도 문을 열려 애쓰는데 / 엄마는 아직도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죄송합니다」 중에서)’라는 죄송하고 송구스러운 마음을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오월의 간이역에 당신이 내리던 날 목숨 다한 꽃의 비상 잠시 빛나는 그 모습 한 평생을 바라보던 당신에게로 이제 고개 들어 마주합니다 바람으로 가득 찬 내 사랑 까칠한 나무피를 벗겨낸 자리에 복사꽃 속에 숨은 이름 엉엉 빠지는 그리움에 무작정 용서했던 기억만으로 당신에게 나는 갑니다 한 줄 흔적도 없는 삶을 왜 그리 분주하고 힘들게 밟아 왔는지 당신은 알면서도 그냥 이 계절 한창 피어오르면 되는 것을 그러다 놀란 듯 떨어지면 되는 것을 오랜 세월 혼수상태 된 희망 그 속에서도 붉은 등으로 우뚝 서서 환한 살빛을 쏘아대는 당신은 풍성한 표적입니다 사랑하라고 사랑하라고 떠나기 전에 사랑하라고 바람에 순종하는 문풍지처럼 오늘은 복사꽃 바람이고 싶습니다 --「복사꽃 어머니 」 전문 그는 이 작품에서는 ‘복사꽃 어머니=당신’이라는 의인법으로 시를 구성하여 전개하고 있는데 이 의인화는 인간 이외의 사물을 인간에다 비유하고 인간의 사고와 생활에 적용시킴으로써 어떤 상황의 실감을 만들어내는 수사법이다. 차경녀 시인은 복사꽃dmf 어머니로 변환시키고 그를 ‘당신’이라는 인칭대명사를 대입해서 작품을 창작하고 있어서 사물(복사꽃)을 인격화하는 시법으로 많이 활용하고 있다. 그는 ‘오월의 간이역에 당신이 내리던 날 / 목숨 다한 꽃의 비상 잠시 빛나는 그 모습 / 한 평생을 바라보던 당신에게로 / 이제 고개 들어 마주합니다’라는 상황 설정에서부터 당신에 대한 ‘무작정 용서했던 기억’의 그리움을 재생하고 있다. 그리고 ‘한 줄 흔적도 없는 삶을 왜 그리 분주하고 / 힘들게 밟아 왔는지 당신’에 대한 회상이 ‘오랜 세월 혼수상태 된 희망’으로 변환하고 있어서 그가 창출하려는 모정의 실체는 바로 마지막 연에서 적시한 ‘사랑하라 사랑하라 / 떠나기 전에 사랑하라’이다. 그러나 그는 ‘바람에 순종하는 문풍지처럼 / 오늘은 복사꽃 바람이고 싶습니다’라는 기원의 의지를 표명하면서 우리들의 공감을 유로하고 있는 것이다. 는 이 밖에도 ‘너’라는 이인칭대명사를 화자(話者-persona)로 등장시켜서 사물을 의인화(작품 「단풍 등」)하지만 작품 「사랑앓이」 「생각이 잠들지 않는 날」 등에서는 ‘너를 그리다 너를 사랑하다 / 벙그러진 조약돌 / 길 잃은 눈동자가 밟힌다’ 또는 ‘뜨거운 찻잔을 기다림으로 만지며 / 서투른 삶의 걸음으로 / 비틀거렸던 너’라고 직접적인 관념언어로 ‘너’를 통해서 시적인 진솔한 대화를 교감하고 있다. 이제 차경녀 시집 『태양을 끌고 가는 여자』에서의 중요하게 어필하는 대목은 삶과 사랑의 복합적인 동행에서 지적인 혜안으로 통찰(通察)한 인본주의(humanism)적인 진실의 탐구를 정리해야겠다. 이 시집의 표제시가 되는 「바람이 달다 태양을 끌고 가다」 전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사랑과 이별의 대칭적인 개념의 실생활(real life)이 그의 내면에서 아직도 용암으로 이글거리고 있음을 엿보게 한다. 너를 비운만큼 세상이 들어오는 거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되는 것이지 너로 인해 가려졌던 다른 소리 다른 길 다른 기쁨 다른 슬픔 다른 사랑 힘이 들면 숨만 쉬자 이별 후 존재하는 과거 나를 털어버린 여자 구토 너무 먹었다 터지는 이별 자유가 쏟아진다 그는 자아의 인식에서 세월이 용해하는 삶의 향방과 현실적인 모순 그리고 자연섭리의 순응 등이 결국 생명의 모태인 모정의 사랑학까지 연결된 시법을 구사했지만 아직도 ‘너’를 통해서 인식하게 된 비유는 세상과 어떻게 살 것인가 또는 기쁨과 슬픔 그리고 사랑 등이 그의 영육에서 숭엄(崇嚴)한 내면세계 곧 시정신으로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데 그는 이별과 존재라는 상충된 영역의 이미지를 시적으로 그 화해의 해법을 탐지(探知)하고 있는 것이다. 차경녀 시인의 괄목(刮目)할만한 예지(叡智)가 충만한 시적 비유는 직면한 현실과 정신세계의 융합으로 참다운 진실을 창조하려는 염원이 곧 그의 인생관임을 확인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의 시세계에 찬사를 보낸다. 시집 발간을 축하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