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이 선생님께서 아파서 빠지는 것은 괜찮지만 A처럼 빠지지는 말라고 했다고 말씀하셨다는데 이게 무슨 뜻으로 얘기하셨는지 궁금해서요. 설명 부탁드립니다.”
한참 출근 준비하느라 정신없는 아침에 문자가 왔다. 혹여나 코로나와 관련된 아이들이나 학부모 연락일까 급히 열어보았다가 기분이 나빠졌다. 아니 나빠졌다는 표현보다는 더 강하게 말하자. 무지 열을 받았다. 그동안 A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챙겨주고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애썼는데 다짜고짜 반 아이들 앞에서 우리 애 흉봤니? 라고 따져 묻는 듯한 메시지를 보내다니...A엄마는 내가 진짜 반 아이들 앞에서 저렇게 말했으리라고 생각했을까?
A는 2021년 코로나가 한참 심했던 때 담임했던 우리반 학생으로 개학일에 한 번 학교에 오고 그 뒤는 아프다며 계속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당시는 코로나가 심해서 1/3 등교를 하던 때였는데 A는 2주는 아프다고 등교를 하지 않고, 1주는 온라인 수업을 들으며 3월을 보내고 있었다. A의 엄마는 ‘장염이다, 생리통이다, 코로나 유증상을 보인다’ 등의 이유로 아이가 아프다고 하다가 상담을 하러 학교에 오시라고 하자, “사실은요...” 하며 이야기를 꺼냈다. A가 다른 반 B라는 친구 때문에 힘들어 도저히 학교에 가지 못하겠어서 자기가 변호사를 알아보며 고소를 준비하려고 한다고.
A엄마의 말을 듣고 마음이 분주해졌다. 어디까지 사실인지 조사해야 하지만 학폭까지 갈 수도 있는 사안 같았다. 일단 엄마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학교에서 상황파악을 하고 아이들 이야기를 듣고 판단해야하니 A를 학교에 꼭 보내라고 했다. 그리고 한 달 뒤 이 사건은 정리되었다. 사실 둘은 초등학교 때부터 묵은 감정이 쌓여 있던 사이였는데 일방적인 비방이나 폭행이 오고간 것은 아니어서 A와 B의 학부모는 학교에서 만나 서로 사과하고 일을 마무리 지었다.
언뜻 잘 마무리 된 것처럼 보인 그 사건은 사실 2학년 담임과 나에게 상처를 남겼다. A의 엄마는 이혼을 하셨는데 자꾸 할아버지, 즉 본인의 아버지를 개입시켰고, A의 할아버지는 전화를 해서 나에게 B의 엄마와 B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을 비속어를 쓰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쏟아내셨다. 그리고 교감선생님과 2학년 담임, B의 엄마가 만난 자리에서도 교감선생님께 삿대짓을 하며 고성을 지르셨다. A는 피해자인데(A, B 서로 잘못한 게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왜 따져 묻느냐며 얼마나 소리를 질렀는지 교장선생님까지 놀라 달려오셨다. A는 큰소리로 울고 할아버지는 고래고래 소리 지르다 아이를 달래고... 그 과정을 바라보는 우리는 너무 놀랍고 당황스러워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그저 바라 볼 수밖에 없었다. ) 게다가 말릴 새도 없이 A엄마까지 가세해 교감선생님께 큰소리로 훈계를 하는 것을 보고 심한 무력감을 느꼈다.
그 뒤에도 A는 아프다는 이유로 자주 결석을 계속 했고, 때로는 연락이 안 된 상태로 미인정 결석을 하기도 했으며 갑자기 체험학습을 간다거나 생리 때문에 인정결석을 하겠다고 통보하기도 했다. 온라인 수업 때는 자느라 매번 출석을 제때 안 해서 매일 전화로 A를 깨웠다. 나는 점차 너무 피곤하고 A 때문에 우리반 다른 아이들에게 신경을 많이 못써주는 상황이 짜증나기 시작했다.
그러던 9월 어느 날, A엄마가 따져 묻듯이 나에게 문자를 보낸 것이다. 매일 먼저 A에게 전화하며 늦더라도 꼭 학교에 오라고 다독이던 나에게. 자기의 담배를 딸이 가져와 학교 화장실에서 피워 선도위원회까지 여느라 정신없이 바빴던 나에게, 온라인 수업 할 때마다 자느라 전화를 받지 않던 모녀 때문에 속 썩었던 나에게. 출결확인서 조차 제때 제출하지 않아도 독촉하지 않았던 나에게(그렇다. 억울해서 A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열거하는 중이다.) 전화로 물어본 것도 아니고, 문자로 떡하니 보내놓고 설명을 하라고?
종례를 마치고 교무실로 돌아와 전화를 걸어 그런 말은 한 적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안 온 사람 이야기를 아이들 앞에서 할 정도로 어리석은 사람은 아니다.) 엄마는 결국 “알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끊었지만 기분이 정말 언짢았다. 그동안 그래도 A를 우리 반에서 제일 마음에 두고 신경 쓰고 걱정했는데 엄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던 건가? 마음은 통한다고 하니 내가 싫어하니까 그 엄마도 나를 싫어했을까?(그렇다. 나는 무책임한 A의 엄마가 싫었다.)
하지만 A에 대한 나의 마음은 단순한 하나의 감정은 아니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귀찮고 짜증날 때가 많았다. 하지만 어느 날, 엄마가 새벽 1시에 들어온다고 하고는 연락 없이 안 들어와 울다가 새벽 4시에 잤다는 A의 말을 듣고 나니 마음이 정말 복잡해졌다. 매번 장염이라면서도 저녁마다 자주 마라탕 사먹고 돌아다녀서 식단 신경 써야 한다니 집에 먹을 것이 없다고 할 때도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엄마가 새벽까지 노느라 연락이 안 돼서 울다 잤다니....A는 그 때 무슨 마음이 들었을까. 도대체 A의 엄마는 그렇게 해야만 했던가.
그 후 온라인 수업이 끝나고 등교할 때면 하리보 젤리를 몇 십 개씩 가져와 자기를 도와준 친구들에게 주겠다고 돌리는 A를 보니 짠한 마음이 시시각각 생겨났다. 친구들이 인생의 전부라며 우정을 갈구하듯 이 교실 저 교실 돌아다니다 상처받고 내 앞에서 친구들 욕을 하는 A에게 하루는 말했다. “그냥 걔네들이랑 놀지마. 맨날 상처주고 너를 그렇게 대하는데, 이번 기회에 너도 멀어지는 게 어떠니?” 그러자 A는 “선생님, 저는요. 바보 같지만요, 그 친구들이 너무 좋아요. 너무...헤헤헤” 하며 활짝 웃었다. 바보처럼...아, 그 순간 나는 A를 그냥 인정하기로 했다. 친구가 전부인 아이. 학교는 죽어도 오기 싫은 아이. 공부보다 중요한 게 학교 밖에 많은 아이.
그렇다고 내가 A를 사랑으로 감싸 안아주며 따뜻하게 대해 준 것은 아니다. 연락을 하지 않고 지각하거나 결석을 하면 혼을 내고 어떻게든 중학교는 졸업을 해야 하니 정신 차리라고 자주 말했다. 밤늦도록 인근 학교 아이들이랑 놀이터에서 논다는 제보가 들어오면 밤늦게 다니면 안 된다고 잔소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A에게 냉정한 말, 명령하는 말을 많이 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의 마음이 제대로 전달이 안 된 것일까? 분명 나는 A를 걱정하는 마음이 더 컸었는데... A가 밤새 만들어 온 빼빼로를 받았을 때 무척 기뻐하며 고맙다고 했는데.... 나에게 A는 그저 그런 담임이었던 것인가? A는 2학년 겨울방학에 학폭 문제를 일으켰고 교육청까지 드나들며 굉장히 시니컬한 모습을 보이고 3학년에 올라갔다.
교직생활 동안 내가 마음을 주고 신경을 썼던 학생이 내 마음을 알아줄 때도 있었고 그러지 않을 때도 많았다. 반면에 교사로서 마땅히 해야 할 정도의 관심을 주었을 뿐인데도 엄청난 감사의 편지를 받을 때도 있었고, 나에게 욕을 하거나 나에 대한 뒷담화를 굳이 전해주는 학생 때문에 속상한 적도 있었다.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나 가치관은 크게 바뀌지 않았는데 이렇게 아이들마다 반응이 다른 것은 무엇 때문일까?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는 늘 어렵지만 그 중 교사로서 학생들과 맺는 관계가 참 어렵다. 좀 더 솔직해야 할까? 글쓰기처럼 구체적으로 나의 마음을 표현하고 전달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아직도 멀었구나. 구체적으로 나의 진심을 학생들에게 표현하는 길이 어렵고도 멀게만 느껴진다.
첫댓글 복직하면 담임교사를 자원하려고 했는데…과거가 떠오르며 갑자기 명치가 막히는 듯하면서 답답했어요. 정말 폭언과 모욕으로부터, 왜곡된 말들로부터 좀 안전해졌으면 좋겠어요. 선생님, 푹 쉬세요
오늘 스승의 날 이네요. 우주진주 주황 유주님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은유샘도요.
제가 만났던 선생님들을 생각해 봅니다. 참 거시기한 분도 계셨지만. 대부분 참 좋은 선생님 이셨어요. 그 만큼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 큽니다. 선생님에 대한 사회의 시선이 예전만큼 뜨겁진 않아도.. 우리 모두는 샘들을 존경하고 좋아해요. ^^ /
우주진주님의 글을 통해 학생.학부모와의 관계를 엿볼수 있었습니다. 사람 관계가 다 내맘같지 않네요. 역시 쉬운건 없어요. 가까운 사람 . 먼사람에게 상처 받고 / 또 위로받고 .. 어려워요. 답도 모르는데 저는 왜 댓글을 쓰고 있나요 ...ㅎㅎ / 뒤풀이에서 계속 연구해 봐요 / 글 공유 감사해요 ~
학교 선생님들 정말 힘드시겠어요. 진심은 통한다고 생각하지만 상대마다 다르고 진심이 전달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을 겪기도 하는 것 같아요. 내 맘 몰라주면 서운하죠. 최선을 다해 친절하게 진심을 표현하고, 그 이후에 대해서는 쿨해지기. 쉽진 않지만 그렇게 해야 상처 덜 받고 이 일을 지속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오늘 스승의 날인데... 오늘 만큼은 행복한 기억으로만 채워지길 바랄게요, 선생님.
학생 A만 상대하는 게 아니라 학부모, A의 할아버지 까지. 감정 노동의 영역이 끝도 없이 넓어지네요.
이 글에서 우주진주의 감정선을 따라가며 읽었어요. 화남->분주함->일이 마무리되고 마주한 나의 상처->무력감->짜증->억울함->언짢음->A를 걱정하는 마음까지. 우주진주의 감정에 이름표를 붙여줘서 좋았어요. 이 글을 쓰며 우주진주가 후련해졌을까? 후련해졌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고된 감정노동, 부정적인 감정을 마주하면서도 학생과 맺는 관계를 고민하는 우주진주가 대단하고 멋있어요. 우주진주의 진심을 표현하는 방법을 찾게 되면 마지막 문단을 추가해주세요 ;-)
글속에 우주진주의 복잡한 감정들이 잘 녹아있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으로 진심을 전달할 방법을 찾는 선생님.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하며 고민하는 선생님. 저는 스승의 날이면 꼭 생각나는 선생님이 계시거든요. 선생님의 진심을 느꼈고 항상 고마운 마음으로 산답니다. 어딘가에, 스승의 날이면 우주진주를 생각하는 학생도 있을거같아요. 글 감사합니다^^
첫 문장에서 긴장감이 확 느껴졌구요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다가와서 몰입하면서 읽었습니다! 피상적으로만 접했던, 학생과 관계를 맺는 교사의 심정을 엿볼수 있어 좋았고, 현장에서 학생들에게 진심을 전한다는게 얼마나 어려울지 감히 짐작할순 없지만, 본인의 감정과 말을 복기하며 되돌아보는 우주진주의 진심이 진하게 묻어나는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