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은 지 아마 5년이 지났을 것 같다. 마음이 힘들 때 깊이 와 닿은 내용은 밑줄 쳐 가며 생각에 잠겨 가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법정 스님이 읽은 책들 중에 스님이 사랑하는 책을 소개하면서 그와 관련된 법정 스님의 말씀도 곁들여 있다. 무려 50권의 책이 소개되어 있으니 책의 두께 또한 두껍다. 모든 책을 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수 없기 때문에 이 책의 장점은 50권의 좋은 글을 접할 수 있어 좋다. 그러니 50권의 책을 빠르게 읽은 느낌일랄까.....그 후 작은 아들이 입대를 하고 휴가를 나왔을 때 책을 가져가 읽고 싶다하여 이 책을 추천해주었다. 부대에 가지고 가더니 제대 할 땐 두고 와...... 아쉬웠는데, 부대에 있는 아들들이 읽을 거라 생각하니 그리 아깝지 않았다. 그러다, 직장 도서관에서 책을 대여하여 읽으면서 사서에게 이 책을 추천하였더니 이 책을 구비해두었다 한다. 한 번 더 읽고 싶어서 빌려왔다. 읽는 느낌이 그 당시와 또 다르지만 여전히 좋은 책임은 확실하다. 법정 스님이 소개한 책들 중 깊이 읽고 싶은 책은 더 상세히 읽어보려고 메모도 해두었다. 그 중 사려고 교보문고에 검색을 해보니 절판이거나 아예 구매 신청도 하기 힘든 책들이 많아 아쉬웠다.
이미 읽은책을 읽는 느낌.............옛친구를 만난 것 같다는 글이 참 좋다.
새로운 형식의 삶에 대한 실험
_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월든>
인간과 땅의 아름다움에 바침
_ 장 피에르와 라셀 카르티에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
'아마도 당신들이 가지고 있는 좋은 옷과 가구와 재산들이 지나치세 많기 때문에, 거기에 마음을 빼앗겨 차분히 자신을 되돌아볼 시간이 없을 것이오.'
모든 사람이 우리처럼 행복하지 않다는 건가요
_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오래된 미래>
그곳에선 나 혼자만 이상한 사람이었다
_ 말로 모건 <무탄트 메시지>
포기하는 즐거움을 누리라
_ 이반 일리히 <성장을 멈춰라>
모든 여행의 궁극적인 목적지는 행복
_ 프랑수아 를로르 <꾸뻬 씨의 행복 여행>
자신과 나무와 신을 만나게 해 준 고독
_ 장 지오노 <나무를 심은 사람>
한 걸음씩 천천히 소박하게 꿀을 모으듯
_ 사티쉬 쿠마르 <끝없는 여정>
승려의 삶을 버림으로써 그대는 참된 구도의 길을 찾게 된 것이다.
현실을 저버린 채 구도의 길을 걸어서는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다. 그리고 기억해 두라,
승려의 직분에 매이지 않고 자유로워진 것처럼 이 세상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마라.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 만약 강물이 흐르지 못하고 고여 있다면,
그 물은 썩어서 악취를 풍기고 모기 따위의 해충이 생겨날 것이다.
행복이 당신 곁을 떠난 이유
_ 버트런드 러셀 <행복의 정복>
나무늘보에게서 배워야 할 몇 가지 것들
_ 쓰지 신이치 <슬로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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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라, 이 세상에 있는 신성한 것들을
_ 류시화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신은 인간을 가꾸고, 인간은 농장을 가꾼다
_ 핀드혼 공동체 <핀드혼 농장 이야기>
모든 사람은 베풀 것을 가지고 있다
_ 칼린디 <비노바 바베>
우리가 언제 어떻게 생을 마감하게 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법. 그러나 매일의 삶은 잠으로 끝나게 되며, 매일의 경험은 죽음을 조금씩 맛보는 것이 아닌가. 따라서 만일 우리가 매일 자기 전에 마지막 장면을 잘 해낸다면, 생애의 마지막 시간이 다가올 때 우리는 승리를 손에 넣게 된다.
이대로 더 바랄 것이 없는 삶
_ 야마오 산세이 <여기에 사는 즐거움>
나는 걷고 싶다
_ 다비드 르 브르통 <걷기 예찬>
걷기는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발로 걸어가는 인간은 모든 감각기관의 모공을 활짝 열어주는 능동적 향식의 명상으로 빠져든다. 그 명상에서 돌아올 때면 가끔 사람이 달라져서 당장의 삶에 매달리기보다는 시간을 그윽하게 즐기는 경향을 보인다.
아프더라도 한데 어울려서
_ 윤구병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신에게로 가는 길 춤추며 가라
_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한쪽의 여유는 다른 한쪽의 궁핍을 채울 수 없는가
_ 장 지글러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마른 강에 그물을 던지지 마라
_ 장 프랑수아 르벨·마티유 리카르 <승려와 철학자>
당신은 내일로부터 몇 킬로미터인가?
_ 이레이그루크 <내일로부터 80킬로미터>
가장 자연스러운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_ 후쿠오카 마사노부 <짚 한 오라기의 혁명>
큰의사 노먼 베쑨
_ 테드 알렌·시드니 고든 <닥터 노먼 베쑨>
풀 한 포기, 나락 한 알, 돌멩이 한 개의 우주
_ 장일순 <나락 한 알 속의 우주>
삶은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
_ 아베 피에르 <단순한 기쁨>
두 발에 자연을 담아, 침묵 속에 인간을 담아
_ 존 프란시스 <아름다운 지구인 플래닛 워커>
가을매의 눈으로 살아가라
_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생명의 문을 여는 열쇠, 식물의 비밀
_ 피터 톰킨스·크리스토퍼 버드 <식물의 정신세계>
우리 두 사람이 함께
_ 헬렌 니어링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축복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_ 레이첼 나오미 레멘 <할아버지의 기도>
인간의 얼굴을 가진 경제
_ E.F. 슈마허 <작은 것이 아름답다>
바람과 모래와 별 그리고 인간
_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_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
빼앗기지 않는 영혼의 자유
_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나무는 자연이 쓰는 시
_ 조안 말루프 <나무를 안아 보았나요>
용서는 가장 큰 수행
_ 달라이 라마·빅터 챈 <용서>
테제베와 단봉낙타
_ 무사 앗사리드 <사막별 여행자>
꽃에게서 들으라
_ 김태정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꽃 백 가지>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_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우리에게 주어진 이 행성은 유한하다
_ 개릿 하딘 <공유지의 비극>
세상을 등져 세상을 사랑하다
_ 허균 <숨어 사는 즐거움>
지구에서 가장 뜨거운 심장
_ 디완 챤드 아히르 <암베드카르>
바깥의 가난보다 안의 빈곤을 경계하라
_ 엠마뉘엘 수녀 <풍요로운 가난>
내 안에 잠든 부처를 깨우라
_ 와타나베 쇼코 <불타 석가모니>
자연으로 일구어 낸 상상력의 토피아
_ 앨런 와이즈먼 <가비오따쓰>
작은 행성을 위한 식사법
_ 제레미 리프킨 <육식의 종말>
결론을 내렸다, 나를 지배하는 열정에 따라 살기로
_ 빈센트 반 고흐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성장이 멈췄다, 우리 모두 춤을 추자
_ 격월간지 <녹색평론>
내일의 세계를 구하는 것은 바로 당신과 나
_ 제인 구달 <희망의 이유>
내 안의 ‘인류’로부터의 자유
_ 에크하르트 톨레 <NOW―행성의 미래를 상상하는 사람들에게>
어디를 펼쳐도 열정이 넘치는 책
_ 다치바나 다카시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법정 스님의 글과 법문에서 언급된 책들
“우리가 책을 대할 때는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자신을 읽는 일로 이어져야 하고, 잠든 영혼을 일깨워 보다 값있는 삶으로 눈을 떠야 한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펼쳐 보아도 한 글자 없지만 항상 환한 빛을 발하고 있는 그런 책까지도 읽을 수 있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법정 스님의 글 ‘무엇을 읽을 것인가’ 중에서
나는 이 가을에 몇 권의 책을 읽을 것이다. 술술 읽히는 책 말고, 읽다가 자꾸만 덮이는 그런 책을 골라 읽을 것이다. 좋은 책이란 물론 거침없이 읽히는 책이다. 그러나 진짜 양서는 읽다가 자꾸 덮이는 책이어야 한다. 한두 구절이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주기 때문이다. 그 구절들을 통해서 나 자신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양서란 거울 같은 것이어야 한다. 그 한 권의 책이 때로는 번쩍 내 눈을 뜨이게 하고 안이해지려는 내 일상을 깨우쳐 준다.
그와 같은 책은 지식이나 문자로 쓰인 게 아니라 우주의 입김 같은 것에 의해 쓰였을 것 같다. 그런 책을 읽을 때 우리는 좋은 친구를 만나 즐거울 때처럼 시간 밖에서 온전히 쉴 수 있다.
(책날개 / <무소유> 중 ‘비독서지절’ 19쪽)
우리가 책을 대할 때는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길 때마다 자신을 읽는 일로 이어져야 하고, 잠든 영혼을 일깨워 보다 값있는 삶으로 눈을 떠야 한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펼쳐 보아도 한 글자 없지만 항상 환한 빛을 발하고 있는 그런 책까지도 읽을 수 있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10쪽 /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중 ‘무엇을 읽을 것인가’ 17쪽)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자칫 빠져들기 쉬운 것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에 읽히는 경우이다. 내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어느새 책이 나를 읽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주객이 뒤바뀌어 책을 읽는 의미가 전혀 없다.
이런 때는 선뜻 책장을 덮고 일어서야 한다. 밖에 나가 맑은 바람을 쏘이면서 피로해진 눈을 쉬게 하고,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면서 기분을 바꾸어야 한다. 내가 책에서 벗어나야 하고 또한 책이 나를 떠나야 한다. 표현을 달리하자면, 책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비로소 책을 제대로 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책을 가까이 하면서도 그 책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아무리 좋은 책일지라도 거기에 얽매이면 자신의 눈을 잃는다.
책을 많이 읽었으면서도 콕 막힌 사람들이 더러 있다.
책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읽을 수 있을 때 열린 세상도 함께 읽을 수 있다.
책에 읽히지 않고 책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