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 언니에게
목련화
대학 입학해서 언니를 만났으니 벌써 40여년의 세월이 흘렀어요! 1년 재수를 해서 대학에 들어온 언니는 늘 나보다 지혜로웠고 재치가 있었지요. 국문학과에 입학해서 수업도 같이 듣고 점심도 항상 같이 하면서 언니와 나는 친자매 이상으로 돈독한 사이가 되었지요! 개망초가 흐드러지는 캠퍼스 한쪽에 앉아 우리는 시대에 대한 고민도 하고, 각자의 집안 이야기도 하면서 많은 얘기들을 나눴던 것 같아요! 학교 방송국 아나운서였던 언니의 그 맑고 고운 음성은 점심시간 캠퍼스의 분위기를 한껏 높여 주었었죠! 하루 전 준비해둔 녹음 방송이라 언니와 나는 그 음악방송이나 캠퍼스에 관련한 뉴스를 교정의 소나무 아래에서 들으면서 서로 피드백을 헤주면서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어느 날이었어요! 언니가 서울대 다니는 학생과 미팅을 하게 되었는데 좋은 감정으로 만나고 있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언니의 얼굴은 살풋 홍조를 띄며 잔잔한 미소를 머금었었죠. 언어학을 지도하시는 J 교수님께서 너희 둘은 맨날 그렇게 붙어 다니냐며 농담조로 혹시 ‘레즈비언’같다고 할 정도였으니 우리는 이성도 잘 만나지 않고 둘만 열심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때 언니가 연애를 한다니 내가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몇 개월 후 언니는 그 서울대생과 헤어지겠다고 제게 말해 왔어요! 그 친구에 비해 언니가 많은 게 부족한 것 같아서 보내야겠다는 거였어요. 저는 사랑하면 서로 만나야지 왜 이별을 생각해야 하는 거냐며 언니랑 입씨름을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영문을 모르는 제게 ‘사랑하니까 보내주는 거야’했지요. 나는 그때도 지금도 그때의 순수한 청춘의 사랑법이 무엇인가에 대한 현명한 답을 내리지 못 하고 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언니는 지금의 형부를 만나 곧바로 결혼을 했지요! 출판사에 다니고 있던 제가 개봉동에 사는 언니를 찾아 갔을 때, 언니는 첫 아이를 낳고 가정생활에 충실한 주부였어요. 오랜 만에 만난 제게 맛있는 식사를 대접하고, 집을 나서려는 제게 신발장 위에 있는 종이로 접은 감꽃을 보여 주면서 ‘내가 하는 부업이야’라고 하며 쑥쓰러워 했어요. 나는 그것을 보고 눈물이 날 뻔 했어요. 이쑤시개 같은 것에다 종이로 감아 올린 아주 작은 감꽃은 세상에서 제일 예쁘기도 했지만, 제겐 또 세상에서 가장 슬픈 꽃이기도 했거든요. 이것이 생활이고 현실이구나 했어요. 언니는 그렇게 절약하면서 지혜롭게 살림을 꾸려갔죠. 언니가 산본, 안산, 시화, 지금의 죽전으로 이사 오기까지 두 딸아이를 모두 출가시키고 손주들이 태어나서 잘살고 있고, 나도 결혼을 해서 두 딸 아이들과 잘 살아가고 있으니 언니와 나는 욕심부리지 않고 일상에 감사하며 잘 살아왔던 것 같아요.
그런데 3년 전 언니가 대장암이라는 병에 걸렸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어요. 애들 다 키우고 이제 행복한 시간을 보내야 할 때 언니의 소식은 충격이었어요. 항암치료를 무려 20번이나 하는 투병생활을 했을 때 한번도 같이 해주지 못한 제가 원망스러웠어요. 백혈구 수치가 낮아져 항암을 할 수 없다는 진단을 받고, 온갖 과일을 넣고 ‘과일탕’을 해먹었더니 좋아졌다며 너도 힘들 때 끓여 먹으라며 오히려 저를 걱정해 주는 언니를 보면 저는 참 행복한 사람이구나 하고 존재의 이유를 새삼스럽게 느꼈답니다. 죽도록 힘든 시간에 있으면서도 그 사이 저를 걱정해 주다니, 언니처럼 저를 위해주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을 만큼 고마웠어요.
다행히 언니의 병이 지금은 말끔하게 치유가 되어서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하느님께 무한 감사를 드리는 요즘입니다. 얼마 전 1년 여만에 만나 얼굴을 보았는데 여전히 예쁜 모습으로 잘 살아가고 있어 이제는 마음이 놓인답니다. 애들 둘 다 출가하고 걱정거리도 없으니 이제 남은 시간 언니를 위해 여행도 하고 즐겁게 지내시기를 소망합니다. 저도 열심히 살다 시간을 내어 해외여행 가자는 언니와의 약속을 곧 지키도록 할게요. 고마워요, 언니.
첫댓글 대학생 때 만난 언니에게 쓰셨군요. 목련화님처럼 고운 마음을 가진 분 같아요. 살다보면 서로 바빠서 오랜 시간 함께할 수가 없겠지요. 하지만 세월은 기다려주지를 않는답니다. 많이 늦지 않은 날 일박이라도 하면서 옛날로 돌아가 보세요. 아름다운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누구에게나 삶은 고난의 연속인가봅니다. 내 고난에만 빠져 허우적 거릴때 남은 다 여유롭게 보이는 것은, 그들이 그 고된 삶안에서도 이 목련화의 언니처럼 남을 돌아보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어서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를 돌아보는 여유, 내 고난 뒷면에 이미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은혜를 볼 줄 아는 여유, 그것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네요. 아름다운 삶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대학 시절에 만난 1년 위인 친구 같은 언니와 있었던 화기애애한 이야기와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자세히 써 내려갔습니다. 언니는 대장암까지 앓아 항암 20번에 투병을 견뎌내어 지금은 치유되었다고 하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목련화님이 조금 더 안정을 하고, 쉬게 되면 두 분이 좋은 여행 다녀오십시오. 아주 좋아 보입니다. 고맙습니다.
네! 선생님들의 말씀처럼 어서 좋은 시간을 많이 갖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그 언니에게 준 사랑보다 제가 언니의 사랑과 관심을 더 많이 받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늘 베푼 사랑보다 상대방으로부터 더 많은 사랑과 정성을 받으며 살고 있어서
이제는 제가 더 많이 베풀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열심히 노력하며 화이팅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