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李箱)을 필사(筆寫)하다/고경숙-
저녁을 필사할 때 바다는 막 해가 지고 있었다
나의 외출은 노을의 점도에 달려있다 오늘처럼 붉은 하늘이 묽게 퍼지면 배 손님들이 모이고
나는 바다 쪽에서 횟집을 응시하며 기다린다
물빛 원피스 바람을 일으키는 애인은 단체손님을 받느라 휘뚜루마뚜루 횟집 주방을 잘박거린
다 발목이 지탱하는 하얀 각도에 비해 너무 많은 빛을 하사한 일몰에 대해 뭉크가 횟감으로 올
랐다가 하이데거가 오르며 왁자지껄 떠든다 고상한 낚시꾼 놈들이다
주말의 항구는 숙박을 예견한다 간판 주변으로 반짝이는 꼬마 전구를 세다 아래층에서 신호가
오면 조용히 방을 빠져나온다 이층 나의 방은 새벽 배를 탈 저들에게 내어주고 나는 항구가 잠
들기를 기다려 홀 한쪽에서 새우잠을 자다 새벽에야 올라간다
불현듯이나 뜻밖에 일어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가끔 손님이 없다고 찌푸리며 만 원짜리 한
장을 건네는 애인은 시 나부랭이나 끄적이는 내가 싫지는 않은 눈치다 나는 횟집에서 가급적
멀리 떨어진 가게에서 막걸리 한 병과 담배 한 갑을 산다
내 동선은 일관성이 있다 그림처럼 일어나 그녀와 눈을 피하고, 그녀의 주방에서 걸리적거리
지 않을 시간에 요기를 하고, 이층 창으로 내다보이는 바다를 멍청히 바라본다
부지런한 바다는 벌써 배를 몰고 나가고, 송송 땀 밴 그녀가 설친 잠을 잔다 파도만도 못한 힘
없는 내 다리에서 근육이 빠져나가는지 자꾸 파르르 떹린다
-詩 전문 계간지 『포엠포엠』 2019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