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체논쟁 (1509)
라파엘로
라파엘로(Raffaello, 1483-1520)는 1483년에 우르비노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조반니 산티는 화단의 주목을 받지 못하던 평범한 화가였고,
라파엘로가 12살 때인 1494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어머니 마자 디 바티스타 차를라는 8살 때 돌아가셨다.
일찍 부모를 여윈 라파엘로는 숙부 밑에서 자랐지만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온화한 성품으로 주위 사람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라파엘로의 미술적 재능을 발견한 이는 화가 페루지노였다.
1499년에 페루지노의 문하생이 된 라파엘로는 22살 때까지 도제교육을 받았다.
그는 페루지노의 작업장에서 그림뿐 아니라 광범위한 전문지식을 습득했다.
페루지노의 화풍은 라파엘로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1504년에 우르비노를 떠나 르네상스 예술의 중심도시 피렌체로 옮긴 그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접하고는 충격을 받는다.
두 거장의 그림을 본 뒤 그는 자신이 한없이 작아보였다고 고백한다.
4년간의 피렌체 생활은 라파엘로에게 예술세계에 눈뜨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그는 르네상스의 보편이상주의를 추구한 프라 바르톨로메오와의 만남을 통해
독특한 소묘법과 폭넓은 구도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초기 르네상스 양식을 이룩한 자연주의의 선구자 마사초의 옛 작품도 연구했다.
훗날 라파엘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와 어깨를 겨눌 정도의 예술적 성취를 이뤘지만
그의 예술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두 명의 대가였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라파엘로는 다 빈치의 한계를 꿰뚫어볼 줄 아는 심미안도 갖췄다.
특히 라파엘로는 다 빈치를 능가하는 새로운 인물형을 창조해냈다.
그가 만들어낸 둥글고 온화한 얼굴은 단순하고 전형적인 인간의 감정을 드러내는 한편
숭고한 인간 본래의 모습으로까지 승화시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라파엘로의 세속적인 성공은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부름을 받으면서 시작된다.
그는 1508년 고향 선배였던 건축가 브라만테의 소개로 로마 교황청에 입성한다.
당시 율리우스 2세는 르네상스 시대에 가장 뛰어난 예술가들을 불러 모았다.
그 무렵 미켈란젤로도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영묘와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제작하기 위해 바티칸에 머물러 있었다.
율리우스 2세는 4세기에 지은 교회를 허물고 새로운 성 베드로 대성당을 짓는 일을 브라만테에게 맡겼고,
라파엘로에게는 ‘서명의 방’(Stanza della Segnatura)이라고 불리는 바티칸 대법원실의 프레스코 장식을 맡겼다.
이 방의 네 벽에는 철학, 신학, 시학(예술), 법학을 주제로 선택했는데,
1508-09년에 그린 <성체논쟁>은 그 중 신학을 주제로 한 것으로,
라파엘로가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작품이고, 라파엘로의 특징인 완벽한 구도와 이상미가 잘 드러난다.
그는 교황의 부름과 시대의 사명에 충실했다.
그는 그림들의 내용에 관한 교황의 세부적인 요구사항을 들어주었다.
교황은 라파엘로에게 마땅히 존경받아야할 교회의 성인들과
인문주의와 르네상스 사상의 선구자들과 지인들을 그려달라고 주문했다.
<성체논쟁>이란 제목은 16세기 후반에 바사리에 의해 <미술가열전>에서 붙여진 제목이지만
오히려 이 작품에는 성체에 대한 찬양의 기운이 감돌고,
라파엘로는 이 작품에 교회와 진리의 승리를 함축적으로 표현해냈다.
라파엘로의 원근법적 구도와 인체, 자연을 재현하는 화풍에 의해
고전주의 미술이 지향한 균형, 조화, 비례, 질서, 안정된 이미지를 담아냈고,
색채의 구사는 인물들의 몸짓이나 동작을 조화롭게 어울리도록 연출했다.
이 작품은 이상화된 풍경을 배경으로 천상과 지상의 영역을 한 화면에 묘사하고 있고,
바닥의 원근법 선의 소실점에 위치한 지상의 제대에 놓인 성체는
천상의 삼위일체이신 성부와 성자와 성령과 수직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천상의 맨 윗자리에 계신 성부 하느님께서는 왼손에 보주를 들고 오른손을 들어 세상을 축복하고 계신다.
성부 뒤편으로 천상을 상징하는 금빛 천장과 구름 사이에서는
천상군대가 성부를 호위하고 있고, 금빛 빛살이 하늘에서 땅으로 쏟아지고 있다.
성부 아래로 손과 옆구리에 상처를 입은 ‘성자’ 예수님이 금빛 만돌라와
청색 띠에 있는 아기천사들에게 둘러싸여 두 팔을 벌려 평화를 빌고 있다.
흰옷을 입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에서 빛살이 퍼져나가고, 예수님의 후광도 십자가 모양이며,
예수님께서 앉은 구름 의자를 아기천사들이 떠받들고 있다.
성자 오른쪽에서는 성모마리아가 죄인들을 위해 전구하고 있고,
성자 왼쪽에서는 세례자요한이 갈대십자가를 들고 오른쪽 손가락으로 예수님을 가리키며
저분이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예수님의 좌우 옥좌에는 신약과 구약에 등장하는 성인들이 열 명 앉아 있는데,
가장 왼편 끝에는 열쇠를 쥔 성 베드로가 보이고, 그 옆으로 야고보와 복음사가 요한이 있으며,
수금을 연주하는 다윗과 로마의 부제순교자 라우렌시오가 앉아 있다.
가장 오른편 끝에는 칼을 든 성 바오로의 모습이 보이고,
그 옆에 단도를 든 바르톨로메오와 복음사가 마태오가 있으며,
증언 판을 들고 있는 모세와 첫 부제순교자 스테파노가 있다.
성자 아래로 날개를 활짝 편 흰 비둘기 모양의 성령께서 금빛 원 속에 보인다.
양옆의 아기천사들은 교회의 승리를 적은 책을 펼쳐 들고 있다.
성령을 중심으로 지상을 향해 길게 뻗은 황금색 빛은 언제나 우리를 향하고 계시는 성령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지상의 아래 제대 정중앙에는 예수님의 몸인 성체가 현시되어 있다.
상단 천상의 공간으로 천사를 비롯한 신구약의 성인들이 자리한다면,
하단 지상의 공간으로 교회의 승리를 증언한 교부들이
라파엘로가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들과 뒤섞여 성체를 찬미하고 있다.
제단에 앉아 있는 네 명의 교부는 예로니모와 그레고리오, 암브로시오와 아우구스티노이다.
예로니모는 불가타 성경번역으로, 그리고리오는 성가와 전례서편찬으로, 암브로시오는 설교로,
아우구스티노는 진지한 대화로 성체성사의 신비를 증언하고 있다.
아우구스티노 뒤에 수염을 기르고 서 있는 교황은 율리우스 2세이다.
당시 교회법은 교황이 수염을 기르는 것을 금지했지만
율리우스 2세는 자신과 이름이 같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갈리아인들에게 학살당한 자기 동료들의 복수하기 전에는
면도를 하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이를 실천한 것을 흉내 내어
스스로 프랑스와의 싸움에서 이길 때까지 수염을 기르기도 했다.
그의 좌우로 수도복을 입은 성인은 성체찬미가를 쓴 토마스 아퀴나스이고,
추기경 모자를 쓴 성인은 ‘세라핌 박사’로 수많은 글을 남긴 보나벤투라이다.
보나벤투라 뒤에 화려한 옷을 입고 선 교황은 식스토 4세이다.
그는 율리우스 2세의 삼촌으로 사제가 빵과 포도주를 축성하는 순간
빵과 포도주는 예수님의 몸과 피가 된다며 성체성사의 신비를 공포했다.
그 뒤로 월계관을 쓴 <신곡>의 저자 시인 단테를 비롯하여
당대의 예술가들이 성체의 신비에 대해 토론을 벌이고 있다.
왼쪽 배경의 건축 중인 건물이나 오른쪽의 반쯤 지어진 대리석 건물은
모두 재건 중이던 성 베드로 성당을 떠올리게 하는 장치다.
성체 주변에는 과거와 현재의 교황과 주교, 성인과 신학자들이
성체의 의미에 대해 활기차게 지적으로 토론하고 있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는데,
제대 아래에 사자 뒤에 수도복을 입은 탁발성인이 프란치스코이다.
그들 중에는 라파엘로를 교황에게 추천해 준 건축가 브라만테가
대머리 백발의 모습으로 조수와 함께 책을 펼쳐들고 왼쪽 난관에 기대어 있고,
그 뒤에는 금발의 젊은 라파엘로를 추천하는 녹색 옷을 입은
우르비노 공작 프란체스코 마리아 델라 로베레 등도 있는데, 그는 교황가문의 사람이다.
교황 율리우스 2세가 싫어했던 교황 알렉산더 6세를 비판했다가 화형을 당한
수도복을 입은 사보나롤라의 모습도 왼편 뒤쪽에 보인다.
인문주의자 첼리오 칼카니니는 라파엘로에 대해 이런 평가를 내렸다.
“로마를 건설하는 데는 고대의 수많은 영웅들과 오랜 세월이 필요했고,
로마를 파괴하는 데는 수많은 적과 수 백 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이제 라파엘로는 로마 안에서 새로운 로마를 발견해냈다.
찾아내는 데는 위대한 사람이 필요하지만 발견은 신(神)이 주관한다.”
직사각형 모양의 서명의 방 네 벽면 중 마주보는 넓은 두 벽면에 그려진
<아테네학당>과 <성체논쟁>은 분리된 주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고
한 쌍을 이루는 하나의 이미지, 하나의 도상학적 의미체계를 이룬다.
[출처] 성체논쟁 (1509) - 라파엘로|작성자 말씀과 성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