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탐험사 100장면 35 - 세계 일주 비행을 성공하다 175일간 지구를 일주한 미국 스미스 항공대(192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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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4.03.18. 19:02조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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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탐험사 100장면
세계 일주 비행을 성공하다
175일간 지구를 일주한 미국 스미스 항공대(1924년)
요약 1924년, 미국 스미스 항공대는 더글러스 월드 크루저 복엽기 4대를 타고 세계를 도는 데 성공한다. 스미스 비행대는 175일 동안 일흔세 군데를 들러 4만 2,389km를 날았다. 당시 유럽이 독주하던 비행 역사의 주도권이 이 탐험을 계기로 미국에 옮겨지게 된다.
미국의 첫 승리를 환영하는 뉴욕 시민들
1924년을 전후하여 영국 · 이탈리아 · 포르투갈 등 여러 나라가 세계 일주 비행을 시도했지만 북반구 전역에서 뒷바라지해야 하는 어려움 때문에 미국 한 나라만이 성공했다.
올콕과 브라운이 대서양을 건넌 이후 장거리 비행 시대가 활짝 열렸다. 그들의 뒤를 이어 쉴틈없이 새로운 영웅이 쏟아져 나왔다. 1919년에는 스미스 형제(로스 스미스 · 키스 스미스)가 영국에서 오스트레일리아까지 지구를 반 바퀴나 돌았으며, 1923년에는 미국 육군 항공대의 오클리 켈리 · 존 매크레디 중위가 미국 대륙 5,150km를 무착륙 횡단했다.
그동안 유럽이 독주해 오던 비행 역사의 주도권은 이 무렵부터 미국으로 옮겨졌다. 세계 일주 비행(미국 육군 · 1924년) 북극점 왕복 비행(버드 · 1926년) 뉴욕~파리 단독 무착륙 비행(린드버그 · 1927년) 150시간 40분 무착륙 비행(스파츠 · 1929년) 남극점 왕복 비행(버드 · 1929년) 하와이~미국 무착륙 비행(에어하트 · 1932년) 일본~미국 무착륙 비행(팽본 · 1933년) 같은 눈부신 기록들을 모두 미국인이 세웠다.
이 가운데서도 1924년의 세계 일주 비행 성공은, 비행기의 발달과 미친 영향으로 보나, 미국에 처음 대기록을 안겨 주었다는 점으로 보나 항공 사상 손꼽히는 드라마였다.
비행기로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일은 모든 조종사들의 꿈이었다. 1919년 스미스 형제가 세계를 반 바퀴 돌자, 조종사들은 안달하기 시작했다. '누가 역사에 기록될 영웅이 될 것인가'. 개인뿐만 아니라 영국 · 이탈리아 · 포르투갈 등 여러 나라가 자기 나라에서 영웅을 내고 싶어 나섰으나, 북반구 전역에 걸쳐 뒷바라지해야 하는 어려움 때문에 뜻을 쉽게 이루지 못했다.
국력을 과시하는 이 경쟁에 미국도 뛰어들었다. 캘빈 쿨리지 대통령이 결정을 내리자 미국 정부는 즉각 20여 나라에 공문을 보내, 영공을 지나거나 잠시 기착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1924년 4월 6일 아침, 미국 육군 항공대의 더글러스 월드 크루저 복엽기 4대가 안개 낀 시애틀 호수 위로 힘차게 날아 올랐다. 1번기의 이름은 시애틀, 2번기는 뉴올리언스, 3번기는 시카고, 4번기는 보스턴이었다. 시애틀호에는 프레드릭 마틴과 앨바 하비가 탔다.
뉴올리언스에는 에릭 넬슨과 존 하딩, 시카고에는 로웰 스미스와 레슬리 아널드, 보스턴에는 레이 웨이드와 헨리 옥든이 탔다. 대장은 1번기의 마틴 소령이었다.
비행대는 캐나다의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 프린스 러퍼트 비행장을 들러 알래스카로 날았다. 알래스카에 있는 러시아 영토 시트카에는 오래된 러시아정교회 성당이 있었고, 눈덮인 산과 숲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온통 하얀 세상에서 길을 잃은 비행대는 며칠이나 알래스카에서 벗어나려고 애썼지만 헛수고였다. 무전기나 방향탐지기가 없었으므로, 자기 나침반만 가지고는 북극권 근처에서 항로를 찾기가 불가능에 가까웠다. 사람 사는 데가 없어 길을 물을 수도 없었고, 밤에는 너무 추워 한잠도 이루지 못했다.
그들은 가까스로 알류샨 열도로 내려갔지만 눈보라가 몰아치기는 마찬가지였다. 운좋게 고기를 잡고 있는 사람은 발견하자 하딩이 물었다.
"도대체 여기는 언제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옵니까?"
"웃기는 소리 마시오. 여기는 계절이 둘뿐입니다. 이번 겨울이랑 다음 겨울이죠."
일행은 그 사람이 가르쳐 주는 방향으로 날았다. 겨우 알류샨을 벗어나는가 했더니 북태평양 상공에서 시애틀호가 엔진 고장을 일으켜 바다에 불시착하고 말았다. 마틴 소령은 끝내 뒤따라 오지 못했으므로 시카고호의 스미스 중위가 대장을 맡았다.
도쿄에는 2만 5천여 인파가 마중나와 있었다. 일본을 떠나 홍콩으로 가서야 그들은 하루 쉬면서 연료를 채우고 기체를 점검했다.
북부 베트남을 지나 사이공에서 더 남쪽으로 내려가니 밀림이 나타났다. 그때 시카고호의 엔진이 과열되기 시작했다. 스미스가 급히 바다에 불시착하려는데 엔진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비행기는 재빨리 물로 뛰어들었다. 그 날 근처에 사는 뱃사람들은 '하늘을 나는 괴물을 보았다'고 떠들어댔다.
시카고호를 사이공으로 가져가 엔진을 수리한 비행대는 6월 16일 메콩강 삼각주를 지나 미얀마의 랑군에 닿았다. 거기서 포르투갈과 영국 비행기가 그들을 바짝 뒤쫓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포르투갈 비행사들이 중국으로 가려고 마카오에서 이륙하다가 비행기가 부서졌다는 이야기와, 영국 비행사가 폭우 때문에 미얀마 해안에 묶여 있다는 얘기였다. 아직까지 맨 앞에서 달리고 있지만 마음을 놓기는 일렀다.
랑군에서 앓아 누웠던 스미스가 회복되자 비행대는 인도로 날아갔다. 캘커타는 너무 더웠다. 그들은 며칠이나 더 비행하면 아이슬란드에 닿을지 지도를 꺼내 놓고 꼽아 보았다. 그들이 날아온 거리는 1만 8,072km, 반쯤 날아온 셈이었다.
그들은 파키스탄의 카라치와 이라크의 바그다드를 거쳐 아라비아 사막을 건넜다. 바그다드 하늘을 날 때는 〈아라비안 나이트〉의 마법 양탄자를 탄 것처럼 즐거웠지만, 사막에서는 2,000m 상공까지 올라가 날면서도 모래 바람에 휩쓸릴까 봐 조마조마했다.
스미스 일행은 곁눈질하지 않고 루마니아 · 헝가리 · 오스트리아 · 프랑스 · 영국을 거쳐 북극해 근방의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 상공을 날았다.
비행대가 캐나다의 래브라도를 지나 워싱턴에 닿은 날은 9월 8일. 쿨리지 대통령이 비 내리는 볼링 필드에 나와 3시간이나 기다리고 있었다. 대통령이 미국 시민을 맞으려고 백악관을 나선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다.
다시 미국 대륙을 가로질러 샌프란시스코로 간 그들은 미스 샌프란시스코로부터 축하 키스를 받고, 처음에 떠났던 시애틀로 날아갔다.
1924년 9월 17일. 미국은 그때까지 한 번도 가져본 일이 없는 엄청난 승리를 손에 넣었다. 비행장에 보인 5만 군중은 발을 구르고 손뼉을 치며 스미스 일행을 맞아 주었다.
스미스 비행대는 363시간 7분 만에 4만 2,389km를 날았다. 그들은 175일 동안 일흔세 군데를 들러, 처음으로 세계를 돌아온 '하늘의 마젤란'이 되었다.
▼ 그 뒤 기록은 * 1931년 / 윌리 포스트와 해럴드 거티 세계 일주 비행(24,898km, 8일 15시간 51분) * 1933년 / 윌리 포스트 최초 단독 세계 일주 비행(뉴욕~뉴욕, 25,099km, 115시간 36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