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실 문을 열던 40대 후반의 여성의 목소리가 아파트 전체를 뒤흔들어놓았다. 욕조는 온통 피바다로 물이 틀어진 채 붉은 물이 하수구를 통해 흘러내려가고 있었다. 손목에서는 아직도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왼손에는 예리한 칼과 함께 구겨진 종이가 들려져있었다.
[죄송합니다.
-한지혜-]
***
“그리고 마지막 안건은 해마다 해오던 겁니다. 이번 선발대상은...”
조용한 교무실에서 들리는 소리는 마이크를 잡은 단 한 사람의 목소리뿐이었다. 이른 아침의 회의시간 아니 회의라고 하기에 그는 무조건 명령만을 내리고 있었고. 나머지는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얼마 후 그의 손에 들려진 마이크가 책상 위로 자리를 옮기자 긴장을 푼 교사들이 하나 둘씩 밖으로 나갔다.
‘음.. 이런 게 있었네. 운이 좋은데 그럼 장소는...’
교무수첩을 펼쳐놓은 채 뚱한 표정으로 듣고만 있던 미주가 고개를 들며 교무부장이 앉은 자리를 잠시 바라보았다.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무엇인가를 적은 후 교무수첩을 덮으며 일어섰다. 그리고 현관 쪽으로 사라졌다.
언제나 소란스러운 교실 곳곳에는 그룹을 지어 수다를 떠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긴 주말을 보내고 온 그들은 집에서 보낸 동안 전날이나 그 전날 방영된 드라마 내용이나 스포츠 뉴스의 연예인 기사에 대한 잡담들을 나누며 깔깔대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표정은 우울하고 심각해져 심지어 울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언제... 도대체 이유가 뭐야?‘”
“몰라 어제 저녁에 한지혜 엄마가 목욕탕에서 발견했는데 손목을 그어서 끔찍했데. 유서에는 [죄송합니다] 이런 말만 적혀있었고 매니저랑 코디는 실종되고 가족도 인터뷰를 강력히 거부라고 있다는 거야 일부 팬들은 경찰서 쳐들어가고 지금 난리도 아냐 게다가..”
"아이돌의 자살이라.. 어떻게 생각해 동렬 씨?“
팩스로 받은 자료를 훑어보던 지영이 동렬을 보며 물었다. 그는 날카로운 표창을 흰 천으로 닦다가 그녈 돌아보았다.
“자살엔 배후가 있기에 마련 아닌가? 게다라 한지혜라는 그 가수는 인기도 많았고 몇 주 후에는 외국공연을 나갈 예정이었다며 하지만 우리가 나설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무슨 사건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자살은 확실하다며?”
가볍게 미소를 지은 동렬이 표창을 탁자에 내려놓은 후 바구니에 든 단도를 집어 문에 붙어있는 다트 판을 향해 던졌다. 정확히 중앙에 꽂힌 단도.. 동렬이 다시 지영을 돌아보았다.
“그럴까? 내 생각에 지금 문제는 그게 아닌 것 같은데 스타들 특히 어린 스타들일 수록 금방 인기가 오르길 바라지 않아? 그렇지 못하면 쉽게 자살하는 것이 예민한 10대 스타들이야 그들은 스타이기도 하지만 보통 10대와 같이 아니 그 이상으로 예민하지 배후가 없더라도 자살할 이유는 얼마든지 있어. 그 때문에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그들은 사모하던 팬들이야 그렇게 본다면 유명인의 자살은 곧 팬들에 대한 간접살인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자신을 죽이고 남을 뒤따르게 하는 간접살인 말야”
다시 고개를 돌린 동렬의 손에서 또 하나의 단도가 다트 판을 향해 던져졌다.
[휘잉... 벌컹]
“?!”
지영과 동렬의 시선이 동시에 문 앞에 선 ‘여자’에게로 돌아갔다. 그녀의 오른손 검지와 중지사이에 동렬이 던진 단도가 정확히 집혀져있었다. 이미 다트 판에 꽂힌 칼을 뽑아 자신이 잡은 것과 함께 탁자 위의 바구니 속에 넣으며 의자를 하나 빼서 앉았다.
“다트 판은 문에 걸지 말라고 말했지? 뭐.. 좋아 어쨌든 상부에서 온 회의내용이야”
다른 손에 들고 있던 자료철을 책상 위에 올려놓자 지영과 동렬이 그녀가 앉은 맞은편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저어.. 장영화 씨 그.. 다른...”
“선배라고 불러 서희 씨는 대리인을 만나러갔어 창원 씨는 아직 현장이고 대장 말로는 상황에 따라 여기도 인원이 늘지 모르겠다고 했어. 그리고 이번 임무.. 캡틴이 아주 흡족해하고 있어. 나중에 신입모임에서 만나봤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 그리고..”
***
모든 수업이 끝나자 시계는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통학을 하는 학생들은 매우 적었지만 교문을 나서는 학생도 몇몇 보였고 대부분은 기숙사로 향하였다. 교실 중간 중간에는 보충수업이나 방과 후 활동을 하는 학생들도 일부 보였다. 구교사에도 두개의 불빛이 들어왔다.
“가수 ‘한지혜’ 자살사건이랴..”
신문을 넘기며 선정이 입 속으로 중얼거렸다. 보던 신문을 책상 위에 던져놓으며 선정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런 사건이야... 기자들한테는 오랜만에 낚은 특종거리에 아니겠어? 온갖 신문마다 헤드라인을 이렇게 장식해놓은 거 보면”
“그래요? ‘한지혜’는 얼마 전에 가요대상에서 상까지 타지 않았어요? 좀 더 자세한 소식 없어요 언니?”
소현이 신문을 펼치며 의자에 앉았다. 신문 속에 삽입된 사진에는 사망한 가수의 사진과 함께 어설프게 모자이크된 자살현장 사진이 들어있었다. 광분하는 팬들의 절규와 함께 기자의 정리내용이 한눈에 들어왔다.
「인기가수 한지혜(18)가 어젯밤 그녀의 어머니 최 모씨에 의해 손목을 절단해 자살한 채 발견되었다. 그러나 현재 그녀의 매니저와 코디의 행방이 묘연하며 가족은 인터뷰를 강력히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라 조사가 어려워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실종된 매니저와 코디가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인 것과 동료가수들로부터 ‘매니저와 관계를 가졌다’ ‘가요대상에서 돈을 뿌렸다’는 등의 소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녀의 자살이 그들과 관계된 것으로 보기도 하며...」
“자살동기에 관한 것도 말이 많다는데 인기 많다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닌가보네”
“당연하지 인기가 많으면 그 만큼 자신의 사생활은 빼앗기는 거니까”
소현이 신문을 접어놓으며 말하자 막 문을 열고 들어서던 도란이 그녀의 말을 받았다. 도란의 바로 뒤에서 미주가 따라 들어오며 문을 닫은 후 들어가며 신문을 집어 들었다.
“오늘 아침에 나온 사건이 이거였나? 어쨌든 이 얘기는 나중에 다시 하고 다 왔으니까 일단 앉아봐 지난 번 사건에 관련해서 전달 사항도 있고 할 얘기도 있어”
부실을 한 바퀴 빙 둘러본 미주가 손바닥으로 책상을 몇 번 두드린 후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얼마 전 학교에서 일어난 사건 먼저 얘기 할게 범인 이기성 씨는 모든 죄를 인정하고 얌전해졌데. 윤경위 말로는 이기성 씨는 친족살해혐의가 성립 되서 형량이 더 커질 것이라고 했어. 살인미수 현행에 관한 것은 둘이 손을 쓴 것 같아. 그리고 피해자인 이주원 선생님에 대한 건데..”
미주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알 수 없는 긴장감과 침묵이 구교사에 모인 모두를 감싸고 있었다.
40화 흑룡의 저주(2)
냉랭한 침묵이 구교사를 휘감았다. 곧 미주가 무거운 입을 열자 모두 고개를 들며 그녀의 눈빛을 바라보았다.
‘역시.. 그런 일이 있었는데 그만 두겠지 게다가 자신을 구해준 게 누군지 아는 이상 그 선생님도 이제는 선정언니를 볼 낯이..’
“피해자 이주원 선생님은 상태가 많이 호전 되서 이번 주 일요일에 퇴원해 늦어도 다음주 월요일부터는 출근하겠다고 했어.”
“저.. 정말..이세요? 하지만 피해자가 돌아와도 아직 정신적인 충격은..”
소현이 놀라 고개를 들며 미주를 바라보았다. 다은도 이상한 듯이 묻자 그녀 옆에 있던 선정이 잠시 그들을 바라보다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주원 선생님은 그렇게 약한 사람이 아냐. 아니.. 강한 분이셔 이런 일로 낙심할만한 성격이 아니라는 것은 내가 잘 알아 선생님 같은 성격은 분명..”
‘설마.. 언니..?’
“자.. 지난 사건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고 주목.. 다음은 우리 클럽에 관한 소식이야 다들 들어서 알고 있을 거야 ‘동아리 탐사’라고 활동 회원수 12명 이하의 동아리만을 대상을 현장체험 학습지원을 해주는 건데 이번 탐사에 우리 부도 선발되었어. 기간은 3박 4일 정도로 잡혔고 그래서 말인데 일단 탐사 장소에 대해 조사를 해봤거든..”
잠시 말을 멈춘 미주가 늘 들고 다니는 파일 속에서 자료를 하나 꺼내어 책상 한 가운데에 내려놓았다. [외지마을 탐사]라는 굵은 글씨로 제목이 써있는 문서 바로 밑에 조그맣게 장소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영촌(靈村)
“영촌..이라니... 대체..”
“영촌 말 그대로 혼령의 마을 그 마을 사람들은 그 마을이 혼령이 머무는 마을이라고 생각해 이승을 떠난 영혼들이 저승으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머무는 곳이 바로 그 마을이라고 생각하지.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 마을에서는 이상 기후 등 이상한 현상이 자주 일어나 그래서 괴기마니아들은 특히 여름에 그곳을 자주 찾곤 하는데 그것도 마니아들이 아니면 모를 만큼 작은 마을이라고 했어. 미스테리 연구를 목적으로 한다면 그 마을 탐사를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자 너희들 의견은?”
“자..잠깐만요 선생님 그럼 귀신이 사는 마을로 가잔 말 이예요 지금?”
다은의 눈이 커지며 미주에게 되물었다. 그와 동시에 다른 회원들이 시선이 모두 그녀에게로 모아졌다. 이상한 일도 다 보겠다는 듯 의아한 표정의 소현이 그녈 보며 물었다.
“야 너 왜 그러냐? 재미있을 것 같은데 혼령이니 뭐니 따지고 보면 다 뻥이지 심령사진이니 뭐니 하는 것도 요즘은 조금만 조작해도 다 만든다는 데 안 그래요 언니?”
소현이 선정을 바라보며 묻자 선정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자 맞은편에 않아있던 한유가 지나가는 듯한 말투로,
“그래 어차피 유령 같은 게 있을라고 너 설라 무서워서 그러는 거 아니겠지? 뭐 어차피 귀신도 니 주먹 한 방이면 그대로 보낼 수 있을 거고 안 그래?”
“뭐..뭐얏?”
한유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다은이 발끈해 도끼눈으로 한유를 힐끗 흘겨보았다.
“그..그래.. 귀신이 다 뭐냐.. 가..간다 가면 되지 뭐... 그런 거 하나도 안 무서워.. 그럼....”
다은의 표정이 살짝 굳어지더니 장담하듯 소리치자 다은의 뒤에서 바라보던 미주가 다른 회원들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좋아, 좋아 그러 모두 가는 거지? 다음 주 수요일부터 3박 인데 못가는 사람?”
아무도 대답이 없자 명렬표에 무엇인가를 적은 후 그녀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미주가 먼저 밖으로 나가자 흩어져 의자에 앉아있던 회원들이 일어서며 가운데로 몰려들었다.
“정말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안 그래요 언니?”
썬이 소현과 다은들을 번갈아 바라보며 들뜬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혼령들이 머무는 마을이라.. 상당히 기대되는 데..그렇지 다은아?”
여타까지 아무 말 없이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듯 우두커니 앉아있던 도란이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다은을 바라보았다.
“그..그렇겠죠. 도란언니... 하하「...라고는 했지만 귀신은 질색인데.. 최한유 저 바보 말미잘.. 다 알면서 성질 건들여선 사람이면 주먹으로 해결되지만 귀신은 주먹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잖어...」그..그럼 먼저 갈게요..”
억지로 미소로 대답한 다은이 마음속으로 땅을 치며 후회하고 한유를 저주하고 저주하면서 다른 회원들이 눈치 챌 수 없게 비틀비틀 밖으로 나갔다.
“.....?”
41화 흑룡의 저주(3)
‘달칵’
문이 차갑게 열리며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들어오자 회의용 의자에 앉아 서류를 읽던 남자가 일어서 고개를 들며 그를 맞았다.
“캡틴?”
“대장..? 여기는 어쩐 일이지? 조직 내에 문제라도..”
“아니 문제라기보다 그나저나 캡틴은 어딜 갔다 오는 거야?”
“임무...라고 할까? 일이 좀 있어서지.. 그나저나 말해봐 무슨 일인데?”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던 여자가 정색을 하며 의자에 앉아 책상 위의 서류들을 모두 한 쪽으로 치워놓았다 대장이라던 남자가 다시 그녀의 맞은편에 앉으며 그녀 앞에 자신이 읽던 자료를 건네주었다“
“며칠 전 그거.. 새로운 정보가 들어왔어”
“동기지..?”
관심 없는 태도로 듣던 여자의 되물음에 조금 놀란 듯 남자가 그녈 바라보자 그녀가 다시 일어서 잠시 근처를 서성이다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대장.. 정보력이 상당히 늦어졌어..?”
“.........?”
***
“위에서도 생각이 있는 거야 아무튼 우린 명령 데로만 움직이면 되는 거니까”
“하시만 그 사람은 아직도..”
지영과 동렬의 긴장된 모습과 달리 J의 표정은 상당히 냉철했다. 그때 문소리가 들리는 것과 동시에 누군가 방 안으로 들어왔고 반사적으로 일어선 나머지 세 명의 시선이 일제히 방문객에게로 돌아갔다.(J의 이름은 영화이지만 J로 서술합니다. -작가-)
“...!!”
뜻밖의 시선들이 자신을 향하자 방문객은 놀라며 옆에 있던 여자의 허리를 휘감았던 오른 팔을 풀며 재빠른 동작으로 J에게 경례자세를 취하며 큰소리로 소개했다.
“느.. 늦었습니다. 코드네임 렌 조창원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어서 들어와 상부에서 얘긴 들었어. 임무는 잘 해결했다지?”
“예..옛..”
그가 다시 큰소리로 대답했다.
“수고했어. 그나저나 이봐.. 당신 목소리가 너무 커 애가 놀란다고.. 그래서야 아버지 자격이 되겠어? 서희 씨도 마중 나가느라 수고했고 대리인은 내일이나 모레 온다지?”
“아..네..”
“좋아.. 아참 지금 막 도착한 창원씨에게는 미안하지만 상부에서 내려온 지시 알고있지?”
“네.. 알고 있습니다..”
“좋아.. 그럼.. 알아서 준비하도록 오늘 회의 이상 마치지”
몇 마디 환영의 말을 건넨 J가 먼저 방으로 들어가자 서희도 간단한 인사를 한 후 창원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으음..”
“왜 그래 동렬씨?”
서희와 창원이 들어간 방 쪽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동렬을 보며 지영이 물었다. 잠시 생각하는 듯 대답이 없던 동렬이 일어서며 대답했다.
“저 친구.. 실력 좀 있는 것 같아서.. 앞으로.. 상당히 재미있어 지겠는 걸.. 훗..”
“.....?”
42화 흑룡의 저주(4)
“동아리 선발 여행이라. 이런 게 있는 줄 미처 몰랐는데 그래도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
불 꺼진 기숙사 방문을 열며 선정과 다은이 현관에 들어서자 현관의 불이 자동으로 환하게 들어왔다. 선정이 기숙사 안으로 들어가며 커튼을 걷고 문을 열자 시원한 바람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글쎄.요.「난 이제 몰라」”
다은이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곧 소현과 썬이 우편함에 들어있던 편지들을 들고 들어와 그것들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역시 트릭이라거나 그런 게 있지 않을까요? 아, 언니 이건 언니한테 온 것 같은데요? 일본에서 온 건데 카에키데 와타루?”
“와타루상. 몰라? 하긴 와타루상은 ‘카와’라는 닉네임을 사용했으니까 모를 수도 있겠다. 설마 정말 편지를 보낼 줄을 몰랐는데.. 미리 메일이라도 보내줘야겠네”
편지의 겉봉을 확인하던 소현이 선정에게 건네주며 말하자 선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것을 받은 후 자기 책상으로 가 PC를 켠 후 편지를 뜯어 읽기 시작했다.
「善正さん..」(선정님..)
***
‘일본도쿄’
밤거리의 불빛은 꽤나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늦은 밤거리지만 시내 중심가에는 밤늦도록 돌아다니는 사람들과 그런 사람들을 유인하려는 노점상들이 즐비여 서있었다. 혼잡한 시내를 빠져나간 후 그는 외진 골목으로 조금 더 걸어갔다. 그가 막 지나쳐온 화려한 거리와 사뭇 달리 그곳은 조용하고 어두웠다.
“끼이‘
낡은 문이 열리며 가느다란 불빛이 그의 얼굴로 들어오자 그는 얼굴을 약간 찡그리며 고개를 돌렸다.
“왔어?”
방에 있던 사람이 컴퓨터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물었다
“음.. 그래 별일은 아니었어. 그런데 뭘 하는데 사람이 왔는데 쳐다보지도 않아?”
그가 모니터를 들어다보려고 조금 더 다가가자 컴퓨터 앞에 있던 사람이 그를 바라보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わたるさん、どうも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와타루님 정말 감사합니다)
***
“후우.. 공기 너무 좋다..”
마을버스에서 내린 선정이 크게 심호흡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4월의 시원한 바람이 그들이 머리카락을 살짝 건들이며 지나갔다.
“영촌은 강원도 내에서도 외곽 된 지역이라 그 마을의 토박이가 아니면 거의 존재 자체를 모른데 그나마 수집한 자료에 의하면 버스로 갈 수 있는 건 이게 마지막이고 나머지는 걸어야 하나봐 그러니까... 「버스에서 내리면 건너편에 작은 오솔길이 보인다. 그곳을 따라 한 시간 정도 걸어가면 마을의 이름이 써있는 돌이 놓여져 있는데 그곳이 바로 영촌이다. 조금 걸어가다 보면 바로 집들이 보인다. 마을에 유일한 산장은 집이 보이기 시작한 지점을 경계로 오른쪽 오솔길로 들어가야 한다. 조금 가다보면 산길이 나오고 그 산길을 따라 10~15분을 걸으면 다리가 하나 보이는데 다리 아래는 낭떠러지로 계곡이 흐른다. 그 다리가 바로 산장과 민가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이다. 영촌은 알려지지 않을 곳이라고 하기에는 의외로 넓은 마을이여서 길을 잃지 않도록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산장도 지금은 그곳이 유일한 곳이라 위치를 잘 알아두지 않으면 여행지에 도착해 낭패를 볼 수 있으니 잘 알아보고 가도록하자.」위치 정보는 이게 전부야 그럼 저기가 바로 그 오솔길인 것 같은데 슬슬 가볼까?”
프린트한 종이를 소리 내어 읽던 미주가 고개를 끄덕인 후 맞은편을 바라보았다. 나무들이 우거진 숲 속으로 작은 오솔길이 하나 나있었다. 곧 다시 출발한 일행들이 오솔길을 따라 난 길을 조금 걷자 방금 지나쳐온 도로와는 사뭇 다른 숲길이 나왔다. 나무는 하늘을 가리고 풀이나 야생화도 곳곳이 자라고 있었다.
“여기 경치가 장난이 아닌데..? 오랜 만에 좋은 사진이 나올 것 같아”
가방 속에 들어있던 카메라를 언제 손에 들었는지 선정이 여기저기 셔터를 눌러대며 연신 찬사를 했다.
“역시.. 언닌 카메라는 또 언제 챙겼어요?”
“이번 주말에 집에 들러서 가져온 거야 연영부 부탁도 있었고 거기는 회원수가 많아서 선발대상에서 제외잖아. 이번 축제에 사진,.영상 그런 분야들은 다 전시하려나봐 공연은 물론 할 예정인 것 같고 몇 장 찍어두면 좋은 것 같아서 나도 사진 찍는 거 좋아하고 무엇보다 연영부 선배가 부서 캠코더까지 대여해주면서 부탁하더라고”
선정이 왼쪽 어깨에 메고 있던 캠코더 가방을 한 번 들어 보이며 말한 후 자리를 옮기며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숲길을 꽤나 길게 이어져 있었다. 해마다 방문한다던 호러 마니아들의 표시였는지 중간 중간 보이던 표시들도 어느새 보이지 않게 될 무렵 누구도 들어오지 않았던 것 같은 확 트인 공간이 몇 분 째 이어졌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는지.. 모두가 지쳐갈 무렵 오래된 듯 보이는 나무가 그들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나무 옆에 놓인 커다란 바위.. 그 위에 한자로 마을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