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족(여진족)을 이끌고 후금(後金-후에 청나라가 됨-옮긴이 주)을 세운 여진족의 수장(首
長) 누르하치는 그 성(姓)이 "애신각라(愛薪覺羅)"이다.
누르하치가 자신의 본래 성을 버리고 애신각라를 새로운 성으로 삼으면서 모든 여진족에게
공표하기를, 우리는 신라의 아들들이니 신라를 사랑하고 신라를 생각하여 우리 뿌리를 잊지
않아야 하니 성을 애신각라로 하노라 하였다.
누르하치는 임진왜란 당시 자신들의 뿌리요 어버이의 나라인 조선이 왜의 침략을 받음을 보
고 군대를 보내어 돕겠다고 자청해 왔으나 명의 눈치를 본 조정이 이를 거절했고, 누르하치
가 자기들을 한 핏줄의 형제로 여겨줄 것을 여러번 간청했는데도 이를 뿌리치는 우를 범하
였다.
그나마 광해군 때는 명과 후금과의 사이를 잘 조정하여 현명하게 대처했으나, 인조반정 이
후에 친명배금으로 외교정책을 바꾸고 명의 장수 모문룡이 평북 앞바다의 작은 섬에 주둔하
는 것을 용인하면서 마침내 누르하치가 군대를 보내게 되어 정유호란이 일어났다. 전쟁은 "
형제의 맹"을 가짐으로서 끝났다. 그러나 후금이 명과 전쟁을 하는 동안 이 형제지맹을 지
키지 않고 일방적으로 명의 편을 들므로 훗날 병자호란을 불러오고 형제가 아닌 군신지례를
지키는 수모를 겪게 되었다. 왕과 전 조정 대신을 남한산성에서 포위하고 명목뿐인 군신관
계가 아니라 청의 영토로 아예 복속시킬 수도 있는 상황에서 강화를 맺고 청군이 즉각 돌아
간 것은 이 땅을 정복대상으로 생각지 않은 누르하찌의 모국애(母國愛) 때문이었다.
몇 년전에 상영되었던 영화 「마지막 황제」에서 부의가 모택동 시절 재판 받는 광경이 나
오는데, 판사가 피고인 부의의 성을 묻자 "애신각라"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있다. 그러자 판
사가 거 참 별 희한한 성도 다 있군, 하고 중얼거린다.
우리민족이 대대로 중국의 지배를 받는 것 같았으나, 그것은 명목상의 지배였을뿐이지만,
밝달족에 의한 중국의 지배는 확실한 정복의 형태였다. 원조와 청조가 그랬다.
윗글은 "구름" 이경숙님의 글인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구름님은 "노자를 웃긴 남자"라는
책으로도 널리 알려지신 분이지요. 다음은 그 분의 "마음의 여행"(정신세계사)이라는 책 서
문입니다.
"... 나이가 들면서 몰두하게 된 선(禪)과 명상(暝想)의 수행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여러
가지 영적인 체험의 기회를 가지게 해 주었다. ... 나는 처음에 영적 체험의 항구에서 출발
해서, 선(禪)을 지도(地圖)로 삼고, 수행을 돛의 바람으로 삼아 나의 내면 세계에 펼쳐진
거친 황파의 바다와 고요한 적막의 호수들을 건넜다... 특히 불교의 가르침과 선(禪)의 수
행으로 엿볼 수 있었던 의식의 세계와, 우주물리학과 양자론을 비롯한 과학에의 여행은, 애
초에 내가 찾으려고 했던 것들의 상당부분을 얻을 수 있게 해주었다... 처음으로 모임방에
나의 통신 이름인 구름으로 올린 글이 "삼청궁 선녀의 이야기"였을 것이다. 나의 전생의 기
억과, 그로 인한 인연으로 내가 접하게 된 어떤 고서(古書)의 내용을 간추려 올린 환단(桓
檀) 시대의 역사 이야기다.많은 분들이 그 내용에 대해 큰 관심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개
천록(開天錄)"이란 제목으로 다시 정리하여 연재를 하였고 ..."
첫댓글 남촌님, 우리 역사에 대한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해 주는 좋은 글이군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