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간에 두터운 우정을 쌓는 것은 좋은 것이다.
이 세상에서 진심으로 나를 위해주고, 또한 나를 숨김없이 열어보일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그 얼마나 멋지고 삶이 풍요로울 것인가.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현인들조차, 그
런 친구가 한사람만 있어도 인생이 훨씬 더 훈훈하고 향기로울 것이라
고 하였던 것이다.
흔히 죽마고우의 표상으로 춘추시대의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
의 관계를 꼽는다. '관포지교'라는 말이 두터운 우정을 뜻하는 말이 된
것도 그래서이다.
관포지교는 인간관계의 목표이기도 하다. 그러나 관중과 포숙아의 그
두터운 관계가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님에 주목해야 한다.
관중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나는 젊어서 포숙아와 장사를 할 때 늘 이익금을 내가 더 많이 차지
했었으나 그는 나를 욕심장이라고 탓하지 않았다. 내가 가난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사업이 실패하여 그를 궁지에 빠뜨린 일이 있었지만 그는 나를
용렬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일에는 성패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
문이다.
나는 벼슬길에 나갔다가 물러나곤 했었지만 그는 나를 무능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내게 운이 따르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나는 싸움터에서 도망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지만
나를 겁쟁이라고 하지 않았다. 내게 노모가 계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를 낳아 준 분은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아이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