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홍의 나쁜 생각677 - 고맙다
그것은 그 곳에, 그 사람도 그 자리에 그대로 두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사실 얼마 되지 않는다. 기다리지 않아도 삶은 살아지고 죽음도 어김없이 온다는 것. 미리 서둘 일은 없다는 걸 알아차린 것도 얼마 안된다. 그럼 내 자리는 어디란 말인가? 지금 이 순간, 내가 있는 곳이 바로 내 자리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도 얼마 안 된다. 그래도 늦게나마 알아차린게 얼마나 다행인가!
필자는 타인이 묘사한 내 모습이 늘 낯설었다. 오독되거나 오해받고 있는 느낌이랄까. 녹음된 내 노래가 낯설었던 것처럼. 하지만 그것이 내 모습이라는 것. 비록 몇 개의 오독과 오해가 있다하더라도 오독과 오해 조차 내 모습일 수도 있다는 것. 구태어 수정하거나 다듬어 설득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센티멘털 저니 / 에리히 캐스트너
제기랄, 외톨이가 되었네!
보고 듣는 모든 게 낯설다.
신발 안에 돌멩이1)가 들어 있다.
와이쳐츠 속에서는
벌써부터 그리움2)이 느껴진다.
당신이 권한 건 모두 보고,
이곳저곳 아주 멀리까지 여행한다.
눈앞에 펼쳐진 것들에 감탄한다.
하지만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다.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을 뿐.
누군가 인사라도 건넨다면!
당신이 편지를 보내지 않고 눈앞에 나타난다면!
마치 사막에 서 있는것만 같다.
존재하지 않는 신의 청동상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물론 원한다면
완전히 다른 조각상을 볼 수도 있다.
(입장료를 내야 들어갈 수 있다니, 이 얼마나 파렴치한 일인가!)
곰곰이 생각한다.
결국 흔히 그렇듯 없었던 일로 한다.
그래, 세상은 정원과 같다.
주문한 것을 기다리는 일 같기도 하다.
오래 기다릴 수 있다.
당신이 몹시 좋아할
그림엽서를 쓴다.
밤에 창문으로 머리를 내밀고
바보처럼 머리를 낮춘다.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내일 아침이면
기관지염3)에 걸려 있을 것이다
1) 일상의 불편 또는 불편한 진실을 가리키는 관용어.
2) 심장(Herz)을 비유하는 말이다. 따라서 연인을 가리키는 비유적 표현으로 읽을 수 있다.
3) 원어는 수고양이 혹은 숙취를 뜻하는 단어가 파생되었다. 앞에서 나온 고양이에 호응하는 일종의 언어유희다.
매우 고상한 사모님들 / 에리히 캐스트너
그녀들은 가슴을 내밀고 콧대를 세운 채
보조를 맞추어
사뿐히 거리를 걸어간다
갓 구워 낸 비스킷 향기를 풍기는 그녀들에게는
농담도 걸 수 없다
어떤 꽃을 담아야 하는 지도 모르면서
꽃병이라도 든 양 걷고 있는 그녀들.
그녀들은 마치 매시간 목욕을 하는 것 같다.
마르지도 뚱뚱하지도 않고
장딴지는 철통같이 튼튼하며
눈빛은 싸늘하다.
고상한 사모님들은 마치 여행을 떠나온 요정처럼 보이지만
알 길이 없다.
그녀들의 남편은 모두 공장을 가지고 있다.
자신들만의 선로를 달리는 그녀들,
서둘러 피하는 게 상책이다.
깃대와 같이
뻣뻣한 표정을 짓고 잇는 그녀들.
집 안과 집 밖에서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이는 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잠자리에 들 때도
모자를 쓰고 외투를 입을 것 같은 그녀들은
잘 때도 침대에 눕지 않고
서 있을 것만 같다.
화장실도 가지 않을 것만 같다.
그녀들 모두 남편을 쏘아 죽이고
짓눌러 해골로 만들어 버릴 것만 같다.
이렇게 그녀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여왕처럼 떠돈다.
하지만 소용없다.
그녀들은 우리의 눈을 가리고 있다!
우리는 그녀들을 다른 여자들과 똑같이
유혹하고 이해하고 후려칠 수 있다.
그녀들은 재미로만 고상한 체 할 뿐이다.
고급 안락의자 이사 / 에리히 캐스트너
오늘 나는 화물 마차를 보았다.
가구를 가득 싣고 있었다.
가구의 주인은
최고급만 좋아하는 사람 같았다.
육중한 말들이 육중한 의자와
식탁과 책장을 나르고 있었고 마부는 휘파람을 불었다.
마차는 파손된 낡은 배처럼
혼잡한 길을 삐꺽거리며 기어갔다.
수레에 실린 두 개의 가죽의자에
두 명의 짐꾼이 몹시 지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손에 담배를 든 채
몽상가처럼 턱을 괴고 있었다.
분명 그들은 백작이 되어
무도회에 가는 꿈을 꾼 적도 있었으리라 -----
마차가 멈추고 늙은 짐꾼들은 노예처럼
낯선 가구를 낯선 집으로 옮겼다.
경고 / 에리히 캐스트너
이상을 품은 사람은
그 이상을 실현할 때 조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순간
다른 사람들과 같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