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빅뱅’의 시작이라는 거창한 전망 속에 4개 종합편성채널이 개국한 날, 각별한 관심으로 눈여겨 본 것은 두 개 채널이 내보낸 ‘과거회고’ 프로였다. JTBC와 채널A가 각각 방영한 1980년의 언론 통폐합 관련 특집 프로가 그것이다. 두 채널의 전신이 언론 통폐합의 희생매체였기 때문이었을까. 이들 두 개 프로를 시청하는 동안 불현듯 소설 한권과 개인적 언론생활의 한 시기를 떠올리면서 새삼스런 감회에 젖었다.
최근에 읽은 그 소설의 제목은 ‘매혹’인데 작가는 현직 언론인 최보식이다. 전문 평론가가 아닌 입장으로서 개인적 독후감은 단순하다.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중엽까지 이어진 천주교 박해 시대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소설 매혹을 통해 신문기자인 작가가 독자에게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이른바 지식인의 경우 이념과 생활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삶을 영위하기는 참으로 어렵다는 것으로 이해했다.
세월에 의해서도 퇴색되지 않는 게 있다면 삶의 진실이다. 그렇다. 천주교 박해시대로부터 두 세기 가까이 경과한 1980년에도 자유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권력이 자행한 언론 통폐합 결과 지식인의 한 부류로서 많은 언론인들이 이념과 생활의 배리(背理)를 뼈아프게 절감해야 했다. 물론 30여 년 전의 과거사를 놓고 완고한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했던 왕조시대의 폭압까지 연상하는 건 감정적 견강부회의 위험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종합편성 채널 4개의 개국은 어쩔 수 없이 1980년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그 때 통합된 신문사의 도쿄특파원이었던 나는 나라 밖에서 참담한 심정으로 그 폭력적 소식을 접했다. 그러나 수많은 언론인들이 언론통폐합으로 직장을 잃은 상황에서 어쨌든 나는 ‘살아남은 기자’의 한사람이었다. 소속 신문사는 분해됐지만 귀국해서 방송사 기자로 편입되어 이른바 ‘땡전 뉴스’를 매일 저녁 내보내는 보도국 기자의 일원으로 1년 반 남짓 근무했다. 그리고 칼러 TV시대의 개막기념으로 제작∙방영된 일본 관련 특집 다큐멘터리의 취재팀장으로 상을 받고 나서 몇 달 뒤에 ‘과감하게’ 사직서를 썼다.
자유언론이라는 이념에 충실하기 위해 홀로 방송국 내부에서 싸울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다만 생활을 위해 언론인으로서 최소한도의 양식도 지킬 수 없는 기자직을 유지해야 하는가라는 내 나름의 절박한 회의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생활의 풍요를 누릴 수 있을 만큼 넉넉한 보수를 주는 ‘참 좋은 직장’을 ‘중이 절을 떠나는 심정’으로 그렇게 스스로 버리고 대책 없는 실업자가 됐다. ‘배고픈 자유인’의 길을 택했다고나 해야 할까.
통폐합에서 살아남은 언론 종사자들은 점차 신군부의 강압에 따라 순치(馴致)돼 갔다. 특히 방송 매체들의 경우에는 경쟁적으로 타락의 길을 갔다. ‘땡전 뉴스’가 상징하는 대로 방송은 그 때 철저하게 정권홍보의 나팔수였고 기자를 포함한 종사자들은 사실상 권력의 주구였다. 자유언론은 소멸한 반면 방송 종사자들은 어느 때 보다도 상승한 급여 봉투에 흡족해 하는 사실상의 ‘배부른 노예’가 되어갔다.
자유언론이라는 이념을 포기한 대가로 그들은 풍족한 생활을 ‘포식’했다. 언론인도 지식인의 부류에 속한다면, 지식인의 경우 폭압의 시대일수록 이념을 버리는 반대급부로 생활을 보장받게 된다는 사실을 그 때의 방송종사자들이야 말로 피부로 실감한, 대표적 직업인이라고 할 수 있다. 양대 공중파 방송이 1980년대 이후 걸어 온 길을 보면 이는 더 더욱 분명해 진다.
민주화와 함께 그들은 단단한 이익 공동체를 결성한다. 이제 철옹성이 된 방송노조의 출발이다. 그렇게 해서 공영(公營)방송은 ‘노영(勞營)’방송으로 변질했다. 아니 정확히는 변종(變種)이 됐다. 언론자유를 수호한다는 명목으로 그들은 그 공동체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선동의 효용성을 철저히 활용했다.
헌정사 초유로 탄생-승계된 좌파정권 10년 동안에 그들은 보도∙편성 등 모든 수단을 강구해서 노조의 이름으로 이익 공동체의 배부른 생활을 위해 그 좌파정권의 연장에 헌신적으로 협력했다. 그러다가 그들에게 이념적으로 비우호적인 우파정권이 들어서고 나서는 새 정권을 약화시키기 위한 모든 시도에 앞장섰다. 항상 명분은 거창했지만 사실상의 목적은 노영방송이 장악한 미디어권력의 영향력 과시를 위해서였다. ‘촛불광란’을 선동한 광우병 날조보도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런 세월이 20여년이다. 어떤 법과 제도로도 허물 수없는 권력으로 한국 미디어계에 군림해 온 ‘노영방송’들이 총합편성 채널의 출범으로 이제 위기를 맞았다. 미디어 판도에 혁명적 변화가 불가피하게 되었음을 말해준다.
언론자유의 과잉이라는 우려까지 제기되는 시대다. 이념을 위해 생활을 저당 잡혀야 할 엄혹한 상황이 아니다. 따라서 ‘유익하고 재미있고 격조 높은 방송’이 되겠다는 종편채널들의 출범 다짐은 언론자유의 측면에서 보면 기대 할 만하다. 그러나 오늘의 미디어환경을 감안하면 그런 다짐이 쉽게 현실화되기 어렵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종편 종사자들이 시청자에게 분명하게 약속해야 할 대원칙은, 수익 창출 위주의 ‘배부른 방송’을 지양(止揚)하겠다는 것이어야 한다. 공중파 방송의 타락을 답습해서는 종편은 존립하기도 어렵거니와 존재할 의미도 없다. 종편 종사자들 모두가 일관되게 고민하고 모색해야 할 것은, 모든 프로를 통해 ‘대한민국호(號)’가 자유민주주의 깃발을 날리며 미래를 향해 순항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제시하는 일이다. 종편 채널이 언론 매체로서 싸워야 할 상대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광기(狂氣)의 종북-친북 이념세력들이다.
<조규석 본사 논설위원>
첫댓글 옛말에 충과 효는 양립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언론에서도 한때 이념과 생활은 양립하기 힘들었겠지요?
근데 이제 우리 나이 70 이니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가 아니겠습니까?
'종합편성채널'들은 '勞營 방송'이거나 '財營 방송'이거나 '公營 방송'이거나 상관없으니, 제발 國富와 세금을 축내면서 '배부른 방송'이 되지 마시고 공약대로 "유익하고 재미있고 격조 높은 방송"이 되어주기를 기대합니다. 뒷메의 좋은 글과 열정에 경의를 표합니다.
우선 걱정되는 건 뒷메께서 배부른 자들의 택클, 뭇매를 충분히 각오하고 계신지... 궁금하고...
그 방송을 들어 온 우리들도 거기 순치되어 이제는 별 저항감도 못 느끼고, 오히려 지금 시작한 종편이 더 껄끄럽고 더 상업적인 방송으로 들리니 그것 넘어서기도 힘들고....
언론을 길들인다고 군부가 꺼내들었던 채찍이 역설적으로 언론노조라는 괴물을 만들었는데 이번 빅뱅은 또 무슨 괴물로 변할지 그것이 더 걱정스럽네요.
아마츄어가 만든 괴물보다 전문가가 만든 괴물은 더 악랄할테니 말입니다.
진정.. 대한민국호의 영광과 평화 그리고 국민의 행복을 위해 노심초사 하는 그런 방향제시자 .. 선각자의 외로움을 견뎌내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