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탐험사 100장면 40- 태평양을 단숨에 날다 일본에서 미국까지 무착륙 비행한 클라이드 팽본(193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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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4.03.18. 19:13조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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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탐험사 100장면
태평양을 단숨에 날다
일본에서 미국까지 무착륙 비행한 클라이드 팽본(1931년)
요약 클라이드 팽본과 휴 헌든은 장거리 비행 분야에 신기록을 세우자는 뜻으로 세계 일주에 도전했으나 이전 기록을 깨지 못한다. 그때 〈아사히 신문〉이 일본과 미국 사이를 횡단하는 데 2만 5천 달러를 걸어 이에 팽본과 헌든이 도전했다. 미스 비돌호는 41시간 13분 만에 태평양을 가로질러 7,293km를 비행하는 엄청난 기록을 세웠다.
무모한 영웅들
팽본(왼쪽)과 헌든은 태평양을 횡단하던 도중 비행기에서 바퀴를 떼어 버렸다. 기체가 가벼워 장거리 비행을 하는 데는 유리했지만, 나중에 동체로 착륙해야 했다.
태평양 무착륙 횡단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클라이드 팽본과 휴 헌든이 만난 것은 1929년 뉴욕 주 시라큐스에서였다. 비행 교관을 하다가 소령으로 제대한 뒤 가장 뛰어난 곡예 비행사로 이름을 날리던 'Upside Down Pang'(거꾸로 비행하는 팽)과, 프랑스에 휴가를 즐기러 갔다가 조종사 자격증을 딴 석유회사 직원 헌든이, 함께 곡예 비행 순회 공연을 하기로 죽이 맞은 것이다.
32개 주를 순회하며 돈을 벌던 그들은, 어느날 장거리 비행 분야에 신기록을 세우자는 데 뜻이 맞자, 세계 일주에 도전하기로 했다. 그러던 차에 1931년 7월 1일 윌리 포스트와 해럴드 거티가 8일 15시간 51분 만에 세계를 일주하고 뉴욕에 개선했다.
포스트와 거티의 기록을 깨기로 작정한 팽본과 헌든은 7월 28일 '미스비돌'이라고 이름 지은 붉은색 벨랑카 단엽기를 몰고 뉴욕을 떠났다. 그들은 모스크바를 거쳐 시베리아 동쪽 끝 하바로프스크까지 날아갔다. 그런데 대서양에서 엄청난 폭풍우에 휘말려 방향 감각을 잃고 헤맨 바람에 포스트의 기록보다 27시간 30분 뒤지고 있었다. 게다가 흙탕에 착륙하다 날개가 손상되어, 이래저래 포스트의 기록을 깨기는 어려웠다.
그때 일본 도쿄에 있는 친구가 전보를 보내 왔다. 〈아사히 신문〉이 북태평양을 건너 일본과 미국 사이를 횡단하는 데 2만 5천 달러를 내걸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곧 도쿄로 날아갔다.
그런데 도쿄에서 뜻하지 않은 말썽에 휘말렸다. 만주에서 중국과 전쟁을 벌이고 있던 일본은, 팽본이 16mm 영화 카메라를 지니고 홋카이도 상공을 날아온 것이 군사 시설을 정찰한 행위였다며 두 사람을 잡아 가두었다. 그들은 미국 국무부의 도움으로 벌금을 내고 풀려났지만, 일본 극우단체들은 계속 협박 편지를 보내왔다.
1931년 9월 29일 팽본과 헌든은 활주로가 길고 미국과 가까운 비행장을 찾아 도쿄에서 480km 떨어진 아오모리(靑森) 현 사비시로 해안으로 갔다. 일본인들은 미국과의 거리가 될수록 먼 내륙에서 이륙하라고 강권했지만 그 말을 무시한 것이다. 10월 2일에는 이륙하려다 보니 비행 지도가 보이지 않았다. 그 일로 하루가 지체되었다.
미스 비돌호에는 휘발유 3,458리터와 석유 170리터를 실었다. 비행기 총중량이 4,080kg까지 나갔는데, 이는 날개가 받은 하중으로는 신기록이었다. 그들은 무게를 줄이느라 라디오 · 구명대 · 산소(통) · 방석은 물론 낙하산마저 싣지 않았다.
팽본은 비행 준비를 하면서 136kg이나 나가는 비행기 바퀴도 나중에 떼어 버릴 수 있도록 강철 핀과 케이블로 조립했다. 그는 기체를 가볍게 하고 바람의 저항을 줄이면 연료 소모가 적어 광활한 태평양을 단숨에 건널 수 있으리라고 확신했다. 대신 미국에 도착해서 동체(同體)로 착륙하는 위험은 감수해야 한다.
10월 3일, 헌든의 스물일곱 번째 생일인 이 날 오후 2시 미스 비돌은 백사장을 따라 굴러가기 시작했다. 비행기 무게를 계산하고 또 계산한 팽본이지만 기체가 과연 이륙할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었다. 그는 조종간을 움켜쥐고 기체를 띄우려고 애썼다. 달리는 속도를 시속 80km, 100km, 110km로 올려도 기체는 뜨지 못했다.
속도계 눈금이 144km를 가리키자 바퀴가 모래 위에서 뜨는 것 같더니 이내 땅으로 떨어졌다. 160km에 다다라서야 비로소 비행기는 해안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들은 북동쪽을 바라고 날아갔다. 2시간쯤 가니 쿠릴 열도가 나타났다. 팽본은 화산 섬 꼭대기보다 더 높이 날기 위해 2,400m 상공으로 상승했다.
이륙하고 나서 480km쯤 갔을 때 팽본은 주의 깊에 계기판을 살펴보고 엔진 소리도 들어 보았다. 모든 것이 정상이라고 확인되자 비행기 바퀴를 바다로 떨어뜨렸다. 바람의 저항이 17%쯤 줄자 비행기의 속력은 금세 시속 24km가 늘었다. 약 800km를 날자 사방이 어두워졌다. 팽본은 헌든에게 조종간을 넘겼다. 북극에서 실려오는 냉기가 스멀스멀 조종실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뒷바람이라도 만날까 하여 헌든이 기체를 3,000m 상공으로 상승시켰으나, 구름은 여전히 기체 위에 있었다. 바깥 공기가 차가워질수록 조종실의 온도도 떨어졌다. 양말 바람으로 비행하는 두 사람의 발은 추위 때문에 감각을 잃어가고 있었다. 비행하면서 신발을 신지 않는 것은 일본에서 배운 야릇한 관습이었다.
구름이 툭 터진 공간을 찾아 더 높이 올라가려고 시도했으나 비행기가 무거워 번번이 실패했다. 팽본은 잠깐 눈을 붙였다가 조종간을 잡았다. 그 무렵 날개에 얼음이 얼어붙기 시작하더니 몇분 만에 기체가 온통 얼음에 뒤덮였다. 위험했다. 엔진을 전속 가동해 5,200m까지 올라가자 비로소 구름이 그들 아래 놓이게 되었다.
팽본은 바퀴를 태평양에 빠뜨린 순간부터 갖게 된 고민거리를 해결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바퀴가 떨어져나갈 때 착륙 기어에 연결된 막대기 2개가 남았는데, 그것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동체가 착지할 때 그것들이 기체를 뚫고 들어와 치명적인 결과를 부를 가능성이 있었다. 팽본은 조종간을 넘기고 비행기 밖으로 나갔다.
팽본은 예전에 날개 위를 걷는 묘기를 부릴 때처럼 얼음 덮인 날개 위를 살살 기었다. 태평양 한복판 5,180m 상공에서 비행기가 구름 속을 날아가는데, 그는 한손으로 날개와 동체 사이 버팀대를 움켜잡고 다른 손으로 막대기를 떼어 바다로 던졌다. 이 묘기를 성공시키는 데 20분이 걸렸다. 그는 조종실로 돌아오며 별일 아니라는 듯이 씩 웃었다.
그들은 구름 위로 올라가려고 전속력을 냈다. 알류샨 열도를 지나자 다시 구름이 눈 아래 깔렸다. 때는 일요일 오전이었다. 알래스카 만을 지나면 캐나다 해안이다.
따뜻한 공기가 얼음을 녹여주자 그들은 갑자기 불안에 휩싸였다. 중부 태평양, 어쩌면 하와이를 향해 남쪽으로 날아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육지가 보이지 않자 불안이 점점 커졌다.
태양이 비행기 뒤에 나타나자 육지가 보였다. 캐나다의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였다. 기수를 남으로 돌렸다. 이제 곧 시애틀이다. 두 사람은 산소도 없이 5,000m 상공에서 구름 위를 날았다. 구름 사이로 도시의 불빛이 보일 때마다 연료 계기판을 들여다보았다. 마침내 레이니에 산의 우뚝한 정상이 눈앞에 보이자 그들은 그 도시가 시애틀임을 알았다. 월요일 이른 아침이었다.
미스 비돌호는 시애틀에서 동쪽으로 320km 더 날아 스포케인으로 갔는데, 거기는 안개가 짙어 착륙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서쪽 태평양 연안의 위너치로 날았다. 그곳은 팽본의 고향이었으므로 설사 날씨가 나빠도 착륙할 자신이 있었다. 비행장을 샅샅이 알고 있는 데다 기왕이면 고향에서 피날레를 장식하고 싶었다.
새벽 안개가 막 걷혔을 때 미스 비돌은 위너치 비행장에 다소 거칠게 착륙하는 데 성공했다. 41시간 13분 만에 태평양을 가로질러 7,293km를 비행한 엄청난 기록이었다. 팽본은 착륙할 때 다리를 다쳐 가볍게 절뚝거렸지만 환호하는 군중 속에서 어머니를 찾아내자 환하게 웃었다.
못생겨서 멀리 난 비행기
1931년 일본에서 미국까지 7,293km를 난 벨랑카 단엽기 미스 비돌호. 동체가 커 속도는 빠르지 않아도 연료를 많이 넣을 수 있는 데다 날개 또한 엄청나게 커서, 같은 유형의 다른 비행기들보다 훨씬 높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