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에는 2012 런던올림픽 경기일정표가 있습니다.
■1회(1896년•아테네)
최초 올림픽. 펜싱을 제외하고는 모두 아마추어만 출전. 금메달은 아예 없었고 1위는 은메달을, 2위는 동메달을 받았다. 마라톤이 국제대회에서 처음으로 시행. Spyridon Louis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리스 국적으로 마라톤 우승. 공식적으로 여자 선수는 없었다. 다만 마라톤에서 한 여성이 정식 마라톤 레이스가 끝난 다음날 비공식적으로 5시간30분 동안 뛰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2회(1900년•파리)
개막식, 폐막식이 없었다. 여성 선수가 처음으로 올림픽에 참가. 올림픽 여성 첫 금메달리스트는 테니스 샬롯 쿠퍼. 엑스포 시간과 겹쳐 올림픽이 빛을 제대로 보지 못함. 승마가 올림픽에 데뷔했고 줄다리기도 정식종목. 시범종목에는 불끄기, 연날리기도 있었다. 축구 첫 우승팀은 결승에서 프랑스를 꺾은 영국. 미국 대학생 마가레트 에보트가 골프에서 우승해 미국 최초 여성 올림픽 챔피언이 됐다.
■3회(1904년•세인트루이스)
금•은•동 3개 메달이 처음으로 수여. 2회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엑스포 시간과 장소가 겹쳐 인기와 관심이 감소. 출전 선수 645명 중 개최국 미국 선수만 무려 580명. 종합순위에서도 미국이 금 78, 은 82, 동 79 등 총 239개 메달로 우승. 미국 이외 다른 나라들이 획득한 메달은 금 18, 은 10, 동 13뿐.
■4회(1908년•런던) 원래 로마에서 열릴 게 런던으로 옮겨짐. 베수비오산이 폭발하면서 쑥대밭이 된 나폴리를 재건하기 위해 올림픽 예산이 투입된 까닭. 마라톤 레이스가 스타디움으로 들어와 마무리된 첫 대회. 다양한 나라들이 출전했는데 저나마 룰이 달라 메달리스트 결정에 많이 혼란스러웠다. 영국이 금메달 56개로 미국(금 23개)을 제치고 종합우승.
■5회(1912년•스톡홀름)
진짜 순금으로 된 금메달을 준 마지막 대회. 일본이 아시아국가 처음으로 출전. 포르투갈 마라톤 대표 선수가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선수가 경기 도중 사망. 육상에서 처음으로 전기 기록측정기가 사용. 종합순위에서는 미국(금 25)이 스웨덴(금 24)을 간발의 차로 제치고 정상.
■6회(1916년•베를린)
1914년 세계 제1차 대전 발발로 취소.
■7회(1920년•안트워프)
원래는 헝가리가 개최국이었는데 헝가리가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의 우방이었다는 이유로 개최권이 벨기에로. 헝가리, 독일, 오스트리아, 불가리아, 터키는 출전 금지. 파랑, 노랑, 검정, 초록, 빨간 고리 모양의 올림픽기가 처음으로 사용. 개최국 국기 게양, 국가 연주, 올림픽 선서, 도브 릴리스도 처음으로 시행. 다음 개최지에게 올림픽 기를 넘겨주는 ‘안트베르펜 세리머니’가 첫 등장.
■8회(1924년•파리)
마라톤 구간 길이가 26마일 385야드, 즉 42.195km로 확정. 수영 레인이 50m가 된 것도 처음.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라는 올림픽 모토(Citius Altius, Fortius)도 처음으로 사용. 체조에서 만점이 24명이 나왔는데 그 중 23명이 지금 없는 종목인 로프 오르기 선수. 근대올림픽의 창시자 쿠베르탱 남작의 지휘 아래 마지막으로 치러진 대회. 당시 관중이 무려 6만 명이 몰렸지만 과도한 비용으로 대규모 적자 발생.
■9회(1928년•암스테르담)
암스테르담이 올림픽 유치를 위한 세 차례 도전 끝에 성공. 성화가 처음으로 등장해 대회기간 동안 밝혀졌다.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개막식에서 그리스가 제일 먼저, 개최국이 제일 마지막으로 입장. 육상 경기가 처음으로 400m 트랙에서 열림. 과거 몇 개월씩 치른 것과는 달리 대회 기간이 16일로 크게 줄었다. 코카콜라가 올림픽에 첫 등장. 올림픽 앞에 Summer가 붙은 첫 대회. 1차 세계대전 전범 독일이 올림픽 무대에 복귀.
■10회(1932년•LA)
LA가 단독으로 유치를 신청해 낙점. 전 세계가 공황으로 맞은 탓에 출전국, 출전선수수 급감. 선수단 숙소인 올림픽 빌리지가 처음으로 사용됐는데 모두 남자만 섰다. 순위별로 높이가 다른 시상대가 처음으로 제작. 필드 하키는 3개국만 출전했는데 미국이 인도, 일본에게 모두 지고도 동메달. 미국이 금메달 41개 등으로 이탈리아(금 12) 등을 제치고 종합우승.
■11회(1936년•베를린)
독일 국내에 머물렀지만 어쨌든 올림픽이 TV로 첫 방송. 성화 봉송도 처음으로 이뤄졌는데 나치즘을 선전하려는 의도로 진행된 게 한계. 독일은 앞선 LA올림픽보다 잘 치러야한다며 새로운 경기장을 많이 건설. 미국은 보이콧을 검토하다가 결국 참가. 미국 흑인 육상 선수 제시 오웬스가 금메달 4개를 따는 바람에 나치의 우월함을 보여주려는 독일의 욕심은 무산. 손기정, 남승룡이 마라톤에서 1위, 3위를 차지했는데 당시 국적은 안타깝게도 일본.
■12회(1940년•도쿄)
세계 제2차 대전 발발로 취소.
■13회(1944년•런던)
세계 제2차 대전 발발로 취소.
■14회(1948년•런던)
제2차 세계대전 등의 영향으로 긴축올림픽. 새로운 경기장도 건설되지 않았고 선수들도 올림픽 빌리지 없이 보통 숙박시설에서 생활. 음식도 배급제 시행. 독일, 일본은 초청받지 못했고 소련도 불참. 미국이 3개를 제외한 38개 금메달을 모두 휩쓸어. 쿠베르탱 남작이 사망한 뒤 첫 올림픽. 올림픽 기간 중 망명자가 나온 것도 처음이었다. 수영경기가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실내에서 열림.
■15회(1952년•헬싱키)
소련과 이스라엘이 처음으로 올림픽에 참가.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전 대회 중에서 세게 신기록이 가장 많이 나옴. 인구가 900만 명밖에 안 되는 헝가리가 미국, 소련에 이어 종합 3위. 2차 대전 이후 독일과 일본이 다시 참가. 독일은 총 메달수에서는 24개로 5위였지만 금메달은 하나도 따지 못해 종합순위에서는 10위권 밖으로 밀려. 독일 노골드는 처음이자 마지막. 마라톤을 전혀 뛰어본 적이 없는 체코슬로바키아 선수가 5000m, 1만m, 마라톤에서 3관왕.
■16회(1956년•멜버른)
최초 남반구 올림픽. 북반구 선수들이 휴식을 취해야하는 겨울에 대회가 열려야하기 때문에 반감이 거셌다. 대회도 실제로 11월부터 12월까지 열렸다. 올림픽 최초 보이콧 발생. 네덜란드, 스페인, 스위스는 소련의 헝가리 침공에 항의해 불참. 전후 살벌한 분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폐막식에서 각국 선수들이 서로 섞여 입장. 그걸 제안한 게 호주 청년 존 윙. 존 윙은 “올림픽 게임 기간 중에는 전쟁, 정치, 국적은 모두 접어두자. 세계가 하나가 된다면 또 다른 무엇이 더 필요하겠느냐”라고 역설.
■17회(1960년•로마)
아베베 비킬라(에티오피아)가 맨발로 뛰어 마라톤에서 우승. 그는 아프리카 최초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무하마드 알리(본명 Cassius Clay)가 복싱에서 금메달. 북미 대륙에 첫 TV 중계가 이뤄짐.
■18회(1964년•도쿄)
일본은 원래 1940년 대회 개최권을 따냈으나 당시 중국을 침략해 개최권 박탈. 아파라트헤이트 정책으로 남아공은 참가 불허. 원자폭탄이 떨어진 1945년 8월6일 히로시마에서 출생한 남자가 성화 최종 점화. 일본은 위성방송을 이용해 올림픽 최초로 대회를 전 세계에 TV 중계. 도쿄-오사카-나고야를 잇는 신칸센 첫 운행. 수영, 육상 기록을 재는데 터치패드, 사진판독 등 새로운 기술 도입. 일본은 올림픽을 통해 과거 전쟁의 적이 아니라 평화롭고 번영된 나라로서 일본을 보여주길 희망.
■19회(1968년•멕시코시티)
최초 라틴 아메리카 올림픽. 올림픽 마스코트가 처음으로 소개. 남자 육상 200m에서 1위, 3위를 차지한 미국 흑인 대표선수들이 메달 세리머니가 진행되는 동안 검은 장갑을 낀 손을 높게 올린 채 고개를 숙이며(Black Power Salute) 인종차별에 대한 항의표시. 육상에서 무더기 신기록. 해발 2240m 고지에서 열리면서 도약, 점프, 단거리 달리기 등이 덕을 본 결과. 그래서 혹자는 이 대회를 Air of Mexico라고 비꼬아.
■20회(1972년•뮌헨)
독일은 “행복한 올림픽”으로 명명. 전범국가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새롭고, 민주적이고, 낙관적인 독일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 대회 로고도 태양을 형상화. 그러나 9월5일, 이스라엘 선수단 11명이 사망하는 검은 9월단 테러가 발생해 찬물. 미국 수영 마크 스피츠가 7개 금메달을 따냄. 농구결승전에서 미국이 소련에게 패한 뒤 “남은 시간을 잘못 계산해 소련에게 결승골을 허용했다”며 은메달 수여 거부.
■21회(1976년•몬트리올)
루마니아 체조 요청 코마네치가 10점 만점을 받으며 금메달 3개를 땄다. 당시 전광판은 세자릿수 숫자밖에 쓸 수 없어 점수가 1.00으로 매겨짐. 일본 총리를 역임한 타로 아소가 당시 일본 사격대표팀 선수. 비 때문에 성화가 꺼져 재점화. 개최국 캐나다는 은메달 5개, 동메달 6개를 따 27위에 그쳤다. 하계올림픽 사상 유일한 개최국 노골드. 과도한 투자로 재정적으로 최악. 미국복싱 스타인 슈가 레이 레너드, 레온 스핀크스, 마이클 스핀크스, 레오 랜돌프, 하워드 데이비스 주니어 등 5명이 모두 금메달을 딴 뒤 1명을 제외하고 모두 프로전향.
■22회(1980년•모스크바)
소련이 아프칸을 침공해 미국 등 24개 국가 보이콧. 몇몇 나라들은 소련의 아프칸 침공에 반대하는 의미로 개막식에서 올림픽 깃발을 들고 입장했고 메달 세리머니에서도 국기와 국가 대신 올림픽 깃발과 올림픽 노래를 씀. 다음 개최지에 올림픽 깃발을 넘겨주는 폐막식 세리머니에서는 미국 국기 대신 LA 도시 깃발이 게양됐고 LA 시장 대신 IOC 위원장이 올림픽 깃발을 받음. 세계 신기록 36개, 유럽 신기록 39개, 올림픽 신기록 74개가 쏟아졌다.
■23회(1984년•LA)
소련, 쿠바, 동독 등 보이콧.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올림픽으로 평가. 미국이 독점스폰서 권리를 파는 등 수익만 무려 2억2500만 달러를 냈다. 세븐-일레븐, 맥도널드 스폰서가 됐다. 개최국의 재정적 독점을 견제하기 위해 IOC는 바로 이듬해인 1985년 올림픽 브랜드에 대한 권리를 기업에 판매하는 올림픽 프로그램(The Olympic Programm•TOP)을 만듬. 성화 봉송이 오직 사람 발로만 이뤄졌다. 15000km에 걸쳐 3616명 동원. 그 중 200명은 스폰서 회사가 원한 주자들. 여자마라톤이 첫 진행. 중국 체조 스타 리닝이 금메달 3개 등 메달 6개를 따냄.
■24회(1988년•서울)
캐나다 100m 육상 선수 벤 존슨이 약물복용파문으로 금메달 박탈. 야구와 태권도가 시범종목으로 열렸고 탁구는 처음으로 정식종목. 미국농구가 NBA 스타 없이 치른 마지막 올림픽이었고 미국은 동메달. 서울올림픽은 후진국으로 여겨진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 올림픽 송 ‘핸드 인 핸드’가 스웨덴, 필리핀, 스페인, 스위스, 오스트리아, 일본 등에서 큰 인기.
■25회(1992년•바르셀로나)
동계올림픽과 하계올림픽이 같은 해에 열린 마지막 대회. 남아공, 아파라트헤이트 정책으로 올림픽 출전이 금지된 1960년 대회 이후 다시 복귀. 독일은 1990년 통일 후 단일팀 출전. 야구가 시범종목으로 6차례 선을 보인 뒤 처음으로 정식종목이 됐고 우승은 쿠바. 미국 농구는 NBA 선수들로 첫 드림팀 구성. 소련 붕괴 이후 12개 국가가 연합팀을 구성해 금메달 45개로 미국(금메달 37개)을 따돌리고 종합우승. 바르셀로나는 올림픽 이후 런던, 파리, 로마처럼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도시로 변신.
■26회(1996년•애틀랜타)
1986년 1회 올림픽이 열린 뒤 100년 만에 열린 대회. 대회 로고에도 숫자 100이 들어감. 197개 IOC 회원국이 모두 참여, 그 중 79개국이 메달 획득. 무하마드 알리가 성화 최종 주자. 캐나다 도너번 베일리가 9초84의 세계신기록으로 육상 100m 우승. 처음으로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여자축구에서 미국이 초대 챔피언. 앤드리 애거시는 테니스 프로메이저 4개 대회에 이어 올림픽 금메달까지 따내 아내 슈테피 그라프에 이어 두 번째로 ‘골든 슬램’ 달성. 미국은 1984년 LA올림픽에 이어 애틀랜타에 본사가 있는 코카콜라 등 기업 스폰서에 과도하게 의존해 상업적으로 올림픽을 지나치게 이용했다는 비판. 7월27일 폭탄테러가 일어난 것도 흠. 사마란치 위원장은 페막식에서 “Well done, Atlanta. Most exceptional Olympics”라고 평가. “The best Olympics ever”라는 전통적인 문구와는 확연한 차이.
■27회(2000년•시드니)
호주가 올림픽 개최권 유치투표 4라운드까지 가는 접전 끝에 중국을 45-43으로 제쳤다. 개막식에서 한국과 북한이 한반도기를 앞세워 공동입장. 남북공동입장은 메이저대회 사상 처음. 여자선수가 올림픽에 출전한 지 100년째 되는 대회. 그래서 캐시 프리먼 등 여자선수들이 성화를 경기장 안으로 운송했고 불까지 붙여. 올림픽 자원봉사자(Pioneer Volunteers)가 사실상 처음으로 도입. 공식 숫자는 4만6967명. 사마란치 IOC 위원장이 대회 기간 중 아내의 병환으로 시드니를 떠났다가 아내가 이미 죽은 걸 확인하고 4일 만에 돌아옴. 그 때 올림픽 깃발은 조기. 러시아 레슬링 최강자 알렉산더 카렐린이 미국 NCAA 우승자에게 패해 은메달. 앞서 3차례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카렐린은 이전 국제대회에서 13년 동안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카렐린은 이 후 푸틴 대통령 경호를 맡음. 사고가 거의 일어나지 않아 가장 안전한 올림픽이라는 평가.
■28회(2004년•아테네)
제1회 올림픽이 열린 아테네에서 열렸다. 올림픽 모토도 “Welcome Home”이었다. 경기장 건설 등에 너무 많은 돈이 들어감. 그러나 경제사정 등이 좋지 않아 메인 스타디움이 올림픽 개막 2개월 전에 완공됐고 다른 경기장도 7,8월에 완비. 경기장을 건설하는데 최소 14명이 죽었는데 모두 외국인 노동자. 개막 직전 호텔 직원, 앰뷸런스 운전사 등이 보너스를 요구하며 파업. 세계 최초로 성화 봉송이 전 세계적으로 이뤄짐.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여자레슬링이 열림. 중국 류샹이 남자 110m 허들에서 금메달. 중국 최초 남자육상 올림픽 골드. NBA 선수들로 구성된 미국농구 드림팀이 푸에르토리코에게 73-91로 패배. 드림팀의 역사상 첫 패배. 드림팀은 준결승에서 아르헨티나에게도 져. 미국 수영 마이클 펠프스가 금메달 6개 등 총 8개 메달을 따냄. 아테네는 지하철, 고속도로 등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건설해놓은 제반시설 덕분에 많이 현대화. 하지만 적자규모가 5억 파운드에 이르러 한동안 거센 비판.
■29회(2008년•베이징)
세계신기록 43개, 올림픽신기록 132개 등 기록 풍성. 중국이 금메달 51개 등을 총 100개 메달로 미국(금메달 36개 등 총 110개)을 제치고 처음으로 종합우승. 우사인 볼트가 남자 100m 200m에서 세계신기록으로 우승. 공해, 인권 문제 때문에 대회 직전에는 어수선했으나 대회 자체는 큰 사고 없이 무사히 종료. 중국올림픽위원회는 2004년 아테네대회와 비슷한 수준의 비용인 150억 달러를 썼다고 발표했지만 400억 달러를 써 올림픽 사상 최다 비용이 들어간 대회였다는 게 중론. 중국은 공항을 새로 짓고 지하철 노선을 증가시켰으며 자동차 운행 제한, 인근 공장 가동 중단까지 해 대기오염 줄이기에 안간힘. HD로 생중계된 최초 올림픽. 전 세계 시청자수는 47억 명으로 아테네 때(39억 명)보다 증가. 올림픽을 무사히 치러내 세계 중심국이 됐다며 중국은 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