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내가 이 모든 말씀대로 유다의 왕 시드기야에게 전하여 이르되 왕과 백성은 바벨론 왕의 멍에를 목에 메고 그와 그의 백성을 섬기소서 그리하면 사시리라
13 어찌하여 당신과 당신의 백성이 여호와께서 바벨론의 왕을 섬기지 아니하는 나라에 대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으려 하나이까
14 그러므로 당신들은 바벨론의 왕을 섬기게 되지 아니하리라 하는 선지자의 말을 듣지 마소서 그들은 거짓을 예언함이니이다
15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니 내가 너희를 몰아내리니 너희와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이 멸망하리라
16 내가 또 제사장들과 그 모든 백성에게 전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보라 여호와의 성전의 기구를 이제 바벨론에서 속히 돌려오리라고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이는 그들이 거짓을 예언함이니라 하셨나니
17 너희는 그들의 말을 듣지 말고 바벨론의 왕을 섬기라 그리하면 살리라 어찌하여 이 성을 황무지가 되게 하려느냐
18 만일 그들이 선지자이고 여호와의 말씀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이 여호와의 성전에와 유다의 왕의 궁전에와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기구를 바벨론으로 옮겨가지 못하도록 만군의 여호와께 구하여야 할 것이니라
19 만군의 여호와께서 기둥들과 큰 대야와 받침들과 이 성에 남아 있는 기구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나니
20 이것은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유다의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니야와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귀인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옮길 때에 가져가지 아니하였던 것이라
21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성전과 유다의 왕의 궁전과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그 기구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22 그것들이 바벨론으로 옮겨지고 내가 이것을 돌보는 날까지 거기에 있을 것이니라 그 후에 내가 그것을 올려 와 이 곳에 그것들을 되돌려 두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교회에 다니면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믿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면 구원을 받는다는 복음을 듣게 됩니다.
그렇게 구원을 받은 이들을 하나님의 자녀라하고 그 자녀들을 하나님께서 돌보실 것을 교회는 강조합니다.
어디 하나 틀린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미 구원 받은 우리가 왜 여전히 죽어야 하는지는 강조해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물어보면 교회는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았지만, 아직 구원을 받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미와 아직 사이에 우리의 구원이 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의 구원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구원의 완성을 강조하지는 것이 아니라 현재 주어진 구원을 강조하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며, 기뻐하며, 감사할 것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그 자녀된 우리가 누릴 축복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여기서 강조되는 축복은 현생에서 우리가 얻어 누리게 될 축복에 촛점이 맞춰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 구원의 완성을 강조하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집니다.
즉, 우리가 이미 구원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감사와 기쁨 그리고 현생의 축복을 이야기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줄어듭니다.
오히려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 구원의 완성을 향하는 인생, 즉 죽음을 향하는 인생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그리고 현생의 축복이 아니라 현생 이후의 내생의 축복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직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은 여전히 죄의 문제가 우리에게 남아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는 우리가 죽을 수 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인 것입니다. 바울 사도그 그토록 죽음에 이르려하고 부활을 소망했던 것이 바로 이런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위로도 받고, 축복도 소망하게 되지만 그보다 우리 안에 여전한 죄의 모습들을 발견하고 오늘 돌이켜 회개하며 죽음에 이르는 삶, 즉 구원에 완성에 이르는 삶, 부활에 이르는 삶을 소망해야 합니다. 바울의 표현에 따르면 사망의 몸에서 벗어날 것을 고대하며, 지금 사망의 몸에서 우리가 스스로 고통스러워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날에도 만약 어떤 사역자가 우리의 현재의 삶에 대해 희망회로를 돌리게 하는, 축복을 남발하는 말씀을 강조한다면 우리가 그를 멀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로 경건의 훈련, 즉 우리 안에서 죄의 문제를 발견하고 돌이켜 회개하며 고쳐 행하므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확인하는 삶을 멀리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만약 어떤 사역자가 우리의 현실을 제대로 돌아보게 하며, 우리의 마음을 찔리게 한다면, 일상을 생각 없이 반복하는 것을 멈추게 한다면 쉽진 않지만 그 사역자롤 통해서 우리의 오늘의 삶이 곤고한 삶이며 부활을 고대해야 하는 삶임을 계속 상기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예레미야 같은 참 선지자가 필요한 것은 우리가 여전히 죄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때문입니다.
<오늘의 기도>
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동,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여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소서.
2. 현생의 축복에 관심을 두는 젖먹이 신앙을 넘어서게 하소서. 부활을 고대하며 영생의 축복을 고대하는 참된 소망의 신앙을 갖게 하소서.
3. 영분별의 은사를 우리에게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