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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SHAL OF VICTORY pp-433-441
I will not conceal the fact that all the way to Moscow I wondered how to explain the situation on the left flank of the 24th Army in a more convincing way so that Stalin would correctly understand the reason for my delay.
I arrived in the Kremlin in pitch darkness. Suddenly I was blinded by a flashlight. The car stopped. In the approaching officer I recognized chief of the security department General Vlasik. We greeted each other.
“The Supreme Commander-in-Chief has ordered to meet you and take you to his flat.”
I came out of the car and followed the general.
It was no use asking anything, because I would not get the answers to the questions which interested me.
나는 모스크바로 가는 내내 어떻게 하면 내가 지체되는 이유를 스탈린이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24군의 좌측면의 상황을 좀 더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을지 생각하였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어둠이 짙게 드리워진 크레믈린에 도착하였다. 감작스러운 섬광에 나는 볼 수가 없었다. 차가 섰다. 접근하는 장교들 사이에서 나는 보안국장 발리시크를 알아볼 수 있었다. 인사를 나누었다.
“최고사령관께서는 당신을 만나 그의 아파트로 모시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나는 차에서 내려 장군을 따라갔다.
내가 관심을 가진 것에 대해 답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As I climbed the stairway to the second storey where Stalin’s flat was I had still not decided what I would say as an excuse for my delay.
Entering the lunchroom where Stalin, V. M. Molotov, A. S. Shcherbakov and other Politbureau members were seated round a table I said:
“Comrade Stalin, I am an hour late in arriving.”
Stalin looked at his watch and said:
“An hour and five minutes,” and added, “sit down and have something to eat if you’re hungry.”
스탈린의 아파트가 있는 2층 계단을 올라가면서도 나는 아직 내가 늦은 것에 대해 어떤 변명을 할지 결정하지 못하였다.
스탈린, 몰로토프, 쉬체르바코프와 그 밖의 정치국원들이 테이블에 둘러앉아있는 식당으로 들어가면서 내가 말하였다;
“스탈린 동지, 제가 한 시간 늦었습니다.”
스탈린이 그의 시계를 보고 말하였다.
“한 시간 오 분이오,” 덧붙여 말하였다. “배가 고플 텐데 앉아서 뭐 좀 드시오.”
The Supreme Commander-in-Chief was examining the map of the situation at Leningrad. Those who were present sat in silence. I did not have anything to eat and also remained silent. Finally, Stalin broke away from the map and addressing me said:
“We have discussed the situation with Leningrad once again. The enemy has taken Schlüsselburg and bombed the Badayev food stores on September 8. Large supplies of food have perished. We have no communications with Leningrad by land. The population is in a difficult situation. The Finnish troops are advancing from the north on the Karelian Isthmus, while the Nazi troops of Army Group North reinforced by the 4th Panzer Group are driving towards the city from the south.”
최고사령관은 레닌그라드 상황에 대한 지도를 살펴보고 있었다. 참석자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나도 아무것도 먹을 수 없어서 침묵을 지켰다. 마침내 스탈린이 지도에서 떨어지며 내게 말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레닌그라드의 상황에 관해 의논을 했소. 적은 9월 8일에 슐리셀브르크Schlüsselburg를 함락하고 바다예프 식품창고Badayev food stores를 폭격하고 있소. 대량이 보급품이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육상으로는 레닌그라드와 통신을 할 수 없습니다. 주민들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남부의 도시들로부터 진군하는 제 4 기갑진단군으로 나치 중부집단군의 부대들이 보강되는 동안, 핀란드 군이 북쪽에서 카렐리안 지협으로 전진하고 있습니다.”
The Supreme Commander fell silent and turned to the map again.
One of the State Defence Committee members remarked:
“We have reported to Comrade Stalin that the command of the Leningrad Front would hardly be able to straighten out the situation.”
Stalin eyed the person who had spoken with reproach but remained silent examining the map again. Suddenly he asked: “Comrade Zhukov, how do you appraise the situation on the Moscow sector?”
I understood him and caught on to the thought linking together the situation on different fronts, but did not answer right away.
최고사령관은 침묵에 빠졌고 다시 지도를 향하였다.
국방인민위원 중 한명이 발언하였다;
“우리는 레닌그라드 전선사령관이 상황을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스탈린 동지에게 보고했습니다.”
스탈린은 질책하는 눈으로 말 한 사람을 쳐다봤지만 침묵을 지키며 다시 지도를 살펴보았다. 갑자기 그가 물었다; “주코프 동지, 모스크바 방면의 상황은 어떻게 평가하시오?”
나는 그와 다른 전선의 상황과 연결 지어 생각하려는 것을 이해하였지만, 금방 대답할 수 없었다.
“I believe that the Germans must replenish their units considerably at the present time. According to prisoners from Army Group Centre the enemy has suffered heavy losses. In some units they reach fifty per cent. Besides, without completing the operation at Leningrad and linking up with the Finnish troops, the Germans would hardly begin an offensive on the Moscow sector… However, this is my personal opinion. The Hitlerite command may have different plans and intentions. In any case, we must always be ready for steadfast defensive actions on the Moscow sector.”
“저는 현 시점에서 적들이 그들의 부대를 상당한 규모로 보강할 것이 틀림없다고 믿습니다. 중부집단군 소속 포로들에 의하면 적은 심각한 손실로 어렵다고 합니다. 일부 부대에서는 손실이 500퍼센트에 달하였다고 합니다. 게다가 레닌그라드에서의 작전을 완수와 핀란드 군과의 연계 없이는 독일군이 모스크바 방면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제 개인 의견입니다. 히틀러주의 지휘관들은 아마 다른 계획과 의도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어느 경우에나, 우리는 항상 모스크바 방면에 확고부동한 방어활동을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Stalin nodded satisfied, then asked abruptly.
“Now, how did the units of the 24th Army operate?”
“They fought well, Comrade Stalin.” I answered, “particularly the 100th, 127th, 153rd and 161st Rifle divisions.”
“How do you explain the success scored by these divisions, Comrade Zhukov, and what is your opinion of the abilities of the army’s command and political personnel?”
I told him what I thought. Stalin listened attentively for about fifteen minutes and made short notes in a pad, then he said:
스탈린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불쑥 물었다.
“지금, 24군은 어떻게 작전을 하고 있습니까?”
“그들은 잘 싸우고 있습니다, 스탈린 동지.” 내가 대답하였다. “특히 제 100, 제 127, 제 153, 그리고 제 161 소총사단이 훌륭합니다.”
“주코프 동지, 당신은 그 사단들이 거둔 성공을 어떻게 설명하고, 군 지휘관과 정치요원들의 역량에 대한 당신의 의견은 무엇입니까?”
나는 그에게 내가 생각했던 것을 말했다. 스탈린은 15분 정도 주의 깊게 경청하였고 메모지에 짧은 필기를 하고, 내게 말했다;
“Well done! This is just what we need at this point.”
Then he suddenly added:
“You will have to fly to Leningrad and take over command of the Front and the Baltic Fleet from Voroshilov.”
The proposal was completely unexpected for me, nevertheless I said that I was ready to carry out the mission.
“Very well,” said Stalin.
“You must be aware,” he continued, “that in Leningrad you will have to fly over the front line or over Lake Ladoga which is controlled by the German air force.”
Then the Supreme Commander took a pad from the table and wrote something in bold handwriting. Folding the paper he handed it to me:
“Present this note to Comrade Voroshilov personally.”
“잘 해냈소. 그것이야 말로 이 시점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오.”
그리고 갑자기 덧붙였다.
“당신은 레닌그라드로 날아가서 보로실로프로부터 전선과 발틱 함대의 지휘권을 이양방아야 합니다.”
그 제안은 내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지만, 나는 임무를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하였다.
“좋소.” 스탈린이 말하였다.
“당신은,” 그가 계속 말하였다. “레닌그라드에서 당신은 전선 상공이나 라도가 호수 상공을 날아다녀야 하는데, 그곳은 독일 공군이 장악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최고사령관은 테이블의 메모지를 들고 굵은 손 글씨로 무엇인가를 필기하였다. 그는 그 종이를 접어 내게 주었다;
“보로실로프 동지에게 이 메모를 직접 주시오.”
The note read: “Turn over command of the Front to Zhukov, and immediately fly to Moscow.” Stalin added:
“The Supreme Command order on your appointment will be issued when you arrive in Leningrad.”
I realized that these words reflected concern that our flight might end badly.
Before leaving I asked the Supreme Commander-in-Chief to permit me to take along two-three generals who would be useful on the spot.
“Take anyone you want,” answered Stalin.
메모의 내용은 이랬다; “전선의 지휘권을 주코프에게 이양하고, 즉시 모스크바로 날아올 것.” 스탈린이 덧 붙였다.
“당신이 모스크바에 도착하는 대로 당신의 직책에 관한 최고사령관의 명령이 발포될 것임.”
나는 그 단어들이 우리의 비행이 불행하게 끝날 것에 관한 우려를 반영한 것임을 알았다.
출발 전, 나는 최고사령관에게 현지에서 유용한 두세 명의 장군과 동행하도록 승인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누구든 당신이 원하는 사람을 데려가시오.” 스탈린이 대답하였다.
Then, remaining silent for a while, he said:
“Things are going badly in the South-Western Direction. We have decided to replace the commander-in-chief there. Whom do you think we should send there?”
“Lately Marshal Timoshenko has had extensive practice in organizing combat operations, and he knows the Ukraine very well. I advise you to send him,” I answered.
“You’re probably right. And whom will we appoint to command the Western Front instead of Timoshenko?”
“Commander of the 19th Army Lieutenant-General Konev.”
잠시 침묵한 뒤, 그가 말하였다;
“문제는 남서방면이 안 좋게 돌아가는 것이오. 우리는 그곳의 사령관을 교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당신 생각에 우리가 누구를 보내는 것이 좋겠소?”
“최근 티모셍코 원수가 전투작전의 조직에 폭 넓은 경험을 가지고 있고, 우크라이나를 매우 잘 알고 있습니다. 그를 보내라고 당신에게 조언하겠습니다.” 내가 대답하였다.
“당신이 옳겠지. 그러면 서부전선 사령관으로 티모셍코 대신 누구를 임명하면 좋겠소?”
“19군 사령관 코네프 중장이 좋겠습니다.”
Stalin consented to this too. He telephoned Shaposhnikov right away and instructed him to summon Marshal Timoshenko and transmit the order to Konev on his appointment Commander of the Western Front.
I was about to take my leave when Stalin asked:
“How do you appraise the enemy’s further plans and potentialities?”
Thus I gained another opportunity to attract the particular attention of the Stavka to the dangerous situation in the Ukraine. And I said:
“At the present time, besides Leningrad the most dangerous sector for us is the South-Western Front. I believe that in the nearest days a difficult situation may arise there. Army Group Centre which has reached the ChernigovꠓNovgorod Seversky area may run over the 21st Army and break into the rear of the South-Western Front. I am certain that Army Group South which has seized a bridgehead in the Kremenchug area will coordinate its operations with Guderian’s army. A serious threat hangs over the South-Western Front. I recommend once again to immediately withdraw the Kiev group to the eastern bank of the Dnieper river and build up reserves somewhere in the Konotop area consisting of troops from this group.
스탈린도 이에 동의하였다. 그는 즉시 샤포시티코프에게 전화하여 티모셍코 원수를 소환하여 코네프를 서부전선 사령관으로 임명하는 명령을 전달할 것을 지시하였다.
내가 막 나가려는데 스탈린이 물었다;
“적의 추가적인 계획과 잠재력에 대한 평가는 어떻습니까?”
그래서 나는 우크라이나의 위험한 상황에 대해 스타브카의 특별한 관심을 끌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를 얻었다. 그래서 나는 대답하였다;
“지금 현시점에서, 우리에게 레닌그라드를 제외한 가장 위험한 방면은 남서전선입니다. 나는 가장 가까운 시기에 그곳에서 어려운 상황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습니다. 체르니고브, 노브고로드, 세베르스키 지역에 도달한 중부집단군은 21군을 초월하여 남서부 전선이 후방으로 침입할 것입니다. 나는 크레멘추그 지역에서 교두보를 확보한 남부집단군이 구데리안군과 그 작전을 협조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남서부전선에 심각하게 위험한 기운이 돌고 있습니다. 나는 키에프 집단군을 드네프르 강 동쪽 기슭으로 철수시켜서 코노톱 지역 어딘가에 이 집단군이 부대들로 구성된 예비대를 구축할 것을 다시 한 번 권고 드립니다.
“And what about Kiev?”
“However hard it may be, Comrade Stalin, Kiev must be abandoned. There is no other way out.”
Stalin removed the receiver and called Shaposhnikov.
“What are we going to do with the Kiev group?” he asked. “Zhukov insists that we immediately withdraw it.”
I did not hear what Shaposhnikov answered, but in conclusion Stalin told him:
“Timoshenko will be here tomorrow. Consider the question with him, and in the evening we’ll talk it over with the Front’s Military Council.”
“그러면, 키에프는?”
“정말 어렵겠지만, 스탈린 동지, 키에프는 버려야 합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스탈린이 수신기를 빼고 샤포시니코프를 불렀다.
“키에프 집단군은 어떻게 하겠소?” 그가 물었다. “주코프는 우리가 즉시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소.”
나는 샤포시니코프의 대답을 듣지 못했지만, 스탈린이 그에게 결론을 말하였다;
“내일 티모셍코가 이곳에 올 것입니다. 그 문제를 그와 함께 숙고해 보고, 우리는 저녁에 전선군사평의회와 함께 그것에 대해 논의할 것입니다.
Such a talk between the Stavka and the Military Council of the SouthꠓWestern Front took place two days later, on September 11. Here it is:
Kirponos, Burmistenko and Tupikov are on the line. Stalin,
Shaposhnikov and Timoshenko here.
이틀 후인 9월 11일 열린 스타브카와 남서부전선 군평의회 사이에 열린 회담.
키르포노스, 부르미스텡코, 투피코프는 유선으로.
스탈린, 샤포시니코프, 티모셍코는 현장에서 참석.
Stalin: Your proposal to withdraw the troops beyond the river, you know, seems dangerous to me…
In the given situation on the eastern bank of the Dnieper, the withdrawal of troops you propose would mean encirclement of our troops, because the enemy would advance against us not only from Konotop, that is from the north, but also from the south, that is from Kremenchug, and also from the west since if our troops were to be withdrawn from the Dnieper the enemy would instantly occupy the eastern bank of the Dnieper and would begin to attack. If the enemy Konotop group links up with the Kremenchug group you will be surrounded.
스탈린: 당신도 아다 시피, 군을 강 건너로 철수시키자는 당신의 제안은 내게 위험해 보입니다만...
드니프르 강 동안에 주어진 상황에서, 부대를 철수하자는 당신의 제안은 적들이 코노톱으로 부터뿐만 아니라 북쪽으로 부터도, 또한 남쪽의 크레멘추크로 부터, 또 서쪽으로부터도 우리를 향하여 진격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군이 포위되는 것을 의미하며, 우리 부대가 드네프르강으로부터 물러난 다면 적은 즉시 드네프르강의 동안을 점령하고 공격을 시작할 것입니다. 적이 코노톱 집단과 크레멘추크 집단을 연결시키면 당신은 포위당할 것입니다.
As you see, your proposals on the immediate withdrawal of the troops without preliminary preparation of the line along the Psyol River, first of all, and, second, without desperate attacks against the enemy Konotop group in cooperation with the Bryansk Front — I repeat without these conditions your proposals on withdrawal of troops are dangerous and may lead to a catastrophe. What is the way out? It can be the following:
First. Immediately regroup forces, if only by drawing on the Kiev fortified area and other troops and launch desperate attacks against the enemy Konotop group in cooperation with Yeremenko concentrating nine-tenths of the air force strength here. Yeremenko has already been issued relevant instructions. As to Petrov’s air force group we relocated it from Kharkov by a special order today turning it over to the South-Western Front.
당신도 아는 바와 같이, 씨욜 강을 따른 선의 사전 준비 없이 즉시 부대를 철수하자는 당신의 제안은 무엇 보다 먼저, 그리고 다음으로 브리얀스크 전선과 협조하여 코노톱집단의 적에 대한 치열한 공격 없이- 다시 말하지만, 그러한 조건이 없이 군을 철수시키자는 당신의 제안은 위험하고 재앙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해결책은 무엇인가? 다음과 같이 할 수 있습니다;
첫 째. 키에프의 요새지역과 다른 부대들을 끌어들이고 예레멩코의 협조로 공군력의 90퍼센트를 이곳의 적 코노톱 집단에 집중하여 공격하면 곧 군을 재편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레멩코는 이미 관련지침을 발표하였습니다. 페트로프의 공군집단은 오늘 특별명령에 따라 하르코프에서 남서부전선으로 이동하였습니다.
Second. Immediately organize a defensive line along the Psyol River or somewhere near that line deploying a large artillery group facing north and west and withdrawing 5-6 divisions to that line.
Third. After creating an assault force against the enemy Konotop group and after creating a defensive line on the Psyol River, in other words, after all that is done, begin evacuation of Kiev. Prepare carefully to blow up the bridges.
Leave no boats or pontoons on the Dnieper and destroy them, and after evacuating Kiev dig in on the eastern bank of the Dnieper preventing the enemy from breaking through.
Cease, after all, searching for new lines to retreat to, and search for ways to resist and only resist.
두 번째, 씨욜강을 따라 즉시 방어선을 조직하거나 그 선 근처 한 지점에 대규모 포병집단을 북쪽과 서쪽을 향해 배치하고 그 선으로 5-6개 사단을 철수시킨다.
세 번째, 적 코노톱 집단에 대한 공격부대를 창설한 후, 그리고 씨욜강 방어선을 구축한 후, 다시 말해 모든 것이 끝난 후 키에프를 비우기 시작한다. 조심스럽게 다리를 폭파할 준비를 한다. 드네프르 강에 보트나 부교를 남겨놓지 말고 그것들을 파괴하며, 키에프를 비운 뒤에 드네프르 강의 동안을 파헤쳐 적이 돌파하는 것을 막는다.
무엇보다, 후퇴를 위한 새로운 경로를 찾는 것을 중단하고, 저항, 오직 저항하기 위한 방도를 찾아야 한다.
Kirponos.We had no intention of withdrawing the troops before we were asked to present our considerations on withdrawal of troops to the east with indicating relevant lines, but only requested that our Front be reinforced with reserves in view of the fact that the front has extended to more than 800 kilometres.
Two rifle divisions with artillery are being taken from Kostenko’s army, in accordance with instructions from the Supreme Command received in the early hours of September 11, and transferred by railway to the Konotop sector with the aim of destroying, jointly with Podlas’ and Kuznetsov’s armies, the enemy motorized group that has broken through towards Romny. In our opinion no more troops should be taken from the Kiev fortified area, since two-and-a-half rifle divisions have already been withdrawn from there for the Chernigov sector.
Only some of the artillery may be taken from the Kiev fortified area. Supreme Command instructions just received by telegraph will immediately be implemented. That’s all.
키르포노스. 우리는 관련된 선으로 지시된 동쪽으로의 군 철수에 대한 고려사항을 제시하라는 요청을 받기 전까지는 철수할 의사가 없지만, 전선이 800킬로미터 이상으로 확장된 사실을 감안하여 우리의 전선을 예비대로 보강해 줄 것을 요청할 뿐입니다.
9월 11일 이른 시간에 받은 최고사령부의 지시에 따라 포병이 편제된 2개 소총사단이 코스텡코 군으로부터 분리돼 나와 철도를 통해 포달스군과 쿠즈네초프군과 합류하여 롬니를 향해 돌파한 적 기계화집단을 격파하기 위해 열차편으로 코노톱 방면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우리 의견으로는 이미 2개 반의 소총사단을 체르니코프 방면을 위해 키에프 요새화지역에서 철수하였기 때문에 그곳에서 더 이상의 군을 빼내서는 안 됩니다.
일부의 포병만을 키에프 요새화지역에서 빼낼 수 있을 뿐입니다. 방금 전신으로 접수한 최고사령부 지시는 즉시 이행될 것입니다. 그것이 다입니다.
Stalin: First, the proposals to withdraw the troops from the South-Western Front originated from you and from Budenny, Commander-in-Chief of the South-Western Direction. Here is an excerpt from his report:
“Shaposhnikov pointed out that the Supreme Command considers withdrawal of units of the South-Western Front to the east premature… If the Supreme Command does not have the possibility to concentrate such a strong group at present, the withdrawal of the South-Western Front is quite timely.”
As you see Shaposhnikov is against withdrawal of troops, while the commander-in-chief is for it, as was the South-Western Front which was for immediate troop withdrawal.
스탈린; 첫 째, 남서전선으로부터 군을 철수하자는 주장은 원래 당신과 남서방면 사령관인 부테니가 한 것이오. 여기 그의 보고서를 발췌한 것이 있습니다;
“샤포시니코프는 최고사령부는 남서전선의 부대들을 동쪽으로 철수시키는 것이 조급한 것이라고 간주하고 있으며... 최고사령부가 현재 그러한 강력한 집단을 집중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없으면 남서전선이 철수는 시의적절하다고 지적하였습니다.”
당신이 보는 것처럼 샤포시니코프는 부대의 철수를 반다하는 반면, 총사령관은 즉각적인 군 철수를 주장한 남서전선과 마찬가지로 그것에 찬성하고 있습니다.
Second. Keep us systematically informed concerning measures to organize an assault force against the enemy Konotop group and preparations of defences along the line you know.
Third. Do not leave Kiev and do not blow up the bridges without permission of the Supreme Command. Goodbye! …Bidding me farewell before my departure for Leningrad the Supreme Commander-in-Chief said:
“We are relying on you.”
두 번째, 당신이 알고 있는 적 코노톱집단에 대한 공격부대의 조직방법과 방어선에 따른 방어준비에 관해 계속 체계적으로 알려주시오.
세 번째, 최고사령부의 승인 없이 키에프에서 철수하지도 다리들을 폭파하지도 마시오. 잘 가시오! 레닌그라드로 출발하기 전 최고사령관이 작별을 고하며 내게 말하였다;
“우리는 당신을 의지하고 있소.”
I dropped in to see Vasilevsky who was the first deputy Chief of General Staff at the time. He was working on problems of the South-Western Direction. I asked Vasilevsky how he appraised the situation on this direction, and he said:
“I think withdrawal of troops beyond the Dnieper is long overdue…”
Coming in to see Shaposhnikov I arranged with him to communicate through remaining lines and by wireless and asked his opinion on the existing situation and his prognosis for the nearest future. He gladly shared his thoughts.
To this day I recall Shaposhnikov and always feel great gratitude for the intelligent advice he invariably gave me.
In regard to Leningrad Shaposhnikov was optimistic.
나는 당시 제1 총참모차장이었던 바실리예프를 만나러 들렀다. 그는 남서방면의 문제를 고심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그 방면의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물었고, 그가 말하였다;
“드네프르강 너머로 군을 철수시키는 것이 이미 늦었다는 생각입니다....”
샤포시니코프를 만나러 와서 나는 그와 함께 잔존하고 있는 통신선과 무선을 통해 통신을 하도록 정리하고, 현존하는 상황에 대한 그의 의견과 임박한 미래에 대한 예측에 관해 물었다. 그는 기꺼이 그의 생각을 공유하였다.
이 날까지 나는 샤포시니코프를 기억하며 내게 변함없이 현명한 조언을 해준 그에게 늘 큰 감사를 느낀다.
레닌그라드에 대한 샤포시니코프의 관점은 낙관적이었다.
At this point I would like to interrupt the more or less consecutive account of the course of events. The first, extremely grim two-and-a-half months of the war had passed. Our losses were very heavy. The air force of the frontier districts lost nearly 1,200 aircraft in the first day of the war. Supported by numerous aircraft enemy armoured and motorized formations continued to move forward driving wedges between our troops, attacking groups from the flanks, destroying communication hubs and lines. Many thousands of Soviet soldiers and civilians were killed…
이 시점에서 나는 사건의 진행과정에 관한 다소 연속적인 설명을 중지하려 한다. 먼저, 극단적으로 우울한 전쟁의 두 달 반이 지나갔다. 우리의 손실을 무거웠다. 전방지역의 공군은 전쟁 첫 날 거의 1,200기의 항공기를 잃었다. 수많은 항공기의 지원을 받는 적의 기갑 및 기동화부대는 계속 전진하며 아군부대의 틈에 쐐기를 박았고 측면으로부터 집단을 공격하였으며, 통신기지와 망을 파괴하였다. 수천의 소련군인과 인민들이 살해당했다...
At the same time from the very outset everything was developing not as was planned by the German High Command. It is yet to be analyzed by historians how, consecutively, against the seemingly favourable victorious background, the Nazis’ intentions were foiled one after another. All this had far-reaching consequences about which we will have occasion to set forth our opinion.
What did the Nazi troops stumble upon when they made the first step on our country’s territory? What prevented them from advancing at the usual rates above all? One can firmly say that it was the mass-scale heroism of our troops, their fierce resistance, steadfastness, the ardent patriotism of the armed forces and the people.
동시에 독일최고사령부의 계획대로 처음부터 진행되지 않았다. 보기에 유리한 승리의 배경에 대해서 나치의 의도가 어떻게 하나하나 연속적으로 실패하게 되었는지 역사학자들에 의한 분석은 아직도 되지 않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의견을 제시할 원인이 되는 광범위한 결과를 낳았다.
나치군이 우리의 영토에 첫 발을 디뎠을 때 그들은 무엇을 발견하게 되었는가? 무엇보다도 평상적인 속도로 전진하는 그들을 막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군대의 거대한 영웅적 행위였고, 그들의 치열한 저항이고 군과 인민의 불타는 애국심이었다.
History knows quite a few instances when troops rapidly lost their ability to resist and abandoning excellent weapons simply fled. No one can draw a clear line between the role played by weapons, military hardware and the morale of the troops. But there is no doubt that, other conditions being equal, the greatest battles and whole wars were won by the troops showing an iron will for victory, awareness of purpose, tenacity and loyalty to the colours under which they fought.
역사는 군대가 그들의 저항할 수 있는 능력을 급격히 상실하고 훌륭한 무기를 팽개치며 그냥 패주해 버린 상당한 사례를 알고 있다. 무기와 군사용 하드웨어, 군의 사기의 역할 사이에 명확한 선을 그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쌍방의 조건이 대등하다면 가장 거대한 전쟁과 전면전에 승리를 위한 강철 같은 의지, 목적에 대한 인식, 그들이 그 아래에서 싸웠던 색깔에 대한 끈기와 충성심을 보여주는 군대가 승리한다는 것이다.
In this connection, I think it would be fitting to let the enemy we fought in the Great Patriotic War speak for himself. Most of the sources I quote from were written in the early days and not subsequent years when political, propaganda and even personal interests could influence the authors. It is to be taken into account that for a number of years before the invasion of the USSR Nazi newspapers, radio and documents were naturally marked by a victorious tone. And it is not so important on what front and under whose command the troops mentioned in the sources fought. The important thing is the general trend in appraising the situation and course of events, the conduct of soldiers and officers in the period when we were suffering defeats, and when it was incredibly difficult for us.
이와 관련해서는 대조국전쟁에서 우리와 싸운 적이 그들 스스로 말하도록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인용하는 대부분의 자료는 정치, 선전, 심지어 개인적 관심사들이 저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이후가 아닌 초기에 쓰여 진 것이다. 소련이 침공당하기 수년 전부터 나치의 신문, 라디오, 그리고 문서들에는 본질적으로 승리의 어조가 나타나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야 한다. 그리고 자료에 언급된 부대가 어느 전선에서 누구의 지휘 하에 싸웠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사건의 경로와 상황, 우리가 패배하면서 고통 받았던 시기에 병사와 장교들의 행동, 그리고 그것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우리에게 어려웠을 때를 평가하는 일반적 경향이다.
Of course, a lot lay in store for us. The Soviet people realized that a long struggle lay ahead and that Nazi Germany would throw more and more forces to the Eastern front until she was exhausted completely. But the reader should see how the German victorious tone began gradually to abate at the first operational and tactical failures on the Eastern front and was replaced by surprise and disappointment.
Let us see what our enemies say.
Major-General von Buttlar. “War in Russia”.
An excerpt from the book 1939-1945 World War.
“The 6th Army was set the task of breaking through the Russian frontier defences south of Kovel, thereby enabling the 1st Panzer Group to emerge into manoeuvring space…
물론, 우리에게는 많은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 소비에트 인민들은 기나긴 투쟁이 앞에 놓여있으며 나치 독일은 그들이 완전히 기진맥진 할 때 까지 점점 더 많은 군사력을 동부전선에 투입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독자들은 동부전선에서의 첫 작전과 전략이 실패하였을 때 독일의 승리의 분위기가 점점 수그러지며 놀라움과 실망으로 바뀌는 것을 보아야 한다.
우리의 적이 말한 것을 보자.
폰 버틀러 소장. “러시아 전쟁”.
책 1939-1945 세계대전에서 발췌
“제 6군은 코벨 남부의 러시아 방어전선을 돌파하여서 제 1 기갑집단이 기동공간으로 침투하는 임무를 맏았다....”
“After certain initial successes the troops of Army Group Centre came upon the enemy substantial forces putting up defence at the prearranged positions, which in some places had even firing points reinforced with concrete. In defending these positions the enemy committed to battle large tank forces and delivered a number of counterattacks on the advancing German troops.
“After fierce battles that lasted several days the Germans succeeded in breaking through the enemy’s strong defences west of the Lvov-Rava Russkaya line and in force-crossing the Styr River, as well as pressing eastward the enemy troops which put up tough resistance and repeatedly passed to counterattacks…
“초기에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후 중부집단군의 부대들은 일부 화점이 콘크리트로 강화된 미리 준비된 거점이 있는 방어선의 실질적인 적군과 부딪쳤다. 그 거점들을 방어하면서 적들은 기갑 대부대와 전투를 벌였고 전진하는 독일군 부대에 여러 번의 반격을 하였다.”
“며칠 동안 계속된 치열한 전투 후 독일군은 르보프-라바 루스카야 선을 돌파하고 스티르 강 도하를 강행하는데 성공하였으며, 강인한 저항을 하며 반격을 거듭하는 적들을 동쪽으로 밀어붙이며...
“Because of the stiff resistance of the Russians the German troops, during the first days of war, suffered losses in manpower and materiel which were much heavier than the losses sustained in Poland and in the West. It became absolutely evident that the enemy’s warfare method and fighting spirit, as well as the country’s geographic conditions were absolutely different from those encountered by the Germans in the previous blitzkriegs which led to success amazing the whole world.”
“러시아군의 완강한 저항 때문에 독일군은 전쟁 초기 기간 동안 폴란드와 서부전선에서 입은 손실보다 더 많은 인적 물적 손실을 겪었다. 적의 전투방식과 투지, 그리고 국가의 지리적 조건이 전 세계를 놀라게 하였던 이전의 전격전에서 독일군이 만났던 것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 명백하여 졌다.”
An excerpt from the service journal of Colonel-General Halder, Chief of the General Staff of the German Ground Forces
“June 26, 1941 (5th day of war)
Evening summaries of operations for July 25 and morning summaries for July 26 report as follows:
Army Group South is advancing slowly, unfortunately, suffering considerable losses. The enemy acting against the Army Group South is reported to be directed with firmness and vigour. The enemy is constantly moving up fresh forces against our tank wedge. Reserves are pulling up before the central sector of the front, as was observed earlier, and before the southern flank of the group of armies…
June 29, 1941, (8th day of war)
독일 지상군 할더 대령의 복무일지에서 발췌
“1941년 6월 29일 (전쟁 5일차)
7월 25일 저녁 작전과 7월 26일 아침의 작전 요약 보고서는 다음과 같다;
남부집단군은 서서히 진격하고 있으며 불행하게도 심각한 손실을 입었다. 남부집단군에 대항하는 적의 움직임은 견고하고 활기 있게 지휘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적들은 끈질기게 우리의 기갑쐐기에 대항하는 새로운 부대를 이동시키고 있다. 전선의 중앙부와 앞에서 본바와 같이 집단군의 남쪽 측면 앞에 예비대들이 집결하고 있다... 1941년 6월 29일 (전쟁 8일차)
Information from the front confirms that the Russians are generally fighting till the last man…
Infantry General Ott reported his impressions about the battle in the Grodno area. Russians’ stiff resistance compels us to conduct war in keeping with all the rules of our combat regulations. Both in Poland and the West we could afford certain liberties and deviations from the regulations. Now this is inadmissible. The impact of the enemy’s aviation on our troops seems to be very weak…
The evening situation: …In the Lvov area the enemy is slowly retreating eastward putting up a tough fight for the last line. Here, for the first time, mass destruction of bridges by the enemy can be observed.
전선으로 부터의 정보는 러시아군은 일반적으로 최후의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싸우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보병 장군 오트General Ott는 그로드노 지역의 전투에 대한 그의 인상을 보고하였다. 러시아군의 끈질긴 저항은 우리의 모든 전투규정의 법칙을 지키며 전투행위를 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폴란드와 서부전선 모두에서 우리는 규정에서 어느 정도 자유롭고 탈선을 할 수도 있는 여유가 있었다. 이제 그것은 인정될 수 없다. 적의 공군이 우리 부대에 미치는 타격은 매우 빈약해 보인다...
저녁의 상황; ... 르보프 지역의 적은 서서히 동쪽으로 퇴각하며 마지막 저지선을 지키기 위한 치열한 전투를 하고 있다. 여기에서 최초로 대규모로 교량을 파괴하는 적들을 관측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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