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탐험사 100장면 42- 밤에 서쪽으로 날다 대서양을 반대로 난 여성 베릴 마컴(193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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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4.03.20. 03:02조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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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서쪽으로 날다
대서양을 반대로 난 여성 베릴 마컴(1936년)
요약 이전 대서양 횡단 비행은 북아메리카에서 유럽을 향해 동쪽으로 날았던 것이었다. 베릴 마컴은 여성 최초로 서쪽으로 날았는데, 엔진이 멎는 상황에서도 침착한 모습을 보였다. 런던을 떠난 지 21시간 25분 만의 일이다. 베릴 마컴은 그 뒤로 소설을 쓰거나, 경주마를 조련하는 등 도전의 연속인 삶을 살았다고 한다.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영국 소녀가 멧돼지 사냥을 하고 비행기로 코끼리떼를 쫓아다니다가 혼자 대서양을 비행했다. 그 뒤로 할리우드에 얼굴을 내밀었다가, 소설을 쓰고 경주마를 조련하는 등 베릴 마컴의 인생은 모험과 도전의 연속이었다. 사진은 마컴의 자서전 〈밤에 서쪽으로 날다〉 표지.
바람이 동쪽으로 불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대서양 횡단 비행이 처음 시도되었을 때부터 몇 차례 성공하기까지 그 비행들은 한결같이 북아메리카에서 유럽을 향해 동쪽으로 난 것이었다.
올콕과 브라운이 대서양 횡단 비행에 처음 성공한 지 11년 만인 1930년에야 프랑스인 두 사람이 파리에서 뉴욕으로 날았고, 다시 6년이 지난 1936년 9월 5일에야 비로소 서쪽으로 날아 대서양을 건넌 여성이 탄생했다. 주인공은 영국 출신 베릴 마컴.
1902년 잉글랜드 레스터셔에서 태어난 마컴은 네 살 때 아버지를 따라 아프리카로 건너가 케냐에서 자랐다. 나이로비 근처 느조로의 광대한 농장에서 자라는 동안 소녀는 사자에게 물렸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기도 하고, 원주민들과 함께 사냥에 나서 창으로 멧돼지를 질러 죽이기도 했다. 스와힐리어 등 몇몇 아프리카 방언도 꽤 잘한 그녀에게 아프리카는 영국보다 더 친숙한 진짜 고향이었다.
마컴이 열일곱 살 때 동부 아프리카에 큰 가뭄이 들자 그녀의 아버지는 페루로 옮겨 갔다. 그러나 마컴은 케냐에 남이 이듬해 경주마 조련사 면허를 땄다. 아프리카를 통틀어 여성으로서는 처음 따낸 어려운 자격증이었다.
마컴이 비행기 조종을 배우게 된 것은 스무 살 나던 1922년의 일이다. 길에서 고장난 비행기를 고치고 있던 톰 블랙이라는 사람을 도운 것이 계기가 되어 그에게 조종술을 배웠다. 그가 운영하는 윌슨항공사는 아프리카 내륙을 탐사하여 개발할 만한 곳을 찾아내는 일을 하고 있었다.
마컴은 비행 훈련을 받은 지 1년 반 지나 비행 기록을 약 1,000시간 쌓은 뒤에 조종 면허를 땄다. 그때부터 그녀는 비행을 직업으로 삼고 이스트 아프리칸 항공사에 들어가 우편물과 승객을 태운 비행기를 조종했다.
어느날 수입이 다섯 배나 많은 일을 할 기회가 왔다. 그것은 코끼리떼를 수색하는 일이었는데, 수입이 많은 반면 대단히 위험했다. 코끼리떼를 찾아 날다 보면 어디인지도 모를 곳에 비상 착륙하는 일이 많은데, 그런 곳에는 악천후와 질병을 옮기는 벌레와 맹수와 흰개미떼 같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러나 모험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그 일에 뛰어들었다.
1936년 초 런던-오스트레일리아 비행 대회가 열렸다. 그 일이 마컴의 모험심을 부추기자 그녀는 그 해 3월 케냐에서 런던까지 비행했다. 그리고 내친 김에 런던에서 준 카베리라는 부자를 만나, 런던에서 뉴욕까지 날 테니 자금을 대 달라고 부탁했다. 이미 40만km 비행 기록을 쌓은 마컴의 경력을 듣자 카베리는 선선히 돈을 대기로 했다.
"남자건 여자건 영국에서 출발해 혼자 대서양을 건넌 사람은 이제껏 없었소. 당신이 하겠다면 내가 비행기를 대겠소. 하지만 나보고 하라면 백만금을 준다 해도 그런 짓은 안하겠소. 그 시커먼 바다를 생각해 보시오. 또 얼마나 추울지도."
마컴은 석 달 걸려 '베가 걸'호를 만들었다. 항속거리가 1,000km밖에 안되는 표준 모델을 개조하여 5,800km 이상을 날 수 있도록 연료 탱크를 더 다는 일이었다. 이 탱크들은 양쪽 날개와 동체 한가운데 그리고 조종석 주위에도 벽처럼 둘러싸였다.
1936년 9월 4일 저녁 마컴은 런던 교외 애빙던 비행장을 이륙했다.
1시간쯤 지나자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마컴은 고도 600m를 유지한 채 칠흑 같은 어둠 속을 서쪽으로 서쪽으로 날아갔다. 시속 65km인 맞바람을 헤치고 시속 130km로 날아야 하는 어려운 비행이었다.
밤 10시 35분, 첫 번째 위기가 닥쳤다. 조종실 안의 커다란 연료 탱크가 다 비어 엔진이 멎은 것이다. 그 탱크에는 연료가 얼마나 남았는지를 나타내는 게이지가 없이 다만 '4시간 동안 사용 가능'이라는 안내문만 붙어 있었다.
캄캄한 밤, 대서양 물결 위 600m 상공에서 시동이 꺼진 비행기. 이같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마컴은 자기도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침착하게 대처했다. 다른 사람 같으면 본능적으로 기수를 올렸겠지만 그녀는 반대로 기수를 내렸다. 비행기가 내려가는 사이에 다른 연료 탱크의 뚜껑을 열면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마컴은 야광 고도계가 90m를 가리킬 때까지도 탱크의 꼭지를 찾지 못했다. 파도 소리가 귀에 들릴 무렵이 되어서야 그녀는 겨우 연료통 꼭지를 열었다. 비행기는 아슬아슬하게 다시 상승했다.
날이 밝자 안개가 사방을 둘러쌌다. 피곤하고 졸리고 추웠다. 얼핏 뉴펀들랜드의 해안 절벽이 보였다. 그때 엔진이 또 멎었다. 엔진은 잠시 후 다시 돌아갔지만 탁탁 소리를 내면서 검은 연기를 내뿜었다. 기체는 고도를 잃고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엔진은 돌다가 멎기를 되풀이했다. 그때마다 기체도 떴다 가라앉았다 하면서 힘들게 날아갔다.
마침내 엔진이 완전히 멎고 말았다. 마컴은 착륙을 시도했다. 잠시 후 기수가 진흙땅에 처박히면서 그녀의 머리가 조종석 앞유리에 세게 부딪쳤다.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녀는 기체 밖으로 기어나와 진흙수렁에 섰다. 시계를 보니 런던을 떠난 지 21시간 25분이 지나 있었다.
한 어부가 근처를 지나다 베가 걸호를 발견했다. 어부는 마컴을 자기 오두막으로 데려가 편안히 쉬게 해주었다. 그곳은 노바스코샤 반도의 케이프브레턴 섬이었다. 그녀는 이 섬 북쪽 시드니 만에 있는 시드니 비행장에 연락해 자기가 도착했음을 알렸다.
다음날 마컴이 뉴욕의 플로이드 베닛 비행장에 도착하니 5천여 군중이 열렬히 환영해 주었다.
나중에 조사해 보니 마지막 연료통의 공기흡입구에 얼음이 얼어 있었다. 그것이 연료가 기화기로 흘러드는 것을 방해해 엔진을 자주 꺼트린 것으로 밝혀졌다. 어쨌든 그런 상황에서도 비행기가 한동안 날았다는 것은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 그 전 기록은 * 1930년 / 뒤동 코스트와 모리스 벨롱 파리~뉴욕 무착륙 비행(6,560km, 37시간 18분 30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