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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31일 부활절 예배] 본문 :요16:25-33절 제목 :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33]
기도 : 시무장로 송호성 ♬150.159.136.159.71.
◇ 설립17주년 39번째 2부예배로 영광을! ◇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요4:24)
찬 양 : 오전10:40 예배:11시
올 겐 : 고범희 피아노 : 김순복 드 럼 : 송호성 섹소폰 : 이기수 베이스 : 송우성
사 회 및 강 론 : 담임목사 고 승철
제1부 찬양과 영광
묵상영광 / 다 같이 모두찬양
묵상성시 / [벧전1:3]
3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묵상기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주기도문 / 다 같 이
영광찬송 / 150 무덤에 머물러 (마28:1~10, 부활)
1 무덤에 머물러 예수 내 구주 새벽 기다렸네 예수 내 주 원수를 다 이기고 무덤에서 살아나셨네
후렴 :어두움을 이기시고 나와서 성도 함께 길이 다스리시네 사셨네 사셨네 예수 다시사셨네
2 헛되이 지키네 예수 내 구주 헛되이 봉하네 예수 내 주 원수를 다 이기고 무덤에서 살아나셨네
3 거기 못 가두네 예수 내 구주 우리를 살리네 예수 내 주 원수를 다 이기고 무덤에서 살아나셨네
교 독 문 / 제62번. 부활절로 함께 교독합니다.
집례: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회중: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집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회중: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집례: 예수께서 친히 그 가운데 서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회중: 저희가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집례: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회중: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나를 만져보라
집례: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회중: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다같이: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아-멘.
신앙고백 / 사도신경으로 다같이
부름찬송 / ♬159 할렐루야 우리 예수 (행1:9~11,부활)
1 할렐루야 우리 예수 부활 승천하셨네 세상사람 찬양하니 천사 화답하도다.
후렴 : 구주예수 부활하사 사망권세 이겼네 구주 예수 부활하사 사망권세 이겼네
2 할렐루야 우리 예수 왕의 왕이 되시고 우리들의 중보 되신 성령 증거 하시네
3 할렐루야 우리 예수 흠과 티가 없도다 무덤 속에 있는 죄인 주가 일으키시네
부름기도 / 시무장로 : 송호성
본문 :요16:25-33절 제목 :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33]
25 이것을 비사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 비사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26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
27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나를 하나님께로서 온줄 믿은 고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니라
28 내가 아버지께로 나와서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
29 제자들이 말하되 지금은 밝히 말씀하시고 아무 비사도 하지 아니하시니
30 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줄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서 나오심을 우리가 믿삽나이다.
3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32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제2부 말씀과 은혜
할렐루야!
기독교의 절기 중에 최고의 축복된 절기축제인 부활절을 맞이하였습니다.
모든 명산의 사역자들에게 주님의 은총이 풍성하여 행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링컨이 젊었을 때- 행복한 예수님의 사람들 -
그는 변호사 시절 주 의회 의원에 출마했으나 낙방했습니다.
다시 하원의원에 출마했으나 역시 낙방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몇 번 낙방을 거듭하자 링컨은 좌절과 절망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변 친구들은 링컨을 보면서
염려하기를 '저러다 링컨이 자살하는 건 아니냐?'며
친구들은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낙선하던 날 링컨은 ;
머리를 말끔히 깎고 목욕도 하고
고급 음식점에 들어가서 맛있는 음식도 먹었습니다.
그리고 길을 걸으며 자기가 자기에게 외치기를 '오늘 떨어졌어도 내일 다시 할 수 있다,
부활의 주님이 도우실 것이다'
링컨은 그 당시 자기 상황을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나는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인생을 살고 있다.
나는 재기할 수 없을 것 만 같은 심정이다.
나는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있다'고 절망하던 중 성경을 읽다가 부활의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성경을 읽고 그 속에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함께 계신 것을 믿고 용기를 가졌습니다.
그래서 링컨은 ;
공화당에 입당하고 열심히 뛰어 공화당에서
대통령 후보 지명을 받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고 그의 일대기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매일매일 기쁨으로 행복을 소원하는 사역자들은!=====>
1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주가 그 십자가에 달릴 때
♬136 거기 너 있었는가 (마27:55, 고난)
1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주가 그 십자가에 달릴 때
후렴 : 오 때로 그 일로 나는 떨려, 떨려, 떨려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2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주가 그 나무 위에 달릴 때
3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해가 그 밝은 빛을 잃을 때
4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주를 그 무덤 속에 뉘일 때
5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주가 그 무덤에서 나올 때
주후2024년도 표어 :매일매일 기쁘게 살아가는 믿음[하박국3: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03월 주제 : 믿음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믿음[엡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본문 :요16:25-33절 제목 :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33]
본문의 말씀은 “내가 세상을 이겼다.”라는 말씀입니다.
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16:33절에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라고 하셨습니다.
이 표현은 고별 설교에서 여러 번 반복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표현과 관련된 내용은 각기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1)예수의 말씀하신 것들이 이루어질 때에 제자들이 믿게 하기 위함(13:19;14:29).
(2)제자들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기 위함(15:11).
(3)환난 때에 예수의 말을 기억하게 하기 위함(14:4).
(4)본 절에서는 평안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지칭하는 바를 고별설교(13-16장)로 국한시키는 것이 가장 타당할 것입니다.
자세한 것은 25절과 16:1.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는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조차 제다들이 소유해야 할 모든 것을 갖도록 하시기 위해 수고하십니다.
예수가 주시는 평안은 세상적인 것과는 결코 비교할 수 없이 월등한 것입니다(14:27).
이 평안은 세상에서 핍박을 당하지만 마음으로 누리는 기쁨(22절)에서 비롯됩니다.
그리고 또한 성령의 열매인(갈5:22)
이 평안을 제자들은 오순절성령강림 후에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담대하라. -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담대(膽大)해야 할 대상은 세상에서 당하게 되는 환난입니다.
이 환난은 상 반절에서 언급된 평안과 대조되는 용어이면서 동시에 그 둘이 나오게 된 출발점 역시 대조됩니다.
즉 환난은 세상에서 나오며 평안은 예수 안에서 나옵니다.
그러나 예수가 세상을 이기심같이 평안도 환난을 이긴다는 약속이 보장됩니다.
이런 이유로 제자들에게 예수는 담대하라고 권면하셨던 것입니다(마5:12).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세상은 바로 앞에서 언급된 세상과 약간 구별되어야 합니다.
앞에서 언급된 세상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으로서 ;
인간들이 생활하는 영역을 지칭하지만 본 구절에서 세상은 ;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모든 대적 자들과 사단의 무리 및 그 세력을 가리킵니다(12:31;14:30).
예수가 싸우는 대상은 전자의 의미를 지닌 세상의 통치자들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가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정치적 왕국을 건설하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편 '이기었노라'(니카오)란 표현은 ;
본서 외에 요한의 서신 서에서도 영적승리를 나타내는데 사용되었습니다(요일2:13,14;4:4;5:4,5).
예수는 세상으로부터의 승리를 묘사함에 있어서 동사의 완료형으로 말씀하십니다.
이 완료형은 본 절에서 독특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즉 예수는 아직 십자가를 지지 않으셨으므로 아직 부활의 승리 역시 거두지 못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료형의 동사를 사용하신 것은 그 승리가 미래의 일이지만 완전히 확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예수는 ;
'부활'로써 사망의 왕 노릇 하는 자들로부터 승리를 거두셨으며(롬5:12,14;딤후1:10)세상을 정복하셨습니다.
이러한 승리에 대한 완료 시제는 승리의 영속성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이 승리는 그리스도 자신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
그와 연합한 모든 자들에게 동일한 의미로 적용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7)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첫째 : 때가 이르면 밝히 이르리라(25;27]
둘째 : 아버지께로 왔고 아버지께 가노라[28;29]
셋째 :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30;32]
첫째 : 때가 이르면 밝히 이르리라(25;27]
25 이것을 비사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 비사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16:25절에 이것을 비사로..일렀거니와 -라고 하셨습니다.
'비사'(比辭)로 번역된('파로이미아')는 ;
공관복음에서는 사용되지 않았으며 본서에서 '비유'으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파로이미아')는 ;
확연히 드러나지 않거나 난해한 말, 또는 상징적인 말의 형태를 가리킵니다.
한편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다음 세 가지로 추정될 수 있습니다.
(1)21절에 언급된 해산하는 여인에 관한 비유.
(2)14:1에서 본장 24절까지 말씀하신 것으로 제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비사들.
(3)지금까지 예수가 말씀하셨으나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한 모든 것.
혹자는 ;
'이것'을 세 가지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세 번째의 추정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
이 말씀하시는 시점과 장소가 12:36을 기점으로 구분되므로
'이것'이 12:36이전에 말씀하신 것을 지칭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첫 번째의 추정은 '이것'으로 번역된 헬라어가 복수이므로 타당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두 번째의 추정이 가장 적당합니다.
때가 이르면...밝히 이르리라 -라고 하셨습니다.
'밝힌다.'는 동사는 ;
10:24에서 유대인들이 예수를 향하여
예수 자신의 신분을 밝힐 것을 요구했던 곳에서 언급되었습니다.
여기서 예수는 숨기는 것과 밝히는 것을 그 이유를 깨닫는 집단과 ;
그것을 깨닫지 못한 집단을 대조시켜 설명하시지 않고 '때'라는 단어와 연결시켜 설명하십니다.
본 절에서는 ;
비유의 깊은 뜻에 대한 이해의 유무가 마가의 기록처럼(막4:11)
제자이냐 아니면 막연한 집단이냐에 따라 구분 되었 다기 보다는 ;
그 계시를 밝히시는 때에 의하여 비밀을 아는 자와 모르는 자에 따라 구분됩니다.
즉 예수의 공생애 기간 동안 함께 했던 모든 무리들(제자들 포함)과 ;
부활을 경험한 무리들 사이에 대조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비밀을 밝히 알리시는 '때'는 ;
직접적으로 부활 이후 곧 성령의 오시는 때를 의미하므로 ;
예수와 지상 생애를 함께 했던 제자들이라 할지라도 성령이 오시는 때에 가서야
성부에 관한 것을 포함한 모든 비밀을 알게 될 것입니다.
26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
16:26절에 너희를 위하여..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 -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을 통해서 비밀을 밝히 알게 되면 제자들은 ;
마땅히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할 능력이 생길 것입니다(23절).
그러나 그것 때문에 예수께서 제자들을 위한 중보기도를 하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표면적으로 드러난 의미로는, 구하지 않겠다는 말씀이 ;
14:16이나 17:9의 말씀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메이어(Meyer)는 ;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14:16과 17:9에서
예수가 언급하신 기도는 보혜사 성령이 오시기 전까지의 기도를 의미하므로
본 절의 말씀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보혜사가 오신 이후에는 제자들의 기도 능력이 성숙하여져서
중보 기도가 필요 없다는 주장은 오히려 더 큰 모순을 일으킵니다.
왜냐하면 요한은 ;
보혜사 성령이 오신 후에도 예수가 ;
성부 앞에서 대언자로 성도를 위해 활동하신다(요일2:1)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롬8:34과 히9:24-26 역시 그리스도의 중보기도를 명백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중보 기도가 성령의 오심 이전이나 이후나 계속되고 있음을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모리스(Morris)는 ;
예수가 제자들을 위한 기도를 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것은 전후 문맥에서
이미 강조한 기도의 기본 원칙에 근거하여 다시 재고해 보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스도의 중보는 십자가 위에서 단번에 완성되었으므로 그 희생의 공로는 지속적입니다.
무릎을 굻고 아뢰지 아니한다고 할지라도 ;
십자가에 근거한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적 직무에 의해 성도들의 기도는 보좌 앞에 상달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의 중보기도는 부활하신 후에도 지속됩니다.
그러나 세상에 게신 동안에는 보좌를 향해 예수가 친히 제자들을 위해 중보 기도를 하십니다(17장).
따라서 본 절은 ;
성령이 오신 후에는 제자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멈추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
세상에 계시는 동안 예수가 제자들을 위해 여러 가지로 기도하셨던 것과 같은 기도를 멈추신다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
성령이 오시면 그 성령에 의해 제자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께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27절은 ;
그 이유를 한 걸음 더 나가서 설명해 줍니다.
27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나를 하나님께로서 온줄 믿은 고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니라
16:27절에 아버지께서 친히...사랑하심이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본 구절에서 '친히'( 아우토스)라는 ;
말이 보통의 경우와 같이 강조적인 용법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 의미는 ;
①'자의적인' 또는 ②'자발적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본 절에서는 제자들이 예수를 사랑하고 ;
그가 아버지께로부터 온 자인 것을 믿음으로 아버지께서 그들을 사랑한다고 말씀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그들의 사랑과 믿음이 아버지의 사랑을 보장하는 공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누구의 설득에 의하여 사랑을 베푸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의 사랑은 오직 당신 스스로의 자의(自意)에 의해 베풀어지는 것입니다(요일4:19).
이에 대해 칼빈(Calvin)은 ;
다음과 같이 요약하여 설명했습니다.
'없는 자들을 부르셔서 있는 자들로 만드시고, 딱딱한 심령을 부드럽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매일매일 기쁨으로 행복을 소원하는 사역자들은!=====>
2 할렐루야 우리 예수 왕의 왕이 되시고 우리들의 중보 되신 성령 증거 하시네
♬159 할렐루야 우리 예수 (행1:9~11,부활)
2 할렐루야 우리 예수 왕의 왕이 되시고 우리들의 중보 되신 성령 증거 하시네
후렴 : 구주예수 부활하사 사망권세 이겼네 구주 예수 부활하사 사망권세 이겼네
첫째 : 때가 이르면 밝히 이르리라(25;27]
둘째 : 아버지께로 왔고 아버지께 가노라[28;29]
28 내가 아버지께로 나와서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
16:28절에 아버지께로...왔고...아버지께로 가노라 -라고 하셨습니다.
요한은 본서를 시작할 때 아버지로부터 오신 아들의 신성과 말씀이 육신이 된 성육신의 비밀과(1:1-14)
아들을 통한 구속사역을 설명했습니다.
이제 마지막 고별 설교에서 이것을 다시한번 요약하는 것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하늘로부터 오신 예수는 '다시' 하늘로 돌아갑니다.
아버지로부터 오신 예수는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갑니다.
이처럼 본 절에서 예수는 자신의 오고 가심을 밝힘으로써 자신의 기원이 결코 세상이 아님을 밝히셨습니다.
이러한 예수의 말씀 속에는 자신을 정치적 메시야,
곧 세상적 메시야로 생각하며 그러한 메시야로 삼으려는 자들의 의도가 전혀 소용없음도 암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가 이 세상을 떠나심은 성령의 오심에 대한 확실한 조건이요 신호입니다.
29 제자들이 말하되 지금은 밝히 말씀하시고 아무 비사도 하지 아니하시니
16:29절에 제자들이 말하되...아니하시니 -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실제로 예수의 비유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으며(10:6)
예수 역시 비사로 말씀마신 후에 그날에 가셔야 ;
제자들이 밝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23,25절)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이 이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은
매우 예외적이며 특히 25절과 서로 모순되는 진술로 보입니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한 학자들의 견해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밝히 드러날 때가 다가오고 있으며 또한 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
제자들은 예수에 대한 사랑과 올바른 신앙고백을(27,28절)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가 말씀하시는 비사의 의미를 이해한 것처럼 대답했습니다.
(2)제자들은 의혹의 안개가 다 걷혀 명확히 이해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단지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예수께서 비사로 말씀하지 않았으며 ;
또한 쉽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어렵게 생각한 것은 예수의 언어적 표현(비유 또는 비사)이 아니라 ;
미래에 되어 질 일들 자체에 대한 것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의 부활과 승천을 알고 있는 ;
우리들과는 달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신다는 사실을
그때 당시는 아직 경험하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3)제자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의 의도를 다 이해하지는 못했으나 ;
단지 어떠한 느낌에 의하여 위로를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어렴풋하게 느끼는 것을 확실하게 아는 것처럼 과장되게 표현했다.
이러한 표현은 ;
오늘날 우리가 복음에 대한 아주 미비한 지식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알고 있는 것처럼 더 큰 확신으로 외치는 것과 같은 것이다(Calvin)고 주장합니다.
(4)25절에서 약속한 '그때'가 제자들에게는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은 ;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되었으므로 ;
이 당시 제자들은 모든 의심을 해결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한 그리스도를 목격한 이후에도 믿지 못했던 제자들을 생각하면(마28:17)
25절에서 약속한 것들이 이 시점에서 성취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5)제자들은 과거와 현재 및 미래에 있어서 ;
예수 자신의 실존에 대한 모든 비밀들을 세심하게 들으면서 예기치 못했던 깨달음에 사로 잡혔다.
그래서 자발적이면서도 만장 일치적인 고백이 그들의 입술에서 튀어 나왔습니다.
그런데 31, 33절 말씀은 ;
제자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밝히 이해하지 못했음을 암시합니다.
만약 그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완전히 이해했다면 체포되던 스승을 버려두고 도망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상의 모든 견해들을 종합해 볼 때 제자들은 예수의 말씀을 통하여 ;
감추어진 비밀에 대하여 조금 이해했던 것은 ;
사실이지만 본 절과 같이 말한 것은 약간의 과장이 포함된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을 다 명확하게 알지는 못했지만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는 것을 ;
믿었으므로 이와 같은 고백을 할 수 있었습니다.
30 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줄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서 나오심을 우리가 믿삽나이다.
16:30절에 지금에야...아나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온전히 아는 것은 제자들이 아니라 예수이십니다.
단지 제자들은 모든 것을 아시는 예수를 안다고 고백합니다.
예수는 제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다 아십니다(2:24,25).
그래서 예수는 제자들의 마음속에 있는 의문을 아시고(19절)
그 의문을 해결해 주실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이 같은 예수의 능력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 믿음은 아직 지극히 연약하여 그들이 고난을 극복할 만큼의 믿음은 되지 못합니다.
어떤 면에서 본 절과 29절에서 언급된 제자들의 고백은 ;
예수를 위해 자신의 목숨도 버리겠다고 호언장담하던 베드로의 모습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마26:33).
이러한 그들의 모습은 마음은 원이지만 ;
육신이 연약하여 생각대로 실현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마26:41).
그들은 스승 앞에서 스승의 가르침을 이해한 것처럼 대답했으나 어디까지나 그들의 이해는 아직 불완전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32절의 말씀은 예수가 굳이 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매일매일 기쁨으로 행복을 소원하는 사역자들은!=====>
2 할렐루야 우리 예수 왕의 왕이 되시고 우리들의 중보 되신 성령 증거 하시네
♬159 할렐루야 우리 예수 (행1:9~11,부활)
2 할렐루야 우리 예수 왕의 왕이 되시고 우리들의 중보 되신 성령 증거 하시네
후렴 : 구주예수 부활하사 사망권세 이겼네 구주 예수 부활하사 사망권세 이겼네
첫째 : 때가 이르면 밝히 이르리라(25;27]
둘째 : 아버지께로 왔고 아버지께 가노라[28;29]
셋째 :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30;32]
3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16:31절에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는 제자들의 믿는다는 고백을 단순히 반복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이 구절은 앞뒤 문맥에
따라서 조심스럽게 상고(詳考)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믿는다는 고백(30절)과 예수를 떠나게 되는 배신(32절)
사이에 본 절이 언급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학자들은 본 절에 대하여 크게 두 가지의 견해를 제시합니다.
(1)혹자는 의문문이 아니라 서술문으로 이해하여 ;
'이제는 너희가 믿는 도다'로 재번역합니다(Bernard, Godet, Meyer).
이러한 해석은 예수가 제자들의 믿음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
오히려 감탄하는 의미로 이해한 데서 비롯되었다(McClymont)는 것으로 ;
지금까지 무지했던 그들의 믿음이 이 정도라도 고백할 수 있다는 사실이 예수에게 기특하게 여겨졌다는 뜻입니다.
(2)예수의 말씀을 의문문으로 받아들여 반어적(反語的)으로 해석하는 것이다(Calvin)고 주장합니다.
즉 본 절은 ;
'너희에게 믿음이 굳게 섰다고 지금 자랑하는 거냐?'라는 의미가 됩니다.
예수는 제자들의 연약성을 지적하고 그들의 신앙적 한계를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본 절을 이와 유사한 13:38과 비교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3:38에서 예수의 질문은 반어법으로서 베드로가 예수를 위해 죽을 수 없음을 강조한 의미였습니다.
그리고 본 절은 32절에 비춰볼 때 분명히 반어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사랑했으나 ;
아직 자기 목숨을 버릴 만큼 완전한 사랑에 이르지 못한 것처럼 제자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했으나
그들의 믿음은 지극히 불완전한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가 반어법을 사용하신 것은 베드로의 사랑을 무시했거나 ;
제자들의 믿음을 무시하기 위한 의도가 아니라 아직까지 ;
그들의 사랑과 믿음이 불완전 상태에 있음을 지적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말은 성령 강림 때까지 온전한 믿음을 갖기 위해 기다리라는 권고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32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16:32절에 너희가...흩어지고 -라고 하셨습니다.
'흩어지고'에 해당하는 헬라어('스코르피스데테')는 ;
원래 '뿌려 버리다'를 뜻하는데
10:12에서는 ;
이리에 의하여 흩어지는 양떼를 묘사할 때 사용되었다(개역 성경은 '헤치느니라.'로 번역함).
본 절에서 예수는 ;
슥13:7에 언급된 예언을 인용하셔서 제자들에게 적용시키셨습니다.
그 흩어짐은 이리떼 같은 당시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렇지만 예수의 예언대로 제자들이 흩어진 것은 예수의 신성을 입증하는 증거 중에 하나입니다.
실제로 제자들은 방금 신앙을 고백하였으나 ;
그 밤에 모두 예수 곁을 떠나 각각 자기의 길로 도망해 버렸습니다(마26:56).
끝까지 주를 따르겠다고 말하던 베드로조차도 세 번씩이나 주를 부인하는 연약함을 보였습니다(마26:33,34).
그래서 예수는 ;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홀로 남게 되시는 고독과 더불어 고통의 십자가도 지셔야 했습니다.
예수는 ;
인간들의 철저한 배신과 사랑하는 자들의 흩어짐 속에서 고통의 절정에 이르신 후 승리를 얻으셨고
이 승리를 통해 교회가 출발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그토록 연약했던 제자들에 의하여 교회가 출발하였다는 사실은 ;
그 출발의 궁극적인 기원이 제자들의 용기와 지혜에 있지 않음을 증거 합니다.
첫째 : 때가 이르면 밝히 이르리라(25;27]
둘째 : 아버지께로 왔고 아버지께 가노라[28;29]
셋째 :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30;32]
❖그러므로 매일매일 기쁨으로 소원하는 사역자들은!=====>
3 할렐루야 우리 예수 흠과 티가 없도다 무덤 속에 있는 죄인 주가 일으키시네
♬159 할렐루야 우리 예수 (행1:9~11,부활)
3 할렐루야 우리 예수 흠과 티가 없도다 무덤 속에 있는 죄인 주가 일으키시네
후렴 : 구주예수 부활하사 사망권세 이겼네 구주 예수 부활하사 사망권세 이겼네
제3부 감사의 봉헌으로 축복
봉헌성가 / 71 내게 있는 모든 것을 (눅21:4, 헌금)
1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치네 사랑하고 의지하여 주 만 따라 가겠네
후렴: 주께 드리네 주께 드리네 사랑하는 구주 앞에 모두 드리네 아-멘
2 내게 있는 모든 것을 겸손하게 바치네 세상 복락 멀리하니 나를 받아 줍소서
3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주를 위해 바치네 크신 권능 충만하게 내게 내려 줍소서
예물봉헌 / 송우성 기도와 정성으로
봉헌축도 / 당회장 고 승철목사
축복기도 / 초장에 축복을 더 하소서!
승리외침 / 믿음은 능력의 힘을 주십니다.
❀ 매일매일 기쁨으로 행복합시다.
❀ 매일매일 기쁨으로 형통합시다.
❀ 매일매일 기쁨으로 승리합시다.
주후2024년 3월 생일명단 [생일을 축하합니다.]
김의영 3.14 [음2.05]
노재교 3.26 [음2.27]
송재규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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