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충남 서산으로 민속을 조사하러 갔을 때의 일이다. 한 농촌 마을을 가니, 대문에 금줄을 쳐 놓은 집이 있었다. 왼 새끼줄에 백지, 숯, 솔잎, 고추 등을 꽂은 것으로 보아 아들을 낳은 집 같았다. 요즈음에는 젊은이들이 거의 다 도시로 나가 살고 있기 때문에 농촌에는 출산할 나이의 젊은이들이 별로 살지 않은 형편이고, 농촌에 사는 젊은이도 아기를 낳을 때에는 병원에 가서 낳고, 집에 와서도 금줄을 치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그래서 농촌에서도 금줄을 쳐 놓은 것을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 집 대문에 금줄이 쳐져 있으니, 먼저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그 집에서 출산한 사람이 누구일까?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일까? 아니면 도시에 나가 살다가 출산할 때가 되어 고향 부모님의 도움을 받기 위해 돌아온 사람일까? 이러한 것은 알 수 없었으나, 참으로 반가웠다.
금줄은 아기 낳은 집 대문에도 쳤지만, 장을 담근 뒤에 장 항아리에도 매 놓았고, 굿을 하는 집이나 동신제를 지낼 당집이나 당나무에도 친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하여도 아기 낳은 집에 금줄을 치는 일과 장독에 금줄을 매는 일을 흔히 볼 수 있었으나, 요즈음에는 민속촌의 한옥 마을에나 가야 볼 수 있다. 학생들과 함께 민속촌에 가면, 학생들은 금줄을 보고, 신기해하면서 그 의미를 묻곤 한다. 외국인들 역시 금줄을 치는 이유와 의미를 궁금해하며 안내자에게 묻곤 한다고 한다.
금줄은 '인줄'이라고도 하는데, 보통 왼 방향으로 꼰 새끼에 백지, 숯, 솔잎, 고추 등을 끼운다. 이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먼저 왼 새끼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새끼를 꼬는 짚은 벼를 타작하고 남은 줄기이다. 벼는 땅에서 우리의 주식물이 되는 살을 생산하며, 땅에서 자라는 청정(淸淨)한 식물이고, 번식력이 뛰어난 다산(多産)의 식물이므로, 예로부터 매우 신성한 식물로 생각하였다. 우리 민족은 오른 쪽을 일상적인 것으로, 왼쪽을 비일상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오른 쪽은 낮·해·남자·밝음을 뜻하고, 왼쪽은 밤·달·여자·어둠을 뜻하기도 한다. 이를 성속(聖俗) 관념으로 보면, 일상은 속(俗)이고, 비일상은 성(聖)이 된다. 그래서 왼 새끼줄은 거룩하고, 신성하며, 옳은 것을 상징한다.
왼 새끼에 끼는 백지의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 민족은 일찍부터 농경생활을 하면서, 태양을 숭배하였다. 태양을 숭배하다 보니, 태양의 빛인 흰빛을 숭상하였다. 흰색은 태양의 빛깔인 흰빛을 색으로 나타낸 것으로, 신성의 의미를 지닌다. 이렇게 볼 때 금줄에 끼는 백지는 신성의 의미를 지닌다. 옛날이야기에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많이 나오는데, 이들은 신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것 역시 백색이 신성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말해 준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흰색을 숭상하고, 좋아하여 옷도 흰옷을 즐겨 입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을 가리켜 백의민족(白衣民族)이라고 하기도 하였다.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 통지를 받을 때, 일본인들은 조선 사람이 흰옷 입은 것을 싫어하여 장날 조선인의 옷에 검정 물을 뿌렸다고 한다. 이것은 흰옷이 조선인의 민족적 유대감을 다지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라 하겠다.
고추의 경우, 아들 낳은 집에서는 금줄에 고추를 끼고, 딸 낳은 집에서는 고추를 끼지 않는다. 우리말에서 어린아이의 그것을 '고추'라고 하기도 한다. 이로 보아 고추는 남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후대적인 것이고, 금줄에 고추를 끼는 더 근원적인 이유는 고추가 붉은 색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붉은 색은 활활 타는 불꽃의 색으로, 귀신이 싫어하는 색이므로, 금줄에 붉은 색의 고추를 끼워 놓아 이들의 접근을 막으려는 것이다. 이것은 농가에서 새로 담근 장독에 고추·백지·숯을 낀 금줄을 매 놓던 풍습에서도 알 수 있다. 새로 담근 장독에는 금줄을 맬 뿐만 아니라, 그 안에 숯과 함께 고추를 띄워 두기도 하는데, 고추를 띄는 것은 고추가 붉은 색이면서 맛을 내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숯은 더러운 것을 모두 태워 버리고 남은 고체이다. 따라서 숯은 소각을 통한 정화(淨化)의미를 지닌다. 실제로 숯은 정화작용을 한다. 초등학교 때, 시험관에 모래·숯·자갈을 넣고 더러운 물을 통과시키면 맑은 물이 되는 실험을 한 기억이 난다. 비누가 없던 시절에는 짚이나 나뭇잎의 재를 우린 물로 빨래하였다. 이것은 숯이나 재가 정화작용을 함을 말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장독 안에 고추와 함께 숯을 띄우는 것은 숯의 정화작용에 의해 불순물을 제거하여 장을 더욱 맛있게 하려는 것이고, 장독에 매는 금줄에 숯을 끼우는 것은 숯의 정화 능력에 의해 부정을 막으려는 것이라 하겠다.
솔가지나 솔잎은 생생력(生生力)의 상징으로, 풍요와 희망의 의미를 지닌다. 소나무는 겨울에도 단풍이 들지 않는, 높은 기개를 지닌 나무로, 늘 푸른 빛을 띠고 있다. 푸른색은 신성시하는 하늘과 생명의 원천으로 여기는 물의 색으로 생생력 상징으로, 방위로는 동쪽을, 계절로는 봄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솔잎은 생생력과 풍요와 희망을 상징한다.
이처럼 거룩하고 신성함을 상징하는 왼 새끼에 신성을 나타내는 백지, 축귀(逐鬼)·축사(逐邪)의 의미를 지닌 고추, 정화의 뜻을 지닌 숯, 생생력을 상징하는 솔잎을 끼운 금줄을 일정한 장소에 쳐 두는 것은 민속학적으로 깊은 의미를 지닌다. 아기를 낳은 집 대문 앞에 금줄을 치는 것은 '이곳은 새 아기가 자라고 있는 신성한 곳이나 잡귀·잡신·부정은 물론, 부정한 사람과 볼일이 없는 사람은 들어오지 마시오.' 하는 뜻이다. 민간에서는 복(福)도 대문으로 들어오지만, 화(禍)도 대문을 통해 들어온다고 믿는다. 그래서 대문에 금줄을 쳐 놓아 잡된 것·부정한 것·잡귀·잡신 등이 대문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 태어난 아기와 산모를 보호하려는 것이다.
장독에 금줄을 둘러놓는 것 역시 같은 뜻이다. 장을 담그는 일은 그 집의 식생활을 좌우하는, 아주 중요한 일이다. 장을 담가 잘 익느냐, 그렇지 못하냐가 그 집 식구의 일 년 간의 식생활을 좌우한다. 그래서 부녀자들은 잠 담그는 일을 매우 중요시하였고, 장 담그는 솜씨를 며느리들에게 전수하였던 것이다. 민간에서는 장맛으로 그 집안의 내력과 가풍을 안다고 하였고, 장맛이 변하고 변하지 않음을 보아 그 집안의 유고(有故)·무고(無故)를 가늠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렇게 중요한 집안 행사인 장을 담그고는 부정 없이 잘 익기를 바라는 뜻에서 장독에 금줄을 둘러놓았던 것이다. 장독에 백지로 버선 모양을 오려서 거꾸로 붙이기도 하였는데, 이것 역시 부정한 것의 접근 금지를 뜻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굿을 하거나 동제(洞祭)를 지낼 때에도 미리 그 장소를 깨끗이 한 다음에 황토를 놓고, 금줄을 쳐 놓는다. 이 때에는 고추를 끼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이 때의 금줄은 신성한 금줄을 쳐 놓음으로써 잡귀와 부정을 막음은 물론, 그곳을 일상적인 속(俗)의 공간과 구별하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일상적인 공간과 구별되는 공간은 성(聖)의 공간이다. 일상적인 속의 공간은 질병·결핍·고난·불행이 있는 곳이고, 성의 공간은 건강·재물·행복 등이 있는, 존재의 근원이 되는 곳이다. 굿을 하거나 동신제를 지내는 것은 건강, 풍요, 재물, 행복 등을 얻으려는 의식이다. 따라서 모든 존재의 근원이 되는 성의 공간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서 그곳을 주관한다고 믿는 신에게 필요한 것을 달라고 비는 것이다. 굿이나 동신제 등의 제의는 대개 밤에 하는데, 이것은 제의의 장소에 미리 금줄을 쳐 놓아 공간을 성화(聖化)한 다음, 성의 시간인 밤에 제의를 행해야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금줄은 민속적으로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이제는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부정을 막고 복 받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은 금줄이 우리 둘레에서 사라져 감과 함께 우리들의 소박한 마음도 점점 사라져 가는 것만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든다.
첫댓글며칠전에 진천에 있는 농다리에 다녀왔지요..그곳 초평저수지 안쪽 용고개에 서낭당이 있는데 아직도 그곳에 고사를 지내는 흔적과 돌무덤들이 있어서 새로왔던 마음이 들었지요..민속촌이 아닌 일반마을서 그런것을 보니 신기하기두 하구요..많은것을 배우게되어 좋네요..가르치는 아이들에게 알려주어야 겠어요..
첫댓글 며칠전에 진천에 있는 농다리에 다녀왔지요..그곳 초평저수지 안쪽 용고개에 서낭당이 있는데 아직도 그곳에 고사를 지내는 흔적과 돌무덤들이 있어서 새로왔던 마음이 들었지요..민속촌이 아닌 일반마을서 그런것을 보니 신기하기두 하구요..많은것을 배우게되어 좋네요..가르치는 아이들에게 알려주어야 겠어요..
하아....고추를 그래서 끼우는 것이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