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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연의(退魔演義)Ⅱ 159 - Case No.18 악(惡)
선은 악을 부르고,
악은 선을 부르니...
선과 악의 경계는 본래 없었던 것이라...
File #02 공포특급
“피곤할 텐데, 도착할 때까지 눈 좀 붙어. 벌써 며칠째 잠도 못자고 강행군이잖아.
내일 아침 일찍 출국하려면 조금이라도 자야지.”
무리한 스케줄에 사흘만에 집에 들어가는 진이 안쓰러운 매너지 종헌이 미러를 통해
진의 얼굴을 살피며 말했다.
“응.”
종헌의 말에 진은 밴의 사방을 막고 있는 작은 커튼을 살짝 걷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선호와 민우가 밴의 결계를 쳐 주었지만, 창 밖으로 보이는 것들까지 막을 수는 없었
기에 진의 밴의 모든 창에는 밖이 보이지 않게 커튼이 달려 있었다. 항상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한 번 보이기 시작하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끊임없이 보여 도저히 스케줄
을 해 나갈 수 없게 되곤 했기에 이런 방법을 쓰고 있었다. 마침 자유로를 지나는 건지
휙휙 지나가는 차들 사이로 익숙한 하얀 형체가 보였다. 진은 창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운전 중인 종헌을 향해 물었다.
“형. 형도 알아? 이 자유로에 있다는 귀신 얘기?”
“그 눈 없는 귀신? 선글라스인 줄 알았는데 눈이 뚫려 있었다는...”
“응. 혹시 형도 본 적 있어?”
이쪽 일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약간의 신기가 있는 사람들이 하는 거라서 이곳을
지날 때면 종종 흉흉한 것들을 본다고 한다. 그 신기라는 게 비단 연예인 본인들
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연예계 관계자라는 직업이 현재 연예인이 아닐
뿐인 것이지 보통 과거의 직업은 그와 비슷한 직업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종헌만 해도 어릴 때는 5인조 아이돌 그룹 ‘허니버터’로 데뷔한 적도 있었다.
“아니. 난 없어. 그래도 매니저들 한번씩은 다 봤다던데?”
“그래. 다행이네...”
“뭐가?”
“형한테는 안 보인다니까...”
“큭- 남들이 들으면 넌 뭐 보이는 줄 알겠다.”
“그렇지?”
종헌의 말에 피식 웃은 진이 창 밖을 바라봤다. 창 밖에서 끊임없이 차에 치여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모습과 피칠갑을 한 채 차들을 뒤쫓는 모습, 애절한 표정
으로 손을 흔들며 차를 세우려는 모습들이 계속해서 보였지만, 진은 담담한 표
정으로 그 모습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평생 매일같이 이런 모습들을 봐 왔
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 그 잔인하도록 끔찍한 모습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히
려 자신을 바라보던 그의 싸늘한 눈빛이 훨씬 더 끔찍하고 괴로웠다. 손가락을
들어 투명한 창에 차마 크게 소리 내어 부를 수 조차 없는 이름을 적었다.
“문정혁...”
투명한 유리창에 써 내린 그의 이름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에... 괜히 눈물이 났다.
.
.
.
“진짜 괜찮겠어?”
“그럼요! 잘 할 수 있어요!!!”
잠든 아이가 누워있는 요람을 기쁜 눈으로 바라보고 있던 혜성이 씩씩하게 소리쳤다.
하지만 승민은 걱정스런 눈빛으로 혜성을 바라봤다. 그런 승민의 눈빛을 눈치 채지
못한 것인지 혜성을 아기의 요람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아기의 통통한 볼을 콕콕 찔러
봤다.
“히힛~.”
당장 아기를 맡아줄 사람이 없어서 데려오기는 했지만,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기는
키워본 적 없는 스무 살의 사내 녀석에게 아기를 맡긴다는 게 상식적으로는 맞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혜성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제가 돌보겠다고 고집을 부렸
다. 아기를 데려다 거실에 있는 요람에 눕혀 놓았지만, 승민은 여전히 걱정스러웠다.
“됐어요. 어차피 맡아줄 사람도 없다면서요.”
“그렇긴 하지만...”
혜성의 옆에 서 있던 민우가 계속 걱정이 가득한 눈으로 혜성을 바라보는 승민에게
말했지만 승민의 걱정은 가실 줄 몰랐다.
“선호도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잘 할 수 있어!!!”
민우의 말에 요람에 누운 아기를 신기한 듯 바라보던 혜성이 고개를 돌리고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애 깬다.”
“앗!”
민우의 말에 혜성은 깜짝 놀라 손으로 입을 막으며 아기를 내려다봤다. 하지만 아기는
색색거리며 잠들어 있었다. 걱정과는 달리 순한 아기였다.
“그럼 며칠만 부탁한다.”
“네에~.”
그날 그렇게 소리를 지르며 울부짖던 아기의 엄마는 끝내 기절했다. 온몸에 자해한
흔적이 가득한 모습에 그녀의 남편은 그녀를 병원에 입원 시켰고, 혹시나 이성을 잃은
그녀가 아이에게 무슨 짓을 했을지 알 수 없어 검사 차원에서 유영이 있는 병원에 입원
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절대 아기와 같은 병원에 있을 수 없다는 아기 엄마의 비명에
아기는 당분간 승민이 맡기도 했다. 아기의 부모는 일가 친척 하나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승민이 있는 수도원의 수녀님들께서
돌봐주셨겠지만, 얼마 전 수도원에서 생긴 사건 때문에 수도원도 여의치 않았다. 그
찰나 그 이야기를 들은 혜성이 자신이 돌볼 수 있다며 나서 결국 아기를 집에 데려
오기에 이르렀다.
“잘 잔다...”
자고 있는 아기가 신기한 듯 아기의 요람 옆에 앉아서 빙글빙글 웃으며 말하는 혜성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민우가 물었다.
“그렇게 좋냐?”
“응. 좋아. 아가...”
손가락으로 아기의 통통한 볼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는 혜성의 모습에 민우는 몸을 돌렸다.
“뭐... 어떻게 되겠지.”
.
.
.
“네. 안녕하세요? 오늘은 특별히 여름을 맞아 공포특집을 준비했습니다.
시원한 발리 야외무대에서 게스트 분들이 겪으신 신기한 일들에 대해
들어볼 텐데요. 그럼 오늘의 게스트 소개하겠습니다.
드라마 [Sunny Days]로 안방극장에 복귀하신 전진씨입니다.”
“와아아아~.”
바람마저 서늘하고 상쾌한 리조트의 야외무대에 마련된 의자에 앉은 진은 게스트들과
MC의 박수를 받으며 인사를 했다.
“그 옆에는 후속곡으로 섹시하게 변신하셨죠? 세연씨 나오셨습니다.”
“우오오오~.”
계속되는 게스트들의 소개 속에서 조금 지루해진 진이 눈을 돌렸다. 그러자 아까까지는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지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 리조트는
깔끔했지만, 이 장소는 그렇지만은 않았다. 마치 오래 전 이 리조트가 생기기 이전의
영혼인지 시대를 가늠할 수 없는 낡은 옷에 검은 머리를 산발한 여인이 마치 막 앞의
풀장에서 기어 나온 듯 축축하게 젖은 채로 이쪽을 향해 기어왔다. 타국의 귀신임이
분명했지만, 검은 머리를 한 모습이 마치 한국의 그것과 같아 조금 한기가 들었다.
그러자 그 기운에 금세 좋지 않은 기운을 풍기는 영들이 모여들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중얼거리며 느릿느릿 혹은 재빠르게 움직이는 존재들의 모습에 진은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옆에 앉아있는 여자 게스트의 훤히 드러난 어깨에
올라앉은 아이 영혼이 진의 눈의 띠었다. 서너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가 여자 게
스트의 어깨에 매달리자 여자는 어깨가 뻐근한지 손으로 어깨를 가볍게 툭툭 두드
렸다. 하지만 여자의 목을 더욱 세게 끌어안는 탓에 뻐근함을 가실 리가 없었다.
이제는 아예 앉은 자세를 바꾸고는 목까지 한번 돌리는 모습에 진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손을 들어 여자 게스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네?”
“아, 머리카락.”
애교스럽게 손짓하는 진의 모습에 여자 게스트는 환하게 웃어주었다. 하지만 그 화사한
미소는 그녀의 뒤에서 괴기스럽게 웃고 있는 다른 여자 영혼과 겹쳐져 보여 오히려
오싹하게 느껴졌다.
자신이 공포 영화의 주연을 맡았을 때 공포를 느끼는 표정을 연심하던 중 겪었던 에피
소드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또 다른 여자 게스트 뒤에서 그녀의 머리카락을 하나하나
세고 있는 여자 귀신이 보였지만, 꽤나 풍성한 머리칼을 가진 여자였기 때문에 이 촬영이
끝나기 전에 머리카락 세기가 끝날 것 같지는 않아 내버려 두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시선
을 떼 나란히 앉아있는 두 MC쪽으로 눈을 돌렸을 때, 두 MC의 얼굴 사이로 얼굴을 들이
밀고 있는 지역의 남자 원주민 귀신과 눈이 마주쳤다. 원래부터 진을 보고 있었던 듯한
시선에 흠칫- 놀랐지만, 순간적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척 눈을 돌렸다. 하지만 원주민
전통복장을 한 남자 귀신은 여전히 진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진은 모르는 척 한창 이야기에
열 올리고 있는 중년의 남자 게스트를 바라봤다. 그 순간 싸-한 기분이 들어 고개를 숙이자,
진의 다리에는 아까 한참 기어오던 여자 귀신이 매달려 있었다. 촬영장 곳곳에 보이는
흉물스런 영들의 모습과는 또 다른 음습한 기운에 진은 다리를 털어 여자 귀신을 떼어
버리고 싶었지만, 아까부터 뚫어지게 진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 귀신 때문에 그럴 수 없
었다. 오랜 시간 물속에 있어 퉁퉁 불어버린 듯 물컹거리고 축축한 여자의 기분 나쁜 손이
진의 발목을 잡고, 종아리를 잡더니, 턱-하니 진의 무릎까지 올라왔다. 그리고 진의 무릎을
잡은 두 팔에 힘을 주어 상체를 번쩍 일으켰다. 물에 젖어 미역처럼 늘어지고 갈라진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퉁퉁 불은 얼굴과 그 사이에서 금방이라도 굴러 떨어질 듯 보이는
두 눈알이 번뜩이는 것을 보는 순각 결국 진은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버렸다.
“까아아아악!!!!!”
그리고 그 순간 여자 게스트들의 날카로운 비명들이 이어지고 반원모양으로 나란히 앉아
있던 게스트들과 MC들은 모두 혼비백산해 자리에서 일어나 촬영 스텝들 쪽으로 뛰어갔다.
귀신분장을 한 막내작가 한명과 조연출 한명의 어색한 퇴장에 게스트들과 MC들은 허무한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지만, 진은 주변을 둘러보며 아까 자신을 잡고 일어서려 했던
여자 귀신을 찾았다. 하지만 방금 전의 소동으로 사방으로 흩어진 귀신들 때문에 그 모습
을 찾을 수 없었다.
“제 친구가 직접 겪은 일인데요...”
이렇게 시작된 또 다른 경험담은 진이 자유로를 지날 때면 늘 보는 귀신의 이야기였다.
다른 혼들에 비해 기가 강해 웬만큼 영력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모두 보인다는 유명한
영(靈)이야기였다.
“전진씨는 뭐 녹음 중에 겪은 기이한 일 같은 거 없어요?”
상체를 앞으로 숙여 전진을 바라보며 묻는 여자 MC의 물음에 진은 얼마 전 녹음실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귀신은 원래 시끄러운 음악을 좋아한다고 해서
굿을 하는 것과 같은 일에는 꼭 요란한 악기를 사용하는데요.
그래서 녹음실에는 특히 귀신을 봤다는 사람이 많아요.”
“맞아요. 녹음할 때 귀신을 보면 그 앨범은 대박이 난다잖아요.
그럼 전진씨도 이번 앨범 녹음 할 때 귀신을 보셨나요?”
귀신은 매일같이 지겹게 보고 있습니다요-.
MC의 물음에 진이 피식 웃으며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내지 않고 말을 이었다.
“네. 그날도 밤늦게 녹음을 하다가 음악 감독님이랑 엔지니어 분께서
잠시 자리를 비우시고 저 혼자 녹음실에 남아있었어요.
그런데 조금 있다가 교복 입은 여학생 한 명이 들어오는 거예요.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간이라 누군가가, 그것도 그렇게 어린
학생 팬 분이 오실 거라고는 상상도 못해서 정말 깜짝 놀랐어요.
그래서 잠시 놀라 있다가 여학생한테 말을 걸려는 순간
여학생이 사라져 버리는 거예요.”
“어우우~.”
“그래서 막 찾아다니는, 그때 마침 경비를 돌고 있는 경비 아저씨께서 오시는 거예요.
그래서 교복 입은 여학생 보셨나니까 못 보셨다는 거예요.”
“까아악~.”
아직 무서운 이야기는 나오지도 않았는데 소리부터 질러대는 모습에 진은 속으로
짜증이 났지만, 모르는 척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냥 녹음실로 들어갔고, 조금 뒤에 스텝분들이 오셔서 다시 녹음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날 녹음을 다 못 끝마쳐서 다음 날에도 비슷한 시간까지
녹음을 했거든요. 비슷한 시간에 같은 여학생 한 명이 들어오는 거예요.
깜짝 놀라서 말을 걸려는 순간 흠칫- 놀란 여학생이 뒤돌아 뛰어갔어요. 그런데...”
“그런데요?!!”
중요한데서 말을 끊는 진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 MC와 게스트들이 몸을 앞으로
숙이며 집중했다.
“그런데... 뛰어가는 여학생의 다리가... 보이지 않는 거예요...”
“꺄아아아악!!!!!”
진의 말에 여자 게스트들과 MC는 소리를 질렀고, 남자 게스트들로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서늘한 밤바람이 부는 야외에서 듣는 귀신 이야기는 실제보다 훨씬 더 큰
공포를 주곤 했다.
“그런데 이야기는 이게 끝이 아닌 거예요.
그래서 스텝분들이 오셔서 그 여학생 이야기를 했더니...”
“했더니?”
진의 말에 남자MC는 자신도 모르게 상체를 내민 채 되물었다.
“사운드 에디터 분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 건물에는... 경비가 없다는 거예요.”
“예에?!!”
예상치 못한 진의 말에 다들 놀라 몸을 의자에 깊이 뭍었다.
“들어보니까 10년 전까지는 건물 경비분이 계셨는데, 그 분이 돌아가신 이후에는
새로 들어오는 경비분마다 이상한 거 봤다면서 나가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는 경비가 없었대요.”
“그럼 전진씨가 본 그 경비분은 누구인가요?”
“말을 들어보니까, 그 경비분께서는 가족도 없고, 친척도 없는 외로운 분이셨대요.
그래서 건물 꼭대기에 있는 옥탑방에서 사셨고요. 결국 거기서 돌아가셨다고 해요.
장례도 사정을 딱하게 생각하신 건물주분께서 해주셨구요.
소문으로는 귀신이 돼서도 고마워서 자신이 건물을 지켜주시는 거라고 해요.
그 덕분인지 그 건물에는 꽤나 고가의 녹음 장비들이 많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도둑이나 침입자가 한 번도 없었대요. 경비가 다른 녹음실들에 비해서
삼엄한 편이 아닌데도요...”
“아아...”
“그럼 전진씨는 귀신들 둘이나 본 거예요?”
“아뇨. 그 여학생은 진짜 제 팬이었어요.”
“그럼 다리가 없는 건?”
“아아... 검은 스타킹에 광택 없는 검은 신발을 신어서
조명이 어두운 녹음실에서 다리가 안 보였던 거예요. 하하-.”
진의 농담 섞인 마무리에 다들 크게 웃으며 긴장을 풀었다.
“그런데 전두현씨는 왜 등에 귀신을 달고 다니세요?”
“네? 아하하하하...”
진의 말에 잔뜩 긴장했던 남자MC는 곧 진의 말이 농담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크게
웃고 말았다. 하지만 진의 눈에는 두현의 등에 꼭꼭 매달려 있는 여자의 모습에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녀가 두현의 목을 감싸안은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에...
.
.
.
-치이익...
“어? 아아앗!!! 앗, 뜨거!!!”
혜성이 돌보고 있는 아기에게 줄 이유식을 끓이다가 주방 식탁 앞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던 선호는 어느새 끓다 못해 타서 잔뜩 눌어붙어 연기가 나기 시작하는 냄
비를 발견하고는 달려가 냄비를 집어 들다가는 뜨거운 열기에 냄비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냄비가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쏟아진 이유식들이 사방으로 튀면서 선호의
다리에마저 튀어 버렸다.
“아아...”
냄비에 덴 손과 이유식에 덴 다리가 화끈거려 차가운 물에 씻어 보았지만, 붉게 변한
피부는 쓰리기만 했다.
“아프다아...”
아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데...
이유식이 쏟아지며 엉망이 된 주방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멍하니 있던 선호는 곧
이유식이 엉망이 되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주방을 정리하고는 장을 보기 위해
집을 나섰다. 아기를 데리고 병원에 간 혜성과 무엇 때문인지 꽤나 바쁜 동완과 승민
덕분에 집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정혁도 무엇을 하는지 요즘에는 집에도 잘 안 들
어오고 있었다.
“당근, 양파... 그리고...”
요즘 입맛을 잃은 듯한 승민을 위한 야채죽에 넣을 싱싱하고 색이 고운 야채를 고른
선호는 카트를 밀며 정육 코너로 향했다.
“소고기 안심 한근 주세요.”
요즘 기운이 없다는 혜성을 위한 소고기에 동완이 좋아하는 계란찜을 할 크고 싱싱한
계란 한판, 정혁을 위한 요구르트, 민우를 위한 나물류까지 꼼꼼하게 고른 선호는 빙
그레 웃으며 계산대로 향했다.
-끼이이이익!!!!!
카트를 정리해 넣고는 물건이 가득 담긴 장바구니를 들고 차를 향해 걷던 선호는
시끄럽게 울리는 경적소리와 자동차 바퀴의 마찰음에 놀라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야, 이 새끼야! 너 미쳤어?!!”
「야, 이 새끼야! 너 미쳤어?!!」
승용차 운전석에 앉아있던 남자의 거친 욕설에 선호는 순간 스쳐지나가는 기억에
눈을 크게 떴다.
“안 비켜?!!”
“말조심 하시죠. 그 쪽도 잘못이 있는 건데...”
“넌 뭐야?!!”
“지나가던 행인이올시다.”
운전자의 거친 말투에도 빙글빙글 웃으며 느긋하게 말한 풍채 좋은 남자는 선호의
가느다란 팔을 잡아 일으키고는 선호가 놓치면서 이리저리 흩어진 물건들도 주워
장바구니에 정리해 주었다. 여전히 멍하게 서 있는 선호의 팔을 잡아 인도로 올라
오게 한 남자는 선호의 옷을 탁탁 털어주며 말했다.
“조심해야죠. 예쁜 얼굴에 상처라도 나면 어쩌려고...”
“감사... 합니다.”
“조심해요. 항상...”
“네? 아, 네에.”
풍채 좋은 남자의 말에서 알 수 없는 이상한 기운을 느낀 선호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남자는 빙긋 웃으며 몸을 돌려 사라졌다. 낯선 남자의 느닷없는 등장에
멍해있던 선호는 아까 사고가 날 뻔 했던 자리에서 보았던 환영이 다시 떠오르며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아...”
알 수 없는 심한 두통에 작은 머리통을 감싸 안으며 주저앉은 선호는 왠지 모를 묘한
기분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흐으... 으으...”
두려움이라기엔 너무 익숙했고, 편안함이라기엔 너무 공포스러웠다. 그리고...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저, 저기... 괜찮아요?”
“흐읍... 네에. 괜... 찮아요.”
선호의 작고 마른 어깨를 차마 흔들지도 못한 채 살짝 손가락으로 건드리기만 하며
묻는 남자의 목소리에 선호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오래
쪼그려 앉아있어서인지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리며 휘청거렸다.
“아앗! 괜찮아요?”
“네. 감사합니다아...”
190cm는 족히 넘어보는 젊은 청년의 배려에 선호는 몸을 세우고는 꾸벅 인사를 했다.
“저기, 이거...”
“아, 감사합니다.”
커다란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깨끗하게 다림질된 손수건을 내미는 청년의 행동에
선호는 연신 꾸벅이던 작은 머리통을 다시 꾸벅이며 인사를 했다.
“어디까지 가요? 짐 들어드릴게요.”
“아뇨. 제가...”
“저 쪽이죠?”
“네? 아, 네.”
선호의 차가 있는 쪽을 가리키며 묻는 청년의 모습에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인 선호는
청년의 손에 가볍게 들려 있는 자신의 장바구니를 보고는 토도독 따라 뛰었다. 한번에
선호의 두 걸음은 되는 보폭으로 성큼성큼 걷던 청년은 선호의 발소리에 깜짝 놀라 발
걸음을 멈추고 미안한 표정으로 사과했다.
“아아, 죄송해요. 제가 너무 빨랐죠?”
“아니에요. 이 차예요. 감사합니다.”
다시 허리를 숙여 꾸벅 인사하는 선호의 모습에 자신도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한
청년은 선호가 트렁크를 열자 번쩍 짐을 들어 트렁크에 넣었다.
“진짜 감사합니다. 저어... 드릴 건 없고, 이거라도...”
장바구니 안에 있는 요구르트 한 줄을 들어 내미는 선호의 모습에 청년은 당황한 듯
했지만 곧 웃으며 요구르트병을 받아들었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큰 소리로 인사한 선호가 차에 올라 마트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것을 확인 한 청년은
선호의 차와 멀지 않은 곳에 주차된 차로 걸어갔다.
“요구르트네?”
“응. 선물 받았어.”
차에 앉아있던 작은 체구의 유다가 웃으며 묻자 하루는 기분 좋은 듯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에 시동을 걸었다.
“어땠어?”
“귀여웠어. 아주...”
“그렇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지?”
“응.”
“그래서 석가도 재미있어 하고 있어.”
“그냥... 덮어두면 안돼?”
“석가 성격 알잖아.”
“착한 아이야. 그건 그냥...”
“과거일 뿐이라고?”
“응.”
“과거는 때로 미래를 망치기도 하지.”
유다의 말에 하루는 미간을 구기며 운전대를 잡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눈앞에
켜져 있는 붉은 신호등의 불빛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하루의 옆얼굴을 바라보던 유
다는 하루가 건네준 요구르트를 뜯어 빨대를 꽂아 내밀었다.
“마셔.”
유다가 내민 작은 요구르트병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하루의 모습에 빙긋 웃음 유다가
하루의 커다란 손을 들어 요구르트병을 쥐어주고는 말했다.
“문정혁이 얼마나 요구르트를 좋아하는지 알지?”
유다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 하루는 그게 뭐 어떻냐는 표정으로 유다를 바라봤다.
“지금 네가 들고 있는 요구르트는 선호가 문정혁을 위해 산 거야.
하지만 네가 고마워서 널 준 거고.”
유다의 설명에 하루는 놀란 표정으로 자신의 커다란 손에 들린 작은 요구르트병을 내려봤다.
“과거는 때로 미래를 망치기도 하지만, 현재는 항상 미래를 만들지.
지금 중요한 건 현재야.”
“응.”
고개를 끄덕인 하루는 요구르트병에 꽂힌 빨대를 빨아 단번에 병을 비우고는 차를 출발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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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흣- 요즘에는 꼬리 달리는 게 잼있어요. ㅋㅋ- 꼬리 많이 달아주세요~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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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기다리던 퇴마연의군요. ㅠㅠ love님이 쓰시는 모든 소설을 다 좋아하지만 퇴마연의만 너무 늦어지는 건 아닌가 싶어 살짝 실망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볼 수 있어 너무 기쁩니다. ㅠㅠ 이제 점점 하루군과 유다군이 등장하는건가요? 어떤 식으로 등장하게 될지 궁금하네요. 너무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다음 편도 기대하고 있을께요. ^^
첫댓글 오랜만에 보는 러브님 소설이네요^^ 외도 소설도 하루 빨리 볼수 있길 바랄게요~~~
오 .. 들어와 보길 잘했네요! 역시 요즘같은 날씨에는 퇴마연의! 항상 재밌게 보고있습니다 .*^^*
사실 이번편 어둑한 새벽에 봤었는데 진이가 귀신보는 장면에서 어찌나 소름이 끼치던지ㅠㅠ..
앗, 댓글허용됐네요! 정말 기다리고있었어요~~
드디어 기다리던 퇴마연의군요. ㅠㅠ love님이 쓰시는 모든 소설을 다 좋아하지만 퇴마연의만 너무 늦어지는 건 아닌가 싶어 살짝 실망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볼 수 있어 너무 기쁩니다. ㅠㅠ 이제 점점 하루군과 유다군이 등장하는건가요? 어떤 식으로 등장하게 될지 궁금하네요. 너무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다음 편도 기대하고 있을께요. ^^
정말정말정~말 오랫만의 퇴마연의예요 작년말과 올해초에 친척동생의 퇴마연의시즌1을 읽고 가입해서 보고있어요~ 배경때문에 눈이 약간 시렵지만 그래도 너무 재미있어요~
진짜 오랜만이예요>< 퇴마연의 정말로 기다렸는데~ 재미있어요~
으흑 언제야 정혁이가 진이의 마음을 받아 주려는지!!! 새벽에 읽다가 진이가 귀신 보는데서 깜놀하고...;; 너무 잘 읽고 가요!! 다음편도 기대되네요! ^^
정말 오랜만이네요.. 퇴마연의 기다렸어요..ㅠ
오랜만이에요 ㅜㅜnew를 기달렸어요 .. 오호호홋 . 유다와 하루는 +ㅁ+ 정체가 무엇 ! ㅋㅋ
유다랑 하루가 나왔네요.!! 오랜만에 봐서 좋아요...^^ 그런데 둘의 대화가 의미심장하네요.;; 다음편도 기다리겠습니다.!!
유다는 은근히 성격 나빠보여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드디어...ㅠㅠ 나왔군요!! 매일 카페를 들락날락 거리면서 퇴마연의가 언제쯤 나올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제발 자주자주 얼굴 좀 보여주세요ㅠㅠㅠ 기다리다 죽을뻔 했어요ㅠㅠ
오랜만이에 퇴마연의를 올려주셨네요..ㅎㅎ
꺅! 드디어 올리셨군요!ㅋㅋ 저는 이제 예비 고3이라 자주 들어오지 못해서 좀 슬펐는데 이렇게 올리시다니 ㅋㅋ 갑자기 기분 급 상승 ㅋㅋ 퇴마연의 재밌게 봤구요, 기분좋은 마음으로 EBS보러갑니다 -_-;ㄷㄷ 다음편도 기대할게요~!
너무 반가운!!! 수능 끝나고 오랜만에 들어오는!!
퇴마연의를 많이 기다렸어요`
기다렸어요. 정말 기다렸어요ㅠ 문정혁군이 좋아하는 요구르트 먹으면서 기다렸어요 ㅋㅋ
시즌2읽으면서 댓글이 하나두 안 달리길레 몰랐는데 댓글 달리는거 이제 되나보네요^^ 한참 뒷북치는 거지만 너무너무 재밌구요~ 더 많은 사건들이 기다리는 퇴마연의 항상 기대할게요~~!
오우오우 제가 이걸 얼마나 기다렸는데요 ㅠㅁㅠ 오늘 딱 들와보니 위에 새로운 그들이 ㅠㅁㅠ 으흑 감동감동 얼른 읽어야쥐~
진짜 잘 읽었어요// 어서 윗글을 눌러야 겠어요^^ 궁금해서 못 기다리겠어ㅋ 근데... 하루랑 유다는 대체 누군거죠? 석가?? 기억이 날듯 말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