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들에 발자취럴 봄시로...
옛말에 '신주단지 모시듯 한다'란 말이 있어가꼬 옛 선조덜에 신주 위패 영정 외에도 가보로 전해지는 책이나 물견덜이 있어 귀하게 여겼고 '불이나므는 족보부텀 챙겨나온다'넌 야기도 있었지람쨔.
헌데 지끔 시상에선 지사도 잘 안 모시고 살어계신 부모님께 효도 역시나 이전같잖한 시상이 되다봉께는 옛 책이나 고문서 같은 것언 벨로 돈도 안 되 꺼 같응께 그랑가 벨로 안 챙기넌 현실이지람쨔.
그라다 봉께 우덜 고향 진도서도 멫 년 전부텀 날로 사라지고 훼손되고 없어져가넌 우리 향토 사료덜얼 발굴하고 기록해 둘라넌 사업이로 진도문화원(원장 박주언)에서 허산 부원장이랑 모도 나서가꼬 이런 고서 고문서 등을 발굴하자고 <진도군 향토사료 기록화 사업>을 추진해가꼬 <수집향토사료 목록>이로 기록 보존함시로 전남문화원에서 우수사업이로 상도 받었당구만이람쨔.
요즘 저도 역시나 문화재청에서 주관하는 <문화유산 원형기록 통합DB 구축사업>에 고서 및 고문서의 사진 기록팀에 일원이로 고귀한 기록문화 촬영 일을 나가고 있어람쨔.
그래서 자주 가게 되는 곳덜이 서원하고 사당덜인데람짜 걱서 만나넌 멫 백 년 넘은 책하고 문서덜에 댕겨진 선인들의 묵향은 찰로 상교하고 꼬숩드구만이라.
그러다 봉께 사당(祠堂)하고 서원(書院) 등의 차이에 대해 궁금했던 점에 대해가꼬 항꾼에 잔 더 알어 볼라고 항구만이람쨔. “우리 것언 소중한 것잉께라.”
우선 사당(祠堂)은 쉽게 말해가꼬 각자 종중에서 자신덜 조상에 신주(神主)럴 모셔 놓은 집이로 종원덜이 모태가꼬 제사럴 모시는 곳이기도 하지람쨔.
이에 비해 서원(書院)은 조선시대에 유교의 성현(聖賢)을 모시고 제사를 지냄시로 동시에 학문을 익히고 인재를 키우기 위해 전국 곳곳에 설립한 고급 사설 교육 기관이여람쨔. 그래서 서원은 교육 기능과 항꾼에 교화 기능을 양축이로 합니다.
걱다가 마을마디 있었든 서당(書堂)은 기초적인 글을 갤치던 글방이었다고 보믄 되겄습니다.
그랑께 고급 사립교육시설인 서원을 지끔이로 보자믄 ‘사립대학’ 정도라고 볼 수 있고, 서당은 ‘초급학교’라 하겄지람쨔.
그라고 국립기관이로넌 각 군현지역에는 모도 설치했던 향교가 있어가꼬 이는 지방의 국립학교고 중앙에 있었던 성균관은 국립 최고학부였다고 할 수 있겄습니다.
그란데 서원은 다시 사액(賜額)이라는 말이 앞에 붙은 사액서원이 특별한 권위를 지녔었지람쨔.
사액서원(賜額書院)은 임금이 이름을 지어서 새긴 편액을 내린 서원이라 그 격이 달러가꼬 토지와 노비를 소유하고 면세와 면역의 특권을 누리게 되았었답디다.
이러한 서원덜이 조선 후기에는 600여 개가 넘어서게 되다봉께 서원에서 너마 횡포가 극심해져가꼬 백성들에 고초가 크고 지방관청에도 피해를 준 관계로 대원군이 1864년(고종 1년) 전국에 서원을 47개만 남기고 서원철폐를 명하기도 했었답디다.
여그서 사족이긴 하제만 사액서원이란 말에 빗대가꼬 왕족이나 사대부가 죽을죄를 범했을 때 임금이 죽으라고 내려주시던 독약이로 사약이 있습니다.
그란데 이 독약은 죽으라고 주는 사약(死藥, 먹으면 죽는 약)이 아니고 사약(賜藥)이랍디다. 황공하옵게도 임금님께옵서 친히 하사(下賜)해 주신 약(藥)이라 해가꼬 사약(賜藥)이랍디다.
사액서원(賜額書院)이 남달르데끼 사약(賜藥) 받은 이들 또한 남달른 신분인 것은 사실이지람쨔.
야튼간에 고서(古書)하고 고문서(古文書) 촬영을 댕김시로 실감하는 것이 그 묵향 속에 빛나는 그 이름들이었습니다.
흔한 야기로 ‘호랭이는 죽어서 가죽을 냄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냄긴다.’는 말이 있지람쨔. 이는 다분히 인간이 보는 가치제만 그만침 호랭이한테넌 가죽이 젤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고, 사람은 이름이 아주 중요한 가치라는 뜻이겄지라.
그랑께 역설적이으로 호랭이넌 가죽을 얻을라넌 인간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인간은 자신의 이름을 안 디럽힐라고 죽음에 길을 가기도 하고 때로는 죽음보다 더 혹독한 길을 스스로 걷기도 한다는 뜻이겄지라.
시골 농부에 불과했던 울 아부지는 지가 12살 때 돌아가셨제만, ‘누구 자제분 소리는 못 듣더라도 누구 새끼란 말은 듣지 말고 살어라.’ 말씀하셨잉께 저는 그 역시 자신의 이름얼 존중하라는 의미로 알고 그 뜻을 지킬라고 노력함시로 살아가고 있어람쨔.
그라든 저라든 우덜은 언제든 삶을 마무리 지어야만 하는데 그 기간이 현실적이로 이전보담 멀리 있는 것언 아니고 자꼬 가차와지고 있다는 것이 사실잉께 은제 가드라도 내 자신이 후회시럽지 않은 내 삶을 살아가꼬 잘 마무리 지을 수 있어야겄다는 생각입니다.
그라고 현실에 재산 보담 쩌 시상에 갈 찍에도 갖고 갈 행적하고 기억이라는 영원한 재산하고 이 시상에 자신의 이름이로 냄겨 놓을 재산에도 신경 쓰심시로 ‘개똥밭에서 굴러도 저승보다 낫다’는 이생에서 되드록 오래오래 많안 행복 노눌 수 있넌 삶덜이 되시길 기원디립니다.
모도모도 항꾼에 건강덜 하입시다. 덜~! -제59회 솔개 출신 조병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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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귀한 역사적 자료 소개해 주셔서 잘 보았습니다.
고향 소식을 전하는 내용들을 접할 수 있는 님이 계셔서 유익한 시간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서울 사넌데람쨔
고향 진도서 존 소식 디키기만
귀 쫑굿 셔가꼬 지달리다봉께라.
삭제된 댓글 입니다.
진도말이 디지탈 되는 것언 아니고람쨔
진도 사램덜 입말얼 고대로 글로 욍개 적어 노므넌 사투리 글이 되지람쨔.
내나 우덜 조보씨 함씨 아배 엄매덜께서 늘 쓰시던 진도말덜이
인자 모도덜 현재 잘 안 씨다봉께 사라지고 없어져뿌는 것인 짠해가꼬
지가 30여년얼 실지 채록해가꼬 수만여 어휘로 적어 뒀었어람쨔.
그케 채록된 진도인에 말덜 가운데서 만여 낱말 추려가꼬
지난 2014년 진도문화원에 무료로 희사했던 바
<진도사투리 사전>이란 책이로 맨들아 졌어람쨔.
나와노라님언 혹시 진도핵교 몇 회 졸업생이싱가람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옙! 맞는 말씸이십니다
저보담 선배님 같으신데 저도 어문학 전공자도 아니고 직업도 사진찍어 먹고 사는데라 사투리로 땡전한푼 생길 일도 아니고람쨔
내나 울엄매 아배가 쓰시든 말덜을 인자덜 모도 안 씽께 다 사라져뿡께 쨘해가꼬 식물채집하데끼 채집해서 모태놀라는 심정이로 시작된 일이여람쨔
그란데 이전에 지가 채록해 봉께는 같은 진도서도 읍내말하고 군내 고군은 잔 비슷한데 임회 지산 그 짝엔 솔챤히 딸른 낱말덜에다 어미 어투도 잔 딿습디다.
조도 섬 지역은 또 잔 더 딸른 부분도 많앴고람쨔
말씸하신대로 말이란 사람간 소통에 필요로 자연 생성되고 사용됨시로 소멸과 변화를 거치는 것이 당연하지라
그란데 소멸된 지난 말이라고 아예 기록마져 없어져뿐다므는 옛 선조덜에 얼과 문화하고넌 단절이 되겄지라?
그라고
모비루(モビール, 영mobile)나 고뿌(コップ, 영 cup) 등 발음도 내나 쌧뿌닥이 짤롸가꼬 영어 원음을 지대로발음도 못하넌 일본놈덜이 일제 강점기 때 우리나라다가 씨뿌레가꼬 갤챠논 말인데 지끔도 버젓이 씬단 것도 알어사라 될 입말이고람쨔
하여튼 생긴 것덜이 모도 딿데끼 사람도 여러 찔이고 생각덜도 지저끔 딸를 건데
어짜든지 건강하시십쇼
삭제된 댓글 입니다.
나와노라선배님 지끔 시상엔 교통 통신에 발달로 실시간 지구촌이다 봉께 모도 잡탕말이 되았지라
기억하시겄제만 이전엔 진도말 광주말덜이 확연히 딿게 디키고 구벨이 되았지라
그랑께 누가 광주 잔 나가가꼬 쪼깐 살다 둘와서 광주어투에 말을 씨믄
'으따 잡것 대처나깄다 왔다고 깝치고 자빠졌네' 그케 숭봤어람짜
사투리가 필요 없다제만
예로 판소리럴 다 표준말로 한다므는 그 실감이 나겄십닌쨔?
'저 가인이여라~~!'
그케 정이 찍찍 흘르넌 말을
'저 가인입니다.' 한다므는
고케 정이 가까라?
그라고 낯뿌닥덜 딿데끼 모도 생각덜도 딸른데
모도가 거짓뿌렁(? 진도서넌 이전에 거지깔이었어람쨔)이라고 할 수 없지람쨔
그라고 일본 츠쿠바 대학의 하가 노보루 교수는
“부락이란 일본어 한자로 '미해방 부락'의 의미로써 차별받고 소외되어 있던 근대부터의 천민신분으로 예다(천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집단주거지를 일컫는 일본말”이라고 소개항께
이 역시 일제강점기 세뇌된 치욕에 낱말이라서 마을, 마(머, 모)실, 촌락, 동리로 순화시켜 써야 되겄어람쨔.
그란 치욕을 되새겨 알고 다시 또 안 당하기 위해서도 우덜말에 정립이 필요하다고 전 그케 봅니다
관심 고맙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lTLnOS35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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