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02
“로잔, 차별금지법 반대 않으면 WCC와 다름없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57874
차바아, “로잔대회, 차금법 반대 입장 밝혀달라”…1일 학술세미나 개최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8821805
<올해 2024년 9월에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제4차 국제 로잔 선교대회도 결국 WCC와 마찬가지의 길을 가고 있는 행사일 뿐>
WCC는 성경의 오류를 전제하는 고등비평을 수용하는 자유주의 신학이 장악하여 선교를 영혼구원이 아닌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으로 제시하여 비성경적으로 변질시켰다.
국제로잔은 성경의 무오성을 믿는 복음주의를 표방하고 WCC 선교의 비성경적 변질에 저항하여 복음전도를 통한 영혼 구원이라는 성경적 선교를 회복하기 위해 시작했다.
그러나 국제로잔의 선교개념 진술에 복음전도를 통한 영혼 구원 외에 사회적 책임도 포함시켰기 때문에 대회를 거듭할수록 사회적 책임 비중이 더 높아지는 역전이 발생하여 WCC의 선교개념에 근접하는 심각한 변천이 발생했다.
이 변천의 근본원인은 국제로잔이 채택한 성경관 진술에 있는 틈때문이다. 국제로잔은 전통적 성경관인 “모든 성경 말씀이 하나님 말씀으로 오류가 없다”라는 진술 대신에 “성경에서 단언하는 바에 오류가 없다”는 진술을 하여, 성경을 인간의 주관적 판단으로 해석하는 자유주의신학자들이 복음주의자로 자처하며 합류할 수 있는 틈을 제공했다.
선교와 윤리실천을 혼합시켜 영혼구원 보다 사회적 책임에 우선성과 중요도를 더 두는 것이 국제로잔 선교개념의 큰 오류이다....
차별금지법은 동성애, 성전환 행위 등에 대하여 성경적 관점을 표현하는 행위조차 차별로 몰아 금지시키는 무서운 전체주의적 독재성을 가지고 있다. 국제로잔은 동성애가 비성경적이라는 점과 동성애자들에 대하여 성경적 돌봄과 전도만을 말할 뿐 현재까지 차별금지법과 성혁명이 복음주의 교회에 가하고 있는 그 가혹한 억압과 폐해들에 대하여 단 한번도 다루지 않았다.
성경의 신적 권위를 확고히 지키는 한국의 복음주의교회는 분열 없이 지난 17년간 차별금지법 제정 저지에 성공해 오고 있다. 반면 해외 선진국 교회들은 차별금지법 제정 저지에 실패했는데 그 이유는 성경을 비평하는 자유주의신학을 따르는 교회들이 다수가 되어, 차별금지법 제정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복음주의를 표방하는 국제로잔에게 한국 교회와 같이, 동성애를 반대하는 복음적 성도들의 신앙의 자유를 탄압하는 동성애·차별금지법에 대하여 적극 반대하는 의견을 표명하고, 차별금지법 반대를 위한 국제적 운동에 동참해줄 것을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마땅하다.
(조영길 and 소윤정. (2023). 국제로잔의 총체적 선교 개념과 차별금지법에 관한 침묵에 대한 한국교회의 복음적 대응*. 복음과 선교, 64(4), 185-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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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 쉐퍼는 국제로잔 운동의 성경관에 틈이 있다는 지적을 여러 차례했다. 국문 번역으로는 그 틈을 알기 어렵다. 먼저 국제 로잔 운동 영문 홈페이지의 성경관에 대한 로잔 언약 진술을 본다.
“We affirm the divine inspiration, truthfulness and authority of both Old and New Testament Scripture in their entirety as the only written Word of God, without error in all that it affirms35, and the only infallible rule of faith and practice.” “우리는 신구약의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음을 믿으며, 그 진실성과 권위를 믿는다. 성경 전체는 기록된, 하나님의 유일한 말씀으로서, 그 모든 가르치는 바에 전혀 착오가 없으며, 신앙과 실천의 유일하고도 정확 무오한 척도임을 믿는다”.
그러나 프란시스 쉐퍼 전집 1권이 동일한 문장을 번역한 것은 이렇다. “우리는 신구약 전체의 신적 영감성과 진실성과 권위와, 성경이 하나님의 유일한 기록된 말씀으로서 그것이 단언하는 모든 사실에는 오류가 없으며 신앙과 행위의 유일하고 무오한 법칙임을 단언한다.”
프란시스 쉐퍼는 “그것이 단언하는(affirm, 믿는) 모든 것”이라는 진술에 틈이 있다고 판단했다. ‘성경’과 ‘성경이 단언하는 모든 것’은 동일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 안에 있는 것 중 성경이 단언하지 않는 것은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는 무섭고도 교활한 문장인 것이다. 누가 성경이 단언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언하지 않는 것인지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결국 성경이 단언하는 바는성경을 읽는 각자가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 되므로 주관적 해석의 차이를 정당화하는 것을 열어 놓는 것이다...(중략)....
국제로잔의 로잔언약 초안 작성을 주도한 존 스토트는 성경관이 쉐퍼처럼 확고하지 않았다. 그는 성경의 완전무오성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성경에 오류가 있다고 주장하는 고등비평을 단호하게 거부하지 않았다. 특히, 실존주의적인 신정통주의가 채택하는 칼 바르트의 성경관을 나타내는 표현들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는 성경을 하나님 말씀이라고 하면서도 ‘성경을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표지판’, ‘성경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우리의 신앙의 대상’이라고 하면서 ‘성경숭배자들이 되지 말라’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성경에 구원이 있다는 미신적 견해를 가지지 말아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성경의 목적은 그리스도이므로 그리스도를 보아야 하지 성경 자체를 보아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존 스토트가 성경책이라는 물질을 숭배하고 성경책이라는 물질에 신비한 힘이 있다는 미신적 견해를 경고한 것이라면 이것은 옳다.
그러나 성경 그 자체가 하나님 말씀인데 말씀 그 자체를 말씀에 대해 증거하는 표시판이라고 하거나 말씀 자체를 숭배대상이나 신앙대상이 아니라고 하는 표현들을 사용하는 것은 자칫 성경의 신적 권위를 훼손할 수 있는 위험한 표현들이다. 뿐만 아니라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성경이 증거하는 것이나 성경이 목적하는 것만이 하나님의 진정한 말씀이라는 바르트의 성경관에 빠질수 있는 위험이 있는 표현들이다.
바르트는 모든 성경이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 성경을 통해서 인식하는 하나님 말씀이 하나님 말씀이라고 주장했다. 즉, ‘성경이 하나님 말씀이다’라는 표현이 아니라 ‘성경에 하나님 말씀이 포함되어 있다’고 자신의 성경관을 표현했다. 이 바르트의 성경관이 곧 WCC가 채택하고 있는 성경관으로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동의할 수 있는 성경관 진술이 되었다는 점은 앞서 살펴 본 바와 같다.
성경을 이렇게 이해하게 되면 성경과 성경이 증거하는 것이 분리되고 성경과 성경이 목적하는 것이 나뉘게 된다. 결국 성경이 증거하거나 목적하는 것을 파악하는 것은 성경을 읽는 개개인이 되므로, 말씀 여부가 개인의 주관적 판단들에 의존하므로 성경의 객관성은 파괴되어 버리는 것이다.
(조영길, 소윤정. 국제로잔의 총체적 선교 개념과 차별금지법에 관한 침묵에 대한 한국교회의 복음적 대응. 복음과 선교, 64(4), 2023. 20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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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라도 교회는 철학과 인문학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자유주의적 신학의 철학적 전제들을 버려야만 한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는 선진국들에서는 차별금지법을 정당화하는 각종 학문이론들이 대학의 주요 학문분야들을 장악했다. 차별금지법을 정당화하는 이론·사상·이데올로기·이념들은 전문 학문의 이름으로 온 땅의 거의 모든 학문들을 점령해 지배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 이론들을 대략적으로 기술해보면 다음과 같다. 철학의 유물론·진화론, 윤리학의 상대적 윤리론(포스트 모더니즘 윤리학), 의학의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이론과 호르몬요법이론, 외성기성형수술이론, 생물학의 동성애유전자이론, 사회과학의 성혁명이론(신사회주의, 네오마르크스주의), 여성학의 마르크스주의적 페미니즘이론과 젠더주의이론, 언어학의 해체주의이론과 신용어조작이론, 정치
학 및 언론학의 정치적 올바름이론(소위 PC주의), 교육학의 포괄적 성교육이론, 법학의 성적지향·젠더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금지법이론, 소위 욕야카르타 원칙, 신학의 자유주의 신학 및 퀴어신학이론 등이다.
이들 각종 차별금지법을 정당화하는 학문적 이론들의 기초와 지배적인 이론들은 바로 철학에서의 유물론과 진화론이다. 서구 교회들은 과학을 앞세워 기독교 세계관을 공격해온 유물론과 진화론의 공격을 성경적 진리로 방어해 내는데 실패했다. 그 결과 공교육에서는 세계기원의 원리로 창조론이 아닌 유물진화론만 가르치고 있다.
교회의 복음적 대응이 실패한 이유로 여러 가지 원인들이 분석되고 있지만, 기독교의 신학에서 성경에 충실한 신학이 아니라 인본주의인 철학과 인문학으로 성경을 해석하려는 다양한 자유주의신학들이 목회자 양성기관의 신학을 주도하면서 이들 철학적 전제를 교회가 수용하였기 때문으로 분석하는 관점이 유력하다.
성경적 복음이 가지는 총체성을 가지고 적극 대응하여, 사회의 모든 영역에 복음적 세계관을 제시하려는 교회의 적극적 대응이 요구된다. 이 과정에서 교회 외부 영역을 지배하는 철학인 유물진화론과의 대결은 피할 수 없다. 교회는 유물진화론이 공적 교육과정을 장악하여 교과서를 통하여 가르쳐지고 있는 천지창조기원에 대한 설명에 대하여 성경적인 창조진리로 하는 학문적, 세계관적 대결을 본격화해야 한다. 성경의 진리로 각각의 모든 학문 분야들이 다루는 문제를 피하지 말고 적극 대응하는 운동을 기독교 세계관 운동으로 부른다. 교회가 지성적으로도 유물진화론에 맞서 적극 대응하는 것이 요구된다.
(조영길,소윤정. 국제로잔의 총체적 선교 개념과 차별금지법에 관한 침묵에 대한 한국교회의 복음적 대응. 복음과 선교 64.4 (2023): 23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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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C를 변호하는 신학자들은 ‘WCC가 결코 개종전도 금지를 선포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예 그렇게 볼 수 있는 선언도 있었습니다만 그러나 WCC는 여러 차례에 걸친 공식 선언과 공식 문서를 통해 반개종주의를 명백하게 표방해 왔습니다.
1967년 WCC에서 출판한 ‘세계를 위한 교회’라는 보고서에서, WCC는 전통적인 복음전도의 ‘회심’ 개념을 ‘교회 출석을 강조하고 밖에 있는 사람을 안으로 초청하여 개종시키는 것’이라 설명하며 이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WCC의 선교와전도위원회(CWME)도 1997년에 ‘반개종주의’를 재확언한 바 있습니다. ‘공동의 증언을 위한 소명: 신뢰관계의 선교와 개종주의 중단’ 이라는 이름의 선언문은 WCC가 로마 카톨릭의 입장을 두둔하면서, 상호 존중을 훼손하는 개종전도활동이 교회일치와 ‘공동의 증거’를 방해한다는 이유로 개종전도를 금지하는 선교 모라토리움을 선언한 것이었습니다. 이 개종전도 금지는 개신교 선교사들이 로마가톨릭과 정교회 지역에 가서 명목상의 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활동과 교회를 세우는 일을 금지하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카톨릭과 정교회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여 개종자를 얻는 행위를 ‘강제적이고 강압적인 개종’이며, 화해를 목표로 한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역증거’이며, ‘교회의 연합을 깨드리는 가장 비난받아야 할 행위’라고 규정하였습니다.
또 WCC는 ‘성상을 받드는 모습을 우상숭배라고 비난하는 행위, 마리아와 성인을 향해 우상이라고 비웃거나 죽은 자에 대한 기도를 비난하는 행위’ 등을 중단해야 할 역증거 행위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WCC는 ‘반개종주의’를 채택하고 있음이 확실하며 이와 같은 ‘반개종주의’는 복음을 듣지 못한 수십억 명의 불쌍한 영혼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죄 사함받으며,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체험하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와 구원을 얻는 개종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WCC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복음전도를 통한 영혼구원을 목적으로 하는 올바른 신조의 교회들은 WCC와 결별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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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칼빈주의적 침례교회를 이끌었던 찰스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은 1887년 소속 교단인 침례교 연맹이 신학적으로 자유주의화 되는 것을 계속 경고하는 소위 ‘내리막길 논쟁’을 주도한 바 있습니다.
스펄전은 성경무오성을 믿는 성경관을 가지지 않는 자를 치리할 수 있는 신조 작성을 연맹에 요구하다가 거절당하자, 침례교 연맹을 단호하게 탈퇴하고 복음주의적 교회들과만 교제하였습니다.
이러한 스펄전의 결정에 대하여 영국에서는 그의 탁월한 설교와 그를 통해 부어진 놀라운 부흥과 은혜에도 불구하고, 성경관이나 신학적인 차이로 영국 침례교를 분열시켰다는 혹독한 비난들이 쏟아졌습니다.
그러나 그 논쟁 후 100여년이 지나서 영국 내에서 자유주의화되는 교회들이 더욱더 확산되며 믿음의 파선을 하는 것을 수 없이 경험한 복음주의자들은 스펄전이 옳았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오늘날 WCC에 속해 있는 복음주의적 교회들에게는 스펄전과 같은 결단이 필요합니다. 만약 복음주의적 교회들이 WCC에서 탈뢰하지 않는다면 신앙과 신조의 순수성을 지켜내지 못하고 결국은 자유주의화 되고 말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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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C는 복음 전도를 통한 영혼 구원이라는 전통적인 선교 개념과 전혀 다른 선교 개념을 갖고 있습니다.
1952년 독일의 빌링겐 대회에서 새롭게 등장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라는 개념은 지금까지 지켜온 전통적인 선교개념을 전적으로 부인하고, “교회중심의 선교”(Church-centered mission)가 아닌 “선교 중심의 교회”(mission-centered Church)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는데요.
교회가 중심이 되어 그리스도의 복음의 비밀을 선포하는 것이 선교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영역 즉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영역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선교에 교회가 동참하는 것이 참다운 선교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이 때부터 영혼 구원에 우선을 두었던 전통적인 선교 개념이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된 것이죠. 1952년 이후 WCC는 교회가 적극적으로 정치적인 현장에 참여할 것과, 사회 개혁과 변혁의 주체가 될 것을 주문하였습니다. 소위 “사회 복음”(social gospel)을 전파할 것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이죠.
WCC 선교 개념 속에서 ‘영혼’과 ‘영원’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습니다. 영혼과 영원이라는 용어가 사라지고 ‘물리적인’ 것들과 ‘현세적인’ 것들 즉, 정치, 경제, 사회라는 용어가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WCC는 지금도 세계 교회들을 향해 정치적 압제와 억압, 경제적 착취와 불평등, 사회적 불의와 불공정 등에 대항하여 적극적으로 싸울 것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이러한 사역들이 곧 선교이기 때문입니다.
엄밀히 말해서
WCC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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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없는 게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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