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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茶) 사찰 음식 스크랩 초의 선사(草衣禪師) . 다신전[茶神傳 ]
望雲樓 추천 0 조회 28 16.01.24 10:0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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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의 선사(草衣禪師)

 

초의선사(艸衣禪師, 1786~1866)

 

 

초의선사 영정

 

초의스님은 조선후기의 대선사이자 한국 다도의 중흥조라 할 수 있다. 초의스님의 선사상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조선후기의 불교가 선(禪)의 일변도로 흐르고 있는 사조에 반해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진리를 구현하고자 노력하였다는 점이다. 스님은 언제나 제법불이(諸法不二)를 강조하였으며, 그런 의미에서 차와 선은 둘이 아니고, 시와 그림이 둘이 아니며, 시와 선(禪)이 둘이 아니라고 하였고, 특히 다선일미(茶禪一味) 사상에 심취하여 차를 통해 법희선열식(法喜禪悅食)의 다선삼매(茶禪三昧)에 들곤 하였다.

 

자는 중부(中孚), 호는 초의(草衣), 당호는 일지암(一枝庵)인 의순(意恂)은 한 경지를 이루고도 세상 속으로 들어와 거리낌 없이 세간인과 교유하면서 거기 물들지 않고 가람 속에 살면서도 세상일을 다하며 실학하는 승려로 이름을 날린 초의 선사는 1786년 정조 10년 전라도 나주에서 무안장씨로 가문의 평범한 아이로 태어났다. 그는 15세에 운흥사로 들어가 사미가 되었고, 19세에 대흥사에서 당시의 고승대덕 완호윤우(玩虎倫佑)에게 법(法)을 받았다. 22세 때부터 전국의 선지식(善知識)들을 찾아가 삼장(三藏)을 배워서 통달하였을 뿐 아니라, 대오(大悟)하여 유일(有一)의 선지(禪旨)를 이어받았다. 불교학 이외에도 유학, 도교 등 여러 교학에 통달하였고, 범서(梵書)에도 능통하였다. 명성이 널리 알려지자 대흥사의 동쪽 계곡으로 들어가 일지암을 짓고 40여년 동안 홀로 지관(止觀)에 전념하면서 불이선(不二禪)의 오의(奧義)를 찾아 정진하였으며, 다선삼매(茶禪三昧)에 들기도 하였다.

 

범패와 원예 및 서예에도 능하였으며, 장 담그는 법, 화초 기르는 법, 단방약 등에도 능하였다. 그는 선(禪)과 교(敎)에 두루 정통했던 승려로서 『선문사변만어』『진묵조사유적고』 등의 책을 저술하였다. 초의는 24세(1809년)때 강진에 있던 다산 정약용의 문하에서 오랫동안 유학과 시도(詩道)를 공부했다. 그는 당대의 석학이나 문사들과 교류하였고 『일지암시고(一枝庵詩藁)』『문자반야집(文字般若集)』 등의 책을 남겼는데, 그 중 다시문이 이십여 편 있다.

그의 사상은 선사상(禪思想)과 다선일미 사상(茶禪一味思想)으로 집약된다. 선사상은 저서인 『선문사변만어(禪門四辨漫語)』에 잘 나타나 있다. 이는 당대의 유명한 대선사 백파(白坡)가 『선문수경(禪門手鏡)』이라는 저술을 발표 하자 의순이 선배 백파의 잘못을 하나하나 변증하기 위하여 저술한 것이다. 백파는 선을 조사선(祖師禪)·여래선(如來禪)·의리선(義理禪)의 3종으로 나누어 설명하였으나, 의순은 선을 3종으로 판별하는 것부터가 잘못이라고 보고, 조사선과 여래선, 격외선(格外禪)과 의리선 등의 사변(四辨)을 중심으로 백파와는 다른 의견을 제시하였다. 또한, 의순이 전선(專禪)으로 기울지 않고 지관을 수행하였다고 하는 데에서 그의 선사상의 큰 특색을 찾아볼 수 있다. 그의 다선일미 사상은 차와 선이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데에서 시작된다. 또한 "차의 진예없는 정기를 마시거늘 어찌 큰 도를 이룰 날이 멀다고만 하겠는가(塵穢除盡精氣入大道 得成何遠哉)!"라고 하였다. 의순의 다도는 불을 피우고 물을 끓이며, 그 잘 끓은 물과 좋은 차를 적절히 조합하여 마시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생활이었다.

 

의순은 52세에 『동다송(東茶頌)』을 썼는데, 당시뿐만 아니라 근세에도 널리 읽힌 다서로써 음다풍속이 성하게 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홍현주(洪顯周 : 정조의 사위)가 다도를 알고자 하므로 저술한 17절 492자의 동다송에는 차나무의 생태, 차의 효능과 고사, 중국의 이름난 차, 우리차의 우수함, 차다루기의 어려움, 차 끓이기, 제다법(製茶法) 등을 썼으며, 각 절마다 주(註)를 달아 상세히 설명하였다.

어렵지만 멋이 있는 시의 형식을 빌려 자신의 다도관과 다론을 피력한 초의는 동다(東茶), 즉 우리나라 차는 색(色), 향기, 맛이 우수하며 게다가 약효가 높으므로 중국차보다 훌륭하다고 확신하였다. 당시 화개동에는 차나무가 사오십리 뻗어서 자라고 있었는데 다전(茶田)이 골짜기이고 난석(爛石)이어서 차나무에 가장 좋은 입지조건이라 하였다. 또 우리나라의 차 따는 때는 곡우보다 입하 전후가 적기라고 하였으며, 칠불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이 늦차를 따서 만든 발효차를 솥에 끓여 마시는 음다풍속이 바뀌어지기를 기대한 내용도 있다.

의순은 차를 마셔서 이로운 점을 강조하였고, 육우의 『 다경』과 『 만보전서』의 중요한 내용을 발췌하여 주를 달았으며, 스승 다산의 「걸명소」 일부와 『동다기(東茶記)』의 내용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그리고 초의는 『동다송』에서 차의 맛을 내는 일을 유가(儒家)의 윤리적 삶에 비유하였다. 즉 잘 만든 차와 좋은 물을 가지고 알맞은 분량으로 중(中)을 얻고, 찻물이 잘 우러나 화(和)하면 중도(中道)를 얻게 되어 이상적 삶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초의가 45세에 스승 다산을 만나러 한강변에 와서 청량산방에 묵으며 베껴쓴 『다신전(茶神傳東)』은 글머리에 기록되어 있듯이 그 내용 전부가 중국의 백과전서에 해당하는 만보전서(萬寶全書)를 옮겨 쓴 것으로, 본래의 원전은 명(明)의 장원(張源)이 쓴 『다록(茶錄)』이다. 의순은 그 책에 있는 중국의 제다법과 포다법을 소개함으로써 당시의 다풍(茶風)을 발전시키고자 노력한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의순의 제자인 소치(小癡) 허유(許維)는 당시 50세였던 초의와 함께 기거하면서 일지암(一枝庵)에 있을 때의 초의의 모습을 <몽연록(夢緣錄)>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동다송과 다신전

 

 

다신전(茶神傳)은 순조 28년(1828)에 한국 차의 근원지인 화개동 칠불암 아자방(亞字房)에서 참선(參禪)하는 여가에 청(淸)나라의 모환문(毛煥文)이 엮은 백과전서 격인 『만보전서(萬寶全書)』가운데 『다경채요(茶經採要)』 에서 다신전을 초록(抄錄)하고 시자인 수홍(修洪)의 청에 의해 1830년 일지암에서 이를 정서하였다고 한다. 동다송은 다신전을 초록한지 약10년 후에 정조의 사위인 해거도인(海居道人) 홍현주(洪顯周)가 진도 부사인 변지화(卞持和)로 하여금 초의 선사에게 茶道에 대해 물어와 그 청을 받아들여 이루어진 것이다.

동다송(東茶頌)은 초의 선사가 스스로 "고인소전지의근술(古人所傳之意謹述)" 이라고 말했듯이 당시 유행했던 고증학의 영향을 받아 송(頌)마다 고인(故人)들의 여러 문헌과 시구(詩句)를 인용하고 주(註)를 달고 있다.

 

 

그가 머무는 곳은 두륜산 꼭대기 아래이다. 소나무 숲이 깊고 대나무 무성한 곳에 몇 칸의 초실을 얽었다. 늘어진 버들이 처마에 닿아 있고 풀꽃이 섬돌에 가득 차서 그늘이 뒤엉켜 있었다. 뜨락 가운데는 상하의 못을 파고 처마 아래에는 크고 작은 물통을 놓아 두었는데 대쪽을 연결해서 멀리서 구름 비친 샘물을 끌어온다. '눈에 걸리는 꽃가지를 잘라 버리니 멋있는 산봉우리가 석양하늘에 더 잘 보이네'

이러한 싯귀가 매우 많은데 시가 맑고 고상하며 담박하고 우아하니 속된 기운이 없다. 눈이 오는 새벽이나 달이 뜬 밤마다 시를 읊으며 흥을 견디곤 하였다. 향기가 일어나고 차가 한창 끓으면 거닐면서 흥이 내키는 대로 간다. 집마다 있는 난간에 기대어 우는 새소리를 들으며 서로 마주보고, 깊숙하고 굽은 오솔길에서 손님을 만날까봐 숨곤 하였다.

 

추사와의 교유는 동갑나기로서 서로가 서로를 드높여주는 남다른 사이였다. 두 분의 교유를 보면 추사가 제주도로 유배되었을 때 초의 스님이 당시 험난한 뱃길을 건너 세 차례나 제자를 보내 추사에게 손수 법제한 차를 보내고 추사는 초의에게 글을 써 보내기도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초의 스님은 1856년 10월에 42년간 깊은 교유를 맺어오던 추사가 과천 청계산 아래서 유명을 달리하자, 그의 영전에 완당 김공제문(玩堂 金公祭文)을 지어 올리고 일지암에 돌아와 쓸쓸히 만년을 보냈다.

 

초의는 조선 말기 사회의 고뇌 속에서 승려로서는 드물게 자기 시대 분위기의 최첨단을 호흡하며,실사구시와 이용후생의 참뜻을 이해한 승려였다. 특히 당대의 명필이자 금석문의 대가인 추사 김정희와의 교유는 초의로 하여금 실학하는 불교를 찾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또한 그는 한국불교의 전통적 입장이었던 백파(白坡) 긍선(亘璇)의 선사상에 반대이론을 전개하여 선사상의 새 지평을 열었다. 다도라고 하면 초의를 떠나서 생각할 수 없고, 초의라 하면 차를 떠날 수 없을 만큼 초의는 차에 대해 조예가 깊었다. 흔히 차를 마시는 음료라고 알고 있는데, 이러한 상식은 초의가 뜻하고 있는 것과는 천양지차의 거리가 있다. 그는 다도를 높은 정신적 수양과 관련지었다.

 

차란 범어로 알가(閼加)라 하는데, 그 단어는 시원(始源)이란 뜻이라고 초의는 말한 바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시원이란 곧 무착바라밀(無着波羅蜜)이니 어느 욕심에도 사로잡힘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동양에서는 사로잡힘이 없는 냉정한 본연의 마음이 차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고래로부터 생각해오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초의는 '옛날 성현들이 모두 차를 좋아한 것은 차가 군자의 성품과 같이 사특함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대화의 매개역이 되어온 차는 일찍이 중국이나 인도에서도 다도라 하여 마음을 포근히 적셔주는 구실을 했다. 특히 조주(趙州) 선사 같은 사람은 선문답의 시작과 끝을 점다래(點茶來)로 하였다.

 

범해유집(梵海遺集)에 보면 초의가 법제(法製)한 차는 곡우기(穀雨期)의 맑은 날 황아엽(黃芽葉)만을 따서 밀실에 잘 말려 찐 뒤에 외기가 닿지 않도록 엄장(嚴藏)한 것으로 된 것이라 하였으니, 이야말로 찻잔에 향기가 가득히 감돈다는 뜻이다. 또한 차를 끓이는 찻물도 차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으니, 소위 8덕(八德)이 갖추어져 있는 물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8 덕이란 경(輕), 청(淸), 냉(冷), 연(軟), 점(點), 불취(不臭)와 마실 때 적당히 마시는 것과 마신 뒤에 거북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같이 차와 찻물의 관계는 차가 찻물의 신(神)이 되고 찻물은 차의 체(體)로서 차 속에 정기를 가득히 넣을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초의는 말하고 있다. 또한 초의는 차를 정성들여 가꾸는 것 이상으로 찻물을 잘 알아서 채취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산정(山頂)에 있는 물이라야만 맑고 경(輕)한 것이니, 산밑에 있는 물은 맑기는 하나 무거운 것이라고 하였다. 돌 속에서 나오는 물은 맑고 달되, 사중(沙中)에서 나오는 물은 맑고 맵다. 토중(土中) 에서 나오는 물은 담백하며, 황석(黃石)에서 흐르는 물은 가려(佳麗)하다. 그러나 청석(靑石) 에서 나온 물은 쓰지 말아야 하고, 흐르는 물은 가라앉혀서 써야 하며, 양지편 물보다 그늘 진 쪽의 물이 좋으니 물을 잘 선택하도록 주의를 주고 있다

 

속되게 달지도 않고 잡되게 쓰지도 않으며 철없이 덤덤하지도 않은 그윽한 한잔의 차, 신선의 멋으로 새겨진 훈훈함이 다선일체(茶禪一體)라든가 다시일관(茶詩一貫)이라는 말 속에서 밝혀지는 것이다. 초의는 제다(製茶)에서 음다(飮茶)에 이르기까지 차의 예술적인 멋을 알았고 선승이면서도 당대 첨단의 교양을 높이 쌓은 고승으로 우리가 새롭게 주목해 볼 필요가 있는 인물이다. 1866년 나이 80세, 법랍 65세로 입적하였다. 그는 또한 대흥사 13 대종사 중 13번째 대종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둔사지(大芚寺誌)>는 의순을 생략하고 있다.

이는 『대둔사지』의 편자가 의순이었기 때문이며, 실제로는 마지막으로 그를 쳐서 13대종사 라고 부르는 것이 관례이기 때문이다. 저서로는 위에 열거된 책외에 『이선래의(二禪 來儀)』1권, 『초의시고(草衣詩藁)』2권, 『진묵조사유적고(震默祖師遺蹟考)』1권, 『동다송』1권, 『다신전(茶神傳)』1권, 『선문사변만어(禪門四辨漫語)』 등등이 있다.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불교 인물사상사, 동사열전, 한국차문화 등등

 

 

 

 

심화(心畵) 제주화북진도 - 초의선사

 

추사 김정희(金正喜)가 제주 화북진으로 유배를 떠나던 길에 초의선사(草衣禪師)가 머무르던 일지암(一枝庵)에 들러 하루밤을 묵고 유배지로 추사가 떠나가자 추사와의 이별을 애통해하며 그린 그림이라 하며 마음을 그린 것이기에 심화(心畵)라고 합니다

 

 

 

 

 


다신전 [茶神傳 ]
 

『 차를 대하는데 특별한 예법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다만 마음가짐만은 여유롭고 풍요?게 가지면서 공
부하면  좋으리라 생각되어 다록과 함께 싣는다.
    이하의 글은 초의선사(草衣禪師) (1786-1866)가  [다신전] 서두에서 밝혔듯이 청나라 모환문(毛煥文)이
쓴 <만보전서(萬寶全書)>의 다경채요(茶經採要)를 등초한 것이며, <경당증정만보전서(敬堂增訂萬寶全書)> 卷之十四, '채다론(採茶論)'과 동일한 내용이다.
    책의 원본은 1595년~1600년에 장원(張源)이 쓴 <장백연다록(張伯淵茶錄)>이다.』


※ 다록(茶錄)의 원문과 비교하면서 오자(誤字) 또는 탈자(脫字))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시면 많은 도움이 되
    시리라 믿의며 (  )의 글자는 다록이며 +는 다신전에 첨가된 글자 - 는 다록에만 있는 글자다.
예) 香(味) : 다신전은 香으로 다록에는 味로, 林(-) : 다신전에는 林이 있고 다록에는 없고, +全 : 다신전
에는 없고 다록에만 있는 글자임.

 

 

1.採茶 [찻잎 따기]

 

採茶之候 貴及其時

太早則香(味)不全 遲則神散 以穀雨前五日爲上 後五日次之 再五日又次之

茶非(芽)紫者爲上 而(面)皺者次之 團葉者(又)次之 光而(面)如篠葉者最下

徹(撤)夜無雲邑 ?露采(採)者爲上 日中采(採)者次之

陰雨下(中)不宜采(採)

産谷中者爲上 竹林(-)下者次之

爛中石(石中)者又次之 黃砂中者又次之

※ 茶經云 其地 上者生爛石 中者礫壞 下者黃土

 

차잎을 딸 때에는 그 시기가 매우 중요하다.

너무 빨리 따면 향(맛)이 온전하지 못하고, 너무 늦게 따면 다신(茶神)이 흩어진다. 곡우(穀雨) 닷새 전에 딴 것이 제일 좋고, 곡우 닷새 후에 딴 것이 다음이며, 다시 닷새 후에 딴 것이 그 다음이다.

차싹은 자색(紫色)이 아닌(싹인) 것이 가장 좋고 잎에 주름져 있는 것이 다음이요, 잎이 둥그스럼한 것이 그 다음이며, 광택이 나는 조릿대 잎 같은 것이 가장 좋지 않은 것이다.

밤새 구름 한 점없이 맑은 날 아침 이슬에 흠뻑 젖어 있는 것이 상품(上品)이고, 낮에 딴 찻잎이 그 다음이며,

비가 내릴 때에는 따지 말아야 한다.

산골짜기에서 딴 찻잎이 제일 좋고, 대나무밭에서 딴 찻잎은 다음이요,

돌이 부서져 만들어진 땅에서 딴 차가 그 다음이며, 황토땅이나 모래 땅에서 딴 찻잎은 하등품(下等品)이다.

※다경에는 그 산지에 따라 지리산 화개 산골짜기 같은 돌(石)이 부서져 만들어진 땅(爛石)에서 자란 찻잎이
가장 좋고 자갈 섞인 땅(礫壞)에서 자란 찻잎이 그 다음이며 황토땅(黃土)에서 딴 찻잎은 하등품이다

 

篠(조리 대 꼭지 잎이 펴지기 전의 말린 잎).

爛石(문드러진 돌, 風化石). 黃砂(누른 빛의 모래).

團葉 찻잎이 둥글게 말린 잎은 대체로 차잎말이 나방의 애 벌래 피해를 입은 것이다. 그러므로 자줏빛 움이 으뜸, 葉面이 주름진 草綠움이 다음가는 움인데 아직 꼭지 잎이 둥근 것을 말한다.

篠葉 차나무 잎은 한가지(新枝)에 8-12잎이 나는데 마지막 꼭지 잎이 펴지면 그 전까지 펴진 잎은 조릿대 잎처럼 光澤이 난다. 이때는 차 움에 아미노산 (특히 ‘茶神’으로 불리는 ‘데아닌’)의 含量이 急激히 減少하며, 햇빛이 강하고 溫度가 높으면 쓰고 떫은맛이 나는 ‘카테친’ 含量이 增加 하므로 감칠맛이 흐트러진다. 온뜸차 (全醱酵茶→ 紅茶)를 따는 시기이다.

 

 

 

 2.造茶 [차 만들기]

     

新採揀去老葉及枝梗碎屑 鍋廣二尺四寸 將茶一斤半焙之 候鍋極熱 始下茶急炒 火不可緩

待熱方退火徹入篩中 輕團(那)數遍 復下鍋中 漸漸減火 焙乾爲度

中有玄微 難以言顯 火候均停色香(+全)美 玄微未究 神味俱妙(疲)

※輕團枷數遍의  枷(도리깨 가)는 다록에는 那(어찌 나)로 만보전서에는 ?(문지를 나)로 되어 있어 논란이 많고 문제되는 부분이다

 

새로 딴 찻잎에서 늙은 잎, 줄기, 부스러기 등을 골라내고 넓이 두자 네치 되는 노구솥에 차 한 근 반을넣고 덖

는데, 솥이 잘 달구어졌을 때를 기다려 찻잎을 넣어 급히 덖되 이때 불을 낮춰서는 안 된다.

잘 덖어지기를 기다려 솥에서 꺼내 멍석이나 돗자리에서 가볍게 말아 비벼 몇 번 턴 다음, 다시 솥에 넣고 덖기를 하되 덖을 때마다 불을 점점 줄이면서 덖어 말리는데 법도에 맞게 하여야 한다.

그 과정 속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현묘하고 미묘함이 들어 있다. 불 조절이 알맞게 잘 이루어지면 차의 빛깔과 향기가 지극히 아름답다. 현묘하고 미묘함을 다 드러내지 못해도 신령스러운 차의 맛은 오묘함이 들어있다.

 

 

 3. 辨茶 [차의 품질]

    

茶之妙 在乎始造之精 藏之得法 泡之得宜

優劣宜(定)乎始鍋 淸濁係水(末)火

火烈香淸 鍋乘(寒)神倦

火猛生焦 柴疎失翠 久延則過熟 早起却邊(還)生

熟則犯黃 生則著黑 順那則甘 逆那則溢(澁)

帶白點者無妨 絶焦者最勝

   

차의 묘(妙)는 만들기를 하면서 부터 정성을 다하여야 하며, 저장할 때는 건조(乾燥)하고 서늘하게, 찻물을 끓일때는 포법(泡法)에 알맞게 하여야 차의 몸을 엿볼 수있다.
차의 품질이 좋고 나쁜 것은 가마솥에 넣을 때부터 시작되고, 차의 맛이 좋고 나쁜 것은 물과 불에 관계된다.

덖을 때 불의 온도가 알맞으면 차의 향이 맑고, 솥에만 의지하여 만들면 차의 싱그러움이 떨어진다.
불이 너무 맹렬하면 겉만 타고, 불을 섶나무가 태우듯 약하게 하면 푸른빛을 잃으며, 오래 덖으면 너무 익고,

너무 빨리 들어내면 설익는다.

차가 너무 익으면 황색이 되고, 설익으면 검은빛을 띤다. 법도대로 순리를 따르면 차의 맛이 좋고 이를 거스르면 벗어나게 된다.

흰 반점이 있는 것은 무방하나 타지 않아야 제일 좋다.

 

 

4. 藏茶 [ 차의 저장 ]

   

造茶始乾 先盛舊盒中 外以紙封口 過三日 俟其性復 復以微火焙極乾

待冷貯?中 輕輕築實 以??緊 將花筍?(??)及紙 數重封緊?口上 以火??冷定 壓之 置茶育中 切勿臨風近火 臨風易冷 近火先黃

   

차를 만들어 처음 말릴 때는 먼저 오래 쓰던 차함에 넣어 종이로 입구를 막고 사흘을 지나 차의 본성이 회복되

기를 기다려 다시 약한 불에다가 서서히 매우 말린다.

식기를 기다려 식은 뒤에 차를 보관하는 그릇에 가볍고 성글게 채워 넣고 죽순 껍질이나 종이로 병 입구를 몇 겹 밀봉한다. 불에 구운 벽돌을 식혀 그 위에 얹고 다육기(茶育器) 안에 저장하면서 바람을 쏘이거나 불기운을 가까히 해서는 안된다. 바람을 쏘이면 냉해지기 쉽고 불기에 가까이 하면 누렇게 변한다.

 

 

5. 火候 [ 불 다루기 ]

    

烹茶旨要 火候爲先

爐火通紅 茶瓢始上 扇起要輕疾 待有聲 稍稍重疾 斯文武之候也

過於(于)文則水性柔柔則(+水)爲茶降 過於(于)武則火性烈 烈則茶爲水制 皆不足於中和 非烹家要旨也

   

차를 달이는 요령은 불을 가늠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화로에 불이 벌겋게 달아오르면 다관을 얹고 가볍게 부채질하다가 물 끓는 소리가 들리면 한층 세게 부치는데 이것을 문무를 살피는 것이라고 한다.

불기운이 약하면 물이 유연한데, 물이 너무 유연하면 다신(茶神)이 가라앉는다.  너무 세면 불이 극렬하여 차의 성품을 눌리게 한다. 이는 모두 중화(中和:中正)를 잃은 것으로 다인(茶人)이 취할 바가 아니다.

 

 

6. 湯辨 [ 찻물의 분별  ]

    

湯有三大辨 十五小辨

一曰形辨 二曰聲辨 三曰氣辨

形爲內辨 聲爲外辨 氣爲捷辨

如蟹眼 蝦眼 魚眼 連珠 皆爲萌湯

直如湧沸 如騰波鼓浪 水氣全消 方是純熟

如初聲 轉聲 振聲 驟聲 皆爲萌湯

直至無聲 方是結(純)熟

如氣浮一縷 浮二縷 三四縷 亂不分??亂縷 皆爲萌湯

直至氣直沖貫 方是經(純)熟

    

물을 끓이는 데는 세 가지로 크게 구별하는 방법과 열다섯 가지로 작게 구별하는 방법이 있다.
첫째는 물이 끓는 모양으로 아는 방법, 둘째는 물이 끓는 소리로 아는 법, 셋째는 끓어오를 때 김으로알아내는

방법이다.

물이 끓는 모양에 따라 속을 보고 분별하기(內辨), 끓는 소리에 따라 겉에서 분별하기, 물이 끓는 김의 상태에 따라 빨리 분별하기가 있다.

물이 끓는 모양이 마치 게의 눈, 새우 눈, 물고기 눈, 이음구슬처럼 거품이 올라오는 모양은 모두 맹탕(萌湯)이다.

물이 용솟음치듯 끓으면서 물결이 솟고 북을 치듯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물의 기운이 소멸 되는 때가 순숙(純熟)이다.

물이 끓을 때 나는 첫소리, 구르는 소리, 떨리는 소리, 달리는 소리 같은 것은 모두 맹탕이다.

끓는 물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 이것을 결숙(結熟)이라 한다.

물이 끓을 때 김이 한 줄기, 두 줄기, 서너 줄기가 떠오르고 어지럽게 실타래처럼 어지럽게 솟아오르는 것은

모두 맹탕이다.

그러다가 바로 김이 솟구쳐 오르면 이것이 순숙(純熟)이다.

 

 

7. 湯用老嫩 [ 어린물은 쓰고 늙은 물은 쓰지않는다 ]

   

蔡君謨 湯用嫩而不用老 蓋因古人製茶 造則必??則必磨 磨則必羅 則味(茶)爲飄塵飛粉矣 於(于)是和劑印作
龍(+鳳)團 則見湯而茶神硬(便)浮 此用嫩血(而)不用老也

今時製茶 不假羅?(摩) 全具無(元)體 此湯 須純熟茶(+元)神始發也 故曰 湯須五沸 茶奏三奇

   

채군모(蔡君謨)는 "끓는 물을 쓸 때 눈(嫩)은 마시고 노수(老水)는 쓰지 않는다" 고 하였다. 그 이유로 옛사람들의 차 만드는 방법은 차를 만들면 맷돌을 쓰고 맷돌질하여 갈면 체질을 한다. (차의) 맛은 나부끼는 티끌과 같이 날리는 미세한 가루가 좋다. 이를 법제해서 용단(龍團)으로 찍어 만든 것이니라 탕를 끓여서 보면 다신(茶神)이 곧 바로 떠오른다. 이를 "어린탕(嫩)은 쓰고 노수는 쓰지 않는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요즈음 만드는 차는 맷돌질이나 체질을 하지 않게 만들어 차의 본래 모습 그대로 갖추어져 있어 이러한 차를 끓이는 물은 순숙이라야 차의 본래 신령스러움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탕은 다섯 단계를(蟹眼 蝦眼 魚眼 湧泉連珠 騰波鼓浪)을 끓여야만 차의 삼기(三奇 : 色, 香, 味)가 일어난다" 고 하였다.

 

 

8. 泡法 [ 차 우리기 ]

    

探湯純熟便取起 先注少許壺中 祛湯冷氣 傾出然後投茶葉(-) (+茶)多寡宜酌 不可過中失正

茶重則味苦沈 水勝則色淸味(氣)寡

兩壺後 又用冷水蕩滌 使壺凉潔 不則減茶香矣

罐熱則茶神不健 壺淸(+則)水性當(常)靈

稍俟茶水沖和然後 冷(分)?布飮 ?不宜早 飮不宜遲 早則茶神未發 遲則 妙馥先消

   

찻물이  끓은 상태을 살펴 순숙에 이르면 얼른 드러내 먼저 다관에 조금 부어서 냉기를 가신 뒤에 찻잎을 넣
되, 많고 적음을 헤아려 중정(中正)을 넘어 정도(正度)을 잃어서는 안 된다.

차의 량이 너무 많으면 맛이 쓰고 향이 가라앉으며, 물이 많으면 색은 맑으나 맛(氣)은 모자란다.

두어번 사용한 다관은 다시 찬물로 씻어 깨끗하게 해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차향이 줄어든다.

다관에 [차의 색(色),향(香),미(味)가] 친숙해 (갇혀) 있으면 차의 신령(神靈)스러움이 건실하지 못하므로 다관이 맑아야 물의 성품이 신령스럽게 나타난다.

차와 물이 잘 어우러지기를 기다려 걸러 나누어 마시되,너무 빨리 걸러도 좋지않고 너무 늦게 마셔도 좋지않다. 빨리 거르면 차의 싱그러움이 나타나지 않고 너무 늦게 마셔도 오묘한 향기가 먼저 사라져 버린다.

 

 

9.投茶 [ 차 넣는 법 ]

   

投茶行序 毋失其宜

先茶湯後 曰下投

湯半下茶 復以湯滿 曰中投

先湯後茶 曰上投,

春秋 中投, 夏 上投, 冬下投

  

차를 넣는 데도 차례가 있으니 적절함을 잃어서는 안 된다.

다관에 차를 먼저 넣고 그 다음에 끓인 물을 붓는 것을 하투(下投)라 한다.

다관에 끓인 물을 반쯤 붓고 차를 넣은 뒤 다시 끓인 물을 가득히 붓는 것을 중투 (中投)라 하며,

먼저 끓인 물을 붓고 다음에 차를 넣는 것을 상투(上投)라 한다.

봄 가을에는 중투, 여름은 상투, 겨울에는 하투로 한다.

 

 

10. 飮茶 [ 차 마시기]

     

飮茶 以客少爲貴

客衆則喧 喧則雅趣乏矣

獨?曰神 二客曰勝 三四曰趣

五六曰泛 七八曰施

     

차을 마실 때는 사람의 수가 적을 수록 귀하게 여긴다.

차 마시는 사람이 많으면 소란하고 소란하면 차 마시는 고상한 정취가 사라진다.

홀로 마시면 신령스럽고, 둘이 마시면 고상하고, 서넛이 마시면 정취만 있을 뿐이며,

대여섯이 마시면 덤덤하고, 일고여덟은  찻잔을 주고 받을 따름이다.

 

 

11.香 [ 차의 향 ]

   

茶有眞香 有蘭香 有淸香 有純香

表裏如一曰純香

不生不熟曰淸香

火候均停曰蘭香

雨前神具曰眞香

更有含香 漏香 浮香 間香 此皆不正之氣

   

차에는 진향(眞香), 난향(蘭香), 청향(淸香), 순향(純香)이 있다.

속과 겉이 한결 같은 것을 순향이라 하고,

설익지도 않고 너무 익지도 않은 것은 청향이라 하며,

불 기운이 고르게 든 것을 난향이라 하고,

곡우 전의 싱그러움을 갖춘 것을 진향이라 한다.

또한 함향(含香), 누향(漏香),부향(浮香), 간향(間香)이 있으나 모두 품에 들지 못하는 향이다.

 

 

12. 色 [ 차의 색 ]

    

茶以淸(靑)翠爲勝 濤以藍白爲佳

黃黑紅昏 俱不入品

雲(雪)濤爲上 翠濤爲中 黃濤爲下

新泉活火 煮茗玄工

玉茗水(氷)濤 當杯絶技

   

차는 맑고 푸르러야 가장 좋고, 찻물은 연한 쪽빛에 하얀 빛이 도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누런빛, 검정빛, 붉은 빛, 어두운 빛깔은 품에 들지 못하는 차다.

찻잔에 구름같은 찻물이 상품, 파르스름한 것이 중품,누르스한 것은 하품이다.

신선한 샘물에 활활 타는 숯불로 차를 달이면 능통한 기술자요,

옥같은 차로 얼음같이 맑은 차를 우려내는 것은 찻잔에 나타내는 절묘한 기예이다.

 

 

13. 味 [ 차의 맛 ]

    

味以甘潤爲上 苦滯(澁)爲下

     

차의 맛은 달고 부드러운 것을 으뜸으로 삼고, 쓰고 먹기 거북한 것은 하등이다.

 

 

14. 點染失眞 [ 오염되면 차의 참된 맛을 잃는다 ]

     

茶自 有眞香 有眞色 有眞味

一經點染 便失其眞

如水中着鹹 茶中着料 碗中着薑(果) 皆失眞也

     

차는 스스로 참된 향기와 참된 빛깔,참된 맛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한 번 다른 물질에 오염되면 차의 참됨을 잃는다.

만일, 차을 끓이는 물에 소금기가 함유되어 있거나, 차에 다른 물질이 묻었거나, 차 사발에 과즙 같은 것이 묻으면 모두 차의 참됨을 잃는다.

 

 

15. 茶變不可用 [ 변질된 차는 쓰지 않는다 ]

    

茶始造則靑翠 收藏 不得其法

一變至綠 再變至黃 三變至黑 四變至白

食之則寒胃 其至 瘠氣成積

     

차를 처음 만들엇을 때는 그 빛이 푸르다. 그러나 차의 저장법을 잘 갖추지 못하면 색깔이 변한다.
첫번째 변색은 녹색이 되고, 두 번째는 황색이 되고, 세 번째는 흑색, 네 번째는 백색으로 변한다.

만일 변질된 차를 달여 마시면 위(胃)가 냉해지는 증세가 생기고, 심하면 기운이 없고 적병(積病)이 생기게 된다.

 

 

16. 品泉 [ 물의 등급 ]

    

茶者 水之神 水者 茶之體

非眞水 莫顯其神 非精茶 莫窺其體

山頂泉 淸而輕 水下泉 淸而重 石中泉 淸而甘 砂中泉 淸而洌

土中泉 淡而白 流於 黃石爲佳 瀉出靑石無用

流動者 愈於安靜 負陰者 勝於陽

眞原 無 味眞水 無香

   

차는 물의 신(神)이요 물은 차의 몸이다.

좋은 물이 아니면 다신이 나타나기 어렵고 좋은 차가 아니면 차의 몸을 엿볼 수 없다.

산마루에서 솟아나는 샘물은 맑고 가벼우며, 지하 샘물은 맑으나 무거우며, 돌 사이에서 솟는 석간수는 맑고 달며, 자갈의 샘은 맑고 차갑다.

땅 밑 샘은 담백하고 황석(黃石)에서 솟는 물은 좋은 물이지만, 청석(靑石)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쓰지 말아야 한다.

흘러내리는 물은 고여있는 물보다 좋고, 음지에서 나오는 물은 양지에서 나오는 물보다 참된 물이다.

오염되지 않은 참된 샘의 근원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아무 맛이 없고, 참된 물은 아무런 향기가 없다.

 

 

17. 井水不宜茶 [ 우물 물은 차에 좋지 않다 ]

    

茶經云 山水上 江水下 井水最下矣

第一方 不近山 卒無泉水 惟當春積梅雨

其味甘和 乃長養萬物之水

水雖淸 性感重陰 寒入脾胃 不宜多積

  

우물의 물은 차 달이는데 좋지 않다.

<다경(茶經)>에 이르기를, "산에서 나는 물이 으뜸이고 강물은  하등이며 우물의 물은 최하품이다" 라 하였다(중국과 우리나라는 자연 환경이 달라 맞지 않다).

다만 도시 가까운 곳에 산이 없고 좋은 우물 물마저 없다면 봄의 매실(梅實)이 익을 때 내리는 빗물을 써도 괜찮다.

그때 내린 빗물은 맛이 달고 부드러울 뿐 아니라 모든 생물을 길러 주는 생명수이기도 하다.
눈이 녹은 물은 맑기는 하나 물의 성질이 너무 차가워 비위(脾胃)에 찬 기운이 스며 들어 많이 마시면  해를 입을 수 있다.

 

 

18. 貯水 [ 물을 받아 놓는 법 ]

   

貯水甕 須置陰庭中 覆以紗帛 使承星露之氣 則英靈不散 神氣常存

假令 壓之以木石 封以紙? 曝于日下則外耗散神 內閉其氣 水神弊矣

飮茶 惟貴 夫茶鮮水靈 茶失其鮮 水失其靈 則與溝渠何異

     

물을 받는 항아리는 반드시 정원의 그늘진 곳에 두고 비단으로 덮어 밤이슬을 맞게 하면 물의 신령함이 흩어지지 않고 신통한 기운이 항상 남아 있다.

하지만 가령 이것을 나무나 돌로 누르고 종이와 죽순껍질로 봉해 햇살을 쏘이면 곧 밖으로 물의 신기(神氣)가 사라지고 안으로 살아있는 기운이 막혀서 수신(水神)이 사라진다.

차를 마심에 오직 귀한 것은 신선한 차와 신령스러운 물이니 차가 신선하지 못하고 물이 신령함을 잃으면 개울물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19. 茶具 [ 차의 그릇 ]

     

桑苧翁 煮茶 用銀瓢 謂過於奢侈 後用磁器 又不能耐久 卒歸於銀

愚意 銀者 貯朱樓華屋 若山茅齋舍 惟用錫瓢亦無損於色味也 銅鐵忌之

     

상저옹(桑苧翁 : 육우)은 차를 달이는데 물 끓이는 그릇으로 은 제품을 썼으나 너무 사치스럽다는 생각에 도자기 그릇으로 바꿨는데 오래 쓸 수가 없어 다시 은 제품을 쓰게 되었다.

나의 못난 생각으로는 은(銀) 제품은 부잣집에서 장만하고 살림이 어려운 사람들은 주석으로 만든 그릇을 써도 차의 빛깔과 맛에는 손색이 없다. 그러나 구리 제품과 쇠 제품은 쓰지 말아야 한다.

 

 

20. 茶盞 [ 찻 잔 ]

   

盞 以雪白者爲上 藍白者不損茶色次之

     

찻잔은 눈처럼 하얀색이 가장 좋고, 푸른 빛이 도는 흰색은 차의 빛깔을 해치지 않으므로 그 다음이다.

 

 

21. 拭盞布 [ 차의 행주 ]

  

飮茶前後 俱用細麻布 拭盞 其他物 穢不堪用

     

차 마시기 전후에는 모두 고운 마포(麻布)를 사용해서 잔을 깨끗이 닦는다. 다른 종류의 천은 쉽게 더러워져서 사용할 수 없다.

 

 

22. 茶衛 [ 차의 운용 ]

     

造時精 藏時燥 泡時潔 精 燥 潔 茶道盡矣

    

차를 만들 때는 정성을 다하고, 차를 저장ㆍ보관할 때는 습기가 차지 않도록 하며, 물을 끓여 차를 달일 때는 청결하여야 한다. 정성 들여 만드는 정(精), 차에 습기가 들지 않게 보관하는 조(燥), 차를 달여 마실 때 깨끗하게하는 결(潔)로 다도(茶道)는 완성된다.

 

 

後記 [ 후 기 ]

  

戊子雨際 隨師於方丈山 七佛啞院 騰抄下來

更欲正書 而因病未果

修洪沙彌 時在侍者房 欲知茶道 正抄亦病未終

故禪餘 强命管城子 成終

有始有終 何獨君子爲之

叢林 或有趙州風 而盡不知茶道 故抄示可畏

    

무자년 어느 비오는 날, 스승을 따라 지리산 칠불암 아자방에 갔다가 이 책자를 등초(騰抄)하여 내려왔다.
바로 다시 정서(正書)하여 책으로 묶으려고 했지만 몸에 병이나 끝을 맺지 못하였다.

사미승 수홍(修洪)이 마침 시자방에 머무르며 다도를 배우고자 하여 정초(正抄)하게 하였으나 또한 병을 얻어 이루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좌선하는 틈틈이 짬을 내 힘겹게 붓을 들어 완성한 것이다.

시작이 있고 끝이 있는 일이 어찌 유학자들만의  일이겠는가.

총림(叢林)에서도 혹여 조주풍(趙州風)이 있기는 하나 다도(茶道)를 잃어버려 이를 초록하여 후학들에게 전하는 바이다.

    

庚寅 中春 休菴病禪 雪窓擁爐 謹書
   

경인년(1830)  봄에, 휴암병선(休菴病禪:초의) 눈 쌓인 창가에서 화로를 안고 삼가 이 글을 쓰노라.

 

 

 

...

 

 

 

 

 

주석은 없고 원문과 해석 사이에 의역이 심해 이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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