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5,12.15ㄴ.17-19.20ㄴ-21; 루카 12,35-38
+ 찬미 예수님
바오로 사도는 1독서에서 아담의 범죄와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비교하는데요, 여기에서 초점은 어떻게 원죄가 전해지게 되었나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가 어떻게 은총과 의로움의 선물을 충만하게 받게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아우구스티노 성인께서 오늘의 말씀에서 원죄에 대한 신학을 발전시키고 이를 교회가 교리로 확정하였지만, 여전히 중요한 것은 원죄가 전달되는 방식이 아니라 우리가 갖고 있는 연대성입니다. 교황님께서 말씀하시듯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에, 우리는 죄에 대해서도 연대성을 갖고 있고, 의로움에 대해서도 그러합니다. 하지만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허리에 띠를 매라고 하시는데요, 이는 성경에서 하인의 복장(루카 17,8)이기도 했고, 달릴 때의 복장(1열왕 18,46)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특징적인 것은 파스카 축제의 복장인데요, 탈출기 12장을 보면 파스카 음식을 먹을 때 “허리에 띠를 매고 발에는 신을 신고 손에는 지팡이를 쥐고, 서둘러”(탈출 12,11) 먹으라고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라고 말씀하시는데, 이 역시 파스카와 연관이 될 수 있습니다. 역시 탈출기 12장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날 밤, 주님께서 그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시려고 밤을 새우셨으므로,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도 대대로 주님을 위하여 이 밤을 새우게 되었다.”(42절)
예수님께서는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라고 말씀하시는데, 밤중과 새벽은 원문에는 각각 제2경, 그리고 제3경으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밤을 세 시간 단위로 잘라서 불렀는데요, 저녁 6시부터 9시까지가 제1경, 9시부터 12시까지가 제2경, 그리고 12시부터 3시까지가 제3경, 그리고 3시부터 새벽 6시까지가 제4경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 “주인이 제2경에 오든 제3경에 오든”은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으로 번역하는 것이 맞는데요,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는 이 말씀을 흥미롭게 주해합니다. 우리에게는 세 시기가 있는데, 소년기, 장년기, 노년기라는 것입니다. 소년기는 아직 마음이 순진하고 이해력이 약한 까닭에 하느님 앞에 심판을 받을 때가 아니지만, 장년기와 노년기에는 하느님께 복종하고 경건하게 살아 그분을 기쁘게 해드릴 의무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주인이 오시는 밤중과 새벽이 우리 인생의 장년기 혹은 노년기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한편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허리에 띠를 맨다는 것은 자기 절제와 연관이 되고, 등불을 밝히는 것은 선한 행실로 빛을 내는 것이니, 정의와 연관된다’고 주해하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오시면, 욕심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사랑의 명령에 순종한 우리에게 합당한 상을 주시어, 온갖 악의 시련에서 벗어나 완전하고 영원한 평화 속에서 지고한 선의 즐거움을 누리며 살게 할 것입니다.”
사제도 제의를 입을 때 허리에 띠를 매는데요, 이는 주님의 충실한 종으로 미사에서 봉사할 것을 드러내는가 하면, “주인이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라는 말씀에 비추어 생각해 보면, 직접 띠를 매고 우리에게 시중을 들겠다고 하신 예수님의 봉사를 상징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주님이 띠를 매고 우리를 식탁에 앉게 한 다음, 우리 곁에서 시중을 드시는 그런 황송한 일이 언제 일어날까요. 사실 그 일은 이미 일어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미사입니다. 당신 자신을 내어 주는 것보다 더 큰 봉사는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