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해설
생명 모체의 귀환과 효심의 시적 진실
--김선희 시집 『바람 부는 날이면』
김 송 배
(시인. 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1. 생명성의 모체(母體)와 시적 발원지
현대시의 발원지는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시적인 발상이나 동기는 그 시인의 체험에서 유발(誘發)하는 상상력에서 재생되는 이미지가 시적인 소재나 주제로 발현(發現)되어 한 편의 작품 창작으로 이어지게 된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체험에서 가장 절실하게 회상되고 영원히 불망(不忘)의 추억으로 새겨져 있는 것이 사모(思慕)의 정감이다. 그 중에서도 모정(母情)과의 궤적(軌跡)은 심리적이 불멸성으로 재생되는 특이성이 있어서 모든 인간의 정신에서 각인되어 있는 정(情)을 깊숙이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우리 시인들은 이러한 모정이나 효심(孝心)에 대한 시를 많이 창작하는 것은 나의 생명성이 탄생되고 길러주고 가르치면서 존재의 기본개념을 명민(明敏)하게 인식하거나 성찰하는 모체의 정감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일찍이 김남조 시인은 ‘어머니! 이렇게 부르면 지체없이 격렬한 전류가 온다. 아픈 전기이다. 아프고 뜨겁고 견딜 수 없는 전기이다.’라고 어느 글에서 말한 바와 같이 어머니와 교감하는 의미는 우리 인간들이 살아가면서 그의 존재가 곧 나의 존재와 교통(交通)하는 정감적인 이미지를 우리 시인들은 조감(照鑑)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 김선희 시집 『바람 부는 날이면』의 원고를 일별하면서 이처럼 어머니에 대한 사랑의 메시지가 넘치는 효심의 언어를 간과(看過)할 수 없다는 생각이 앞선다. 이렇게 어머니에 대한 사랑의 시법(詩法)은 그가 발원하는 시적인 모태가 되고 사모(思母)의 이미지가 충만되어 있어서이다.
김선희 시인은 우선 ‘점심 먹고 나면 해 떨어지는 내 고향 한대리 / 늦가을 초승달 같은 해를 따라 엄마 손은 / 오늘도 허리 한 번 펴지 못했다(「엄마 손」 중에서)’는 고향 한대리에서 배추밭, 열무밭, 콩밭, 참깨밭, 고추밭, 고구마밭의 농촌에서 허리를 펴지 않고 일하는 어머니에 대한 안스러운 ‘엄마 손’을 그는 언제나 그의 심중(心中)에서 지우지 못한다.
또한 ‘당연한 줄 알았다 / 마흔에 혼자 된 엄마가 / 자식들 다 키우고도 혼자서 살아가는 것이 // 혼자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병원에 가면서 / 그렇게 늙어가는 것인 줄 알았다 / 우리 엄마는 그런 줄만 알았다(「당연한 줄 알았다」 중에서)’는 사모의 정감은 참으로 절절한 이미지를 적시하고 있어서 우리들을 공감의 영역으로 흡인시키고 있다.
칠순을 훌쩍 넘긴 어머니는
나만 보면 꽃처럼 웃지요
작은 아그 왔냐 하면서
아이같이 좋아해요
칠순이 마악 지난 친정엄마는
내 속에 들어갔다 나온 양
바위처럼 가만히 지켜보다
마술같이 내 마음을 풀어줘요
내가 바라는 한 가지는
칠학년 육반 시어머니랑
칠학년 이반 친정엄마 얼굴에
언제나 복사꽃이 피어나는 것이지요
--「내가 바라는 한 가지」 전문
김선희 시인의 어머니는 모두 칠순을 훌쩍 넘긴 시어머니와 친정 엄마로 구분해서 살펴볼 수 있는데 그가 진정 바라는 것은 작품 결론으로 적시한 ‘칠학년 육반 시어머니랑 / 칠학년 이반 친정엄마 얼굴에 / 언제나 복사꽃이 피어나는 것이’라는 어조(語調)에서 이해할 수 있듯이 이 두 어머니에 대한 사랑의 효심은 동일하게 현현됨으로써 어머니라는 개념이 그의 시적인 원류로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박 삐리리 법무사에서 이전서류를 하였다
친정아버지가 두고 가신 그 논을 팔았다
빌라를 구입하고 엄마 살림살이를 새로 사고
아버지 제사와 추석을 지낼 때까지도
엄마가 우리 동네로 이사를 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논을 팔고 이전서류를 건네고 난 후에야 비로소
고향 한대리를 떠났다는 느낌이
여름날 소나기처럼 밀려왔다.
아버지가 쓰러지신 그 논을 팔아버렸다
돌아오는 길에 엄마 괜찮아 라고
몇 번을 묻고 물어보았다
가슴 한쪽이 한없이 시려서
--「이전 서류를 하고」 전문
그렇다. 김선희 시인은 고향 한대리와 어머니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가 없다. ‘친정 아버지가 두고 가신 그 논을 팔’고 이전서류를 하고 난 후 ‘엄마 괜찮아’하고 확인하는 가슴 시린 사연이 더욱 어머니와의 정감이 애절하게 분사(噴射)하고 있어서 공감의 정을 유발시키고 있다.
그의 어머니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어서 간추려 보면 ‘고추밭 다녀오신 어머니’, ‘우리 것이 제일 잘 되었다는 어머니’, ‘아이처럼 신나게 콩 고르는 어머니’, ‘볏논에 피사리하고 오신 어머니’, ‘절임배추 같은 어머니 목소리’, ‘이른 아침 호미 들고 오시는 어머니’ 등등 이루어 다 열거할 수가 없다.
그는 이 시집 전체의 작품들을 ‘어머니’를 소재로 창작되어 그 이미지나 주제가 그리움과 사랑의 표본으로 적시하고 있다. ‘은행나무 반겨주는 내 고향 한대리 / 겨우내 창고 구석에서 뒹굴다 나온 / 싹 튼 감자 몸뚱이 같은 / 어머니 얼굴을 보니 눈 둘 곳이 없어라(「쭈글쭈글 감자」 중에서)’는 등 그의 내면에 얽혀있는 체험의 발산이 바로 그의 생명 모체의 귀환으로 효심에 대한 절정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2. ‘성전댁’의 애환, 그 효심의 진원
김선희 시인은 ‘성전댁’이라는 친정 엄마의 택호(宅號)를 의인화해서 어머니의 이미지를 재생하고 있어서 그의 시법에서 절실한 효과를 상승시키는 일면을 엿보게 해서 주목하게 된다. 대체로 시인들의 깊은 관념에서는 일상적이거나 보편성을 지닌 주변의 사물(혹은 인물)에서 체득(體得)한 체험이 작품 속에 무르녹아 있는 시법을 선호하는데 김선희 시인도 실생활(real life)에서 절감한 어머니가 주된 소재이지만 앞에서 보아온 다정다감한 정서와 사유(思惟)와는 또 다른 이미지가 애환(哀患)의 이미지로 형상화하는 점을 그의 절대적인 아픔으로 적시하고 있다.
봄비 맞아 통통 살 오른 취나물
쑥쑥 캐어 자식들 입에 넣어주고파
앞뒷산 오르는 길은 반질반질
이산 저산에서 꿩 꿩 꿩
취나물 나는 소리
삐그덕 삐그덕 삐꺽
아이고 허리야
울 엄마 파스 붙이는 소리
꿩 꿩 꿩
봄에는 취나물을 먹어야 힘이 난다고
나물 망태 메고 나서는
못 말리는 친정엄마 성 전 댁
--「성전댁」 중에서
보라. 어머니에게서 ‘삐그덕 삐그덕 삐꺽 / 아이고 허리야 / 울 엄마 파스 붙이는 소리’에 그는 연민의 정을 띄우고 있으나 다시 어머니는 ‘봄에는 취나물을 먹어야 힘이 난다고 / 나물 망태 메고 나서는 / 못 말리는 친정엄마‘라는 효심이 발현하게 되고 이 시집의 중심 소재와 화자(話者-persona)로 등장한다.
이 ‘성 전 댁’은 무릎이 아파서 거동이 불편하지만 ‘수술 안 하고 죽을라 했더니 해야 할란갑다 / 닳고 닳고 닳아서 툭 튀어나와버린 무릎 / 한 가닥 천으로 꽁꽁 묶은 엄마 무릎을 보’고 나서야 어머니의 통증을 알 수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수술하자 수술하자 그저 입으로만 걱정했지요 / 가을 다해 놓고 할란다 하시던 어머니 무릎이 / 주사약도 마약 같은 인내심도 소용이 없어진 것을 / 몰랐습니다 내 무릎이 아니라서 모른 척했습니다(이상 (「쥐구멍」 중에서)’라는 어조로 성전댁의 고통을 지금도 흐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는 ‘청명한 가을 하늘빛 모자를 쓰고 / 이동용 침대에 아기처럼 누워서 / 수술실로 가는 성전댁을 보니 / 눈 둘 곳이 없다 // 수술실 문이 스르륵 탁 / 구십 분 / 수술실 밖에는 / 구백 년의 시간이 기다리겠다(「성전댁 수술하던 날」 중에서)‘거나 ‘수술 중 수술 중 수술 중 수술 중 / 회복 중 / 회복 중이라는 말은 /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와 같은 말이다 (「수술실 앞에서」 중에서)‘라는 등의 어조는 그의 지극한 효심이 발현되는 그의 절규에 가깝도록 애절하다.
김선희 시인은 어머니를 조대병원 7124호실에 입원시켜 놓고 ‘무심한 세월은 바위 같은 성전댁 앞에서도 / 승리의 브이자(「아파 아파」 중에서)’라는 친정엄마의 아픔을 되뇌이고 있다. 이러한 성전댁의 행보는 그의 뇌리에서 오매불망(寤寐不忘)의 여운으로 남아서 그의 작품에 다채롭게 현현되고 있는 것이다.
바람 부는 날이면 친정엄마한테 간다
쓰러진 황소도 벌떡 일으켜 세운다는
산낙지 몇 마리 사 들고
괜스레 울고 싶은 날에는 덤재를 넘는다
--중략--
혼자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병원에 가면서
그렇게 늙어가는 것인 줄 알았다
우리 엄마는 그런 줄만 알았다
--「당연한 줄 알았다」 중에서
김선희 시인에게 내재된 효성의 이미지는 이처럼 ‘당연한 줄 알았’던 평범하고 안일한 평소의 사유에서 절실하게 감지(感知)한 성전댁이 수술을 하고 겪는 고통이나 외로움 등에서 딸된 도리에서 느껴보는 효성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는 심성의 일대 전환을 엿보게 하고 있다.
그는 ‘바람 부는 날이면 친정엄마한테 간다’거나 ‘괜스레 울고 싶은 날에는 덤재를 넘는다’는 어조는 그가 모정에 대한 그리움이 이토록 그의 심연(深淵)에서 용암으로 이글거리고 있다는 효심이 짙게 작용하고 있는 이 작품이 이 시집의 표제시 『바람 부는 날이면』이 되고 있다. 그는 다시 ‘눈물 나는 보리 냄새 / 여운재 넘어오면 / 한대리 내 고향으로 / 엄마를 보러 간다(「생일」 중에서)’는 어조와 같이 어머니를 뵈오려 ‘덤재’를 수시로 넘어가는 지극한 효도의 정감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성전댁의 가슴에서 소용돌이 치는 애모(哀慕)의 정도 엿볼 수가 있는데 ‘성전댁이 운다 / 청상과부가 되던 그날에도 / 눈물 가뭄이 들었던 성전댁이 / 전화기 저편에서 운다 // 어젯밤에 용몰댁이 가버렸다 / 저녁까지 물놀이하고 놀았는디 / 119차 같은 것들이 여러 대 왔다’는 수화기 저 편에서 성전댁은 동내 친구 ‘용골댁’의 죽음에 울고 있다. ‘엄마 힘들어서 어째요 / 어짜것냐 / 복이지 / 어젯밤까지 같이 놀았는디 // 불가마 같은 팔월 / 평생지기 친구를 잃어버린 / 성전댁 가슴에 장대비가 / 세차게 내린다 (이상 「잘 가라 그대」 중에서)’는 어조와 같이 성전댁의 생활 속에는 심리적인 온유한 감성이 잘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3. 향수, 자연 향기에서 탐색하는 서정
김선희 시인의 내면 의식에는 고향과 고향의 어머니가 융합하는 시법을 구사하면서 자연의 향기에 흠뻑 젖어있는 서정성을 탐색하고 있다. 그는 어차피 어머니에게 그리움이 내재된 이미지가 생성하려면 고향에 대한 아련한 동심이나 농촌의 일상들이 동시에 화해를 해야만 그의 심안(心眼)이나 사유의 진폭이 정리되기 때문이다.
그가 생장하면서 체질화한 생활의 추억들이 지금도 어머니의 포근한 체취(體臭)와 함께 재구성하는 특성을 읽을 수 있게 한다. 고향 산천에 널브러진 자연의 향기 속에서 생을 영위해온 어머니의 모습은 ‘엄마 고사리 났어요 / 우리 동네 뒷산에는 나왔대요--중략--엄마 고사리는 언제 나요 / 우리 어머니는 아까 솔찬히 꺾어왔어요(「산에 벚꽃이 피어야」 중에서)’라는 자적(自適)의 전원 서정을 분사하고 있다.
아카시아 향기 폴폴 날리는 오월
모내기 마악 시작한 논으로
앞산과 하늘이 이사를 왔습니다.
노르스름 누릿누릿 익어가는 보리들
통통하게 살 오른 허리통에서
삘리리 삘리리 피리 소리 들립니다.
오메 누가 이렇게 보리를 다 뽑아부렀다냐
호미 들고 밭에 가던 어머니
불호령에도 암상토않게
삘리리 삘리리
찔레꽃 무더기로 피어나는
논두렁에서 삘리리 삘리리
보리는 잘도 익어만 갑니다
--「보리피리 불며」 전문
김선희 시인의 향수에는 고즈넉한 고향의 ‘아카시아 향기 폴폴 날리는 오월 / 모내기 마악 시작한 논’에서부터 ‘노르스름 누릿누릿 익어가는 보리들’ 까지 그의 서정적 시법이 바로 ‘호미 들고 밭에 가던 어머니’로 연결하면서 농촌의 풍광으로 깊이 젖어드는 아늑한 이미지를 연출하고 있어서 우리들은 여기에 흡인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어머니에 대한 다양한 생활상을 적나라(赤裸裸)하게 묘사하면서도 전원의 정경(情景)이 많은 사람들의 심중에서 동질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이미지가 ‘보리피리’를 통해서 ‘논두렁에서 삘리리 삘리리 / 보리는 잘도 익어만’ 가는 상황으로 창출하여 서정적인 감응(感應)을 재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엿기름 하려고 심은 보리 서너 이랑 / 보릿국 끓여 먹어라 딸 한 바구니 / 된장국에 넣으라고 앞집 노인 한 주먹 / 이리저리 나누어도 보리는 쑥쑥 (「보리」 전문)’이라는 모정의 정성어린 음성을 은유적으로 적시하고 있는 것이다
뻐꾹새 울어울어 봄이 다 가도록
엄마 나물 망태기 속에서
오롯이 나를 기다리는
찔레순 한 움큼
찔레꽃 고운 꽃을 보면
온 산을 누비던
우리 엄마가 생각납니다
--「찔레꽃」 중에서
여기 이 ‘찔레꽃’도 동감(同感)의 시법으로 현현되고 있는데 ‘찔레꽃 고운 꽃을 보면 / 엄마 생각이 납니다’라고 시적상황을 설정하고 ‘엄마 나물 망태기 속에서 / 오롯이 나를 기다리는 / 찔레순 한 움큼’이라는 모정은 참으로 애잔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참으로 눈물겨운 장관(壯觀)이 아닐 수 없다.
이 밖에도 작품 「천둥벌거숭이」 중에서도 ‘벼들이 열병식 하는 너른 들판은 나의 출퇴근길 / 텅 비었던 논들이 진한 초록으로 물결치고 / 울 어머니 아침저녁으로 호미 들고 나서면 / 배시시 피어나는 나락 꽃들 태양을 유혹한다’라고 ‘울 어머니’와 ‘나락 꽃들’과의 대칭으로 사모의 정감을 잔잔하게 교감하고 있다.
4. 계절의 향훈에서 재생하는 시간성
김선희 시인은 계절의 향훈에 민감하다. 사계절 중에서 봄과 가을에 심취(深醉)하면서 그 향훈을 음미(吟味)한다. 그는 이러한 시간성에서도 ‘친정엄마’를 배제할 수 없이 자주 소통하는 시법을 다채롭게 구사하고 있다.
그는 봄날 갑자기 쏟아지는 봄비에서도 ‘바짝 마른 콩잎 같던 / 어머니 얼굴을 / 활짝 핀 복사꽃으로 만드는 / 요술쟁이 (「소낙비」 전문)’라고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다. 이것이 ‘콩닥 콩닥 설레는 가슴 / 억새꽃 손짓 하나에도 / 목젖까지 아려오는 그리움 / 초저녁별처럼 반짝인다 (「가을에」 중에서)’는 그리움의 정점에서 그는 어머니에 대한 사유를 멈추지 못한다.
비가 와요
친정엄마 같은
봄비가
시커먼 벚나무 가지가지마다
통통통 꽃봉오리가 마중을 나오지요
지난 가을 길촌댁이 자랑자랑하던
붉은 팥 같아요
--「봄」 전문
황금빛 볏논을 지나고
빨간 고추밭도 지나고
아직도 하얀 꽃을 달고 있는
울 엄마 참깨밭도 지나서
산비둘기 구구대는
깊은 산속 옹달샘 가
솔바람도 데리고
이 비 가고 나면
가을이 종종 걸음 하겠지요
--「가을비」 중에서
이 두 편의 작품은 봄비와 가을비의 대칭이다. 그러나 ‘친정엄마 같은 / 봄비’이며 ‘황금빛 볏논을 지나고 /빨간 고추밭도 지나고 / 아직도 하얀 꽃을 달고 있는 / 울 엄마 참깨밭’으로 바쁘게 농삿일에 몰두하는 어머니에 대한 향수가 물씬 넘치는 이미지가 그의 효심을 더욱 애잔하게 상기시키고 있다.
이처럼 그는 이 계절적인 시간성에서 창출하는 시적 발원은 어머니의 삶이 곧 세월과 동행하면서 체험하는 자연과의 화해라는 점에서 어머니의 인생론이 김선희 시인의 가치관으로 전이(轉移)되어 승화하는 현상을 목도(目睹)하게 된다. 참으로 순박하고 순정적인 정관(靜觀)의 시정(詩情)을 이해하게 된다.
그는 봄비가 벚나무 가지마다 꽃봉오리의 마중을 받거나 가을비가 산비둘기 구구대는 옹달샘 가에서 솔바람과 함께 한 폭의 산수화를 감상하는 정경에 우리는 공감하게 되는데 그는 다시 ‘입춘 지나 우수도 엊그제 / 시래기 같은 보리들 기다리는 봄은 언제 올까 / 짠한 마음에 아버지는 비료 들고 나서고 // 아침부터 온다던 봄비는 새색시인가 / 진눈깨비만 앞세우고 / 산수유 눈곱 떼는 저만치에서 / 오르락내리락(「기다리는 마음」 전문)’에서는 한적하면서 여유가 있는 농촌의 정감이 형상화하는 이미지도 엿보게 된다.
그의 시간성이 짙은 자연 서정은 작품 「향기나는 무지개」, 「은적산 아랫마을」, 「콩 심어 불랑께」, 「사월 없는 곳에 살았으면」, 「다시 태어나도」 등등에서 ‘뻐꾹새 노래 따라 앞밭 뒤밭에 / 콩콩콩 어머니 호미 소리’라는 그의 친 자연, 친 모성의 서정적 언어가 지금까지 그의 심저(心底)에서 울려퍼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 김선희 시집 『바람 부는 날이면』 읽기를 마무리해야겠다. 김선희는 순정적인 향수 귀환의 서정시인이다. 고향 한대리와 은적산, 장동 네거리, 덤재, 월출산, 무위사, 선암사, 그리고 영암장날, 독천장, 강진장 등 주변 풍광이 시적인 발상의 진원지가 되고 있어서 향수와 어머니의 시적 융합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시정신(poetry)을 더욱 감미롭게 충만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는 어머니 성전댁을 비록해서 어머니 이웃들인 대골댁, 용골댁, 길촌댁 등 고향의 향미(鄕味)가 가득 배인 정감이 그의 서정시의 원류로 작용하고 있어서 더욱 공감을 유로(流路)하는 시적 호용을 배가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의 청순한 언어가 명징(明澄)하게 서정적인 의식으로 흐르고 있는 것은 작품 「들길 따라서」 중에서 ‘이른 아침에 들길을 걸어보세요 / 연분홍 메꽃 수줍게 피어나고 / 병아리 같은 호박꽃 자랑스럽게 피어 있는 / 깨끗한 바람 불어오는 / 그 길을 걸어보세요 / 풀잎마다 반짝이는 / 별들을 만나러 오세요 / 오늘이 다 가기 전에’라는 안온한 그의 시혼(詩魂)에 매료(魅了)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는 아름답기만 해서는 모자란다고 로마의 대시인 호라티우스는 말한다. 듣는 이의 영혼을 맘대로 뒤흔들고 이끌어 나아가야 한다고 덧붙인다. 이는 시인 자신의 존재만을 인식하면서 독백적인 담론을 경계하라는 명언일 것이다. 복잡다단한 현대생활에서 자신의 정서와 심중이 어머니를 비롯한 주변의 다른 시적 화자와 지향점이 한결같이 미감(美感)의 주제로 형상화하는 것은 시가 절대적인 영혼의 다감(多感)한 음악이 되어야 한다는 시학(詩學)의 근본 원리인 것이다.
시집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