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러 무심한 얼굴을 한 희익이가 들어왔다. 내 아이도 들어왔다. 희익이는 아이를 안고 들어와 아이를 보여주었다. 눈물이 가득 담긴 하얀 머리칼의 노인을 보면서 아이는 똘망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내 아이를 눈부시게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누구도 닮지 않은 듯하던 아들아이가 내 생부의 얼굴을 그대로 닮아있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아이를 덥석 안았다. 작은 얼굴에 노인의 얼굴을 들이대면서 그 눈에서는 맑은 눈물이 자꾸 흘러내리고 있었다. 겨우 한다는 말이������아이들의 인물이 좋구나.������ 그 결에 얼른 희익이가 아버지에게 절을 했다. ������제가 사위입니다. 장인어른������ 희익이의 말에 내 아버지가 또 희익이를 한참 쳐다보고는 고개를 숙였다. ������건강은 어떠세요?������ 따뜻하게 물어주는 내 남편이 그렇게 고맙게 느껴 진 것은 처음 느끼는 일이 아니었다. ������고맙네. 고마워.������ 아버지가 희익의 손을 잡았다. ������이렇게 살아계신 모습을 뵙게 될 줄 진작 알았습니다. 그리고 소식도 들었었구요.������ ������그래요?������ 아버지는 희익이에게도 선뜻 말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대전교도소에서 서울대에 다니던 이철수란 학생을 만나셨지요?������ ������그런데요?������ ������그 학생이 저의 넷째 형 되는 사람입니다. 형이 말하길 선생님을 만난 것이 자신한테는 생애에 가장 큰 만남이었다고, 너무나 많이 감동을 받았다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사실 그것은 나도 모르는 이야기였다. ������허, 그럴 수가. 그 학생이 집안에서 한의원을 한다고 하여 나에게 많은 것을 묻더니… ������ ������예. 형은 앞으로 한의를 다시 공부하겠다고 하고 시작한 것이 다 선생님의 덕입니다.������ ������그래?������ 시댁은 거의가 한의사인 탓에 그 형도 지금 한의대를 졸업하고 집안의 일을 돕고 있는 터였다. 사실 그 형은 어떤 벌이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진료하는 것을 좋아해서 늘 노인들을 찾아다니고 있었고 시댁에는 많은 환자를 보며 느끼고 싶은 것이란 변명을 하였던 것이다. ������선생님의 침술이 거의 신기에 가깝다면서 혼자서 그렇게 터득하신 것을 너무나 존경스러워 하였습니다.������ ������허, 참. 감옥에 갇힌 사람은 아무 할일이 없다네. 무엇인가 매달리고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지. 나는 동의보감을 그냥 읽어 본 것뿐인데….������ 나는 그제야 영윤이에게 들었던 동의보감을 연구하고 철사를 끊어 자기 몸에 임상실험을 하면서 공부를 하였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선생님께 진료를 부탁하고 싶은 분이 제게 꼭 한 분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희익이의 말에 놀라 나는 희익을 쳐다보았다. ������그러시게. 환자가 있으시다면 언제라도… ������ 희익이는 덜컥������저희 장모님이십니다.������ 순간적으로 내 생부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장인어른, 또한 평생 갑상선을 앓으셨고 당뇨도 있으십니다.������ 희익이는 여전히 그렇게 말하고 나는 얼른 희익의 얼굴을 흘겨보았다. ������음….������ 내 생부가 신음소리 같은 소리를 냈다. ������한 번 만나셨으면 합니다.������ 나는 그런 희익을 여전히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보고 있었고 내 생부가 천천히 입을 떼었다. ������허락을 하시면 가리. 가야 하리….������ 혼잣말처럼 말하더니 등을 돌리는 것이었다. 그의 어깨, 넓지만 이제는 조금 굽고 어쩐지 허전해 뵈는 그 어깨가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나의 아이가 그의 품에서 울었다. 희익이가 얼른 아이를 안았고 나는 그 곁에 앉았다. ������그러시지 않아도 되요. 쓸데없이….������ 내가 희익이를 흘겨보았다. ������아니다. 나는 그렇게 하고 싶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나는 기꺼이 하겠다.������ 무슨 수로 엄마에게 내 생부의 진료를 받으라고 말할 것인가? 정작 엄마와 아버지의 병을 염려하였다면 시댁의 내놓으라하는 의원들도 많은데 왜 하필 그런 의견을 내 놓은 것인지 나는 남편에게 불쾌하였다. 그때 밖에서 노크소리가 났다. 이내 노진이 어머니가 들어왔다. ������식사준비가 끝났는데요. 선생님 가시지요.������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나도 같이 방을 나섰다. 우리는 장기수 선생님들이라 부르는 할아버지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긴 교자상 위에는 김치와 나물, 간 고등어 구이등과 시금치로 보이는 외에 다른 반찬이 없는 간소한 식탁이었다. 나는 잡곡이 드문드문 섞인 밥과 국을 놓고 앉아있었다. 입맛에 당기는 음식도 없었지만 애초에 식욕도 없었다. 나는 다만 식사를 하고 있는 내 아버지란 사람에게 자꾸 눈길이 갔다. 이런 게 혈육의 정이란 건가? 그토록 원망했던 아버지를 보자 정말 달려가서 그 품안에 오래 안겨 있고 싶기만 했다. 그러나 내 양심은 상계동의 내 아버지에 대한 가책으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이 선생님은 이제 명의야. 병원에서도 못 고치는 병을 단숨에 고쳐내시지. 특히 침술은 기가 막히셔.������ 옆의 노인들이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나는 두 귀를 세우고 그 이야기를 가슴속에 새겼다. 그리고 아이가 스스러움이 없이 아버지에게 가서 안기는 것이 이상했다. ������우리 애들은 이상하게 할아버지를 좋아해요.������ 사실 내 변명은 궁색했지만 아이들도 어떤 혈육의 정이란 걸 느낀 걸까? 아이는 아버지 무릎위에서만 놀았다. ������그래, 네 이름이 새벽이라고?������ ������네.������ ������그래. 신 새벽에 남몰래 무엇인가 큰일을 구상할 수 있다.������ 아이는 아무 투정도 없이 밥을 먹었고 그 할아버지의 무릎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아이는 낯가림이 심해서 어떤 때는 잘 자고 일어나서도 까탈을 부리고 아무에게나 잘 가지 않았다. 영윤이가 나를 데리고 자신의 방으로 갔다. 그래도 신혼 방이라 영윤의 방에서는 신혼냄새가 났다. ������따로 방을 줄 수 없어서 우리는 여기가 침실이고 서재다.������ 아닌 게 아니라 여덟 자 장롱 옆에는 책상이 한개 놓여있었다. ������방을 주고 글도 쓰고 공부도 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사정은 늘 그렇지가 못하네.������ 영윤이는 얼마나 이기적이었던가. 하지만 노진오빠에게 영윤은 너무나 헌신적인 사람이었다. 게다가 노진오빠를 만나면서 영윤은 너무 부드러워졌고 정서적으로도 많이 안정이 되어있었다. ������너 참 행복해 보인다.������ 나는 노진오빠의 책상머리에 앉으면서 말하였다. ������행복하지. 그래 지금 나는 너무나 행복하다.������ 그리고 나는 문득 책상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곳엔 낯익은 물건이 하나있었다. 수정조각이었다. 너무 오래되어서 이제는 빛바래고 먼지가 잔뜩 앉은 그 수정조각은 아주 오래전 내가 당고개 산에서 노진오빠에게 주었던 수정이었던 것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수정조각을 집어 들었다. 순간 영윤이가 얼른 뛰어왔다. ������미안, 미안, 오빠는 자기 물건 손대는 거 좀 싫어해.������ 나는 그 까짓 수정 조각 하나를 가지고 유난을 떠는 영윤이가 이내 못마땅해 졌다. 속으로 천성은 못 고치나 보다 하면서 너무 야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미안해. 이거 울 남편 첫사랑이 준거란다. 그래서 건들이면 거의 난리 수준이야. 이사 올때 내가 버렸다가 쓰레기통 다 뒤져서 간신히 갖고 와서는 나에게 얼마나 야단쳤는지 나 죽을 뻔 했어.������ 나는 갑자기 가슴이 덜컹했다. 내가 영윤의 집을 나오면서 영윤의 손을 잡았다. ������고맙다, 영윤아.������ ������그런 소리 말어. 언니가 와 줘서 나도 고마워.������ 영윤은 언제부터 나를 언니라 부르고 있었다. 나는 집에 돌아와 틈만 나면 영윤의 집으로 달려가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것이 가책을 느끼는 일이었지만 아버지를 만나는 일은 너무도 즐거운 일이 되었다. 희익이도 뭔가 특별한 것이 있으면 상계동에 보내고 영윤의 집에도 보내자고 할 만큼 우리는 새로운 정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오랫동안 아버지와 정을 나눌 수는 없었다. ������나는 북으로 가겠다. 내가 북한으로 간다는 것은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으로 간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내 고향이고 나의 추억이 묻혀있는 북한으로 간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진종일 내 귓전을 맴돌고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뜰 앞에 앉아있었다. 화단이 잘 가꾸어진 안채는 무척이나 조용하였고 양어머니가 도배를 하면서 방음처리를 어찌나 꼼꼼하게 하였는지 웃풍도 없고 참으로 살기 좋은 그런 집이었다. 나는 거기 그렇게 앉아있는데 일하는 아주머니가 과일을 들고 나왔다. ������아침도 못 드시는 게 아무래도 아는 병 같아요.������ 상궁할머니들에게 하도 치댐을 당한 상태라 음식솜씨도 무던하고 사람도 무던한 그런 아주머니였다. ������네.������ 나는 무 응답처럼 가져온 과일 한 조각을 드는데 왠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성큼 대문가로 갔다. 그리고 대문을 여는데 거기 사람이 있었다. ������아니, 너는….������ ������아버지.������ 내가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엄마는요?������ 아버지 혼자 사직동에 찾아온 것은 처음이었다. 아니 사실 아버지가 사직동 집에 온 것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허허, 아침부터 왠지 발걸음이 이곳으로 향하더구나.������ 나는 얼른 아버지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채는 조용했고 방금 청소가 끝난 것처럼 말끔하였기 때문에 나는 얼른 아버지와 함께 대청으로 갔다. 한옥의 기운을 만끽하려고 소파도 놓지 않은 마루는 넓었고 큰 상이 하나 놓여있었다. 우리가 들어가자 아주머니가 총총히 방석을 들고 나왔다. 그녀는 첫눈에도 우리 아버지를 알아본 모양이었다. ������승화야. 집이 꽤 정돈 되었구나.������ 사실 아버지가 이 집을 다시 샀고 그렇게 수리를 해 놓은 것을 나는 뒷날에 알았던 것이다. ������아버님께서 이 집에 임자를 잘 보살피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렇게 허망하시게 돌아가시면서도 당신보다 이 집에 살아야 할 사람들을 더 걱정하셨다.������ ������그러셨어요?������ ������나는 아버님의 유지를 받든 것이지만 사실 나는 너로 인하여 너무나 많은 안정과 즐거움을 갖고 살아온 것 같다.������ 아버지의 그런 말도 처음이었다. ������네가 이렇게 자라 이렇게 살아주는 것이 고마워. 너무나 고마워.������ 안에서 찻상이 나왔다. ������우선 녹차를 드시는 게… 곧 점심 준비를… ������ 아주머니의 말에 아버지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야. 아니야. 나는 곧 갈 것을 뭐. 수고하실 필요가 없으시네.������ ������무슨 말씀이세요. 딸네 집에 오셔서 진지도 안 드시고 가실 생각이셨어요?������ ������허허.������ 아버지가 웃었다. 하나도 악의가 없는 그런 웃음. 어찌 보면 작은 아버지의 얼굴 같기도 한 우리아버지가 내 등을 두드렸다. ������아이는 자는 가?������ 나는 안을 보며������네.������ ������그 놈이 꼭 제 외할아버지를 닮았지. 그 눈이며 총기가 꼭 같아.������ 나는 아버지의 말에 멈칫거렸다. 지금 아버지는 나에게 내 생부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버지.������ ������승화야. 나는 너의 어머니를 맞이하면서 결혼을 한 것은 아니었어. 이제 너도 알겠지만 나는 이미 결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지. 다만 너와 네 어머니를 내가 돌봐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생각해 보니 그것이 아니라 네 어머니가 나를 평생 돌보아 준 셈이었다.������ 나는 가만히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나는 너희 어머니를 그 분께 돌려드려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야. 당시는 방법이 그것뿐이라 그렇게 했지만 나는 이제 다시 그럴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 그게 무슨 말이세요?������ ������네가 어머니를 설득하거라.������ ������네.������ ������나는 네 어머니가 이제 당신 자리로 되돌아 가셨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 줄 사람이 너 밖에 없다.������ 나는 말을 잇지 못하고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평생 그리워하면서도 서로 만나지 못하고 사신 분들이시다. 나는 그 분들이 함께 사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버지.������ 아버지는 쓸쓸한 얼굴로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다만 애석한 것은 건강하고 꽃답던 너희 어머니를 초로의 나이가 되어서야 돌려드릴 수 있다는 것이다. 관절도 그렇고 건강이 예전만 못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다 내 탓이다. 편안하게 해줘야 했건만 한껏 고생만 시키고 나는 죄인 같아서 감히 나서지를 못한다.������ 나는 너무 기가 막혀서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니에요. 아버지. 그 분, 그 분은 이제 북한으로 가실거래요.������ 나의 말에 아버지가 나를 쳐다보았다. ������안된다. 안돼. 그럴 수는 없지. 어떻게 사신 인생인데 이제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북한으로 가신다니… 그것은 안 될 말이다.������ ������아니에요 아버지. 그 분은 그 곳으로 가셔야 해요.������ 아버지가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 분이 그러셨어요. 그 분은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추억이 서린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구요.������ 그리고 다시 내가 말하였다. ������아버지, 저는 그 옛날부터 아버지의 딸이었어요. 시간이 아주 오래 흐른다 해도 엄마와 저는 아버지의 곁에 있을 것입니다.������ 그때였다. 아버지가 노여운 음성으로 말하였다. ������아니다. 너는 오백년을 면면히 이어온 왕실의 후손이야. 어찌 감히 내관의 집 자손이라고 말한다는 것이냐. 너는 이씨 종친이고 비록 시대가 불운하여 이런 세월을 맞게 되었지만 네가 지켜야 할 종묘사직이 있는 것이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미 망한 흔적조차 사라진 왕실, 이제와 그런 것이 무슨 소용이 있다고 아버지가 그것을 아직도 신봉하는가? 아버지의 아주 단순한 논리가 비록 나를 위하는 발언이었음에도 나는 좀 넌더리가 났다. 아니었다. 그것은 가슴 아픔이었다. 평생을 조부가 남겨준 조부의 말씀대로 그대로 지키고 살아가는 아버지의 단순한 믿음, 그리고 변치 않는 충성, 그것은 아버지를 지켜온 것이지만 아버지를 흔들어 버리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순간 아버지가 불쌍하고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엄마를 내 생부에게 보낸다면 아버지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늘 함께 평생을 살아온 아내를 전 남편에게 보낸다는 말을 하고 있는 아버지의 심정은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아버지가 북한으로 간다고 하였을 때 나는 배신감을 느끼지 않았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북한에서 어떤 영웅대접을 위하여 가는 것은 아니리라 생각했다. 잃어버렸던 고향, 그리고 엄마와의 추억이 묻어있는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제 아버지가 엄마를 내 생부에게 보낸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안 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희익이는 내 생부에게 내 부모의 병을 고쳐달라고 부탁 하지 않았던가? 나는 아버지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아버지. 엄마는 결코 아버지의 곁을 떠나지 않아요.������ 아버지는 가만히 있었다. ������어흠, 어흠.������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다소 민망하거나 난처하면 늘 헛기침부터 하였다. 그때 안에서 아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가 낮잠에서 깬 것이었다. ������아이를 데리고 올게요.������ 일어서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누나.������ 거기 승태가 서있었던 것이다. ������네가 웬 일이야?������ ������아버지 오신 거 알고 모시러 왔지.������ 승태가 우리 집을 찾아온 것은 정말 처음이었다. 어린 아기였던 승태를 당고개 산에서 집으로 데리고 갔던 해가 1976년이었다. 이제 대학생이 된 승태는 어엿한 성년의 나이였다. 엄마하고 인숙언니가 너무도 극진하게 길러온 탓에 그 험하다는 사춘기에도 방황 한번 없이 자라 그가 원하던 대학에 갔고 이제는 그 누구도 승태를 우리 막내아들로 믿어 의심하지 않는 그런 상태였던 것이다. ������문이 열려있어서 그냥 밀고 들어와 보았어. 집이 우리 집하고는 많이 분위기가 다르다. 누나.������ 승태는 신기한 듯 집안을 휘 둘러보았고 나는 우선은 반가웠다. ������연락도 없이 이렇게 오다니… 전화 한 번을 안 하고 찾을 수가 있었어?������ 나는 승태의 손을 잡아 자리에 앉혔다. 내가 선이 좀 굵은 아이라면 승태는 선이 작고 얼굴도 작고 그런 아이였다. 법학을 하고 싶다는 것이 그 아이의 뜻은 아니었겠지만 학교에서 그렇게 충고하고 난 후 무슨 이유에서 인지 승태는 법관이 되고 싶다고 하였고 그래서 법대를 간 아이였었다. ������아버지.������ 승태가 볼 멘 소리를 냈다. ������이렇게 혼자 다니시면 위험 하시다는데 왜 산에도 가시고 이렇게 혼자 다니세요?������ 나는 승태를 쳐다보았다. ������누나, 아버지 어저께도 쓰러지셨어.������ ������뭐?������ ������아버지는 저혈당이시잖아. 약으로 조절을 하시는데도 자꾸 그러셔서 혼자 다니시면 아주 위험하시단 말에요.������ ������그런데 넌 오늘 학교에서 벌써 끝났니?������ ������다른 소리 마시구요. 이제는 어디 가시려면 누구하고 같이 다니세요.������ 나는 승태의 말에 괜히 기분이 좋았다. 어느 사이 커버린 승태가 그렇게 아버지를 걱정하는 모습이 나는 흐뭇하기만 하였던 것이다. 그때 밖에서 김치 통 하나를 든 희철이가 또 들어왔다. ������주차하는 사이에 저 혼자만 들어가고 있어.������ ������너도 왔었니?������ 희철이가 승태를 눈짓으로 불렀다. ������이것은 형수가 보낸 거야. 누나가 김치는 우리 집 게 제일이다 했다면서?������ 나는 웃었다. ������아이고, 고맙다.������ 그 사이에 아이를 안은 아주머니가 밖으로 나왔다. ������새벽아, 삼촌이다.������ 희철이가 얼른 아이를 안았고 승태도 아이에게 갔다. 아주머니에게 내가������내 동생들이에요.������ ������아이고, 이렇게 잘나신 동생들이 있으셨어요?������ 아주머니가 내 동생들을 쳐다보았다. 선이 굵은 희철이는 몸이 붙어 비대한 편이었지만 승태는 여전히 몸이 가볍고 재게 보이는 편이었다. 아주머니는 굳이 동생인 두 아이가 닮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누나네 집을 이렇게야 찾아왔네.������ 승태도 앉고 희철이도 앉고 덕분에 점심은 여럿이서 먹게 되었다. 언제 준비하였는지 안에는 쇠고기와 버섯을 넣고 끓인 전골이 앉혀져 있었고 반찬도 다 준비되어 우리는 그 곁에 앉게 되었다. 단 맛이 좀 강한 그런 전골요리를 아버지께 퍼드리고 동생들에게도 퍼주면서 나는 오랜만에 어떤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 ������많이들 먹거라. 너희들이 이렇게 올 줄은 몰랐지.������ ������큰형이 얼마나 성화를 하는지… 정말 걱정했어요. 아버지.������ ������허허.������ 아버지는 식탁에 앉아 너털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누나가 보고 싶으시다고 이렇게 혼자 아무 말 없이 나오시면 큰 형이 일도 못하고 얼마나 걱정하는데요.������ 승태는 계속 투정이었다. ������아이구, 진지 좀 잡수시게 좀 가만있어라.������ 나는 승태에게 전골을 한 국자 더 퍼주고 있었다. ������누나, 이거 어떻게 한거야? 되게 맛있는데… ������ 희철이는 먹성이 좋아 한 국자를 더 퍼내면서 말하였다. ������아주머니가 한 것이지만 나도 할 수 있어. 나중에 가서 또 해줄게.������ ������그래? 못 믿겠는데?������ 희철이가 웃었다. ������난 누나가 어떻게 사는지 진작 오고 싶었는데 못 왔어. 알았으면 서점에 왔다가도 와서 밥 먹고 가고 그랬을 텐데.������ 승태는 자신의 내력을 몰라서 그런지 우리 집의 막내로 비교적 어려움 없이 큰 편이라 투정도 심한 편이었다. 용돈을 더 달라고 떼를 쓰기도 하고 지금도 가끔은 안방에서 끼어 잘 정도로 붙임성도 좋아 집안에서는 조카보다 훨씬 더 귀여움을 받는 편이었다. ������누나, 이거 고기 양념한 거 남았어?������ ������왜?������ ������집에 갈 때 좀 싸줘. 엄마가 되게 좋아하시겠다.������ 우리는 깔깔 웃었다. 아주머니가 옆에서 듣다가������있어요. 싸드릴게요.������ 그 말을 들은 승태는������앗싸!������라고 말했다. 우리는 또 웃었다. 희철이가 정색을 하면서������야, 여기는 사돈댁이야. 그렇게 말하면 어떡하니?������ ������그런가? 여기가 누나집이라는 생각은 해도 사돈댁이라는 생각은 안 했네.������ ������아무튼 철없긴.������ 승태가 머쓱해 하였다. ������괜찮다. 그래도 돼.������ 나는 자꾸 아이들의 접시에 전골을 덜어주었다. 그리고 옆에 사리로 놓인 국수를 전골냄비에 넣어 주었다. 늘 적막하기만 하던 집안. 갑자기 들이닥친 장정들로 인하여 집안에는 갑자기 활기가 넘쳤다. 밥을 다 먹은 승태가 마당으로 나갔다. ������어, 여기 이 역기 매형이 하는 거야?������ ������그래.������ ������어쭈, 여기 샌드백도 있네, 운동 좀 하는 체 하는데?������ 아이들은 여전히 싱글거렸고 나는 새삼 그 아이들이 이토록 명랑하게 자라준 것이 대견하기만 하였다. ������승태, 요즘 공부하는 거 괜찮니?������ ������공부야, 뭐.������ 승태는 벌써 고시준비를 하는 중이었던 것이다. ������공부는 할 때 하는 거지. 대개 놀아.������ 시큰둥하게 말하였지만 승태는 공부는 타고났다고 말할 만큼 잘하는 편이었다. 덕분에 학문을 하는 사람을 공경하는 아버지는 승태에 대하여는 어떤 무례함도 용서하고 마냥 덕을 베푸는 중이었다. 승태는 샌드백을 여러 번 쳐보더니 또 주문을 하였다. ������아버지. 우리도 이거 하나 사 주세요.������ 아버지가 껄껄 웃었다. ������그거 가져가. 거의 쓰지도 않으면서 그거 순 폼이다. 얘.������ ������정말? 그럼 진짜 가져간다.������ 승태는 아무런 거부감도 눈치도 없이 천진하기만 하였다. ������매형 걸 가져가면 쓰나. 새로 하나 사주마.������ 아버지의 말을 막고 내가 말하였다. ������아니에요. 가져가도 돼요.������ 희철이가 나섰다. ������누나, 그러지 마. 이러니까 승태가 점점 버릇이 없어지는 거라구.������ ������형, 내가 무슨 버릇이 없다고 그래.������ 두 아이는 티격태격 했다. 그러나 희철이는 승태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자라면서 승태가 희철이에게 대들기도 하고 더러 퉁박을 주기도 하였지만 희철이는 아기였던 승태를 무척이나 귀여워하였던 것이다. 게다가 공부를 별로 잘하지 못하였던 희철이에 비하여 승태는 공부를 잘했으므로 두 사람은 계속 비교 대상이었지만 그래도 두 사람은 어긋남 하나 없이 정말 형제처럼 잘 자라주었다. 희철이가 갑자기 무엇을 발견한 듯 나를 불렀다. ������누나, 이거 못이 전부 튀어나왔어.������ ������그래?������ 대문이 워낙 오래되어서 인지 정말 대문에 있는 못들이 조금씩 돌출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여기, 망치 있어?������ ������있지.������ ������그럼, 가져와. 누나. 이거 내가 조금 손보면 돼.������ ������괜찮아. 매형 시켜도 되고 또 사람 부르면 되는걸 뭐.������ ������이까짓 거를 뭐. 가져와.������ 내가 창고에서 공구상자를 가지고 나왔다. ������이렇게 다 있으면서….������ 희철이는 능숙하게 장도리를 꺼내더니 뽑을 것은 뽑고 박을 것은 박더니 사포로 밀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수리를 잘 했는데, 왜 대문은 그대로 두었을까?������ 사실 대문이 빗장문이라 불편해서 다시 잠금장치는 달았지만, 대문 자체는 그대로 두었던 것이었다. ������어, 이거는?������ ������왜?������ 나는 얼른 희철이에게로 갔다. ������여기 이것을 떼어 냈더니 뭐가 있어.������ ������그래?������ 아닌 게 아니라 대문 돌쩌귀 사이로 작은 틈이 있고 거기 무엇인가가 들어있던 것이다. ������편지니?������ 내가 물었던 것은 누군가의 체취가 나는 편지를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옛날 감나무 집에서도 어느 집 부고장이 날아오면 그것은 집에 들이지 않는 습관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대문에서 받고 난 후 대문 틈에 끼워 둠으로써 집안에 나쁜 기운이 드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는 그런 마음에서였다. ������응.������ 나는 그 편지를 보았고 거기에는 놀랍게도 '내시부 상세 홍극인 별세' 하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나는 너무나 놀라 그것을 보는데 희철이가 먼저������누나, 이거 우리 할아버지 함자 아니셔������한다. ������그래.������ 내가 그 글귀를 읽는데 아버지가 나오셨다. ������아버지.������ 아버지가 그 편지를 꺼내 읽더니 그대로 땅에 주저앉았다. ������아버님. 아버님.������ 그것은 정말 내 조부의 부고장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내 생가 쪽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을 적에 날아든 것일 텐데 어떻게 이 틈에서 이렇게 온전한 글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아버지의 통곡소리를 들으면서 우리들은 잠시 숙연해 졌다. ������아버지, 일어나세요.������ 승태가 아버지를 부축하고 희철이가 아버지를 안았다. ������아버지. 아버지.������ 나는 눈물겨웠다. 아버지에게 저렇게 아버지라고 부를 사내아이들이 있고 우리 집에 가면 거기는 또 든든한 희수오빠가 있는 것이었다. 평생 손 하나 없이 외롭게 남성으로서의 아무 구실도 하지 못하고 살아온 지난 세월이지만 그래도 아버지에게는 우리가 있었다. 나도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아버지. 우리 같이 오늘 초안산에 가요.������ 그 말에 아버지가 부스스 일어섰다. ������그래. 그러자꾸나.������ 아버지에게 가장 좋은 아첨은 초안산에 가자는 말일 것이다. 나는 서둘러 안으로 들어가 식구들의 옷을 내오고 아이를 아주머니에게 맡기고는 안에서 정종 한 병을 꺼내 포를 든 보자기 하나를 들고 나왔다. ������마침 정종을 사다 놓은 것이 있었어요.������ 우리들은 그렇게 차에 올랐다. ������초안산으로 가자.������ 나의 말에 아이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효성스러운 아이들인가. 아이들은 어느 새 아버지가 하자고 하는 것은 모두 수긍하는 마음 착하고 배려있는 아이들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것들은 희수오빠와 무관하지 않았다. 희수오빠가 아버지에게 워낙 효성스러웠으므로 아이들은 모두 희수오빠의 가르침대로 아버지에 대해 한량없는 사랑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아버지. 초안산에 가려면 인덕대학 있는 쪽으로 가는 것이 더 낫겠는데요?������ 아버지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그렇게 길을 달려 인덕 대학으로 갔고 거기서 돌아 산 밑으로 갔다. ������공원이 생겼네.������ 그리고 거기는 아파트가 죽 늘어서 있었다. 거기서 내려 차를 주차하고 산으로 오르는데 아버지가 거시서 죽 아파트들을 굽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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