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치렌(日蓮)은 이십칠년간(二十七年間)·홍장원년 (弘長元年) 신유(辛酉) 오월(五月) 십이일(十二日)에는 이즈지방(伊豆地方)에 유죄(流罪)되었고, 문영원년팔년 (文永元年) 갑자(甲子) 十一月 十一日에는 머리에 상처(傷處)를 입었으며, 왼팔이 부러졌느니라. 동문영팔년(同文永八年) 신미(辛未) 九月 十二日에는 사도지방(佐渡地方)에 유배(流配)되었으며, 또한 단두좌(斷頭座)에 앉았느니라. 그 외(外)에 제자(弟子)가 살해(殺害)되고 칼에 맞았으며, 추방(追放)당하고 과료(過料) 등(等) 그 수(數)를 알 수 없느니라. 부처의 대난(大難)에는 미치는지 더한지 그것은 알 수 없으나 용수(龍樹) 천친(天親)·천태(天台)·전교(傳敎)는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지 못하리라. 니치렌(日蓮)이 말법(末法)에 나오지 않았더라면 부처는 대망어(大妄語)의 사람이요·설사 대귀신(大鬼神)이 붙은 사람일지라도 니치렌(日蓮)을 범석(梵釋)·일월(日月)·사천(四天) 등(等)·천조태신(天照太神)·팔번(八幡)이 수호(守護)하시는 고(故)로 벌(罰)하기 어려우리라고 아실지니라. 월월(月月)·일일(日日)·강성(强盛)해지시라, 조금이라도 해이(解弛)한 마음이 있다면 마(魔)가 틈탈 것이니라.다보(多寶)·시방(十方)의 제불(諸佛)은 대허망(大虛妄)의 증명(證明)이로다. 불멸후이천이백삼십여년간(佛滅後二千二百三十餘年間)·일염부제내(一閻浮提內)에서 부처의 말씀을 도운 사람은·단(但) 니치렌(日蓮) 한 사람이니라.과거(過去) 현재(現在) 말법(末法)의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경천(輕賤)하는 왕신만민(王臣萬民)이 처음에는 아무 일이 없는 것 같으나 마침내는 망(亡)하지 않음이 없느니라. 니치렌(日蓮)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처음에는 증험(證驗)이 없는 것 같았으나 이제까지 이십칠년(二十七年)동안 법화경(法華經) 수호(守護)의 범석(梵釋)·일월(日月)·사천(四天) 등(等)이 그토록 수호(守護)하지 않는다면 불전(佛前)의 서언(誓言)은 헛되어서 무간대성(無間大城)에 떨어지리라고 두렵게 생각하였기에 지금은 각자(各者)가 힘써 지키리라. 오타(大田)의 지카마사(親昌)·나가사키지로효에노조도키쓰나(長崎次郞兵衛尉時綱)·다이신보(大進房)의 낙마(落馬) 등(等)은 법화경(法華經)의 벌(罰)이 나타남이로다. 벌(罰)에는 총벌(總罰)·별벌(別罰)·현벌(顯罰)·명벌(冥罰)의 네가지가 있느니라. 일본국(日本國)의 대역병(大疫病)과 대기갈(大飢渴)과 자중지난(自中之亂)과 타국(他國)으로부터의 침공(侵攻)은 총벌(總罰)이고, 역병(疫病)은 명벌(冥罰)이며, 오타(大田) 등(等)은 현벌(顯罰)이고 별벌(別罰)이니라. 각자(各者)는 사자왕(師子王)의 마음을 발휘해서 남들이 아무리 위협(威脅)할지라도 겁내지 말지니라. 사자왕(師子王)은 백수(百獸)를 두려워하지 않느니라. 사자(師子)의 새끼도 또한 이와 같다. 그들은 야간(野干)이 짖는 것이고 니치렌(日蓮)의 일문(一門)은 사자(師子)가 짖는 것이로다.매우 엄(嚴)하게 말하였더라면 구제(救濟)될수도 있었을터인데, 너무나 불가사의(不可思議)하므로 말하지 않았느니라. 또 이렇게 말하면 어리석은 사람들은 죽은 사람의 일을 말한다고 하리라. 거울로 삼으라고 하는 말이니라. 또 이 일은 그 사람들도 내적(內的)으로는 겁을 먹고 두려워 하고 있으리라고 생각되나이다.
사람이 떠든다고 해서 병사(兵士) 등(等)으로써 이 일문(一門)을 해치려거든 이리로 써서 보내시라, 공공근언(恐恐謹言)."
성인어난사(聖人御難事) 미노부에서 58세에 술작저 아쓰하라(熱原)의 우치(愚痴)한 자(者)들은 말로 격려(激勵)할 것이요, 위협(威脅)하지 말라. 그들에게는 오직 한결같이 결단(決斷)하게 하여라, 좋아지는 것은 불가사의(不可思議)요 나쁘게 되는 것은 필정(必定)이라고 생각하라. 배가 고프다고 하거든 아귀도(餓鬼道)를 가르치고, 춥다고 말하거든 팔한지옥(八寒地獄)을 가르치며, 두렵다고 생각하거든 매를 만난 꿩, 고양이를 만난 쥐를 타인(他人)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이렇게 자세히 쓰는 것은 이와 같이 해마다 다달이 날마다 말해 왔으나, 나고에(名越)의 부인(夫人), 쇼우보(少轉房)·노토보(能登房)·산미보(三位房) 등(等)과 같은 사람이 있느니라. 겁장이이고 법리(法理)를 기억(記憶)하지 못하며, 욕심(慾心)이 많고 의심(疑心)이 많은 자(者)들은 옻칠한데다가 물을 끼얹고 허공(虛空)을 자르는 것과 같은 것이외다.사람이 떠든다고 해서 병사(兵士) 등(等)으로써 이 일문(一門)을 해치려거든 이리로 써서 보내시라, 공공근언(恐恐謹言)."
성인어난사(聖人御難事) 미노부에서 58세에 술작일련정종(日蓮正宗)은 1222년〔죠오(貞應) 원년(元年)〕 2월 16일 일본국에 출현하신 니치렌대성인(日蓮大聖人)이 출가득도(出家得道)이래, 일체의 불법(佛法)의 연찬을 끝내시고, 1253년〔겐쵸(建長) 5년〕 4월 28일 32세 때, 구원본불(久遠本佛)의 근본의 법(法)인 南無妙法蓮華經의 깨달음에 의거한 종지(宗旨)를 확립선창(確立宣唱)하신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 후 니치렌대성인(日蓮大聖人)은 가마쿠라(鎌倉)에서의 야습(夜襲), 다쓰노구치(龍之口)에서의 처형(處刑)과 두 번의 유죄 등 수많은 법난, 박해를 참고 견디면서 南無妙法蓮華經의 대법(大法)을 넓히시고, 또한 제자신도들을 육성하시어, 1279년〔고안(弘安) 2년〕 10월 12일, 전세계 일체의 사람들의 영원한 행복과 번영을 위한 본존(本尊)으로서 본문계단(本門戒壇)의 대어본존(大御本尊)을 건립하셨습니다.지금, 세상을 바라다보고 여러분들의 주변을 살펴보더라도 아직도 방법이 충만된 세상입니다. 그런 방법을 보면서 그것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나 자신의 무자비가 또한 방법(謗法)으로 되어 여동좌가 되는 것입니다.
대성인께서는 『수호국가론(守護國家論)』에 「재가의 제인(諸人)은 별다른 지행이 없다고 해도 방법자를 대치하는 공덕에 의해 생사(生死)를 떠나게 되느니라.」(신편어서 p.151)라고 지남하시고 있습니다.
혹은 또 『성우문답초(聖愚問答抄)』에 「불법의 잘못을 보면서 자신도 책하지 않고 국주에게도 호소하지 않으면 가르침에 위배하여 불제자가 아니라고 설하셨느니라.」(신편어서 p.404)라는 교시도 있습니다.
또한 「책해도 더욱 남음이 있으며 훈계해도 또한 부족하니라.」(신편어서 p.404)라고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 대성인의 지남을 뵈옵고 이러한 어서의 글월에 접하고도 절복에 분기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이미 니치렌(日蓮)의 제자·단나가 아니라고 말씀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대성인님을 비롯한 삼세시방의 제불은 이 ‘신경법중(身輕法重), 사신홍법(死身弘法)’ 즉 몸은 가볍고 법은 중하다, 몸은 죽어도 법을 넓힌다는 절복 정신에 서있는 사람들에게 환희하시며 그리고 그 사람들을 수호하시는 것입니다.
대성인께서는 『시죠킹고님어서』에 「니치렌(日蓮)이 찬탄하는 것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며 제불의 소탄(所歎)이라 쓰여 있도다. 얼마나 믿음직스러우뇨 하며 신심을 깊게 취하시라.」(신편어서 p.471)라고 말씀하시었습니다.대성인님을 비롯한 삼세시방의 제불은 이 ‘신경법중(身輕法重), 사신홍법(死身弘法)’ 즉 몸은 가볍고 법은 중하다, 몸은 죽어도 법을 넓힌다는 절복 정신에 서있는 사람들에게 환희하시며 그리고 그 사람들을 수호하시는 것입니다.
대성인께서는 『시죠킹고님어서』에 「니치렌(日蓮)이 찬탄하는 것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며 제불의 소탄(所歎)이라 쓰여 있도다. 얼마나 믿음직스러우뇨 하며 신심을 깊게 취하시라.」(신편어서 p.471)라고 말씀하시었습니다.법화경(法華經)이라 하는 부처의 지혜(智慧)의 법수(法水)를 우리들의 마음에 넣으면, 혹은 되돌리고 혹은 듣지 않으려고 좌우(左右)의 손으로 두 귀를 막고 혹은 입으로 부르지 않으려고 뱉어 냈으니, 비유컨대 그릇을 엎는 것과 같다, 혹은 조금 믿는듯 하지만, 또 악연(惡緣)을 만나서 신심(信心)이 엷어지고, 혹은 내버리고, 혹은 믿는 날은 있어도 버리는 달도 있으니, 이는 물이 새는 것과 같다. 혹은 법화경(法華經)을 행(行)하는 사람의 한 마디는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한 마디는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이렇게 말함은 밥에 분(糞)을 섞고 모래와 돌을 넣은 것과 같음이라. 법화경(法華經)의 문(文)에 「단대승경전(但大乘經典)을 수지(受持)할것을 바라되 내지(乃至) 여경(餘經)의 일게(一偈)도 받지 말지어다」 등(等)이라 설(說)함은 이것이니라."
아키모토어서(秋元御書) 미노부에서 59세에 술작대성인께서 『어강문서』에 「결국 사홍서원(四弘誓願) 중에는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를 가지고 간요로 하느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의 권속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를 가지고 중생을 제도하는 이것 외는 결국 없느니라.」(신편어서 p.1862)라고 설하시고 있습니다.
본화(本化)의 보살로서, 지용의 보살로서의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번뇌무수서원단(煩惱無數誓願斷), 법문무진서원지(法門無盡誓願知),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이라는 사홍서원(四弘誓願) 그리고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라는 대승의 육파라밀의 만행도 일체는 이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대법을 홍통한다는 일념에 서지 않는다면 진실한 보살행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대성인께서 『이전이승보살불작불사』에 「일체의 보살은 반드시 사홍서원(四弘誓願)을 일으킬지어다. 그 중의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의 원을 채우지 않는다면 무상보리서원증(無上菩提誓願證)의 원도 또한 성취하기 어렵도다.」(신편어서 p.181)라고 말씀하시고‘중생무변서원도’라는 묘법유포의 서원을 일으켜 인류의 구제 성불을 달성할 수가 없다면 다른 일체의 서원도성취할 수가 없다고 결판을 내리시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말법 구제의 본불님이 「일념삼천을 모르는 자에게는 부처가 대자비를 일으키어 오자(五字) 속에 이 주(珠)를 싸서 말대유치의 목에 걸어 주시느니라.」(신편어서 p.662)라고도 또한 『간효팔번초(諫曉八幡抄)』에 「다만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7자, 5자를 일체중생의 입에 넣으려고 힘쓸 뿐이니라. 이는 즉 어머니가 갓난아기의 입에 젖을 넣으려고 힘쓰는 자비이니라.」(신편어서 p.1539)라고도 말씀하신 대자비를 계승하여 자비의 절복을 행하는 것입니다."통기(筒器) 일구(一具) 부(付) 삼십(三十) 및 술잔 부(付) 육십(六十) 보내시어 받았소이다. 기(器)라고 함은 그릇이라고 읽지요. 대지(大地)가 오목 하면 물이 고이고 청천(靑天)이 맑으면 달이 밝으며, 달이 나오면 물이 맑고 비가 내리면 초목(草木)이 무성(茂盛)하니라. 그릇은 대지(大地)가 오목한 것과 같고, 물이 고임은 못에 물이 들어가는 것과 같으며, 달의 그림자를 띄움은 법화경(法華經)이 우리의 몸에 들어가신것과 같다. 그릇에 四의 허물이 있으니, 一에는 복(覆)이라 하여 엎어지느니라·또는 뒤집어지고 또는 뚜껑을 덮느니라. 二에는 누(漏)라고 하여 물이 새느니라. 三에는 오(汚)라고 하여 더러워지느니라. 물이 깨끗해도 분(糞)이 들어간 그릇의 물을 쓰는 일은 없더라. 四에는 잡(雜)이니라·밥에 혹은 분(糞) 혹은 돌, 혹은 모래 혹은 흙 같은 것을 섞으면 사람이 먹는 일이 없다. 그릇은 우리들의 신심(身心)을 나타내니 우리들의 마음은 그릇과 같고, 입도 그릇·귀도 그릇이라, 법화경(法華經)이라 하는 부처의 지혜(智慧)의 법수(法水)를 우리들의 마음에 넣으면, 혹은 되돌리고 혹은 듣지 않으려고 좌우(左右)의 손으로 두 귀를 막고 혹은 입으로 부르지 않으려고 뱉어 냈으니, 비유컨대 그릇을 엎는 것과 같다, 혹은 조금 믿는듯 하지만, 또 악연(惡緣)을 만나서 신심(信心)이 엷어지고, 혹은 내버리고, 혹은 믿는 날은 있어도 버리는 달도 있으니, 이는 물이 새는 것과 같다. 혹은 법화경(法華經)을 행(行)하는 사람의 한 마디는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한 마디는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이렇게 말함은 밥에 분(糞)을 섞고 모래와 돌을 넣은 것과 같음이라. 법화경(法華經)의 문(文)에 「단대승경전(但大乘經典)을 수지(受持)할것을 바라되 내지(乃至) 여경(餘經)의 일게(一偈)도 받지 말지어다」 등(等)이라 설(說)함은 이것이니라."
아키모토어서(秋元御書) 미노부에서 59세에 술작석가불(釋迦佛)은 정반왕(淨飯王)의 적자(嫡子)·일염부제(一閻浮提)를 지배(支配)하니, 팔만사천이백일십(八萬四千二百一十)의 대왕(大王)이로다. 일염부제(一閻浮提)의 제왕(諸王)·머리를 숙인데다가 국내(國內)의 시종자(侍從者)는 십만억인(十萬億人)이었지만, 열아홉살에 정반왕궁(淨飯王宮)을 나오시어 단특산(檀特山)에 들어간 지 십이년(十二年)·그간에 수행(隨行)한 사람은 오인(五人)이니, 소위(所謂) 구린(拘鄰)과 알비(頞鞞)와 발제(跋提)와 십력가섭(十力迦葉)과 구리태자(拘利太子)이니라. 이 오인(五人)도 육년(六年)이 지나가게 되자 이인(二人)은 가버리고, 나머지의 삼인(三人)도 후(後)의 육년(六年)에 버리고 떠났느니라, 다만 혼자 남으시어서 부처가 되셨느니라. 법화경(法華經)은 또한 이보다도 더하여 사람들이 믿기 어려우니, 난신난해(難信難解)라고 함은 이것이니라. 또한 부처의 재세(在世)보다도 말법(末法)은 대난(大難)이 겹치리라. 이를 견디는 행자(行者)는 나의 공덕(功德)보다 뛰어 나기가 일겁(一劫) 동안이라고 설(說)해져 있소이다."
시조깅고전답서(四條金吾殿答) 미노부에서 57세에 술작이 대성인의 지남을 뵈옵고 이러한 어서의 글월에 접하고도 절복에 분기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이미 니치렌(日蓮)의 제자·단나가 아니라고 말씀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대성인님을 비롯한 삼세시방의 제불은 이 ‘신경법중(身輕法重), 사신홍법(死身弘法)’ 즉 몸은 가볍고 법은 중하다, 몸은 죽어도 법을 넓힌다는 절복 정신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환희하시며 그리고 그 사람들을 수호하시는 것입니다.
대성인께서는 『시죠킹고님어서』에 「니치렌(日蓮)이 찬탄하는 것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며 제불의 소탄(所歎)이라 쓰여 있도다. 얼마나 믿음직스러우뇨 하며 신심을 깊게 취하시라.」(신편어서 p.471)라고 말씀하시었습니다.‘중생무변서원도’라는 묘법유포의 서원을 일으켜 인류의 구제 성불을 달성할 수가 없다면 다른 일체의 서원도성취할 수가 없다고 결판을 내리시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말법 구제의 본불님이 「일념삼천을 모르는 자에게는 부처가 대자비를 일으키어 오자(五字) 속에 이 주(珠)를 싸서 말대유치의 목에 걸어 주시느니라.」(신편어서 p.662)라고도 또한 『간효팔번초(諫曉八幡抄)』에 「다만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7자, 5자를 일체중생의 입에 넣으려고 힘쓸 뿐이니라. 이는 즉 어머니가 갓난아기의 입에 젖을 넣으려고 힘쓰는 자비이니라.」(신편어서 p.1539)라고도 말씀하신 대자비를 계승하여 자비의 절복을 행하는 것입니다.절복에 의해 과거세의 일체의 방법의 죄장을 소멸하고 또 절복에 의해 나의 몸의 해태방법을 배제하며 신심의 성장을 꾀하는 것입니다.
신심의 성장은 또한 절복뿐입니다. 절복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무력함과 자기는 얼마나 힘이 없는가, 자기는 얼마나 신심이 부족한가, 자기는 얼마나 설득력이 없는가 하는 것을 뚜렷하게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무지를, 자기에 미숙함을, 자기의 불신심(不信心)을 알게 되면 거기에 정진하려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선배도 후배도 없습니다. 신심이 오래됐다, 얼마 안됐다가 아닙니다. 요는 서로가 항상 절복을 잊어버리지 않고 나 자신의 해태를 그치게 하여 더욱 단결해서 힘을 모아 절복을 행해 나간다. 거기에 신심의 공덕도 자기의 소위 인간으로서의 성장도 인격도 또한 신심의 힘, 행학의 힘, 지도의 힘, 교화의 힘 모든 것이 거기에 구비되어 가는 것입니다."나의 문가(門家)는 밤에는 잠을 끊고 낮에는 쉴새없이 이를 생각하라, 일생(一生)을 헛되이 보내고 만세(萬歲)에 후회(後悔)하는 일 없을지어다, 공공근언(恐恐謹言)."
도키전어서(富木殿御書) 미노부에서 54세에 술작1279년〔고안(弘安) 2년〕 10월 12일, 전세계 일체의 사람들의 영원한 행복과 번영을 위한 본존(本尊)으로서 본문계단(本門戒壇)의 대어본존(大御本尊)을 건립하셨습니다.
삼천년전(三千年前)에 인도에 출생하여 불법을 설한 석존(釋尊)은 자신의 입멸후(入滅後)의 미래에 대하여 정법(正法) · 상법(像法) · 말법(末法)이라는 세 가지의 시대가 있다는 것을 『대집경(大集經)』 등의 경문에서 예증하셨습니다.
먼저 정법시대(正法時代)란 석존멸후 일천년간(一千年間)을 말하며, 석존의 불법이 올바르게 전하여져 이것을 민중이 진지하게 수행(修行)하여 한창 깨달음을 얻는 시대입니다.
상법시대(像法時代)란 정법시대가 끝나고 다음의 일천년간(一 千年間)으로 민중의 불법에 대한 소질(素質)은 정법시대보다 열악하지만 불법을 열심히 수행하는 모습은 정법시대와 닮아 있으며, 불교전(佛敎典)의 번역이나 해석, 탑사(塔寺)의 건립 등을 통하여 불법의 이익이 전해지는 시대입니다.
마지막의 말법시대(末法時代)란 석존 멸후 이천년(二千年)이 지난 이후의 시대로, 생명이 탁한 중생이 충만하여 대단히 싸움이 성한 세상이 되고 백법[(白法): 깨달음의 법이라 하는 의미로 석존의 불법을 가리킴]이 모두 은몰(隱沒)하여 공덕을 잃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석존입멸후의 미래가 삼시(三時)로 분류(分類)된 것은 불멸후 시대가 지나면 지날수록 점차 민중의 생명이 탁해지고 불법에 대한 기근(機根)도 비열하게 되어 갑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됩니다만 먼저 석존의 시대로부터 멀어짐에 따라서 점차로 불법과의 결연(結緣)이 먼 민중이 출생하며 또 정치나 문명의 진보, 발달에 따라서 오히려 탐욕과 노여움과 우치, 만심 등이 강하게 야기되어 인심이 비틀어져 행위는 타락하는 것 둥을 들 수 있겠지요.
그러나 시대와 함께 점점 기근이 비열하게 되어 가는 민중을 구하기 위해서는 각기 시대에 알맞는 가르침이 홍통(弘通)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것은 『묘법만다라공양지사(妙法曼陀羅供養之事)』에 「병(病)에 따라서 약(藥)이 있으니 경병(輕病)에는 범약(凡藥)을 베풀고, 중병(重病)에는 선약(仙藥)을 주어야 하느니라.」(신편어서 p.689) 라는 말씀과 같이 가벼운 병에는 가벼운 약을 쓰고 중병에는 강한 약을 써야 효과(效果)가 있는 도리(道理)로 기근이 뛰어난 자에게는 낮은 가르침으로 비열한 자에게는 높은 가르침을 가지고서야 비로소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석존 입멸후의 역사를 보면 이 정상말(正像末)의 시대적 특색이 그대로 변천(變遷)해오고 있으며, 석존의 예증(豫證)의 올바름이 증명(證明)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석존의 여러 예증을 조금도 틀리지 않게 몸으로 실증(實證)하시고 말법(末法)을 위해 법화경 경문의 오저(奧底)에 비첨(秘沈)된 가장 중요한 법(法)을 설하여 홍통(弘通)하신 분은 전세계에 있어서 니치렌대성인님 단 한 분이십니다.
이것은 역사를 비추어 보아도 분명한 것이며, 대성인님의 삼대비법(三大秘法)의 불법이야말로 말법의 긴 어둠을 뚫고 민중을 구제하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대백법(大白法)인 것입니다.각기(各其) 나의 제자(弟子)라고 자칭(自稱)하는 사람들은 한 사람도 겁내지 말지어다. 부모(父母)를 생각하고 처자(妻子)를 걱정하며 소령(所領)에 미련을 두지 말지어다. 무량겁(無量劫)부터 지금까지 부모자식(父母子息) 때문에 소령(所領) 때문에 목숨을 버린 일은 대지(大地)의 미진(微塵)보다도 많았으나 법화경(法華經) 때문에는 아직 한 번도 버리지 않았었다. 법화경(法華經)을 많이 수행(修行)하였지만 이러한 일이 출래(出來)하였으므로 퇴전(退轉)하고 말았느니라. 비유(譬喩)컨대 물을 끓여서 냉수(冷水)에 붓고 부시를 치는데 이루지 못함과 같으니, 각자(各自)는 결단을 내리시라. 이 몸을 법화경(法華經)과 바꿈은 돌을 금(金)으로 바꾸고 분(糞)을 쌀로 바꾸는 것이니라.
부처의 멸후(滅後)·이천이백이십여년(二千二百二十餘年) 동안·가섭(迦葉)·아난(阿難) 등(等)·마명(馬鳴)·용수(龍樹) 등(等)·남악(南岳)·천태(天台) 등(等)·묘락(妙樂)·전교(傳敎) 등(等) 조차도 지금까지 홍통(弘通)하시지 않았던 법화경(法華經)의 간심(肝心)·제불(諸佛)의 안목(眼目)인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말법(末法)의 초(初)에 일염부제(一閻浮提)에 홍통(弘通)이 되실 서상(瑞相)으로서 니치렌(日蓮)이 앞장섰느니라.
나의 동류(同類)들은 이진삼진(二陣三陣) 이어져서 가섭(迦葉)·아난(阿難)보다도 수승(殊勝)하고 천태(天台)·전교(傳敎)보다도 월등(越等)할지어다. 조그마한 소도(小島)의 국주(國主) 등(等)의 위협(威脅)을 두려워 한다면 염마왕(閻魔王)의 책망을 어찌 하리오. 부처의 사자(使者)라고 자칭하면서 두려워 하는 것은 하열(下劣)한 사람들이라고 타일렀느니라.
사도초(佐渡抄) 미노부에서 55세에 술작"귀하는 니치렌(日蓮)의 공덕(功德)을 도운 사람이니 악인(惡人)에게 파괴(破壞)되지 않느니라. 만약(萬若)에 일이 있다면 전생(前生)에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적시(敵視)한 것이 금생(今生)에 보(報)로 되느니라. 이 일은 어떠한 산중(山中)이나 해상(海上)에서도 면할 수 없느니라. 불경보살(不輕菩薩)의 장목(杖木)의 책망(責望)도 목건존자(木犍尊者)가 죽장(竹杖)에게 살해(殺害)된 것도 이것이니라. 어찌하여 한탄(恨歎)하실 일이겠느뇨."
시조깅고석가불공양사(四條金吾釋迦佛供養事) 미노부에서 55세에 술작예를 들면 「『심지관경(心地觀經)』이라는 경전에는 현재의 과를 보시라, 미래의 과를 알고 싶으면 현재의 인을 보시라」 라고 설하고 있습니다.
즉 태어나면서 정해진 것처럼 보이는 행 · 불행도 실은 과거세에 자기 자신의 일체의 행동이 쌓여져 만들어진 원인(숙업)이 금생에 결과로서 나타나는 것에 다를 바 없습니다.
또 현재 자기의 삶의 방법이 그대로 새로운 원인이 되어 반드시 금생 혹은 내세에 상응(相應)의 결과를 받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럼 행 · 불행을 결정하는 근본 원인이 되는 행동은 무엇인가. 우주와 생명의 진리를 설명한 올바른 불법에 대한 신(信) · 불신 (不信) · 수순(隨順) · 위배(違背)라는 것이 더욱 더 근원(根源)의 행 · 불행의 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거에 있어서 정법(正法)에 어긋나 만든 죄업은 현재에 있어서 정법에 따름으로써 소멸시킬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이 때문에 니치렌대성인의 불법을 올바르게 신앙하여 가는 자는 과거로부터의 불행의 숙업을 소멸시킬 뿐 아니라 현재로부터 미래에 향하여 차차로 행복한 인생을 획득하여 갈 수 있는 것입니다.즉 태어나면서 정해진 것처럼 보이는 행 · 불행도 실은 과거세에 자기 자신의 일체의 행동이 쌓여져 만들어진 원인(숙업)이 금생에 결과로서 나타나는 것에 다를 바 없습니다.
또 현재 자기의 삶의 방법이 그대로 새로운 원인이 되어 반드시 금생 혹은 내세에 상응(相應)의 결과를 받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럼 행 · 불행을 결정하는 근본 원인이 되는 행동은 무엇인가. 우주와 생명의 진리를 설명한 올바른 불법에 대한 신(信) · 불신 (不信) · 수순(隨順) · 위배(違背)라는 것이 더욱 더 근원(根源)의 행 · 불행의 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거에 있어서 정법(正法)에 어긋나 만든 죄업은 현재에 있어서 정법에 따름으로써 소멸시킬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이 때문에 니치렌대성인의 불법을 올바르게 신앙하여 가는 자는 과거로부터의 불행의 숙업을 소멸시킬 뿐 아니라 현재로부터 미래에 향하여 차차로 행복한 인생을 획득하여 갈 수 있는 것입니다.삼세(三世)란 과거 · 현재 · 미래를 말하고 보통은 과거세(금생에 생을 받기 이전의 전세) · 현재세(금생) · 당래세(바로 올 내세)를 가리킵니다.
인과(因果)란 원인 · 결과를 말하며 과거의 인(因)이 현재의 과(果)로 되어 나타나고, 현재의 인(因)이 또 미래에 과(果)를 초래하는 것처럼 과거 · 현재 · 미래에 걸쳐 일체의 사물에 반드시 원인과 결과가 있다는 것을 삼세의 인과(因果)라고 말합니다.
대개 세상의 사물로 원인 없이 결과가 나오거나 원인이 있는데도 결과가 나오지 않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들의 인생에서 고락(苦樂)이나 행(幸) · 불행(不幸)도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의 원인이 가져온 결과인 것입니다.
불법에 있어서는 이 엄연한 삼세의 인과를 근간으로 하여 인생에 따라 다니는 행 · 불행의 문제를 해명하고 일체의 불행을 해결해 가는 방도(方道)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심지관경(心地觀經)』이라는 경전에는 현재의 과를 보시라, 미래의 과를 알고 싶으면 현재의 인을 보시라」 라고 설하고 있습니다.
즉 태어나면서 정해진 것처럼 보이는 행 · 불행도 실은 과거세에 자기 자신의 일체의 행동이 쌓여져 만들어진 원인(숙업)이 금생에 결과로서 나타나는 것에 다를 바 없습니다.
또 현재 자기의 삶의 방법이 그대로 새로운 원인이 되어 반드시 금생 혹은 내세에 상응(相應)의 결과를 받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럼 행 · 불행을 결정하는 근본 원인이 되는 행동은 무엇인가. 우주와 생명의 진리를 설명한 올바른 불법에 대한 신(信) · 불신 (不信) · 수순(隨順) · 위배(違背)라는 것이 더욱 더 근원(根源)의 행 · 불행의 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거에 있어서 정법(正法)에 어긋나 만든 죄업은 현재에 있어서 정법에 따름으로써 소멸시킬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이 때문에 니치렌대성인의 불법을 올바르게 신앙하여 가는 자는 과거로부터의 불행의 숙업을 소멸시킬 뿐 아니라 현재로부터 미래에 향하여 차차로 행복한 인생을 획득하여 갈 수 있는 것입니다.부처의 멸후(滅後)·이천이백이십여년(二千二百二十餘年) 동안·가섭(迦葉)·아난(阿難) 등(等)·마명(馬鳴)·용수(龍樹) 등(等)·남악(南岳)·천태(天台) 등(等)·묘락(妙樂)·전교(傳敎) 등(等) 조차도 지금까지 홍통(弘通)하시지 않았던 법화경(法華經)의 간심(肝心)·제불(諸佛)의 안목(眼目)인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말법(末法)의 초(初)에 일염부제(一閻浮提)에 홍통(弘通)이 되실 서상(瑞相)으로서 니치렌(日蓮)이 앞장섰느니라.
나의 동류(同類)들은 이진삼진(二陣三陣) 이어져서 가섭(迦葉)·아난(阿難)보다도 수승(殊勝)하고 천태(天台)·전교(傳敎)보다도 월등(越等)할지어다. 조그마한 소도(小島)의 국주(國主) 등(等)의 위협(威脅)을 두려워 한다면 염마왕(閻魔王)의 책망을 어찌 하리오. 부처의 사자(使者)라고 자칭하면서 두려워 하는 것은 하열(下劣)한 사람들이라고 타일렀느니라.
사도초(佐渡抄) 미노부에서 55세에 술작그러므로 四十여년(餘年)의 제경(諸經)및 열반경(涅槃經)을 버리시고 법화경(法華經)을 사장(師匠)으로 의빙(依憑)할지어다. 법화경(法華經)을 국왕(國王)·부모(父母)·일월(日月)·대해(大海)·수미산(須彌山)·천지(天地)와 같이 생각하시라. 제경(諸經)은 관백(關白)·대신(大臣)·공경(公卿)·내지(乃至) 만민(萬民)·중성(衆星)·강하(江河)·제산(諸山)·초목(草木) 등(等)과 같이 생각하실지어다. 우리들의 몸은 말대조악(末代造惡)의 우자(愚者)·둔자(鈍者)·비법기(非法器)의 자(者)이고, 국왕(國王)은 신하(臣下)보다도 사람을 돕는 사람이며, 부모(父母)는 타인(他人)보다도 자식(子息)을 귀여워하는 자(者)이고, 일월(日月)은 중성(衆星)보다도 암흑(暗黑)을 비추는 자(者)인데, 법화경(法華經)이 기근(機根)에 맞지 않는다면 하물며 여경(餘經)은 돕기 어렵다고 생각하시라. 또 석가여래(釋迦如來)와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약사여래(藥師如來)·다보불(多寶佛)·관음(觀音)·세지(勢至)·보현(普賢)·문수(文殊) 등(等)의 일체(一切)의 제불(諸佛)·보살(菩薩)은 우리들의 자비(慈悲)의 부모(父母)이며, 이 불보살(佛菩薩)이 중생(衆生)을 교화(敎化)하는 자비(慈悲)의 극리(極理)는 오직 법화경(法華經)에 만이 유재(留在)한다고 생각하시라. 제경(諸經)은 악인(惡人)·우자(愚者)·둔자(鈍者)·여인(女人)·근결(根缺) 등(等)의 자(者)를 구(救)하는 비술(秘術)을 아직 설(說)해 나타내지 않았다고 생각하시라. 법화경(法華經)이 일체경(一切經)보다 뛰어난 까닭은 오직 이 일에 있느니라.
창법화제목초(唱法華題目抄) 가마쿠라에서 39세에 술작또 석가여래(釋迦如來)와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약사여래(藥師如來)·다보불(多寶佛)·관음(觀音)·세지(勢至)·보현(普賢)·문수(文殊) 등(等)의 일체(一切)의 제불(諸佛)·보살(菩薩)은 우리들의 자비(慈悲)의 부모(父母)이며, 이 불보살(佛菩薩)이 중생(衆生)을 교화(敎化)하는 자비(慈悲)의 극리(極理)는 오직 법화경(法華經)에 만이 유재(留在)한다고 생각하시라. 제경(諸經)은 악인(惡人)·우자(愚者)·둔자(鈍者)·여인(女人)·근결(根缺) 등(等)의 자(者)를 구(救)하는 비술(秘術)을 아직 설(說)해 나타내지 않았다고 생각하시라. 법화경(法華經)이 일체경(一切經)보다 뛰어난 까닭은 오직 이 일에 있느니라.
창법화제목초(唱法華題目抄) 가마쿠라에서 39세에 술작니치렌대성인은 많은 비유와 설화, 고사를 인용하여 법문을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공양(供養)에 대해 많은 설화를 인용하시며, 문하의 공양에 대해 칭찬하시고 그 공덕의 위대함을 가르치시고 있습니다.
공양(供養)이란 불(佛) · 법(法) · 승(僧)의 삼보(三寶)에 대하여 진심을 가지고 제물(諸物) · 정재(淨財)를 바치는 것이며, 재가신도로서의 중요한 수행입니다.
불(佛) · 법(法) · 승(僧)의 삼보(三寶)가 있어 비로소 정법(正法)에 입신(入信)하고 올바른 신심수행을 하여 성불득도(成佛得道)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공양(供養)을 가지고 삼보(三寶)를 수호해 가는 것은 우리들 신도로서의 당연한 일이며 보은(報恩)의 모습입니다. 전중경수(轉重輕受)란 ‘무거움을 전(轉)하여 가볍게 받는다.’라고 읽습니다. 우리들 말법 중생은 모두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는 사이에 정법(正法)을 신수(信受)하지 못하고 오히려 정법에 어긋나거나 사종교에 관계를 맺어 무거운 불행의 숙업(宿業)을 생명에 새겨 왔습니다.
그래서 그 과보로서 이 다툼이 많은 탁악(濁惡)의 말법의 세상에 태어났으며, 더욱이 일생을 통하여 병고(病苦) · 빈고(貧苦)를 비롯하여 갖가지의 고뇌에 울고, 죽어서도 또 지옥의 중고(重苦)를 맛보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러한 대고뇌(大苦惱)를 면(免)할 길은 없을까요?
『법화초심성불초(法華初心成佛抄)』에 「사람이 땅에 의(依)해 쓰러진 자(者)가 도리어 땅을 짚고 일어나는 것과 같느니라.」(신편어서 p.1315)라는 말씀과 같이 정법에 어긋나 형성된 방법(謗法)의 죄는 도리로서 정법을 신수(信受)하여 실천하는 것만으로서 소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업이 소멸하여 가는 모양을 전중경수(轉重輕受)라고 합니다.
즉 우리들이 니치렌대성인의 불법을 믿고 제목을 부르고 절복에 힘쓸 때에는 반드시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거리낌과 미움을 받고 욕을 먹는 등 여러 가지 난(難)을 만나게 되지만 실은 이것이 무거운 불행한 숙업을 바꾸어 가볍게 받고 있는 모습 즉 불행의 중업(重業)을 소멸하고 있는 도중의 모습인 것입니다.
흔히 초신자 중에 ‘신심을 함으로써 도리어 난을 만난다는 것은 딱 질색이다.’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그것은 큰 오해이며, 아직 불법의 도리를 모르는 사고방식입니다.
니치렌대성인은 『형제초(兄弟抄)』에 「자신이 과거에 방법(謗法)자였다는 것을 의심하지 말지어다.」(신편어서 p.981)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들이 정법에 입신하는 시점에서는 이미 과거세에서의 방법의 죄업이 생명에 새겨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즉 우리들의 신심수행은 영(零)에서 부터가 아니고 마이너스로부터의 출발 혹은 백지에서가 아니라 검게 물들어져 버린 상태에서의 출발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진정으로 행복하게 되기 위해서는 이 불행을 일으키는 원인인 과거세에서의 방법의 죄업을 어떻게든 소멸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것도 「한 번 높은 산에 오른 자는 반드시 내려오지 않으면 안된다.」(신편어서 p.582)라는 말씀과 같이, 만들어 버린 죄업의 과보(果報)는 받지 않으면 안되며, 결코 없었던 것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이 당연한 도리입니다.
여기에 호법(護法)의 공덕력의 고마움이 있으며, 본래라면 생생세세(生生世世)에 대고뇌(大苦惱)를 받아가야 할 죄업을 정법을 강성하게 행하는 공덕에 의해 법난(法難)이라는 형태로 혼자서 가볍게 짜내어서 소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법난에 의해 주위로부터 구박을 받으면 받을수록 자신의 불행의 원인이 없어져 가므로 뒷날 보면 병(病)의 몸은 건강체가 되고, 악인은 선인으로 되고 또 빈고(貧苦)는 안정된 경제 상태로 되어 도리어 행복 경애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정법을 행하는 자의 참된 공덕은 무거운 죄업을 전(轉)하여 가볍게 받는 전중경수라고 하는 모양을 거쳐야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법화경(法華經)을 믿는 사람은 겨울과 같도다. 겨울은 반드시 봄이 되느니라.」(신편어서 p.832)라는 금언도 그 원리를 가리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대저 정토(淨土)라 함도 지옥(地獄)이라 함도 밖에는 없느니라. 오직 우리들의 가슴속에 있느니라·
이것을 깨달음을 부처라 하고 이에 미혹(迷惑)함을 범부(凡夫)라 하며 이것을 깨닫게 함은 법화경(法華經)이니라.
만약 그렇다면 법화경(法華經)을 수지(受持)하여 받드는 자는 지옥즉(地獄卽) 적광(寂光)이라고 깨닫게 되옵니다.
우에노전미망인답서(上野殿未亡人答書) 미노부에서 53세에 술작대성인님은 『스슌천황어서(崇峻天皇御書)』에 「불법(佛法) 중(中)에 내훈외호(內薰外護)라고 하는 커다란 대사(大事)가 있으니 종론(宗論)이외다.」(신편어서 p.1170)라고, ‘내훈외호(內薰外護)’ 라는 법문은 불법의 중요한 가르침이고 근본의 법문의 하나다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법화경 불경품(不輕品)에는 불경보살이 만나는 사람마다 예배를 행한다는 것이 설해져 있습니다. 이것을 불경보살의 예배행이라 하여, 불경보살은 모든 중생의 생명 안에는 불성(佛性)이 갖추어져 있다고 하여 만나는 사람마다 예배를 행하는 것이다라고 설해져 있습니다.
또한 열반경(涅槃經)에는 「일체중생(一切衆生)은 모두 불성(佛性)이 있음」라고 설해져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본래 모두 불성이 있고 그것은 그 사람이 비록 자신이 의식할 수 없더라도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갖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단지 이 불성은 그 자체로는 그냥 갖추어져 있다는 것뿐이며 그 사람에게 큰 공덕을 얻게 한다든지 그 사람을 성불로 인도한다든지 하는 역용은 없습니다. 즉 이론상으로 갖추어져 있을 따름입니다.
대성인님은 『스슌천황어서(崇峻天皇御書)』에 「마명보살(馬鳴菩薩)의 기신론(起信論)에는 「진여(眞如)의 법(法)이 항상 훈습(薰習)하기 때문에 망심(妄心)이 즉멸(卽滅)하여 법신현현(法身顯現)함이라」고 미륵보살(彌勒菩薩)의 유가론(瑜伽論)에 쓰여 있느니라. 숨은 일이 밖으로 나타난 덕(德)으로 된 것이요.」(신편어서 p.1170)라고 설하셨습니다.
우리들에게 갖추어져 있는 불성은 불도를 수행하는 것에 의해서 비로소 눈을 뜨게 되고, 수행을 쌓아나감으로써 그 불성은 우리들의 생명 속에서 크게 자라나게 됩니다. 이것을 ‘내훈(內薰)’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대승기신론에 설한 것처럼 수행으로써 훈습된 불성에 의해서 망심(妄心)은 멸하고 법신(法身)이 현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가론 말하는 바의 생명 속에 있으면서 나타나지 않았던 불성이 훈습에 의해 밖으로 넘쳐 나와서 그 사람의 덕을 장식한다는 의미입니다.
또 이 내훈에 의해서 밖으로 넘쳐 나온 불도수행의 공덕은 다음에는 그 본인의 주변 사람에게도 그 공덕을 나누어주게 됩니다. 이것을 ‘외호(外護)’라고 합니다.
한 사람의 내훈의 공덕에 의해서 불보살의 수호, 제천의 수호가 거기에 나타나고, 그 수호의 공덕은 그 본인과 연이 있는 사람들에게 까지 미치게 되는데 이것을 ‘내훈외호(內薰外護)’라고 합니다.
즉 ‘내훈외호’는 우리 생명 속에 갖춰진 불성(佛性)이 안에서 훈발(薰發), 즉 나타나면서 밖에서 자신을 지키고 돕는 작용이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어떠한 상황이나 환경에서도 강성한 신심을 관철해 자신의 불성을 불러 나타내면 반드시 수호를 받고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컵 속에 물을 가득히 담고 다시 거기에 물을 넣으면 반드시 밖으로 넘치게 됩니다. 그처럼 여러분들의 생명, 생활 속에 묘법 창제의 공덕이 참으로 가득 찼다면, 반드시 남을 향해서 이 묘법의 공덕을 오십전전(五十展轉) 수희(隨喜)의 공덕으로서 보여주게 되는 모습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정법의 내훈외호의 공덕을 얻기 위해서는 도대체 어떠한 수행을 쌓아야 좋을까요?
그것은 결코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조석의 근행, 매일의 창제행, 본존님 급사, 공양, 정령의 추선공양 그리고 연이 있는 사람에 대한 절복행입니다. 이 수행을 항상 물이 흐르듯이 퇴보하는 일 없이 계속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수행을 계속하는 곳에 자연히 생명 속의 불성이 훈발하여 그 사람의 덕을 증장시키고 나아가서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공덕을 나누어 주며 자타 함께 행복한 경애를 열게 되는 것입니다.법사공덕품(法師功德品) 사개(四箇)의 대사(大事)
제일(第一) 법사공덕지사(法師功德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법사(法師)란 오종법사(五種法師)이고 공덕(功德)이란 육근청정(六根淸淨)의 과보(果報)이니라, 결국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는 육근청정(六根淸淨)이니라, 그러므로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법(法)의 스승으로 되어, 큰 덕(德)이 있느니라, 공(功)이란 행(幸)이라는 것이며 또한 악(惡)을 멸(滅)함을 공(功)이라 하고 선(善)을 생(生)함을 덕(德)이라고 하느니라, 공덕(功德)이란 즉신성불(卽身成佛)이고 또 육근청정(六根淸淨)이니라, 법화경(法華經)의 설문(說文)과 같이 수행(修行)함을 육근청정(六根淸淨)이라고 알아야 하느니라 운운(云云).
제이(第二) 육근청정지사(六根淸淨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눈의 공덕(功德)이란 법화불신(法華不信)의 자(者)는 무간(無間)에 타재(墮在)하고 믿는 자(者)는 성불(成佛)한다고 보는 것을 가지고 눈의 공덕(功德)이라고 하느니라, 법화경(法華經)을 봉지(奉持)하는 곳에 눈의 팔백(八百)의 공덕(功德)을 얻느니라, 눈이란 법화경(法華經)이며 이 대승경전(大乘經典)은 제불(諸佛)의 안목(眼目)이라고.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는 눈의 공덕(功德)을 얻느니라 운운(云云). 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운운(云云).
제삼(第三) 우여정명경지사(又如淨明鏡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법화경(法華經)에 거울의 비유(譬喩)를 설(說)함은 이 명문(明文)이니라, 육근청정(六根淸淨)의 사람은 유리명경(瑠璃明鏡)과 같이 삼천세계(三千世界)를 본다는 경문(經文)이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는 명경(明鏡)에 만상(萬像)을 비추는 것과 같이 지견(知見)하느니라, 이 명경(明鏡)이란 법화경(法華經)이고 별(別)해서는 보탑품(寶塔品)이니라, 또는 나의 일심(一心)의 명경(明鏡)이니라, 결국 유리(瑠璃)와 명경(明鏡)과의 두 가지의 비유(譬喩)를 설(說)하셨으니 신근청정(身根淸淨)의 하(下)이니라, 색심불이(色心不二)이므로 어느 것이나 청정(淸淨)의 덕분(德分)이라, 정(淨)이란 부정(不淨)에 대(對)하여 정(淨)이라고 하며 명(明)이란 무명(無明)에 대(對)하여 명(明)이라고 설(說)하느니라, 경(鏡)이란 일심(一心)이며 정(淨)은 가제(假諦)·명(明)은 공제(空諦)·경(鏡)은 중도(中道)이고, 실견제색상(悉見諸色像)의 실(悉)은 십계(十界)이니라. 결국 정명경(淨明鏡)이란 색심(色心)의 이법(二法),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체(體)이며, 정명경(淨明鏡)이란 신심(信心)이니라 운운(云云). 또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를 지견(知見)한다 함은 삼세간(三世間)을 말하느니라.
제사(第四) 시인지차경안주희유지지사(是人持此經安住希有地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시인(是人)이란 일본국(日本國)의 일체중생(一切衆生) 안에서는 법화(法華)의 행자(行者)이며, 희유지(希有地)란 수량품(壽量品)의 사리(事理)의 현본(顯本)을 가리키느니라. 이것을 또 분별품(分別品)에는 「불설희유법(佛說希有法)」이라고 설(說)하였으며 별(別)해서는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의 희유(希有)의 지(地)란 말법홍통(末法弘通)의 명경(明鏡)인 본존(本尊)이니라. 총(總)해서는 이 품(品)의 육근청정(六根淸淨)의 공덕(功德)은 십신상사즉(十信相似卽)이고, 대고중(對告衆)의 상정진보살(常精進菩薩)은 십신(十信)의 제삼신(第三信)이라고 했느니라, 그렇지만 말법(末法)에 있어서는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가리켜 상정진보살(常精進菩薩)이라고 알아야 하며, 이 경(經)의 지자(持者)는 시즉정진(是則精進)인 까닭이니라.
어의구전(御義口傳) 미노부에서 57세에 술작법화경(法華經)을 봉지(奉持)하는 곳에 눈의 팔백(八百)의 공덕(功德)을 얻느니라, 눈이란 법화경(法華經)이며 이 대승경전(大乘經典)은 제불(諸佛)의 안목(眼目)이라고.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는 눈의 공덕(功德)을 얻느니라 운운(云云). 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운운(云云).
제삼(第三) 우여정명경지사(又如淨明鏡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법화경(法華經)에 거울의 비유(譬喩)를 설(說)함은 이 명문(明文)이니라, 육근청정(六根淸淨)의 사람은 유리명경(瑠璃明鏡)과 같이 삼천세계(三千世界)를 본다는 경문(經文)이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는 명경(明鏡)에 만상(萬像)을 비추는 것과 같이 지견(知見)하느니라, 이 명경(明鏡)이란 법화경(法華經)이고 별(別)해서는 보탑품(寶塔品)이니라, 또는 나의 일심(一心)의 명경(明鏡)이니라, 결국 유리(瑠璃)와 명경(明鏡)과의 두 가지의 비유(譬喩)를 설(說)하셨으니 신근청정(身根淸淨)의 하(下)이니라, 색심불이(色心不二)이므로 어느 것이나 청정(淸淨)의 덕분(德分)이라, 정(淨)이란 부정(不淨)에 대(對)하여 정(淨)이라고 하며 명(明)이란 무명(無明)에 대(對)하여 명(明)이라고 설(說)하느니라, 경(鏡)이란 일심(一心)이며 정(淨)은 가제(假諦)·명(明)은 공제(空諦)·경(鏡)은 중도(中道)이고, 실견제색상(悉見諸色像)의 실(悉)은 십계(十界)이니라. 결국 정명경(淨明鏡)이란 색심(色心)의 이법(二法),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체(體)이며, 정명경(淨明鏡)이란 신심(信心)이니라 운운(云云). 또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를 지견(知見)한다 함은 삼세간(三世間)을 말하느니라.
제사(第四) 시인지차경안주희유지지사(是人持此經安住希有地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시인(是人)이란 일본국(日本國)의 일체중생(一切衆生) 안에서는 법화(法華)의 행자(行者)이며, 희유지(希有地)란 수량품(壽量品)의 사리(事理)의 현본(顯本)을 가리키느니라. 이것을 또 분별품(分別品)에는 「불설희유법(佛說希有法)」이라고 설(說)하였으며 별(別)해서는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의 희유(希有)의 지(地)란 말법홍통(末法弘通)의 명경(明鏡)인 본존(本尊)이니라. 총(總)해서는 이 품(品)의 육근청정(六根淸淨)의 공덕(功德)은 십신상사즉(十信相似卽)이고, 대고중(對告衆)의 상정진보살(常精進菩薩)은 십신(十信)의 제삼신(第三信)이라고 했느니라, 그렇지만 말법(末法)에 있어서는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가리켜 상정진보살(常精進菩薩)이라고 알아야 하며, 이 경(經)의 지자(持者)는 시즉정진(是則精進)인 까닭이니라.
어의구전(御義口傳) 미노부에서 57세에 술작색심불이(色心不二)이므로 어느 것이나 청정(淸淨)의 덕분(德分)이라, 정(淨)이란 부정(不淨)에 대(對)하여 정(淨)이라고 하며 명(明)이란 무명(無明)에 대(對)하여 명(明)이라고 설(說)하느니라, 경(鏡)이란 일심(一心)이며 정(淨)은 가제(假諦)·명(明)은 공제(空諦)·경(鏡)은 중도(中道)이고, 실견제색상(悉見諸色像)의 실(悉)은 십계(十界)이니라. 결국 정명경(淨明鏡)이란 색심(色心)의 이법(二法),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체(體)이며, 정명경(淨明鏡)이란 신심(信心)이니라 운운(云云). 또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를 지견(知見)한다 함은 삼세간(三世間)을 말하느니라.
제사(第四) 시인지차경안주희유지지사(是人持此經安住希有地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시인(是人)이란 일본국(日本國)의 일체중생(一切衆生) 안에서는 법화(法華)의 행자(行者)이며, 희유지(希有地)란 수량품(壽量品)의 사리(事理)의 현본(顯本)을 가리키느니라. 이것을 또 분별품(分別品)에는 「불설희유법(佛說希有法)」이라고 설(說)하였으며 별(別)해서는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의 희유(希有)의 지(地)란 말법홍통(末法弘通)의 명경(明鏡)인 본존(本尊)이니라. 총(總)해서는 이 품(品)의 육근청정(六根淸淨)의 공덕(功德)은 십신상사즉(十信相似卽)이고, 대고중(對告衆)의 상정진보살(常精進菩薩)은 십신(十信)의 제삼신(第三信)이라고 했느니라, 그렇지만 말법(末法)에 있어서는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가리켜 상정진보살(常精進菩薩)이라고 알아야 하며, 이 경(經)의 지자(持者)는 시즉정진(是則精進)인 까닭이니라.
어의구전(御義口傳) 미노부에서 57세에 술작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의 희유(希有)의 지(地)란 말법홍통(末法弘通)의 명경(明鏡)인 본존(本尊)이니라. 총(總)해서는 이 품(品)의 육근청정(六根淸淨)의 공덕(功德)은 십신상사즉(十信相似卽)이고, 대고중(對告衆)의 상정진보살(常精進菩薩)은 십신(十信)의 제삼신(第三信)이라고 했느니라, 그렇지만 말법(末法)에 있어서는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가리켜 상정진보살(常精進菩薩)이라고 알아야 하며, 이 경(經)의 지자(持者)는 시즉정진(是則精進)인 까닭이니라.
어의구전(御義口傳) 미노부에서 57세에 술작대성인님은 『삼삼장기우사(三三藏祈雨事)』에서 「니치렌(日蓮)이 불법(佛法)을 시험하건대, 도리(道理)와 증문(證文)보다 더한 것은 없고, 또 도리(道理) 증문(證文)보다도 현증(現證) 이상(以上)은 없느니라.」(신편어서 p.874)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도리’는 이증이고 ‘증문’은 문증을 말합니다. 이 어문에 분명히 나와 있듯이 대성인은 문증, 이증을 언급한 다음 가장 중요한 것이 현증이라고 여기셨습니다.
그 신앙을 실천하는 사람이 인격을 연마하고 충실하게 생활하여 행복한 인생을 실현하고 있느냐 어떠냐로 그 종교를 판단해야 합니다.
대성인은 ‘문증’ ‘이증’ ‘현증’이라는 세가지 기준으로 정법(正法)을 판정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삼증 가운데 어느 하나가 빠져도 올바른 종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약에 비유하면 문증은 성분표나 효능 설명서에, 이증은 약이 듣는 확실한 이유에 해당하고 현증은 실제로 복용해서 몸이 회복되는 명확한 결과에 해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