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
원래는 여자아이지만 집안에 대한 반항으로 스스로 남자가 되기로 자초한 빈수호.
할아버지의 소개로 억지로 만난 남자 권대양. 그와 함께 카페에 갔다가 신에게 목격당한 수호.
그리고 신과의 사이는 급속도로 어색해지는데..
대양과의 저녁약속이 잡히고, 그와 만나러 나가려던 찰나, 승후에게 신이 아프다는 전화가 걸려와 그대로 신에게 달려간 수호.
그리고..마침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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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소년은 울지 않는다.
"어머........너.."
"...그 동안, 안녕하셨어요..고모님."
".....들어오너라.."
수호는 오랜만에 본가를 찾았다. 본가에는 할아버지와 하연의 부모님인 백부, 백모, 그리고 고모부, 고모, 고모부의 아들과 딸이 함께 살고 있었다.
본가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수호를 맞은 것은 백모님이었다.
"오랜만이구나. 잘 지냈니?"
"할아버지는..."
"방에 계신단다."
본가의 집은 한옥이지만 집 안 인테리어는 신식이었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방만은 따로 별채를 만들어 방안까지 한옥처럼 만들어져있었다.
"어머, 이게 누구야?"
복도를 걷다가 마주친 것은 고모의 딸인 신지아였다. 곱게 다듬은 단발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수호를 위 아래로 훑어보던 그녀는 싱긋 웃으며 묻는다.
"여기는 무슨 일로 왔니? 평소에는 얼굴도 비치지 않던 애가."
눈에 비웃음이 섞여있다.
"혹시..할아버지한테 용서라도 빌러 왔니? 뭐, 그런다고 할아버지께서 받아주실까는 잘 모르겠지만 말야."
백모님이 당황한 표정으로 지아를 꾸짖었다.
"그게 무슨 말이니! 어서 방으로 돌아가!"
"...그럼..힘내, 빈수호."
수호는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지아에게 속삭였다.
"오빠 몸은 어떠니? 미안하다고 전해줄래? 처음엔..그렇게 세게 상대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말야."<-전에 지아의 오빠인 지성을 흠씬 두들겨 팬 적이 있음.
지아가 고개를 홱 돌리며 수호를 노려본다. 그런 지아에게 수호는 싱긋 웃어준 뒤, 다시 복도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호는 할아버지 방문 앞에 도착했고, 곧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별일이구나. 네가 날 다 찾아오다니."
"얼마 전 할아버지께서 절 찾아오신 것도, 놀랄만한 일이었습니다."
수호는 잠시 할아버지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제가 할아버지를 찾아온 것은, 제 의사 없이 결정지어진 약혼에 대한 이야기를 없었던 걸로 하기 위해서입니다."
"...무슨 소리냐."
"약혼, 하지 않겠습니다."
할아버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미간을 찌푸리는 것을 보니 화가 난 것이 분명하다.
"저는 언제까지, 할아버지의 말씀만을 따르는 인형이 아닙니다. 저도..!"
수호는 고개를 들어 할아버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좋아하는 사람은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약간 놀란 얼굴이다. 그러나 이내 조금 누그러진 표정으로 수호를 바라보았다.
"...어떤 녀석이냐?"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면, 또 그 사람의 흠을 찾아내려고 하시는 건가요?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제게 눈물의 의미를 다시 깨닫게 해준 사람입니다."
두 사람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나 수호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슬픔의 눈물이 아니라, 기쁨의 눈물 말입니다."
"...................."
"저에 대한 일도 알고 있습니다. 놀라기는커녕 오히려 저를 위로해줬어요. 도망치지 말고, 현실과 마주보라고요."
할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그저...수호를 그렇게 바라볼 뿐이었다.
"..여태까지...할아버지에게 과거를 구속받았다면...이제...이제는...제 미래는, 제가 스스로 열어가고 싶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려 했던 것은..이겁니다."
한참이 지나도...할아버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수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죄송합니다. 먼저 일어서겠습니다."
"................."
".......또..찾아 뵙겠습니다."
수호가 방안을 빠져나가는 동안에도, 할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단지, 단지..수호가 방안을 나가고 발소리가 사라진 뒤..씁쓸히 웃으며 조용히 중얼거렸을 뿐이었다.
"...제 아비와 똑같구만........"
수호는 이어서..대양을 만나기 위해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호?
"..네. 실은..만나고 싶어서요."
-오호..웬일로?
"비꼬지 말고 얼른 나와요 -_-^........할 말이 있으니까."
-...미안한데, 오늘..왠지 나가고 싶지 않다.
목소리가 어둡다. 수호는 순간..그제의 일을 떠올렸다. 비속에서 멍하니 수호를 바라보던 대양의 얼굴..
"..무슨 일이 있어도 만나야 돼요. 꼭 만나야 돼요. 오늘 아니면 안돼요."
-......알았다. 그럼....내가 만나고 싶은 곳에서 만나면 안될까?
"...어디..?"
-내 오피스텔..
수호는 대양이 가르쳐 준대로 오피스텔을 잘 찾아왔다.(길을 잘 찾는다)
"..들어 와."
오피스텔 안은 깨끗했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왔을 때, 탁자에 놓여져 있는 양주를 보고 비로소 수호는 대양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음, 갑자기 마시고 싶어져서 말이야. 어때, 너도 한 잔 할래?"
"난 미성년자예요."
"하하하, 너도 의외로 보수적이구나."
대양이 킬킬거린다. 하지만, 여느 때의 웃음과는 다르다. 씁쓸함이 묻어나는 웃음..
"..그래서..나에게 할 말이란 건?"
"..............할아버지께..말씀 드렸어요. 약혼...취소될 거예요."
대양이 수호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리고는 차갑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누구 마음대로.....?"
"물론, 내 의사 대로죠."
"약혼 취소는 나도 원치 않는데?"
"약혼하는 건 내가 원치 않아요."
대양은 술잔을 들이켰다.
"뭐야...너...의외로 당당하군. 녀석에게....말했나...?"
"...당신 충고대로. 용기라는 거..내기 어렵더군요."
대양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수호의 손목을 움켜쥐며 화가 난 듯 수호를 노려보았다.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미안한 구석을 보여야 하는 거 아냐?! 너 같은 여자는 정말 처음이다..!! 어떻게......지금처럼...당황하지도 않고...............................날 바라볼 수 있는 거냐........"
"...난 적어도. 당신에게 미안한 것은 없어요. 난 분명히 말했으니까, 당신 싫다고, 약혼 원치 않는다고... 난 그대로 행동에 옮긴 것뿐이에요."
수호는 대양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대양의 입에서 어이없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정말이지...............내가 한심스럽군.."
대양의 손이 풀리면서 붙잡고 있던 수호의 손목을 놓았다.
"...강해졌나.. 빈수호."
"......덕분에."
".........가라...이제 넌 혼자서도 일어설 수 있으니까."
대양은 소파에 털썩 앉아서는 또 다시 양주를 들이켰다. 수호는 그런 그를 말없이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고마워요.(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말아요..)"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언제부터인가....네가 곁에 있어주니까..난 혼자가 아니었다....
넌 언제나 솔직하게.....그렇게 날 대해주었다..
하지만...여태까지..난 언제나 널 속여왔으니까..
이제부터는...지금부터는....
..............................................진실만을 말하고 싶다..............'
수호는 신의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문을 열었을 때....수호는 웃으며 서 있는 신에게 다가가 머리를 살짝 기대며 말했다.
"...다녀왔어....."
그러자..신도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어서 와.."
"집을 나가 본가와 연락을 끊고 살던 아빠가 프랑스에서 미국계 혼혈인 엄마를 만나, 나를 낳았어.
아주 어렸을 때의 일이라 나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빠 엄마는 내가 5살 때 사고로 돌아가셨고..
그리고...나는 이곳으로 보내졌지. 친척들은 내 머리와, 눈과, 얼굴 생김새를 보고 기겁했었어.
거의 10년 동안이나 연락을 끊고 지내던 아빠가, 외국인 여자와 결혼해 낳은 아이니까.."
그랬다. 처음에 수호를 본 친척들은 놀라워했고..그것은..아빠의 여동생인 고모로 인해, 경멸로 이어졌다.
'저리가! 꼴도 보기 싫어..!! 이제 와서 네 까짓게 나타나?! 10년 동안 아무 연락 없던 결과가 겨우 이거야?!'
고모도 그랬지만..할아버지는 아예 수호를 쳐다보려 하지도 않았다. 수호는..자신을 봐도 아무런 반응없이 차가운 표정만 짓고 있는 할아버지가..오히려 두렵고 미웠다.
그것은 수호라는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거였으니까..
그러던 중..할아버지의 말을 엿듣게 되었다.
'차라리 사내애였다면....좋았을 것을..'
.....사내......남자아이....
"충격이었어. 남자애였다면 인정을 받았을까? 어째서? 여자애는 왜 인정받을 수 없는 걸까?
나는 어엿한 아빠와 엄마의 자식인데....
그럼...그럼 남자애가 되면..난 인정받을 수 있을까.. 눈물이 나오지 않을 만큼 강해질 수 있을까..
6살의 어린 수호는 그렇게 생각했지..정말 남자가 되겠다고 결심한 건 10살 때부터였어.
배우던 운동도 그만두고..학업에 매달렸지.
한해..한해가 지날수록.. 난 내 스스로 강해지고 있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그게 아냐..
실은 남장이라는 껍데기를 만들어놓고, 난 그 안에 틀어박혀 나오려 하지 않았던 것 뿐..
감정이 메말라가고..마음이 메말라가고...그러면 그럴수록..부모님의 얼굴은 점차 희미해져..지금은..거의 기억도 안나.
...마지막으로 본 게 5살 때였으니..무리도 아니지만..."
수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신은 그저 말없이, 수호만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은 안 좋은 기억은 빨리 잊으려 한다지.. 그래서인가...어렸을 적 일은 아주 희미해.
부모님에 대한 기억은..전부 슬픈 일들뿐이니까..더욱 그랬겠지."
"...보고싶지 않아? 부모님.."
"보고싶지 않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사진도 한 장 없고..
게다가, 부모님이 지금의 내 모습을 보신다면 어떤 표정을 지으실까. 하하.. 분명 이게 무슨 꼴이냐고 다그치시겠지.
..하지만..지금 난 충분히 기쁘고...행복하니까..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있던 부모님은.. 웃고 계셨으니까..."
신은 말없이 수호의 머리를 자신의 가슴에 안았다.
"...행복하다고...하셨으니까.. 나도... 행복하니까...괜찮아...."
"응...그래.."
기억 속의 부모님은...웃고 계셨으니까............
"에...에취!!>_<"
"...-_-... 내 얼굴에다 대고 기침을 하면 어쩌자는 거야"
"아..미안........실은...이 감기.."
신이 피식 웃더니 말한다.
"그..카페에서 만난 이후, 계속 너희 집 앞에 갔었는데.. 차마..만나지는 못하겠고.."
"..=_=..계속 와 있었다고!?;;"
"응."
수호가 멍하니 신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신은 부드럽게 미소짓으며 입을 열었다.
"..............전혀 몰랐어.."
"괜찮아. 그 때..용기를 내지 않았던 것은 나니까..그래서 벌 받은 것 뿐이야. 그에 비해 넌 참..용감했어."
".....그런가..."
"....말해줘서....정말 고맙다..."
신의 미소..
그 때 용기를 내지 않았더라면..
아마.....다시는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수호는..조금..아주 조금이나마...
대양에게......고마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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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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