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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가지 취미 중 하나가
운명으로 다가오다
2021년 10월 21일 제18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자로 호명되는 그 순간부터, 캐나다 피아니스트 브루스 류의 인생은 180도 달라졌다. 우승을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그는 대회만 끝나면 짐을 싸서 아버지가 계신 몬트리올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콩쿠르 갈라 콘서트 후에도 폴란드 전국 투어와 일본, 이스라엘, 그리고 한국 연주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브루스는 “자고 일어났더니 유명 인사가 되었다”는 바이런의 명언이 자기 인생에 적용된 것을 마냥 즐거워하지만은 않았다. 대회 이후 ‘엄청난 책임감’을 느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피아노는 즐거워서 하는 열다섯 가지 취미 중 하나”일 뿐이라고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모습을 보며 MZ세대의 ‘쿨(Cool)’한 가치관은 한국을 넘어서 만국 공통이 아닐까 생각했다. 폴란드 투어를 마치고 일본에 도착해서 자가 격리 중인 그를 화상 인터뷰로 만나보았다.
글 노승림 월간 SPO 편집위원·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The Fryderyk Chopin Institute
우선 콩쿠르 우승을 축하합니다. 우승자로 호명되었을 때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르던가요?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에 잘 모르겠습니다. 그 직전까지 제가 연주 중에 뭘 실수했는지 한참 곱씹고 있었거든요. 그래도 결승전에 올랐을 때는 준비해 간 레퍼토리를 모두 연주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해서 여한이 없었습니다. 우승자를 부를 때, 그것이 제 이름일 거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어요.
본선에서 파치올리 피아노를 선택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요?
제가 원하는 소노리티(울림)를 그 피아노에게서 기대했습니다. 다들 일반적으로 야마하나 스타인웨이를 연주한다는 점에서 다소 위험을 감수한 선택이었습니다. 저도 그렇게 자주 시도하지는 않아요. 저는 파치올리가 지닌 음색과 사운드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파치올리의 액션은 스타인웨이나 야마하에 비해 컨트롤하기 까다로운 부분이 있어요. 제가 이런 시도를 하는 경우는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입니다. 새로운 무엇인가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면 어느 정도 진보할 수 있고, 그런 경험을 통해 득을 볼 수 있지요.
대회를 진행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
신선함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굉장히 오랫동안, 엄청나게 많은 연습을 하고 난 뒤 콩쿠르에 참여했잖아요. 하지만 저는 그저 준비한 것들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무대에 오르기 바로 직전까지도 새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재료들을 찾으려고 계속해서 노력했습니다.
매 라운드마다 항상 제일 마지막 순서로 연주했습니다. 다른 출전자들이 연주하는 동안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며 무엇을 했나요?
제게 매우 유리한 조건이었어요. 각 라운드마다 확신을 가지고 연습할 수 있었거든요. 가령 첫 번째 순서라면 연주가 끝나고 내가 통과했는지, 다음 라운드를 준비해야 하는지 바로 알 수가 없잖아요. 그럴 때는 때때로 동기 부여가 안 되기도 하죠. 하지만 이번에는 계속해서 무대에 오를 때까지 연습만 하면 되었지요. 다만 첫 번째 라운드는 그래도 어려웠어요. 앞의 86명 본선 진출자가 모두 연주할 때까지 기다려야 해서 일주일 만에 내 순서가 왔거든요. 제 순서가 마지막인 것을 알자마자 저는 결승전과 준결승전에서 연주할 곡들부터 연습하고 제일 마지막에 제1라운드 곡들은 연습했습니다. 신선함을 유지하는 나만의 전략입니다.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다른 출전자들의 연주는 들었나요?
콘서트홀에서 가서 듣지는 않았어요. 거만하게 들리지 않았으면 하는데요, 제 연주에 집중하고 다른 이들의 연주에 영향 받고 싶지 않았어요. 나만의 아이디어들이 있고, 그것을 가장 훌륭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찾고자 했던 것이죠. 다른 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무슨 연주를 하는지와 상관없이요.
코로나 시대를 관통하며 콩쿠르를 준비했습니다. 대회 개최가 1년 정도 연기되었고, 준비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경험을 했을 것 같아요.
맞습니다. 코로나 덕을 보았다고 생각해요. 연습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왔거든요. 제가 연주한 것을 녹음해서 듣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원거리 레슨 전에 우선 제 연주를 선생님께 보내드려야 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어쨌거나 녹음한 걸 들어야 하잖아요. 예전에는 한 번도 그런 방식으로 제가 연주한 걸 들어본 적이 없어요. 아마도 다른 연주자들도 비슷할 거라 생각하는데, 그건 정말 죽고 싶은 만큼 끔찍한 경험이거든요. 소리 하나하나가 다 엉망으로 느껴집니다.
우리는 자신의 연주를 제3자의 입장에서 듣는 데 그리 익숙하지 않아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듣고 나니까 예전에 몰랐던 나의 버릇이라든가 새로운 면들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내가 실제로 어떻게 연주하는지 파악할 수 있는 객관적인 방법이었던 거죠. 전에는 다른 사람들이 내게 한 지적이나 충고를 하나도 믿지 않았는데, 녹음한 걸 듣고 난 다음에는 그게 다 맞는 말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어요. 제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또 하나의 변화는 코로나 덕에 집에 더 오래 머물면서 쇼팽에 대해 알 수 있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질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쇼팽의 책과 편지들을 읽으며, 그의 악보에서 더 많은 디테일들을 평화로운 마음으로 발견할 수 있었어요. 물론 콘서트 무대가 줄어들었다는 점에서 득실은 있다고 봐야겠지요. 마치 처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습니다. 공연을 하지 않았던 시절, 내가 무엇을 위해서인지 전혀 모른 채 음악을 배우던 시절 말이에요. 그렇게 익숙한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제게 좋은 경험이었어요.
그 기간 중 혹시 자신의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었나요?
말로 표현하기 힘들지만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이성적인 연주와 감정적인 연주 사이의 균형을 예전보다 더 잘 이해하게 되었어요. 집에서 연습할 때는 무미건조하고 지나치게 이성적으로 연주하다가도 무대에만 서면 충만해진 영감을 주체하지 못하고 감정을 갑자기 폭발시키기 쉽거든요. 이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게 중요한 일인데, 제가 연주한 걸 들으며 그 경계선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됐어요.
대회의 모든 과정을 유튜브로 시청할 수 있었는데요. 1라운드에서부터 남다른 해석과 색채를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저는 개인적으로 스케르초와 에튀드에서부터 이미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요.
사실 첫 번째 라운드가 신경이 가장 곤두서 있던 무대였어요. 곡들이 다 너무 짧아서 제 개성을 드러내기에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했지요. 스케르초는 다루기 어렵고 반복이 많은 작품이에요. 교향곡처럼 고지식한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여러 차례 반복이 있기 때문에 매번 다르게 치려면 상상력을 동원해야 합니다. 여기저기서 다른 임프로비제이션을 시도해야 하죠. 제 성격과 맞는 곡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이 곡에 유머와 해학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인생에서 좋아하는 것들이죠.
재미있는 시도네요. 쇼팽을 어떤 인물로 생각하나요?
남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걸요. 상당히 귀족적이고 고귀한 인물이죠. 동시에 자신의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불행한 인물이고요. 그의 음악에는 그래서 애국심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쇼팽과는 정반대의 사람이에요. 훨씬 외향적이고, 남들과 이야기하기 좋아하거든요. 또 삶을 낙천적으로 바라보는 편이지요. 이런 까닭에, 제가 그의 음악에 새로운 호흡을 불어넣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굉장히 오랫동안,
엄청나게 많은 연습을 하고 난 뒤 콩쿠르에 참여했잖아요.
저는 그저 준비한 것들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무대에 오르기 바로 직전까지도 새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재료들을 찾으려고 계속해서 노력했습니다
콩쿠르 이후 삶이 많이 바뀌었지요?
3주간의 고된 대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기를 고대했는데, 12월에나 집에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본에 도착하기 전, 할로윈까지 폴란드 전국 투어를 다녔습니다. 우승 후에도 10일 동안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이미 일곱 번이나 연주했어요. 이 곡을 앞으로 일본에서 한 번, 이스라엘에서 한 번, 그리고 한국에서 한 번 더 연주해야 합니다.
예정보다 여행이 길어졌는데 옷가지들은 충분한가요?
콩쿠르를 위해 준비한 3주치의 옷은 가지고 다녀요. 이제 세탁할 때가 되었죠.(웃음) 다른 것들은 여행 중에도 구입이 가능해서 크게 문제되지는 않아요. 오히려 정신적인 부분이 문제인데, 일종의 피로를 느끼고 있습니다. 나 자신을 진정시키기 위한 시간이 따로 필요해요. 투어가 끝나면 아마도 가능하겠지요.
예전 인터뷰를 보면 피아노가 자신이 즐기는 ‘열다섯 가지 취미’ 중 하나라고 몇 번이고 강조했는데요. 사실인가요?
맞아요. 어릴 때, 피아노가 훨씬 많은 시간을 차지하기 전의 얘기죠. 카트 레이싱도 굉장히 좋아하고 평소에 수영은 매일 하는 편입니다. 체스나 골프 같은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게임도 즐기고, 영화와 독서도 좋아하죠. 어린 시절에는 테니스와 탁구도 즐겼습니다. 지금은 피아노에 더 집중하는 편입니다. 특히 대회 이후로는 엄청난 책임감마저 느낍니다.
그런 여러 다른 관심에도 불구하고 피아노를 선택한 동기는 무엇일까요?
저는 아직도 피아노를 취미라고 여깁니다. 직업이나 그 비슷한 것으로 부르고 싶지 않아요. ‘취미’는 정말로 좋아할 때만 하는 거잖아요? 일상적인 루틴이나 의무가 아니라는 의미에서 더 좋은 것 같아요. 언젠가 더 이상 피아노를 치고 싶지 않게 된다면 그만 둘 거예요. 내 미래의 매니저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다행히 지금은 아닙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음악적 아이디어를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요. 떠밀려서 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직업으로서의 피아니스트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경쟁이 심한 직업이죠. 피아노만 연주하며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피아니스트가 과연 세상에 몇 명이나 될까요? 금전적인 걱정을 하지 않고 멋진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일을 겸업할 수밖에 없겠죠.
맨 처음 피아노를 시작할 때가 기억나세요?
여덟 살 즈음 집에 굴러다니던 전자 키보드를 두들겼던 것이 시작이었어요. 앞에 얘기했던 열다섯 가지 취미 중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죠. 건반이 55개뿐인 장난감 키보드였습니다. 그러다 주말마다 레슨을 가고, 기본적인 작품들을 배우게 되었는데, 1년 뒤 선생님이 다음에 배울 곡들은 건반이 88개가 필요하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렇게 본격적인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했지만, 당시에는 앞으로 계속 연주하게 될 거라고 전혀 생각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도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시나요?
좋아하시죠. 하지만 아버지는 화가라서 음악을 전문적으로는 모르세요. 제가 잘 치든 못 치든 아버지는 ‘정말 잘 하네!’ 그러면서 박수만 칠 뿐이었습니다. 피아노를 치는 것은 우리 둘에게 전혀 진지한 문제가 아니었다니까요.
어머니와도 음악에 대해 얘기하는 편인가요?
물론입니다. 부모님은 제가 어릴 적에 이혼하셔서 어머니는 파리에 사시는데 쇼팽 콩쿠르를 치르는 동안 대회에 와주셨습니다.
바로 직전 우승자인 조성진의 연주를 들어봤을 텐데, 어떤 연주자라고 생각합니까?
그는 어떤 의미에서 정말로 완벽에 가까운 아티스트입니다. 모든 것이 논리적이고 세심하게 계획되어 있다고 보여요. 그는 일찍이 하마마츠 콩쿠르에서 우승했고, 쇼팽 콩쿠르에 나오기 전부터 이미 슈퍼스타였죠. 그때 저는 하루에 10분씩 피아노를 치는 어린애였고요. 그는 내게 훌륭한 모범이자 영감의 원천이었어요.
이제 당신도 슈퍼스타가 되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려고요. 지금 당장은 어서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고픈 마음뿐이지만, 당장은 이루어질 수 없겠죠. 삶의 균형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연주 여행과 공연으로 바쁘지만 계속 배우고 지식을 쌓는 게 중요해요.
당신의 서울 연주를 기다리고 있을 팬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는?
이번 콘서트는 서울에서의 첫 번째 연주회이자, 첫 한국 방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고대하고 있어요. 여러분의 따뜻한 성원에 감사드리며 어서 만나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2021년 제18회 쇼팽 국제 콩쿠르 이모저모
지난 10월 23일 막을 내린 제18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는 대회 진행 방식에서부터 참가자에 이르기까지 이전의 대회와 다른 신선한 면모가 눈에 띄었다. 가장 큰 차이는 매우 길어진 프로세스일 것이다. 팬데믹으로 인해 본선 대회는 1년 늦게 개최되었지만 예선 참가 신청은 지난해 예정대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2020년 3월 쇼팽 협회가 발표한 전체 참가 지원자는 500명을 웃도는 숫자로 쇼팽 콩쿠르 역사상 역대 최대 규모였다. 협회는 지원자들이 보낸 연주 영상을 심사하여 이 가운데 예선 경연 참가 인원을 160여 명으로 추렸다.
이 참가자들 가운데 151명이 1년이 넘는 긴 준비 기간 끝에 올해 7월 12일부터 23일까지 폴란드 바르샤바에 모여 예선전을 치렀다. 쇼팽 국제 콩쿠르 모바일 앱과 유튜브 ‘쇼팽 인스티튜트’는 자신들의 채널로 바로 이 예선전부터 참가자들의 연주를 실시간 생중계했다. 쇼팽 협회에 따르면 전 세계 예선 경영 시청자는 약 400만 명에 이른다. 쇼팽 협회가 유튜브를 비롯한 소셜 미디어에 들이는 공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조성진 팬덤에서 비롯된 한국 팬들을 고려한 한국어 안내는 물론이요, 유튜브 실황 중계 또한 체계적이고 뛰어난 영상과 음향을 자랑한다.
지난 17회 대회부터 본격적으로 가동된 소셜 미디어 시스템은 콩쿠르가 열리는 내셔널 필하모닉홀에서 폐쇄적으로 진행되던 과거와 달리 콩쿠르를 전 세계가 함께하는 축제로 탈바꿈시켰다. 참가자들의 연주를 실시간 미디어로 시청한 뒤 팬들이 자신들의 블로그나 페이스북에 올리는 소회나 감상은 콩쿠르가 낳은 또 하나의 인터넷 문화로 정착했다.
이런 즐거운 축제 분위기를 한층 고취시킨 것은 참가자들의 몫이었다. 10월 3일부터 시작된 본선 무대를 수놓은 87명의 연주자들 중 일부는 예선전에서부터 독특한 배경과 개성으로 청중들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일본 출신의 비전공 출전자 두 명의 활약이 거셌다. 나고야 의대생 소고 사와다와 도쿄 공대 대학원에 재학 중인 하야토 수미노는 각각 2라운드와 3라운드까지 진출하는 쾌거를 올렸다. 하야토 수미노는 ‘카틴Cateeen’이라는 예명을 가진, 85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명 유튜버이기도 하다.
스페인 출신의 마틴 가르시아는 자신의 나라 특유의 플라멩코 리듬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연주가 인상적이었는데, 결국 3위를 차지했다. 이번 대회 심사위원이자 1980년 쇼팽 콩쿠르 우승자인 당타이선이 “지난번 대회에 비해 다양한 색깔을 가진 참가자들을 만날 수 있어 기뻤다.”라고 언급한 것에 대해, 대회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이들은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종 결선 무대가 끝나고 우승자 발표는 예정보다 3시간 지연됐다. 그만큼 심사위원들 의견이 엇갈렸다는 소리다. 젊은 연주자들이 발산한 다양한 개성과 주관적 해석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힘들었을 수도 있겠지만, 일부 결선 진출자들이 특정 심사위원들의 제자라는 사실은 대회의 공정성과 형평성에 의문을 품게 만드는 대목이다.
고루한 제도권의 이해관계가 어떻게 돌아가든, 참가한 젊은 연주자들은 승패와 상관없이 신세대 특유의 발랄한 태도를 보여줬다. 19세기 팝음악처럼 연주되었을 쇼팽을 현대의 많은 이들이 더욱 쉽게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싶다던 하야토 수미노는 이번 대회를 통해 어느 정도 목표를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3라운드 진출에 아쉽게도 실패한 한국의 최형록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힘들었지만 행복했던 2021년 10월”의 소회를 풀어놨다.
그렇다고 모두가 마냥 행복한 대회인 것만은 아니었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치명적인 패배를 입은 것은 아마도 일본 야마하 피아노일 것이다. 본선 참가자들은 스타인웨이, 야마하, 파치올리, 시게루 가와이 중 하나의 피아노 브랜드를 정해 결선까지 연주한다. 지난 대회에서는 결선까지 줄곧 압도적이었던 야마하의 입지와 존재감이 올해 대회에는 2라운드가 끝나면서 종적을 감췄다. 반면 이탈리아 파치올리사(社)는 브루스 류 덕분에 처음으로 쇼팽 콩쿠르 우승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2021 서울시향 쇼팽 콩쿠르 스페셜 2021년 11월 27일(토)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윌슨 응 | 피아노 브루스 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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