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독서 인생의 실질적인 시발점이 유치원생 때라면, 도약기는 초등학교 5, 6학년때 찾아옵니다. 당시 읽은 책들을 잠시 떠올려보기만 해도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리나>, <카라마조프네 형제들>, <골짜기의 백합>, <외제니 그랑데>,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등등이 떠오르니, 참 즐거운 시절이었어요.
다들 엄청난 작품들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충격적이었던 소설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프란츠 카프카의 <소송>이었습니다. 이런 소설도 있구나. 인간 세상의 이런 면을 들춰낸 소설도 있구나.......카프카에 매료된 전 초등학교 졸업 때 학교 어딘가에 묻은 타임캡슐에도 <소송>의 제 1장을 타이프해서 넣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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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장면장면 삽입된 영화도 명화라고 들었어요. 꼭 한번 보고 싶은데 영화와는 영 안 친해서......
얼마 후 중학생이 된 저는 입학하고 이 주쯤 지나 단체로 학교 도서관에 들러 도서대출증을 교부받고 도서관 이용 교육을 들었어요. 그 자리에 눌러앉은 전 열람실이 문을 닫는 오후 다섯 시 경까지 책의 바닷속에서 헤엄치다 중학교에 올라가면 꼭 보고 싶었던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완역본(처럼 보이는 두꺼운 책)과 카프카의 여러 소설들을 빌려 귀가했어요.
<전쟁과 평화>야 완역은 아닐지언정 이미 읽어본 작품이고, 절 정말로 놀래킨 책들은 카프카의 새로운 소설들이었습니다.
한 권이 카프카의 대표작인 중편 <변신>과 <유형지에서>, <가희 요제피네>등등 여러 단편을 엮은 중단편선이었고 또 한 권이 카프카의 세 장편 중 가장 먼저 쓰인 <아메리카(실종자)>였습니다.
<변신>을 읽으며 이미 열광적인 카프카 신도가 된 저는 <유형지에서> 등등을 읽어나가며 울었어요. 재미있는 소설은 수도 없이 읽어보았지만 소설을 읽다 이렇게 감동받은 적은 전무후무합니다. <아메리카>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지요. 빌린 소설들을 밤새 읽고 반납하고서는 바로 또 카프카의 마지막 장편 <성>을 빌려 읽던 기억이 나네요.
이전까지 좋아하는 작가라면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발자크 등등 많았지만 가장 좋아하는 한 명을 꼽을 수는 없었던 전, 1999년 3월의 그날 이후로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는 언제나 망설임 없이 카프카를 꼽습니다. 13년째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고정되어 있다는 것은 제 독서 수준이 13년째 답보 상태라는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가끔 들지만 뭐 어때요, 저에게는 지금도 카프카만한 작가가 없습니다.
P.S. <소송>의 영화는 아직까지 못 봤지만 카프카의 단편 <학술원에의 보고>를 각색한 추송웅씨의 명연극 <빨간 피터의 고백>은 역시 십 년 이상 기다려 작년 초에 드디어 보았습니다! 각색했다더니만 상상 이상으로 원작과 연극이 비슷해 놀랐어요.
첫댓글 털썩... 초등학교 때 카라마조프, 카프카, 톨스토이를 읽으셨다니 ㅠㅅㅠ 저는 대학교 와서 읽었지만 아직 다 모르겠더군요 ㅠㅠ
저도 다 모르겠어요. 어릴 땐 뭘 읽어도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는데.......좋은 시절이었지요.
소송도 좋지만 단식광대는 정말 압권입니다. 몇명 안되는 관객을 대상으로 연극이 좋아 연극을 버리지 못하는 연극인이나 작은 월급에도 자부심을 느끼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프로들의 모습에서 단식광대의 모습을 봅니다. 개인적으론 단식광대를 카프카 작품 중 제일 좋아합니다.
그 작품 정말 압권이지요. 그만한 임팩트가 있는 단편소설이 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생전에는 거의 무명이었고, 생업을 갖고서 밤새 소설을 쓰던 카프카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해요.
그래도 그 시절에 선택을 할 수 있었다는게 부럽네요ㅎㅎ
선택이요? 제가 어릴 땐 별 걱정없이 살긴 했죠.
대단하십니다
카프카는 정말 위대하죠. 소설사상 천재 중 하나입니다.
변신은 철학책임다- ㅎㅎ
그만한 소설이 드물어요 ㅎㅎㅎ
카프카...참 어려운 책인데 정말 조숙하셨군요... 지난 겨울 인문학 강좌에서 카프카와 도스토예프스키 들었는데 다시 봐도 어렵더군요...
다 알 수 있다면 문학에 통달한 사람이겠지요. 토요일에 아드님과 함께 만나뵈어서 반가웠습니다.^^
저의 主人은 "도스토예프스키"입니다.
따지고 보면 카프카는 도스토예프스키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으니 역시 아라곤님께서는 단수가 높으십니다.
지구라는 행성의 제왕이 "톨스토이"라면, 나의 영혼과 정신, 나의사고가 미치는 모든 시공과 우주에서 나를 인도하고 있는이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아닐까?
톨스토이가 이성의 지구를 지배한다면 도스토예프스키는 모든 현대인과 현대적 사고의 인도자가 아닐까 싶어요.
오홋. 전초등학교때 매일 밖에 놀러댕기느라 책하고는 영 거리가 멀었었는데... 정말 멋있스십니다:)
저처럼 멋과 거리가 먼 사람도 드물어요;;
http://www.ebay.com/itm/MONTBLANC-FRANZ-KAFKA-3-PC-SET-MINT-BOXED-3117-4500-/250909434845?pt=LH_DefaultDomain_0&hash=item3a6b5e23dd
얘도 이젠 비싸네요.......이 펜 처음 나올 무렵 교보에서 본 기억이 나서 아직도 그냥 요즘 펜 같은데;;
걍 쓸데없이 비싸게 올려 논 거죠 ㅎㅎ
이 글을 제 북마크에 저장해 둬야겠습니다.
독서가 부족했던 스스로를 반성하게 되네요. ㅠㅠ
부끄럽습니다;;
저는 요즘 EBS 책 읽어 주는 라디오를 애청 합니다.
저도 몇 번 들어 봤어요.
전 책 읽으면서 한번도 울어 본 적 없는데 -.-a 나낭님 남다른 감성의 소유자이시군요^^
전 감성이 메마른 편이에요. 책 보고 울어 본 적은 저도 거의 없어요;;
저도 나낭님 따라 그책잃고 감동에 물결속에 빠지고 싶어요.. 저도 눈물이 나와야 할텐데.. 지난주 펜쇼에서 뵙고 대화속에서 나낭님이 특별한 분이란걸 바로 느껴습니다..^^
마냥 감동에 젖는 것도 좋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 저보고 좀 이상하다고 하는 분들은 많더군요^^
전 소설은 재미가 별로 없어서 안 좋아하는 편인데, 카프카는 기발한 착안점과 영 썰렁한 유머감각 때문에 좋아합니다.
카프카 소설에서 유머감각을 느끼시는 것을 보니 찬안개님은 보통 분은 아니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