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최북단에 위치한 연천은 안보와 역사, 그리고 생태에 이르는 모든 여행을 가능케 하는 공간이다. 여행의 종합선물세트라고 할까. 북한과 접한 지역이니 안보관광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구석기 유적과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능까지 있으니 역사여행지로도 매력적이다. 천혜의 비경인 임진강 주상절리와 바람소리마저 예쁜 임진강 평화습지원에서 보내는 시간은 또 어떤가. 가을빛 따라 떠나는 연천여행은 그래서 더욱 풍성하고 여유롭다.
연천 여행 코스
임진강 평화습지원 입구에 세워진 두루미 모형
신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랫동안 왕조를 이어온 나라다. 박혁거세가 나라를 세운 기원전 57년부터 고려에 항복해 국권을 넘긴 935년까지, 그 역사가 무려 992년에 이른다. 천년왕국 신라의 마지막을 함께한 경순왕은 왕건에게 나라를 넘긴 지 43년 만인 978년에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연천 경순왕릉(사적 제244호)은 임진강 변 고랑포가 바라보이는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한다. 경순왕은 죽어서도 고향 땅에 묻힐 수 없었다. 경순왕의 운구 행렬이 경주로 가려고 임진강 고랑포에 이르렀을 때 경주지역 민심 동요를 우려한 고려 왕실에서 ‘왕릉은 개경 100리 밖에 쓸 수 없다’는 이유를 내세워 환향을 막았기 때문. 경순왕릉이 신라의 많은 왕릉 가운데 유일하게 경주가 아닌 지역에 남게 된 사연이다. 800여 년간, 역사 속에 묻혀 있던 경순왕릉은 조선 영조 때 다시금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시호 경순왕을 왕의 예우로 장단 옛 고을 남쪽 8리에 장사지내다(諡敬順以王禮葬于長湍古府南八里)’라는 내용의 비를 발견한 것이다. 경순왕릉이 여느 신라 왕릉과 달리 능침에 병풍석을 두르고, 장명등 좌우로 망주석과 석양 한 쌍씩을 배치하는 등 그 형식에서 조선 왕릉을 많이 닮아 있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능침 아래 비각에는 세월에 쓸리고 깎여 더 이상 내용을 확인할 수 없는 큼직한 비석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섰다.
- 주소 :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 산18-2 - 문의 : 031-839-2061(연천군청 문화관광체육과) - 이용시간 : 09:00~18:00
경순왕릉 전경
능침 주위로 다양한 석물을 배치한 경순왕릉 경
순왕릉 능표에는 6·25전쟁 당시 생긴 탄흔이 남아 있다.
승전OP는 북한군의 활동을 관측하는 최전방 관측소다.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에 자리한 승전OP는 육군 제25보병사단 72연대에서 관할한다. OP는 옵저베이션 포스트(Observation Post·관측소)의 머리글자로 승전OP는 승전전망대로도 불린다.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안에 있는 군부대에서 관리하는 곳이다 보니 승전OP로 가는 길은 여전히 까다롭다. 절차는 이렇다. 민통초소에 도착하면 일단 신분증을 제출한다. 신원이 확인되면 파란색 천이 달린 인식표와 출입증을 나눠주는데, 인식표는 차량 운전석 창문에 부착하고, ‘안보관광’이라 적힌 출입증은 대시보드 위에 올린다. 마지막으로 승전OP를 돌아보는 내내 함께할 안내 사병이 탑승한 뒤에야 비로소 출발 준비가 끝난다. 승전OP는 민통초소에서 1km 남짓 떨어져 있다. 승전OP 앞에 주차장이 있지만, 이왕이면 평화동산이라 부르는 야트막한 언덕(사실은 보급로 진입로) 앞 공터에 차를 세우고 걷는 게 좋다. 예쁜 솟대와 포토존으로 꾸민 평화동산에서 승전OP까지는 초병들이 오가는 보급로를 따라간다. 거리는 500m 정도. 초소와 초소 사이로 둥글게 말린 철망이 이어지고, 그 너머로 북녘 땅이 아련하게 보이는 예쁜(?) 길이다. 승전OP 옥상에 마련된 전망대에 서면 보급로에서 바라본 것보다는 한 뼘 정도 더 가까워진 북녘 땅이 두 눈을 가득 채운다. 철책 따라 듬성듬성 자리한 우리 군 초소는 물론 그 초소와 마주하고 있는 북한군 초소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망원경으로 북한군의 움직임까지 볼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남북 초소 간 거리는 750m에 불과하다.
- 주소 :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 산22-1 - 문의 : 031-839-2063(연천군청 문화관광체육과) - 이용시간 : 09:00~17:00
승전OP에서 바라본 임진강
승전OP 전경
오메리 상병 추모비
평화동산
승전OP에서 놓치지 말고 찾아봐야 할 곳이 1·21 침투로다. 1·21 침투로는 1968년 발생한 1·21사태 당시 북한 정찰국 소속 무장 게릴라 31명이 청와대로 가기 위해 지났던 침투 루트 중 하나다. 당시 미2사단이 관리하던 이곳 철책을 지난 게릴라들은 임진강과 파주 파평산, 그리고 북한산 비봉과 승가사를 거쳐 4일 만에 자하문 초소까지 이동했다. 1·21사태는 12일 동안 펼쳐진 군경합동수색작전을 통해 31명의 게릴라 가운데 29명을 사살하고 1명은 도주, 1명은 투항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승전OP에서 차로 5분이면 닿는 1·21 침투로는 사실 화려한 볼거리가 있는 곳은 아니다. 1·21사태 당시 철책을 지나는 게릴라들의 모습을 사람 크기 모형으로 재현한 것이 전부다. 하지만 눈이 아닌 가슴에 와 닿는 느낌의 크기는 결코 작지 않은데, 그건 분단이라는 아픈 현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1·21사태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실미도 사건’도 분단의 역사가 남긴 상흔 가운데 하나다. 실미도 사건을 일으킨 684부대는 1·21사태를 계기로 우리나라가 같은 해 4월 총원 31명으로 창설한 공군 북파공작 부대다. 혹독한 훈련과 열악한 보급, 보수 미지급 등에 불만을 품은 684부대원 24명은 1971년 8월, 무장한 채 청와대로 향했다. 이 사건은 서울 대방동까지 진출한 특수부대원들이 군경과의 총격전 끝에 자폭해 20명이 사망하고 4명이 생포되는 비극으로 마무리됐다. 한국영화사상 최초로 1000만 관객을 모은 영화 <실미도>는 바로 이 사건을 다룬 것이다. 684부대의 정식명칭은 공군 제2325부대 209파견대. ‘684’는 부대가 창설된 1968년 4월에서 연과 월을 따와 붙인 별칭이다. 남북 정상이 군사분계선(MDL·휴전선)을 오가면서 평화를 이야기하는 시대가 됐지만 50년 전 그 일을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아픈 역사는 절대로 반복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 주소 :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반정리 294 - 문의 : 031-839-2061(연천군청 문화관광체육과) - 이용시간 : 09:00~17:00
·21사태 당시 무장 게릴라들의 침투 장면을 재현한 모형1
·21사태 당시 무장 게릴라들의 침투 장면을 재현한 모형2
1·21사태 당시 미군이 관리하던 초소
함경남도 덕원군 마식령산맥에서 발원한 임진강은 철원과 연천 평야를 두루 적신 뒤 한탄강을 받아 서해로 흘러든다. 임진강과 한탄강이 만나는 도감포에서 임진강을 거슬러 북쪽으로 길게 형성된 임진강 주상절리는 임진강 620리 물길 가운데 최고의 비경이다. 특히 주상절리를 타고 오르는 담쟁이덩굴의 붉은 단풍은 이즈음 임진강 주상절리를 찾는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특별한 선물이다. 주상절리는 용암지대에서 주로 관찰되는 지질현상이다. 임진강 주상절리가 있는 동호리 일대는 15만~50만 년 전, 지금은 북한 땅인 강원도 평강군 부근 680m 고지와 오리산에서 분출한 용암이 한탄강을 타고 흐르다 도감포에서 임진강으로 역류해 형성된 용암지대다. 오랜 시간 쌓이고 쌓인 용암이 식으면서 다각형의 균열이 만들어졌고, 그보다 더 오랜 시간 진행된 침식작용에 의해 지금과 같은 주상절리가 형성됐다. 임진강 주상절리는 자연이 만들어낸 거대한 예술작품인 셈이다. 임진강 주상절리를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은 2016년 개통한 동이대교 아래다. 동이대교 서단에서 동이리 쪽으로 방향을 잡은 뒤 ‘임진강 주상절리’ 이정표를 따라가면 한순간 거대한 수직절벽이 거짓말처럼 눈앞에 다가선다. 25m 높이의 수직절벽이 임진강 물길 따라 끝없이 펼쳐진 모습은 장관이라는 말로밖에 설명이 안 된다. 임진강 주상절리와 마주한 강변은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기에 좋은 곳이다. 강태공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낚시 포인트이지만 얕은 물가를 뒤져 다슬기 잡는 재미도 여간 쏠쏠하지 않다. 해 질 녘이면 슬금슬금 물가로 기어 나오는 참게도 볼 수 있다고 하니, 눈 크게 뜨고 찾아볼 일이다.
- 주소 :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동이리 67-1 일원 - 문의 : 031-839-2061(연천군청 문화관광체육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