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이라는 제목이 갖는 의미는 한반도의 척추로써 남북으로 잘린 허리를 말하며 이는 곧 민족 분단을 한마디로 상징하고 있다.
소설의 서막부터 묽은 어둠의 장막에 가려진 새벽 풍경을 묘사함으로써 수많은 죽음과 희생을 예고하는 한편으로 사멸의 결말을 암시하면서 벌교라고 하는 자그마한 지역을 중심으로 270여명의 등장인물들이 이념의 대립과 다양한 모습으로 불행했던 한 시기를 헤쳐나가는 모습을 그렸다.
소설의 중심 공간이 된 벌교는 작가 조정래가 유·소년시절을 보내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았던 곳임은 이미 언급하였다.
조정래는 그의 전반기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상상력에 의하기보다는 자신이 직접 보고 들었던, 다시 말하자면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엮어간 것으로 보여진다.
원고지 1만 5천 7백 여 매, 한의 모닥불, 민중의 불꽃, 분단과 전쟁, 전쟁과 분단 등 4부작 10권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1983년 9월부터 월간지 현대문학에 연재되기 시작해 1986년 제1부 3권을 단행본으로 출간한데 이어 1987년 제2부 2권이 출간되었고 1988년 제3부 2권, 1989년 제4부 3권이 출간됨으로써 전 10권이 완간 되었다.
소설 「태백산맥」은 첫 연재부터 화제를 불러모았다. 분단으로 인한 냉전상황이 극한에 도달해 있던 시기에 분단이라는 예민한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었기 때문이었다.
「태백산맥」은 그 구성(plot)에서 두 가지의 특성을 지닌다.
1948년 10월 이른바 여·순 사건을 앞둔 어느 날 미명에 햇솜 같은 흰 꽃의 무리를 이루고 있는 갈대밭의 풍경으로부터 시작해서 1953년 잔비 토벌이 끝나가던 늦은 가을 어느 날 새벽에 갈대가 누렇게 변한 벌교의 포구를 배경으로 막을 내린다.
5년에 걸친 긴 비극을 마치 하룻밤 사이에 우리들 주변에서 있었던 악몽인양 착각하게 만드는데 이 점이 바로 시간적 구성의 특색이다.
다른 또 하나는 공간적 구성의 특징으로써 「태백산맥」을 「아리랑」과 비교해 보면 쉽게 이해 할 수 있다.
「아리랑」은 1890년대 김제, 군산, 만경을 배경으로 시작하여 그 무대가 하와이, 러시아, 중앙아시아, 일본 등 세계로 넓혀 전개되다가 1945년 우리나라가 광복을 찾으면서 여러 무대에서 각각 끝을 맺는데 반해
「태백산맥」은 벌교에서 시작하여 만주, 서울, 부산, 강원도까지 배경이 넓혀지지만 소설의 중심공간은 항상 벌교라는 제한된 공간에 두고 있고 결국 벌교에서 마무리 짓는 것이다.
「태백산맥」은 짙은 전라도 지방, 그 가운데에서도 남도의 사투리와 적나라한 육담이 독자들을 매료시킨다.
지금까지 수많은 작품들이 앞다투어 전라도 사투리를 사용하였지만 「태백산맥」처럼 사실감있게 묘사한 소설은 없었다. 또 어떤 독자들은 ‘포르노 소설이라고 할 지경이다’말할 정도의 거친 육담은 ‘그냥 외설로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독자들의 평이다. 그 것은 다양한 등장 인물들의 삶과 어우러져 당시 기층민중들의 문화로 설명되고 또한 그렇게 이해되기 때문이다.
작가는 「태백산맥」에서 우리 민족의 분단원인을 두 가지로 말한다.
그 하나는 일제 36년의 치욕을 겪으면서 내선일체를 외치고 황국성전에 참여하자며 학병, 노무자, 정신대를 징용하기에 앞장섰던 친일 경찰을 포함한 일제의 청산에 실패한 점을 강하게 주장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지주계층과 소작농민들 간의 뿌리깊은 갈등에 두고 있다.
벌교지방의 농민은 전체 주민의 8할에 달하고 대부분이 몇 안 되는 지주에게 매달려있는 소작인들이다.
그 소작인들은 광복이후 정부의 토지개혁정책에 크게 기대를 걸었지만 농지개혁은 늦어지고 지주들은 농지를 편법으로 처분하려든다. 울분을 느낀 소작인들은 그런 지주에게 보복을 하지만 세상은 소작인들의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 결국 소작인들이 좋은 세상이 온다는 감언이설을 믿고 입산해 빨치산이 되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그 대표적 사례가 술도가 주인으로 등장하는 정현동이다. 정현동은 농지개혁을 기회로 중도방죽에 있는 간척지를 이백 말뚝이나 사 들이고 염전으로 만들기 위해 양수기로 바닷물을 퍼 올리다가 성난 소작인들의 낫에 찔려 죽임을 당한다. 정현동의 주검은 논고랑에 쳐 박혀 틀틀대며 꺼져가던 발동기와 함께 바닷물이 담긴 논에 눕게되고 홧김에 낫을 휘둘렀던 소작인들은 산으로 내빼는 것이다. 바로 봉건적 토지소유제도에서 비롯된 계층의 분화와 그 구조 안에서의 갈등이 이념적 대결 구도로 변화되면서 6·25로 연결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태백산맥」은 등장인물들을 여러 가지로 대립시키고 또한 비교하도록 유도하는 갈등의 모티브를 설정하고 있다. 지식인 파르티잔 염상진과 우익 행동대장이라 할 수 있는 그의 아우 염상구의 관계를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겠다.
토지의 소유를 둘러싼 지주계층과 소작인들의 갈등을 인식한 염상진은 현실 사회의 모순을 타파한다는 미명으로 사회주의적 혁명을 꿈꾸는 이념의 신봉자로 변모한다.
반면, 그의 동생 염상구는 형에 대한 자신의 열등감에서 비롯된 반감으로 우익에 가담하여 사회주의자들의 색출과 검거에 혈안이 된다.
결국 이 두 형제들의 이야기는 우리 민족이 겪은 아픔을 축소해 그려낸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많은 등장인물 가운데 중도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역사의 흐름 속에서 지속적으로 이동하는 민족주의자 김범우가 있다.
그는 대립적인 두 세력 가운데에서 그들을 매개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태백산맥」에서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부분이 김범우라는 인물의 성격인데 어떻게 보면 회색주의적 인물의 위치이다.
「소설 태백산맥 다시 읽기」의 저자 권영민 교수(서울대)는 “나는 이것을 조정래의 세계관 또는 이념의 한 측면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말한다. 따라서 작가 조정래는 이러한 인식에서 어느 한편도 일방적으로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점에 대해 작가는 "나는 그저 민중의 편에서 그들의 질곡된 삶을 통해 역사를 복원하려고 노력했을 따름이다. 작품 가운데 내가 지향하는 인물은 없지만 굳이 어느 한 인물을 지적하라면 서민영 같은 사람이다."고 말한다.
그러나 「태백산맥」은 작가의 이러한 의도와는 달리 지난 1994년 자유총연맹 등 반공 단체들에 의해 이적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비방과 함께 검찰에 고발되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백산맥」이 거두고 있는 분단 문학으로서의 소설적 성과는 ‘민족의 동질성 회복과 함께 민족사회의 내재적 모순을 비판하는 자세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공감을 얻었다는데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국가보안법에 얽매여 있던 책 태백산맥, 태백산맥을 읽으며 해방후 한국전쟁이 터질 때까지의 대충의 상황이 많이 정리되었고 민족이 무엇인가 이념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많이 알게 되었다.
10권이나 되는 엄청난 대작이기에 일일히 설명 할 수 없지만.
염상진, 염상구, 심재모, 권병제등 여러 성향과 사상을 가진 인물들이 나와 민족의 분단과 아픔을 잘 보여주었다.